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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 보호

생체 우주선, 거대 괴수, 드루이드 배후

OneTiger 2020. 1. 4. 10:37

[언뜻 이 장면과 거대 괴수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으나, 환경 오염들은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인간은 오직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 이 문구는 여러 의미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종교인들은 인간이 빵과 함께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할 겁니다. 인간은 빵을 먹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필멸자입니다. 언젠가 인간은 저 세상을 향해 떠날 겁니다. 하지만 신체가 필멸이라고 해도, 영혼은 불멸입니다. 그래서 신체보다 영혼은 훨씬 중요하고, 훨씬 중요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은 신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오직 빵만으로 살지 못합니다.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빵과 장미를 함께 항유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장미는 문화 예술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장미를 먹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장미를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생명 활동, 신진 대사에 영향을 직접 미치는 것 같지 않으나, 아름다움 없는 인생이 순탄하게 이어질 수 있나요? 분명히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인생에 활력을 더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고 방식과 문학, 예술 사이에는 아주 근본적인 유사성이 있는지 모릅니다. 문학, 예술이 인생을 반영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문학, 예술을 감상하고, (가상의) 사회 관계들을 넓히고, 넓은 시각에서 공동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문학은 그저 사치, 취미, 기호에 불과하지 않은지 모릅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문학을 이용하고 사회 관계들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문학을 비롯해 문화 예술은 필수적인지 모릅니다. 아이들에게 놀이가 필수적인 것처럼, 공동체 생활을 위해 문화 예술은 필수적인지 모릅니다. 인간에게는 장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오직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비단 빵만 아니라 야채와 과일과 버섯과 고기와 생선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분명히 빵은 가장 기초적인 먹거리입니다.


하지만 빵은 여러 먹거리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만약 인간이 오직 빵만 먹는다면, 인간은 영양분들을 제대로 보충하지 못할 겁니다. 인간에게는 비단 빵만 아니라 다른 먹거리들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빵과 함께 과일과 버섯과 생선을 먹어야 합니다. 게다가 식사는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목숨만을 부지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먹을지 모르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먹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먹방은 많은 인기들을 끕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오직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고 말할 겁니다. 이렇게 "인간은 오직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는 문구는 여러 의미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위 문구가 여러 의미들을 가리킨다고 해도, 결국 여러 의미들은 한 가지 사실을 근본적으로 가리킵니다. 인간은 빵을 먹어야 합니다. 인간이 빵 이외에 신의 말씀이나 아름다운 장미나 쫄깃거리는 버섯과 함께 산다고 해도, 결국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빵입니다. 빵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의 말씀과 아름다운 장미와 쫄깃거리는 버섯은 빵에 덧붙을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동물로서 인간은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은 아주 다양하나,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인간은 반드시 뭔가를 먹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예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 이 세상에서 정말 초인들은 존재할지 모르고, 그들은 먹지 않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단편 소설 <스페인의 거지들>에서 불면 초인들이 잠을 청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초인들은 먹지 않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 세상에서 초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초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압도적인 절대 다수는 뭔가를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바다 표범 지방 요리부터 코코넛 크림까지, 수많은 인류 문화들에는 수많은 먹거리들이 있으나, 인간이 무엇을 먹든, 인간은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다른 수많은 동물들과 인간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먹거리는 기본입니다.



육체적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먹거리가 기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간은 먹거리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시장 경제에 매달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시장 경제에 매달릴 때, 사람들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빈부 격차와 경제 공황을 일으키고, 시장 경제 속에서 먹고 살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자본주의 경제 공황은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갑니다. 만약 국가 정부가 시민 배당을 지급한다면, 사회 구성원은 기본적인 요소를 충족할 수 있을 겁니다.


