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학문의 순수성>과 생태학과 사회학의 소통 본문
위 링크는 xkcd가 그린 만화 <학문의 순수성 Purity>입니다. 이 만화에서 사회학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심리학자는 사회학자를 깝니다. 생물학자는 다시 심리학자를 까고, 화학자는 또 다시 다시 생물학자를 깝니다. 물리학자는 모두를 깔 수 있고, 자신이 제일 순수하다고 생각하죠. 그때 수학자는 다른 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수학이 제일 순수하기 때문이죠. <학문의 순수성>은 웃기는 만화이나, 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할지 모릅니다. 정말 사회학이 생물학의 하위 분류일까요? 물리학이 다른 학문들에게 뻐길 수 있을까요?
수학 왼쪽에 아무것도 없을까요? 철학이 수학에게 핀잔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철학이 가장 순수한 학문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학자들은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회학부터 심리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철학까지 모두 우리에게 중요한 학문들입니다. 어떤 학문이 다른 것의 응용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학문의 순수성>에서 사회학자가 침묵을 지킨다고 해도, 사회학은 심리학이나 생물학이 말하지 못하는 사안을 다룰 수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사회 생물학은 욕을 퍼먹겠죠.
<학문의 순수성>에서 생물학은 사회학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회학이 생물학에 종속된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사회 생물학은 그렇다고 주장하죠. 그래서? 정말 사회학이 생물학에 종속되어야 하나요? 그건 우생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흑인들과 원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백인들은 생물학을 이용했죠. 계급을 차별하기 위해 자본가들 역시 생물학을 이용했어요. 그런 제국주의 잣대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남한 사람들 역시 열대 민족이 무식하고 야만적이라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떠듭니다. 비단 인종 차별만 아니라 계급 차별 역시 문제입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무식하게 인구 숫자를 불린다고 생각했고,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식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문명이 망한다고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끝나지 않는다면, 자본가 계급은 사회 생물학을 이용해 계속 피지배 계급을 차별할지 모릅니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헛소리는 성 차별일 겁니다. 여전히 숱한 사람들은 생물학을 이용해 남자가 여자를 강간할 수 있다고 헛소리들을 열심히 늘어놓습니다. 사회 생물학은 이런 헛소리들을 열심히 보조할 겁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생물학은 사회학보다 우위에 서지 못할 겁니다. 문화적인 요소가 생물적인 요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설사 그런 문화적인 요소가 생물적인 요소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생물학자들은 그걸 연구하지 않죠.
저는 다양한 학문들이 서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들은 서로 보조할 수 있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어요. 환경 오염을 해결하고 싶다면, 생태학과 천문학과 사회학과 경제학은 서로 만나야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생태학자와 천문학자와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는 서로 만나야 합니다. 데이빗 스즈키와 허먼 데일리가 나누는 대화는 그런 사례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은 모든 학문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가끔 천재적인 만물 박사는 그럴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은 그런 천재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맡아야 합니다.
설사 우리가 모든 학문을 골고루 연구할 수 있다고 해도, 학문들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있을 겁니다. 학문들이 서로 비슷하다고 해도, 경계는 있을 겁니다. 과학자들이 장수 거북을 연구할 때, 그들은 서로 다른 부분들을 이야기하겠죠. 누군가는 등껍질의 형태를 연구할지 모릅니다. 이건 비교 해부학이 되겠죠. 누군가는 어떻게 등껍질이 진화했는지 연구할 겁니다. 이건 진화 생물학이나 계통 분류학이 되겠죠. 누군가는 장수 거북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연구할 겁니다. 이건 생태학이 될 테고요.
예전에 <소멸의 땅>을 이야기했을 때, 저는 생물학자와 생태학자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생물학자는 개별 생명체에게 초점을 맞추고, 생태학자는 전반적인 먹이 그물을 살핍니다. 생물학자와 생태학자는 비슷할 수 있으나, 두 분야는 다르죠. 그래서 <소멸의 땅>에서 생물학자는 생태학자에 가깝습니다. 만화 <학문의 순수성>에서 생태학자가 어디에 있을까요? 생태학자가 생물학자보다 오른쪽으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왼쪽으로 가야 할까요? 사실 우리가 개별 생명체를 관찰하지 못한다면, 전반적인 먹이 그물을 관찰하지 못할 겁니다. 숲을 조성하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나무 하나를 심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물학은 생태학보다 우위에 설지 모르죠. 생물학이 있기 때문에 생태학 역시 존재할 수 있겠죠. 물론 <소멸의 땅>이 보여주는 것처럼, 생태학은 생물학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개별 생명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생물학은 전반적인 먹이 그물에 무심할지 몰라요. 전세계적인 환경 오염을 파악하고 싶다면, 우리에게는 비단 생물학만 아니라 생태학이 필요하겠죠. 아니, 이건 비단 과학자들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겁니다. 환경 오염을 막고 싶다면, 일반 시민들 역시 생태적인 시각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일반 시민들은 생태학과 만나야 할 테고요.
물론 생물학계와 생태학계에는 공식적인 입장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입장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생태학 교과서들이나 생태학 서적들은 이런 입장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아요. 따라서 저는 오류를 저질렀을지 모르죠. 하지만 제가 오류를 저질렀다고 해도, 몇몇 부분은 틀리지 않았을 겁니다. 생태학은 전반적인 먹이 그물을 파악하고, 따라서 환경 오염을 막고 싶다면, 사람들은 생태적인 시각을 키워야 할 겁니다. 생태학이 생물학보다 낮다고 해도, 양쪽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겠죠.
그렇게 21세기 초반에 생태학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학문일지 몰라요. 적어도 생태적인 시각은 가장 중요한 시각이 되겠죠. 생태학이 없다면, 생태적인 시각 역시 없을 테고요. 물론 생태학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류 사회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인류 사회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학은 생태학을 도울 수 있습니다. 생태학자는 사회를 파악하지 못하고, 생태학은 사회학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솔직히 생태학자들은 엉뚱하고 낭만적이고 순진한 소리들을 늘어놓습니다. 사회학은 그런 순진한 헛소리들을 막을 수 있죠.
학문의 순수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렇게 생태학과 사회학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어요. 아니, 생물 다양성을 지키고 싶다면, 오염된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다면, 생태학과 사회학은 반드시 서로 손을 잡아야 할 겁니다. 우리는 학문의 순수성보다 학문들이 서로 교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