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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노변의 피크닉>과 표지 그림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노변의 피크닉>과 표지 그림

OneTiger 2018. 1. 5. 22:26

[비디오 게임 <스토커> 벽지. 만약 <노변의 피크닉>이 이런 표지 그림을 장식한다면….]

 

 

소설은 텍스트 매체이고, 그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종종 저는 좋은 소설들이 멋진 표지 그림을 붙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표지 그림이 소설 내용과 동떨어졌다면, 오히려 표지 그림이 없는 편이 나을지 모르죠.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블라인드사이트> 같은 소설은 좀 엉뚱한 표지 그림을 붙인 것 같습니다. 저는 왜 그런 그림이 <블라인드 사이트>를 대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어려운 책을 번역한 출판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블라인드 사이트>의 표지 그림은 좀…. 이 소설은 우주 탐사물입니다. 외계 생명체들이 우주 어딘가에 나타났고, 인류 탐사대는 우주선을 타고 외계 생명체들을 방문하고 조사하죠. 당연히 외계 생명체들의 서식지와 광대한 우주와 우주 탐사선이 표지 그림을 장식해야 할 겁니다. 해외 소설들은 그런 그림들을 붙였고요. <블라인드 사이트> 해외 판본들을 검색하면, 다양한 표지 그림들을 볼 수 있죠. 그것들은 멋지고, 무엇보다 소설 내용과 어울립니다. 우리나라 판본은…. 이런 어려운 책을 번역한 출판사가 표지 그림에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 겁니다.

 

 

어쩌면 이건 배부른 불평일지 모릅니다. 출판계가 힘들다는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저는 출판계 사정을 잘 모르나,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황은 주기적인 비극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공황과 떨어지지 못하고, 거대한 공황과 공황 사이는 불황들이 들끓는 틈새가 되죠. 출판계 역시 예외가 아닐 겁니다. 사람들이 책을 비롯해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상황은 분명히 문제이나, 비단 그런 문제만 출판계를 힘들게 하지 않겠죠.

 

무슨 이유든 출판계가 힘들다면, SF 소설을 펴내는 출판사 역시 힘들 겁니다. 따라서 비용을 줄이고 싶다면, 표지 그림을 없앨 수 있겠죠. 사실 소설에서 표지 그림은 중요한 사안이 아닙니다. 표지 그림이 멋지지 않더라도 훌륭한 소설은 여전히 빛납니다. 뭐, 종종 내용이 빈약한 소설들은 멋진 표지 그림이나 예쁜 삽화들을 이용해 독자들을 끌어당깁니다. 아예 소설이 예쁜 삽화들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고요. 예쁜 삽화들을 집어넣지 않았다면, 이른바 라이트 노벨들은 훨씬 덜 팔렸을지 몰라요. 심지어 어떤 독자들은 멋지고 예쁜 표지 그림과 삽화들 때문에 라이트 노벨을 구하죠.

 

 

하지만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가끔 좋은 표지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블라인드 사이트>가 좀 더 멋진 표지 그림을 붙였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노변의 피크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변의 피크닉>에는 어떤 그림이 어울릴까요. 글쎄요, 독자들마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저는 스토커들이 기이한 구역을 떠도는 장면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적막하고 기이한 폐허를 표지 그림으로 장식한다면, 그건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거리, 정체 모를 이상한 물체들, 볼트를 던지는 스토커들…. 저는 이런 장면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런 그림을 붙인 해외 판본이 있고요.

 

때때로 <노변의 피크닉> 해외 판본들은 '깡통'을 표지 그림에 집어넣더군요. 깡통 역시 소설을 대변하는 소품일 수 있으나, 저는 적막한 폐허와 스토커들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판본은 비디오 게임 <스토커>와 비슷한 표지 그림을 사용하더군요. 사실 <스토커>는 <노변의 피크닉>을 통째로 빌린 비디오 게임이죠. 그렇다고 해도 <노변의 피크닉>을 <스토커>와 비슷하게 꾸미는 것은 좀…. 게다가 <노변의 피크닉>은 스토커들이 기이한 구역 속에서 괴물들을 때려잡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만약 <노변의 피크닉>이 <스토커>와 비슷한 표지 그림을 사용한다면, 글쎄요. 독자들의 시선을 좀 더 끌어당길 수 있을까요. 적막한 방사능 폐허, 생존자, 방독면, 각종 생존 장비들, 빈토레즈나 드라구노프 소총, 이상 현상이나 괴물. 이런 요소들을 한 장면에 담는다면, 그건 꽤나 독특하고 자극적인 그림이 될 겁니다. 다른 SF 소설들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소설들보다 훨씬 시선을 끌 것 같습니다. 폐허와 방독면과 동구권 소총과 징그러운 괴물이 꽤나 비일상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선이나 로봇 역시 일상적인 요소는 아니나, 방독면이나 동구권 소총이나 징그러운 괴물보다 훨씬 친숙한 요소들이죠.

 

그래서 저런 요소들이 표지 그림을 장식한다면, 기이한 아우라를 풍길 것 같습니다. 뭐, 제 예상과 달리 독자들은 별로 반응하지 않을지 모르죠. 어쨌든 우리나라 표지 그림은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물론 유독 우리나라 출판사들만 멋없는 그림을 사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끔 인터넷 도서 사이트들에서 이런저런 소설들의 해외 판본들을 검색하면, 멋진 표지 그림들과 희한한 표지 그림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표지 그림의 세계 역시 넓고 복잡한 것 같군요. 사이언스 픽션이 비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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