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폭력과 오염을 합리화하는 사람들 본문
좌파와 우파의 차이는 뭘까요. 저는 대답이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밑바닥 계급을 살피고 밑바닥 계급을 살리기 위해 구조를 바꾼다면, 그 사람은 좌파입니다. 사회주의든 무정부주의든 페미니즘이든 직접 민주주의든 전환 마을이든 뭐든 간에 좌파는 우선 밑바닥 계급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밑바닥 계급은 힘이 약하고 수탈을 당하는 생명들을 가리킵니다. 부족민들, 빈민들, 여자들, 야생 동물들. 현대 문명은 성장하기 위해 이런 밑바닥 계급을 수탈했고, 지금도 엄청나게 수탈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파는 절대 이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인정하더라도 슬쩍 회피합니다. 우파는 이런 사항을 절대 논의의 중점에 두지 않습니다. 환경 오염이 화두에 오르면, 우파는 논점을 경제 성장으로 돌리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학살과 수탈과 착취와 오염을 회피하거나 우회하거나 간과합니다. 그들의 시선은 상류층과 중산층과 서민들을 향합니다. 우파들은 문명을 지탱하기 위해 누군가가 대규모로 수탈을 당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아니면 그걸 무시하거나 합리화합니다. 우파들의 모든 논리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오염을 무시하거나 합리화합니다.
물론 좌파 역시 많은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좌파가 저지른 폭력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궁극적인 억압을 누가 먼저 자행했느냐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암살자들은 제국주의 밀정들을 제거하곤 했습니다. 그건 분명히 폭력입니다. 하지만 폭력들은 모두 똑같은 폭력인가요? 일본 제국이 조선을 침략하는 것과 사회주의 암살자들이 제국주의 밀정들을 처치하는 것이 똑같은 폭력인가요? 볼셰비키 정당이 10월 혁명을 일으켰을 때, 농민들은 지주를 때려죽이고 서로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가혹한 폭력이죠. 하지만 그 이전에 지주들은 평화로웠나요?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나요? 그런 지주들은 어떻게 지주가 될 수 있었죠? 어디에서 그레이트 올드 원이 나타나고 그 사람들에게 토지를 하사했나요?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지주들을 학살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많은 비판들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왜 지주라는 인간들이 존재했을까요? 도대체 그 지주들은 어디에서 나타났을까요? 인도네시아 농민들이 지주를 떠받들기로 모두 합의했을까요? 파리 코뮌이 성직자들을 때려죽인 것은? 파리 코뮌만 잘못했나요? 그 이전에 성직자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죠? 그 중에 분명히 착한 성직자들도 있었으나, 그 성직자들이 사회 구조를 바꾸려고 했을까요? 아니, 그 성직자들 역시 지배 계급을 용납했죠. 레프 톨스토이는 모든 폭력에 반대했으나, 저런 폭력마저 없다면 밑바닥 계급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물론 폭력은 나쁩니다. 하지만 어떻게 원대한 억압을 없애죠?
밑바닥 계급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시점이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억압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초와 기원은 중요합니다. 시초와 기원을 무시하고 현재만 바라본다면,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21세기 자연 생태계만 바라보는 광신도들은 왜 공룡 화석이 땅 속에 묻혔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현재를 이해하고 싶다면, 과거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시초를 바라보고, 기원을 바라보고, 밑바닥까지 뚫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피에르 클라스트르나 칼 폴라니 같은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 자본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고요.
좌파들도 폭력을 저질렀으나, 그 이전에 훨씬 거대한 폭력이 존재했죠. 귀족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왕은 백성들을 지배하고, 지주는 소작농들을 부려먹고, 백인 주인은 흑인 노예들에게 채찍질하고, 결국 자본가는 임금 노동자들을 내몰죠. 가부장 제도와 환경 오염 역시 다른 궤도에서 돌아가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가 메갈리아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 이전에 성 폭행들을 막기 위해 어떻게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하는지 말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비난은 허무한 메아리에 그치겠죠. 현실 속에서 여전히 수많은 여자들이 성 폭행에 시달리기 때문에.
저는 우파들과 논쟁할 때,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파들은 학살과 수탈과 오염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우파들은 그것들을 합리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인물들을 보세요. 그들도 양민 학살과 한미 자유 무역 협상과 새만금 개발을 외면하기 위해 난리법석을 피우죠. 그래서 우파들과 논쟁할 때, 저는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환경 오염과 침략 전쟁부터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파라는 단어가 별로 우파를 가리키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학살과 오염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미국이 자유롭고 좋아 보이나요? 하지만 북미 원주민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그 자유롭고 대단한 미국은 존재하지 못했겠죠. 아, 그건 과거일 뿐이라고요? 그렇다면 북한이 핵 미사일로 남한을 날려버린다고 해도 그것 또한 과거에 불과하겠군요. 세월은 계속 흐르고, 모든 것은 과거가 됩니다. 북한이 핵 미사일을 쏘라고 하세요. 우리는 그저 죽으면 됩니다. 그것 또한 과거에 불과할 뿐이겠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우파들은 게거품을 물겠죠. 그들은 약자들의 죽음만이 과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찬란한 문명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온갖 억압과 수탈과 오염 위에서 번성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반쪽은 지옥이죠. 다른 지옥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르카디 보그다노프의 말처럼 이 지구는 그렇게 자유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