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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신병 훈련소와 두 번의 단절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신병 훈련소와 두 번의 단절

OneTiger 2017. 12. 15. 20:00

흔히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는 SF 밀리터리 소설이라고 불립니다. <영원한 전쟁>도 그렇고, <아머: 개미 전쟁>도 그렇고, <노인의 전쟁>도 그렇죠. 사실 수많은 SF 전쟁 소설들은 SF 밀리터리 소설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외딴 행성에 사는 민간인이 은하 제국 전쟁에 휘말린다고 해도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SF 밀리터리라고 부르지 않을 듯합니다. 군대가 등장한다고 해도 작가가 뭔가 군사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SF 밀리터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사소한 정의>는 은하 제국과 우주 전쟁과 함선 군인들이 등장합니다. 아예 소설 주인공은 함선 인공 지능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밀리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장르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어렵고, 아무도 무엇이 정확한 장르인지 정의하지 못하나, 저는 어느 정도 공통된 범주를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SF 밀리터리 소설들에서 아주 중요한 소재들 중 하나가 훈련소라고 생각합니다. 훈련소는 경계적인 장소입니다. 이른바 민간인이 군인으로 바뀌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훈련소는 민간인과 군인을 가르는 지점이죠.



<노인의 전쟁>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노인의 전쟁>은 전형적인 훈련소 이야기들을 열심히 나열합니다. 신병들은 어리둥절하고, 교관은 무턱대고 윽박지르고, 낯선 동료들은 서로 사귀거나 반목하고, 온갖 훈련들은 자비가 없고, 기타 등등. 소설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신병들은 민간인 신분에서 벗어나고 군대라는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조직을 충격적으로 체험합니다. 이는 상당한 단절적인 체험입니다. 마치 소설 <킨>에서 자유로운 흑인이 노예 제도 사회로 돌아갔을 때 충격을 느낀 것처럼.


소설 주인공은 자유로운 민간인이었으나, 훈련소에서 명령을 따라야 하는 군인이 됩니다. 뭐, 민간인들이 모두 자유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지옥들을 만들고, 지옥 속에서 고생하는 민간인들은 군대 생활에 별로 충격을 받지 않을지 모르죠. 하지만 존 스칼지 같은 작가는 독자들이 훈련소에서 어떤 충격을 느끼기 원했고, 소설 주인공을 험하게 굴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풀 메탈 자켓>이 이런 훈련소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퍼뜨렸다고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어느 군대를 가든 훈련소 시절은 충격적일 겁니다. 사실 <스타십 트루퍼스>는 <풀 메탈 자켓>보다 훨씬 먼저 나왔고요.



SF 밀리터리 소설에서 훈련소는 비단 민간인과 군인만 가르지 않습니다. 으레 SF 밀리터리 소설들은 근사하고 굉장한 군사 장비들을 소개하곤 하고, 소설 주인공은 훈련소에서 본격적으로 그런 장비를 마주합니다. 그건 첨단 강화복일 수 있고, 우주 구축함일 수 있고, 거대 로봇일 수 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민간 사회에서 그런 군사 장비를 볼 수 없거나 거의 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훈련소를 거치는 동안 그런 군사 장비를 접하고 또 다른 충격을 느끼겠죠. 즉, SF 밀리터리 소설에서 훈련소는 그저 주인공을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멋진 군사 장비를 함께 소개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군인이 되고, 군인으로서 근사한 군사 장비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이런 군사 장비는 SF 밀리터리 소설을 구성하는 주축이 됩니다. 비단 우주 전쟁물만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테메레르>를 SF 밀리터리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대체 역사를 상상했고 군인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로렌스는 신병이 아니죠. 심지어 로렌스는 영관급 장교입니다. 하지만 로렌스는 훈련소를 거치고 군사 장비(드래곤)를 만나죠. <영원한 전쟁>에서 만델라가 파이팅 슈트를 만나는 것처럼.



만약 SF 소설을 단절의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SF 밀리터리 소설에서 훈련소는 두 번의 단절을 보여줍니다. 훈련소는 민간인과 군인을 단절합니다. 그리고 훈련소는 민간 사회가 보여주지 못하는 이질적인 군사 장비를 보여주죠. 물론 일반적인 전쟁 소설 역시 이런 기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일반적인 전쟁 소설은 첨단 강화복이나 거대 로봇이나 우주 구축함을 묘사하지 못하나, 대신 최신예 전차나 전투기, 잠수함을 보여줄 수 있죠. 게다가 대부분 일반인들에게 최신예 잠수함은 첨단 강화복만큼 생소한 대상일 겁니다.


하지만 SF 밀리터리 소설에서 첨단 강화복이나 우주 구축함은 소설 주인공을 훨씬 기이하고 머나먼 세계로 데려갑니다. 일반적인 전쟁 소설에서 최신예 잠수함은 현실을 벗어나지 않아요. 따라서 SF 밀리터리 소설에서 훈련소가 보여주는 두 번의 단절은 소설을 전반적으로 유지하는 감성일지 모릅니다. <스타십 트루퍼스>, <테메레르>, <노인의 전쟁> 등등 다들 그렇죠. 모든 SF 밀리터리 소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지도 높은 몇몇 소설은 그런 기법을 보여주죠. 흠, 만약 누군가가 근사한 SF 밀리터리 소설을 쓰고 싶다면,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써먹었기 때문에 진부할지 몰라도) 훈련소 이야기에 공을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야 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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