SF 생태주의
<헝거 게임>이 말하는 혁명이 정말 혁명일까 본문
남한에서 <스타 워즈>의 주인공 세력은 반란군이라고 불립니다. 레아가 이끄는 무장 세력은 공식적으로 반란군이라고 불리는 것 같아요. 리벨리온과 반란군이 어울리는 번역일까요? 저는 이게 좀 이상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란군은 부정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기득권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반란군이라고 부르죠. 즉, 반란군은 기득권에게 초점을 맞추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스타 워즈>에서 주인공 세력은 제국군이 아닙니다. 주인공 세력은 레아가 이끄는 무장 세력입니다.
<스타 워즈>는 레아에게 초점을 맞추고, 따라서 주인공 세력 리벨리온은 반란군이 아니라 혁명군입니다. 주인공 세력은 제국군을 뒤집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원하는 혁명군이죠. 하지만 남한에서 주인공 세력은 혁명군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아예 <스타 워즈: 반란군> 같은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있습니다. 저는 이게 잘못된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남한에서 <스타 워즈> 팬들이 이런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을 겁니다. 비단 <스타 워즈>만 아니라 SF 세상에는 이런 혁명군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세력들이 혁명군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혁명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장르입니다. 원래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인류 문명이 뒤집어진다고 이야기하는 장르입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전복적인 장르죠. 이건 뭔가를 뒤집기 좋아합니다. 혁명 역시 뭔가(사회 구조)를 뒤집는 행위입니다. 혁명은 전복이고, 사회 구조적인 전복은 혁명이죠. 그래서 혁명과 전복은 잘 어울리고, 사이언스 픽션과 혁명 역시 잘 어울립니다.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이 좌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좌파는 혁명적이고 전복적입니다. 좌파는 현실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을 뒤엎기 바라죠.
그렇다고 해도 좌파와 사이언스 픽션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을 겁니다. 똑같이 세상을 뒤집는다고 해도, 서로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스타 워즈>는 분명히 혁명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세력이 제국군을 뒤집고 공화국을 세운다면, 그건 공화주의 혁명이겠죠. <레 미제라블>에서 공화주의 세력이 혁명을 꿈꾸고 붉은 깃발을 휘날린 것처럼. 하지만 <스타 워즈>가 정말 전복적인 영화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현실이 공화주의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강대국들은 공화국입니다. 왕이나 귀족이 다스리는 강대국은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강대국들은 공화국입니다.
현실은 이미 공화주의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스타 워즈>가 공화주의를 떠든다고 해도, 그건 별로 전복적이지 않습니다. 그건 현실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스타 워즈>는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정상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공화주의 세상에서 공화주의를 외친다면, 그게 전복적인가요? 그게 혁명적일까요? 그렇지 않겠죠. 사실 우리가 수많은 SF 창작물들에서 만나는 혁명은 그런 것들입니다. 수많은 SF 창작물들이 혁명을 외친다고 해도, 그런 혁명들은 별로 전복적이지 않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를 외친다면, 그게 혁명적일까요?
<스타 워즈>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자신이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말합니다. 그건 자유 민주주의죠. 그건 부르주아들에게 이득이 되(고 프롤레타리아들을 착취하)는 자유 민주주의입니다. 따라서 <스타 워즈>에서 혁명군이 열심히 혁명을 떠든다고 해도, <스타 워즈>는 전복적인 SF 영화가 되지 않습니다. <스타 워즈> 이외에 다른 SF 소설들이나 영화들이나 게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인기를 끄는 <헝거 게임> 시리즈 같은 소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혁명적이고 전복적인 사이언스 픽션을 만들고 싶다면, 창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말 혁명을 이야기하는 SF 창작물들은 상대적으로 드물 겁니다.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은 미래 인류가 공산주의 세상을 이룩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현실에서 기득권이 자유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안드로메다 성운>은 혁명적인 소설이 될 수 있겠죠. 뭐, 소비에트 연방에게도 <안드로메다 성운>은 전복적인 소설이었을 겁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소비에트 연방이 바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완전히 다르죠.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런 공산주의 SF 소설이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은 참….
이런 사례처럼 혁명적인 SF 창작물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뒤집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주인공 세력이 누군가와 싸우고 세상을 바꾼다고 해도, 그건 진정한 혁명이 되지 못합니다. 사실 (흔히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SF 창작물들에서 주인공 세력들이 추구하는 혁명은 자유 민주주의 혁명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세상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면, 그건 혁명이 되지 못할 겁니다. 그건 그저 지나간 변화만을 이야기할 뿐이고, 현실을 긍정할 뿐입니다. 현실을 긍정하는 소설이 어떻게 혁명적인 소설이 될 수 있겠어요.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썼을 때, 공화주의는 대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은 혁명적인 소설이 될 수 있었어요. 이런 공화주의 흐름은 나중에 파리 코뮌으로 이어지죠. (코뮌 만세!) 하지만 <헝거 게임>은 아니죠. SF 소설이나 게임에 혁명 비슷한 것이 등장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게 진짜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헝거 게임>은 혁명적인 SF 소설이 됩니다. <헝거 게임>이 자유 민주주의에 절대 저항하지 않음에도, 다들 <헝거 게임>이 혁명적인 SF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우리가 계속 자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그게 옳다고 배웠고, 따라서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엉터리 논리를 남발하죠. 그런 선거 때문에 빈민들이 수탈을 당함에도, 우리는 무조건 선거가 좋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헝거 게임>은 혁명적인 SF 소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