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치밀한 상상 과학과 미래 예측 본문
종종 독서 동호회들나 SF 평론가들이나 언론들은 SF 소설 순위를 조사합니다. 최고의 SF 소설 100가지, 최고의 스페이스 오페라들, 올해 최고의 SF 소설들 등등. 여러 도서 커뮤니티들과 인터넷 언론들에서 그런 목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가끔 그런 설문 조사들은 왜 독자들이 SF 소설들을 읽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어떤 독자들은 SF 소설들이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독자들은 엄중한 고증과 치밀한 과학적 상상력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4차 산업 혁명이나 빅 데이터 인공 지능 같은 용어들이 범람한 이후,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SF 소설들을 찾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가령, 안철수가 <뉴로맨서>를 언급했을 때, 사람들이 윌리엄 깁슨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 덕분에 <뉴로맨서>가 유명해졌다고 말한다면, 아마 성급한 결론일 겁니다. 하지만 안철수가 정보 통신 사업에서 엄청나게 성공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뉴로맨서>가 미래의 정보 통신 기술을 파악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후, 여러 사람들은 SF 소설들 속의 인공 지능에 관심을 보였고요.
SF 소설들을 읽는다면, 독자들이 미래를 보다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요? SF 소설들을 쓰는 작가들은 미래학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아서 클라크는 SF 소설들을 읽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서 클라크 본인은 훌륭하고 대중적인 미래학자였죠. 사실 여러 SF 작가들은 과학자인 동시에 소설가입니다. SF 독자들 역시 미래 기술과 자연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고요. 설사 하드 SF 소설이 아니라고 해도 SF 소설은 미래적인 전망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사회 과학적인 상상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반박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때, 우리는 사회 구조를 배제하지 못합니다. 과학 기술이 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사회 구조는 과학 기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마치 변증법적 논리처럼 두 가지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겁니다. 솔직히 저는 사회 구조를 배제하는 하드 SF 소설을 읽을 때마다 반쪽짜리 결과물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소설들은 인류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죠. 진짜 좋은 하드 SF 소설은 인류 문명의 계급 투쟁이나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울타리 안에는 여러 하위 장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SF 소설들이 치밀한 (자연 과학적이든 사회 과학적이든) 상상 과학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치밀한 SF 소설들보다 흥미 위주의 활극들, 모험 이야기들, 전쟁 이야기들이 훨씬 많을 겁니다. 설사 흥미 위주가 아니라고 해도 많은 SF 소설들은 치밀한 고증과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물에 잠긴 세계>에서 치밀한 자연적/사회적 고증을 기대하는 독자는 없을 겁니다. 글쎄요, 어쩌면 이 소설은 기후 변화를 경고하는 소설이 될지 모르죠. 누군가는 그런 맥락을 읽을지 모르죠.
하지만 제임스 발라드는 왜 런던이 물에 잠겼는지 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물에 잠긴 세계>는 <뉴욕 2140> 같은 책과 다르죠. 두 소설은 똑같이 물에 잠긴 도시를 이야기하는 SF 소설입니다. 하지만 <물에 잠긴 세계>는 열대 우림과 드넓은 바다와 해양 파충류들과 적막한 분위기를 아련하게 이야기할 뿐입니다. 반면, <뉴욕 2140>은 사회 구조와 환경 변화를 치밀하게 분석합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자연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이야기해요. 당연히 치밀한 고증을 좋아하는 독자는 <물에 잠긴 세계>보다 <뉴욕 2140>을 더 좋아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뉴욕 2140>만 좋은 SF 소설이라고 추켜세우지 못할 겁니다. <물에 잠긴 세계>는 유명한 소설이고, 출간 이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떤 작가들은 이런 뉴웨이브 SF 소설을 비판했으나, 결국 뉴웨이브 SF 소설들은 SF 출판계에 전반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어요. 이런 소설에서 독자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왜 이런 소설들은 많은 사랑을 받을까요. 이런 소설들은 SF 소설이 그저 미래를 예측하는 장르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미래 예측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사이언스 픽션의 전부는 아니겠죠.
미래를 치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SF 소설은 오직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아요. 메리 셸리와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가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쓸 때도 그랬고, 21세기 지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F 소설은 과학적인 상상력을 이용해 규범과 질서를 흔들 수 있습니다. SF 소설은 자연 과학을 이용해 고정 관념을 타파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SF 소설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들도 많겠으나, 저는 그게 치밀한 소설들과 치밀하지 않은 소설들, 수많은 하위 장르들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재미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