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사회주의의 본질과 겉모습 본문
[외계 식생과 새로운 문명은 공상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공상이 아닌 것처럼, 사회주의 역시 마찬가지죠.]
비단 우리나라만 그렇지 않으나, 우리나라는 SF 장르를 꽤나 많이 무시합니다. SF 소설을 유치하다고 모욕하거나, SF 소설이 뜬구름만 잡는다고 괄시하거나, SF 영화는 돈을 잘 버는 블록버스터라거나, 기타 등등. 아마 그 중에서 제일 흔하고 기초적인 오해는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일 겁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지식인들마저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용어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SF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김보영, 듀나, 박상준, 홍인기, 고장원, 미러 창작 사이트, 알트 SF, 조이 SF….
이런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이나 동호회들은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공상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함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공상 과학이 아닙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의 표도기 관장이 말한 것처럼 상상 과학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 소설은 상상 과학 소설입니다. 누군가는 과학 소설이나 사변 소설이라고 부르더군요. 솔직히 저는 사변 소설이 제일 낫다고 생각하나, 적어도 상상 과학 소설이든 과학 소설이든 사변 소설이든 공상 과학 소설보다 훨씬 낫습니다.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만약 제가 북한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른다면, 많은 사람들은 당황할 겁니다. 북한은 민주주의와 하등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북한은 자신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정식 명칭은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뭐시기입니다. 분명히 북한은 자신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내세웁니다. 사실 주체 사상 역시 인민들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민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그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뭔가요. 인민들이 노예가 아니라 주인처럼 살아가는 겁니다.
인민들이 주인처럼 살고 싶다면, 주체적인 사상을 키워야 합니다. 따라서 주체 사상은 민주주의를 강조합니다. 이론적으로 자유 민주주의보다 주체 사상이 훨씬 민주주의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헛소리를 믿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북한이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주체 사상을 주장해도 그들의 행동은 민주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뭐라고 떠들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북한은 그저 포악한 군주제 국가에 불과하죠. 김씨 왕정이 계속 통치하는.
아무리 사람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공상 과학으로 불러도 사이언스 픽션은 공상 과학이 되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사변 소설이거나 상상 과학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오해하든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자신을 민주주의라고 포장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주체 사상을 주장한다고 해도 그들의 본질은 포악한 군주제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 겉모습보다 본질을 봐야 합니다.
본질을 살피지 않고 겉모습에만 집착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을 공상 과학으로 부르거나 북한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오해할지 모릅니다. 사이언스 픽션에 어떤 본질이 있는지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그저 공상 과학이라는 편견을 받아들이겠죠. 그래서 지식인들조차 공상 과학이라는 편협한 용어를 사용합니다. 아마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은 북한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북한이 주체 사상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정말 북한이 인민들의 주인 의식을 강조한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만약 그 사람이 북한의 진짜 모습을 파악한다면, 그렇게 오해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런 논리를 사회주의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사회주의. 아마 19세기 이후 이만큼 엄청나게 오해를 받는 용어가 없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본질을 살피지 않고 겉모습만 바라봅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공상 과학이라고 착각하고 북한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그저 중앙 집중적 독재를 사회주의라고 혼동하죠. 왜냐하면 소비에트 연방이 자신을 현실 사회주의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질을 따지지 않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북한이 자신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면, 사람들은 정색합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자신을 사회주의라고 부르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즉, 처음부터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나쁘다는 편견을 고정시키고, 그 본질을 전혀 살피지 않고, 그래서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앙 집중적 공산당을 사회주의라고 생각해요. 사이언스 픽션이 공상 과학이라고 불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왜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 집중적 권력이 대규모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강물을 날려버리는 모습이 사회주의인지 의심할 필요가 있어요. 물론 저는 소비에트 연방이 사회주의의 장점들을 일부분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분명히 소비에트 연방에게 배울 점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민주주의가 좋은 것처럼 소비에트 연방 역시 좋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주의가 아닌 것을 사회주의라고 부르지 못하겠죠. 본질을 봐야 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사이언스 픽션을 공상 과학이라고 부르거나, 북한을 민주주의라고 오해하거나,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이해하거나. 저는 세 가지 모두 똑같은 착각이라고 봅니다. 본질을 파악하지 않습니다. 그저 겉모습과 세간의 편견만 받아들이죠. 아울러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 역시 북한을 민주주의라고 오해하는 것만큼 어마어마한 편견이죠.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그저 화려한 겉모습만 파악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