문자 그대로 시민 배당, 기본 소득은 기본적인 요소를 충족합니다. 인간이 동물, 육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류 사회에는 시민 배당이 필요합니다. 고작 경제 공황 따위를 일으키는 백해무익한 자본주의보다 인류 사회에게 시민 배당은 훨씬 필수적입니다. 비록 인간이 오직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히 빵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뭔가를 해석할 때, 우리는 여러 의미들을 고려할 수 있으나, 동시에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해석들이 다양하거나, 심지어 해석들이 대조적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근본적인 요소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사례처럼,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 근본이 있는 것처럼, 생태적인 상상력들 사이에도 근본이 있을 겁니다. 아랫집 수진은 생태적인 상상력들을 좋아합니다. 아랫집 수진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거대 괴수, 드루이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거대 괴수, 드루이드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 가지 설정들은 똑같지 않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생체 우주선은 하드 SF 영역에 속합니다. 만약 SF 소설이 생체 우주선을 이야기한다면, SF 소설은 생태학을 고증해야 할 겁니다. SF 소설은 어떻게 폐쇄 인공 생태계 속에서 생물 다양성이 상호 작용하는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생체 우주선에서 바이오 돔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바이오 돔이 무슨 생태계를 품어야 하나요? 우주선에 최고 포식자들이 있어야 하나요?


꿀벌들이 수분을 맡을 수 있나요? 작은 로봇들이 생태계 순환을 보조해야 하나요? 바이오 돔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독소가 쌓이나요? 내부 순환 체계가 독소를 정화할 수 있나요? 만약 SF 소설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이야기하기 원한다면, SF 소설은 이런 문제들에 대답해야 할 겁니다. SF 소설은 어떻게 우주선 과학자들이 자연 생태계를 직접 조성하는지 고증해야 합니다. 아랫집 수진은 이런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하루 종일 아랫집 수진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이건 질리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아랫집 수진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함께 거대 괴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이오 돔과 달리, 거대 괴수는 하드 SF 영역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거대 괴수는 폐쇄 인공 생태계가 아닙니다. 거대 괴수는 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와 하드 사이언스 픽션은 대조적입니다. 만약 SF 영화 속에서 거대 괴수가 외계인들을 몰아낸다면, 아무도 거대 괴수가 자연 과학을 엄중하게 고증한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지구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 괴수가 외계 우주 함선과 싸운다면, 이런 장면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사이에는 너무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겁니다. 심지어 어떤 SF 독자들은 거대 괴수가 너무 유치하다고 지적할지 모릅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진지하고 논리적이나, 거대 괴수는 유치하고 폭력적입니다. 어떻게 60m짜리 동물이 하늘을 날고, 에너지 계열 병기를 방어하고, 우주 함선과 싸우고, 다른 괴수를 치유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나요?


아랫집 수진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거대 괴수를 함께 좋아하나, 두 가지는 너무 다릅니다. 심지어 두 가지는 대조적입니다. 엄중하고 진지한 하드 SF 소설과 유치하고 요란한 사이언스 판타지 영화는 공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거대 괴수는 낫습니다. 적어도 거대 괴수는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아무리 거대 괴수가 유치하고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거대 괴수는 SF 설정입니다. 반면, 드루이드는 중세 유럽 판타지에 속합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거대 괴수가 너무 대조적이라고 해도, 두 가지는 SF 울타리에 속하나, 중세 판타지 드루이드는 SF 울타리에 절대 들어가지 못합니다. 거대 괴수는 여러 자연 과학 지식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SF 영화 속에서 과학자들은 어떻게 거대 괴수가 진화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생체 우주선이 서구 근대 과학에 기반하는 것처럼, 거대 괴수(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은 서구 근대 과학에 기반합니다. 반면, 드루이드는 서구 근대 과학을 거치지 않습니다. 드루이드가 커다란 부상을 치료하든, 구렁이 같은 덩굴을 조종하든, 날렵한 호랑이로 변신하든, 드루이드는 마법에 기반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달리, 중세 판타지는 마법에 기반합니다. 어떻게 아랫집 수진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드루이드를 함께 좋아할 수 있나요?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거대 괴수와 드루이드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심지어 세 가지들이 대조적이기 때문에, 아랫집 수진은 모순적입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거대 괴수와 드루이드는 모순적입니다. 하지만 여러 해석들 사이에 근본적인 요소가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거대 괴수와 드루이드 사이에는 근본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생태학을 고증해야 합니다. 생태학은 환경 오염 문제를 비판합니다. 생태학 그 자체는 자연 과학 분야이나, 생태학은 환경 보호 운동을 향해 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배후에는 환경 보호가 있습니다. 환경 오염에서 거대 괴수는 비롯합니다. 환경 오염은 거대 괴수를 이야기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 아니나, 많은 거대 괴수들에게 환경 오염은 핵심적인 생산 조건, 핵심적인 배경 설정입니다.



