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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넛>의 고래 상어부터 평등한 공동체까지 본문

생태/환경 보호

<옥토넛>의 고래 상어부터 평등한 공동체까지

OneTiger 2018. 11. 18. 15:58

[이런 장면이 다소 과장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고래 상어에게서 바다 괴수를 느낄 수 있겠죠.]



애니메이션 <옥토넛>은 다양한 해양 동물들을 소개합니다. 바다는 대략적으로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따라서 바다에는 풍성한 생물 다양성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절지류부터 거대한 고래 상어까지, 해양 생물 다양성은 수많은 가지들을 뻗습니다. 특히, 엄청난 몸집 덕분에 고래 상어처럼 거대한 야생 동물은 쉽게 이목을 끌 수 있겠죠. 당연히 <옥토넛>에는 고래 상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해양 동물들을 촬영하는 동안 대시는 어떤 동굴에 들어갑니다. 대시는 그게 동굴이라고 착각했으나, 사실 그건 고래 상어의 입 안이었습니다.


고래 상어는 대시를 삼켰고, 대시는 탐험대와 더 이상 연락하지 못해요. 바나클 대장은 경보를 울리고 대원들을 소집합니다. 대시를 구하기 위해 바나클 대장과 콰지와 페이소는 고래 상어를 쫓아가죠. 세 탐험 대원들은 어떻게 고래 상어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바나클 대장이 명령하기 전에 콰지는 촐랑거리며 먼저 나갑니다. (아니, 왜 이런 민폐 고양이가 탐험대 부관이 되었는지….) 그렇다고 해도 콰지는 작전을 완전히 망친 적이 없어요. 바나클 대장과 콰지는 열심히 지도를 그리고 고래 상어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으나…. 너무 열심히 논의했기 때문에 두 대원은 고래 상어를 눈치채지 못해요.



고래 상어는 두 대원을 단번에 삼킵니다. 이건 고래 상어가 바나클 대장과 페이소를 잡아먹기 원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고래 상어는 저도 모르게 아무거나 삼켰죠. 바나클 대장과 페이소는 고래 상어 입 안으로 들어가고 대시를 찾기 위해 아예 상어 뱃속으로 내려갑니다. 이건 거의 요나 이야기입니다.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피노키오를 머릿속에 떠올릴지 모르죠. <옥토넛>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나, 옥토넛 탐험 대원들이 동물의 뱃속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별로 많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대왕 오징어나 산갈치를 만났을 때조차 옥토넛 탐험 대원들은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죠.


그래서 고래 상어 이야기는 얼마나 고래 상어가 커다란지 강조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고래 상어 뱃속은 해저 동굴과 다르지 않고, 고래 상어는 살아있는 동굴이나 살아있는 미궁이 됩니다. 거대 해양 동물들을 소개할 때마다, <옥토넛>은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나, 그것들 중에서 고래 상어 이야기는 가장 독특할지 몰라요. 동물 뱃속을 헤매는 이야기는 과학 탐사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와 전설에 가깝죠. 게임 <갓 오브 워 4>에서 크레토스가 요르문간드(월드 서펜트)의 뱃속을 헤맨 것처럼,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간 것처럼, 동물 뱃속 탐험은 신화입니다.



하지만 바나클 대장과 콰지와 대시는 크레토스 및 요나와 다릅니다. <옥토넛>은 신화와 전설이 아니라 과학 탐사 이야기입니다. 과학 탐사 이야기임에도, <옥토넛>은 고래 상어 뱃속을 탐험한다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이건 얼마나 고래 상어가 거대한지 강조할 수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대왕 오징어 이야기나 산갈치 이야기가 훨씬 인상적이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조차 고래 상어 이야기가 독특하다고 인정하겠죠. 이런 관점에서 고래 상어는 거대 동물, 거대 괴수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구태여 <옥토넛>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바닷속에서 장대한 고래 상어를 보는 순간, 인간은 그게 거대 바다 괴수라고 느낄 겁니다. 인간은 2m를 넘지 못합니다. 반면, 고래 상어는 10m를 넘을 수 있죠. 게다가 고래 상어는 바다를 헤엄칩니다. 바다는 드넓고 무한한 공간이죠. 그런 공간적인 감각은 고래 상어를 훨씬 신비롭고 장대하게 포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닷속에서 고래 상어를 목격할 때 인간은 거대 바다 괴수를 떠올릴 수 있어요. 거대 괴수를 바라보는 감성은 이런 것에 가까울 겁니다. 살아있는 장대함. 그렇게 거대한 뭔가가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 어떤 거대한 것에게 독립적인 의지가 있다는 사실.



아무리 규모가 거대하다고 해도, 여객선이나 유조선이나 구축함은 이런 감성을 풍기지 않습니다. 왜? 여객선이나 유조선이나 구축함에게는 독립적인 의지가 없습니다. 여객선과 유조선과 구축함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설사 이런 배들이 인공 지능을 갖추고 스스로 움직인다고 해도, 여객선과 유조선과 구축함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인공 지능 선박은 생명 현상이 아니죠. 어쩌면 인공 지능 선박은 자신 역시 생명 현상이라고 빡빡 우길지 모릅니다. 인공 지능 선박은 자신과 고래 상어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우길지 모르죠. 인공 지능에게 유감스럽게도 인공 지능 선박과 고래 상어는 다릅니다.