비디오 게임 <서브머지드>부터 소설 <빛의 세계>까지, 거대 괴수들과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헤도라 같은 거대 괴수는 노골적인 공해 괴수입니다. 그래서 거대 괴수 배후에는 환경 보호가 있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배후에 환경 보호가 있는 것처럼, 거대 괴수 배후에는 환경 보호가 있습니다. 드루이드 역시 환경 보호를 이야기합니다. 드루이드가 자연 계열 성직자이기 때문에, 드루이드와 환경 보호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드루이드가 중세 유럽 판타지에 속하고, 중세 판타지가 서구 근대 과학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드루이드는 근대적인 환경 오염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생체 우주선과 거대 괴수는 근대적인 환경 오염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드루이드는 근대적인 환경 오염을 직접 언급하지 못합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거대 괴수는 자연 환경이 고정적이지 않다고 강조할 수 있으나, 드루이드는 진화 이론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진화 이론, 외계 개척 덕분에,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거대 괴수는 시대 격차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반면, 드루이드와 외계 개척 사이에서 연결 고리는 희미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드루이드와 환경 오염은 아주 쉽게 이어집니다. 바이오 돔에서 과학자들이 생물 다양성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처럼, 드루이드는 다양한 식물들과 동물들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가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외계인들을 물리치는 것처럼, 드루이드는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언데드들을 물리칩니다. 드루이드는 그린 드래곤 같은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와 함께 싸웁니다. 생체 우주선, 거대 괴수, 드루이드가 대조적이라고 해도, 이렇게 세 가지들에는 비슷한 배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들이 대조적이라고 해도, 아랫집 수진은 세 가지들을 함께 좋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랫집 수진은 세 가지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종 아랫집 수진은 생체 우주선을 아주 열심히 덕질합니다. 하지만 생체선을 향한 덕심이 시들해질 때, 아랫집 수진은 거대 괴수에게 빠집니다.


아랫집 수진이 거대 괴수에게 빠지는 것처럼, 아랫집 수진은 드루이드가 정말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중세 판타지 게임들에서 드루이드가 단골 손님이기 때문에, 아랫집 수진은 여러 드루이드 설정들을 비교하고 대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랫집 수진이 생체 우주선을 덕질하든, 거대 괴수에게 빠지든, 중세 판타지 게임들을 비교하든, 결국 이것들은 생태적인 상상력입니다. 현실 속에는 생체 우주선, 거대 괴수, 드루이드가 없습니다. 거대 괴수와 드루이드보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과학 기술들을 훨씬 엄중하게 고증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역시 생태적인 상상력입니다.



아직 인류 문명은 외계 행성을 테라포밍하기 위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띄운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인류 문명은 생체 우주선을 절대 건조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현실에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없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그 자체보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이야기하기 위한 조건인지 모릅니다. 현실 속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기후 변화를 비롯해 환경 오염들을 일으킵니다. 아무리 아랫집 수진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에 직접 탑승하기 원한다고 해도, 현실 속에는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는 생태학, 자연 생태계, 환경 오염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생체 우주선을 이야기하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심지어 드루이드를 이야기하기 위해 중세 판타지조차 현실 속의 근대 환경 운동가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보다 기후 변화는 훨씬 근본적인 요소,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기후 변화는 농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고 살아야 하나, 기후 변화가 농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후 변화 속에서 인간은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합니다. 자본주의는 비단 경제 공황만 아니라 기후 변화를 함께 일으키고, 이중적(경제 공황, 기후 변화)인 이유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먹고 살지 못합니다.



아랫집 수진은 생체 우주선 소설을 읽고, 생체 우주선을 이야기하기 위한 조건들을 파악하고, 자본주의와 환경 오염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와 드루이드 역시 자본주의와 환경 오염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랫집 수진은 바이오 돔, 거대 괴수, 드루이드를 좋아하고, 동시에 아랫집 수진은 자본주의를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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