생존하기 위해 생명 현상은 일정한 화학 체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생명 현상은 번성해야 하고 진화해야 합니다. 적어도 42억 년 전이나 38억 년 전이나 35억 년 전에 원시적인 생명체가 나타난 이후, 생명 현상은 그런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21세기 초반 현재까지, 생명 현상은 그런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인공 지능 선박은 그런 진화 역사에 속하지 않아요. 하지만 고래 상어는 속하죠. 그리고 SF 세상 속의 수많은 거대 괴수들 역시 진화 역사에 속합니다. 비록 그런 진화 역사는 가상의 진화 역사이나, 가상의 진화 역사 역시 분명히 진화 역사에 속합니다. 소설 <듄>의 모래벌레와 영화 <고지라> 시리즈의 고로사우루스와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의 크라켄 역시 가상의 생물 다양성에 속합니다.



인공 지능 선박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인공 지능 여객선이 거대한 덩치를 자랑한다고 해도, 그건 생물 다양성에서 직접 비롯하지 않았죠. 그래서 고래 상어는 신비로우나, 인공 지능 여객선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인공 지능 여객선이 볼품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인공 지능 여객선에게 생물 다양성이라는 신비로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객선보다 고래 상어가 작다고 해도, 생물 다양성이 신비롭기 때문에, 고래 상어는 장대한 우아함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모래벌레와 고로사우루스와 크라켄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런 거대 괴수들이 장대한 이유는 그것들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모래벌레와 고로사우루스와 크라켄은 생물 다양성에서 비롯했어요.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런 거대 괴수들을 논의하고 싶다면, 우리는 근본, 뿌리를 찾아야 할 겁니다. 그 뿌리는 생물 다양성이 되겠죠. 생물 다양성이라는 뿌리가 있기 때문에, 그 뿌리에서 숱한 나뭇가지들이 뻗었기 때문에, 작고 작은 버섯부터 거대한 크라켄까지 나뭇가지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대 괴수와 생물 다양성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생물 다양성을 논의하고 싶다면, 우리는 생태 철학을 외면하지 못하겠죠. 생태 철학은 평등한 공동체로 이어질 겁니다. 고래 상어, 생물 다양성, 모래벌레, 생태 철학, 평등한 공동체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어떤 게시글에서 저는 소설 <소멸의 땅>과 게임 <타이토 에콜로지>를 함께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그게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소멸의 땅>과 <타이토 에콜로지>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멸의 땅>과 <타이토 에콜로지>는 모두 똑같은 뿌리에서 뻗어나온 두 나뭇가지입니다. 양쪽 모두 생물 다양성을 이야기하죠. 생물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생물학자는 X 구역을 탐험할 수 있고, 게임 플레이어는 알래스카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소멸의 땅>과 <타이토 에콜로지>는 완전히 다른 것 같으나, 우리가 뿌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뿌리가 깊은, 근본적인 논의가 될 수 있겠죠.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스라와 킴 스탠리 로빈슨과 반다나 시바와 모래벌레와 남아메리카 원주민 운동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반다나 시바와 남아메리카 원주민 운동이 저항과 해방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게다가 아라키스 프레멘 원주민들 역시 저항과 해방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런 논의는 식민지 독립 투쟁과 안젤라 데이비스와 말콤 엑스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을 근본적이고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사례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그게 꽤나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숱한 거대 괴수 팬들은 거대 괴수를 오직 도시 파괴로만 연결합니다. 숱한 거대 괴수 팬들은 오직 도시 파괴가 거대 괴수의 미덕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네, 도시 파괴는 중요한 미덕이죠. 게다가 양쪽이 똑같이 도시를 파괴한다고 해도, 우주 구축함이 도시를 부수는 장면과 거대 괴수가 도시를 부수는 장면은 완전히 다른 감성을 풍기겠죠. 하지만 도시 파괴가 유일한 미덕일까요? 오직 도시 파괴만이 거대 괴수의 미덕일까요? 도시 파괴가 거대 괴수의 전부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왜 고지라가 공룡 형태겠어요? 왜 <심해에서 온 괴물>에서 로도사우루스가 공룡이겠어요? 왜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이 공룡과 두족류 괴수를 이야기했겠어요? 공룡과 두족류 동물들은 생물 다양성, 진화 역사에 속합니다. 고래 상어, 모래벌레, 고로사우루스, 크라켄 모두 생물 다양성에 속합니다.


숱한 크고 작은 괴수들은, 현실 속의 괴수들과 가상의 괴수들은 생물 다양성에 속합니다. 그리고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생물 다양성은 심각하게 줄어드는 중이죠. 이런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거대 괴수 팬들이 오직 도시 파괴만 부르짖어야 할까요? 그게 전부일까요? 고래 상어가 사라지고, 대왕 오징어가 사라지고,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는 동안, 거대 괴수 팬들이 오직 도시 파괴만 부르짖어야 할까요? 거대 괴수 팬들이 오직 도시 파괴만 부르짖는다고 해도, 그건 취향입니다. 취향은 개인의 자유죠. 아무도, 그 누구도 개인의 취향에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될 겁니다. 하지만 거대 괴수 팬들이 오직 도시 파괴만을 부르짖을 때, 그건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논의가 되지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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