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중립은 왼쪽을 향해 달려야 한다 본문
소설 <카본 다이어리 2015>는 제목처럼 탄소 배급을 묘사하는 일기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영국에 사는 고등학생이고, 기후 변화 때문에 영국 정부는 탄소 배급 제도를 실시합니다. 이제 일반적인 시민들은 더 이상 흥청망청 탄소를 낭비하지 못하고,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다들 갈등과 폭동을 겪습니다. 당연히 좌파들은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그런 사회 구조적인 논의들은 점차 늘어납니다. 소설 주인공 고등학생은 이런 상황이 지겹다고 느낍니다. 정치나 사회 문제는 지겹고 더럽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자신이 고등학생으로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바랍니다. 사회 문제 같은 복잡하고 어렵고 더러운 문제를 외면하고, 풋풋하고 싱그러운 학창 시절을 보내기 원해요. 하지만 소설 주인공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심각한 사회 문제들과 부딪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친구들이나 애인이나 친지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때, 혼자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죠. 하지만 소설 주인공이 금방 좌파로 각성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소설 주인공은 사회 문제가 지겹다고 생각해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 문제가 어렵고 지겹고 지저분하다고 여깁니다. 사회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면, 좌파와 우파가 싸우는 난리법석에 끼어들어야 합니다. 좌파와 우파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사람들은 그런 진흙탕 싸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좌파가 뭔가 인간적이고, 동정심과 연민과 선의가 있고, 따스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좌파 역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고, 좌파 역시 추레하고 더럽고 치졸합니다. 그래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좌파는 절대 인간적이지 않아요. 좌파는 동정심과 연민과 선의가 가득한 집단이 아닙니다. 좌파는 박애 정신으로 무장한 집단이 아닙니다.
좌파는 그저 계급 사회에서 밑바닥 사람들을 대변하는 집단일 뿐입니다. 그걸 위해 좌파는 얼마든지 치졸하고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좌파는 숱한 환상들을 깨뜨리고, 그래서 사람들은 좌파에게 실망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치적인 중립을 선택하고, 좌파와 우파 모두를 비난합니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인 중립이 절대 중립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치적인 중립은 간접적으로 우파를 편듭니다. 왜냐하면 현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게다가 너무 오른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입니다. 너무 너무 오른쪽으로 기울었죠.
우리가 흔히 강대국이라고 부르는 국가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은 아주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이고, 러시아나 중국 역시 자본주의를 상당히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강력한 권력과 달리, 신자유주의에 정말 저항하는 세력은 아주 약해요. 사실 역사적으로 언제나 좌파는 약자였습니다. 구조적으로 좌파는 약자입니다. 약자를 대변하기 때문에 좌파는 쉽게 권력을 얻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소비에트 연방이 좌파라고 말합니다. 정말 소비에트 연방이 좌파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에게는 사회주의적인 장점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해도 그건 소비에트 연방이 좌파라는 뜻이 아니죠.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을 좌파라고 간주한다면, 역사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은 가장 강력한 좌파 집단일 겁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언제나 미국과 유럽에게 밀렸습니다. 심지어 소비에트 연방이 전성기를 구가했을 때조차 그들은 미국과 유럽에게 밀렸어요. 러시아 혁명은 밑바닥 계급을 지지하는 혁명이었고, 그래서 러시아 혁명은 아주 가난하게 출발했습니다. 출발 지점이 달랐기 때문에 무슨 짓거리를 저질러도, 소비에트 연방은 미국과 유럽을 따라잡지 못했어요.
따라서 현실은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전성기를 구가했을 때조차 현실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말 균형을 맞추고 싶다면, 중립적인 사람들은 왼쪽으로 몰려가야 합니다. 설사 왼쪽이 싫다고 해도, 중립적인 사람들은 왼쪽으로 몰려가야 합니다. 그때 마침내 양쪽 균형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자칭 중립적인 사람들은 왼쪽으로 몰려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양쪽을 지지하지 않아요. 운동장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그런 행위는 간접적으로 오른쪽을 지지하죠.
그리고 그들은 그게 중립이라고 착각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맞추고 싶다면, 왼쪽으로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가운데에 서있는다면, 그 사람은 오른쪽으로 미끄러질 겁니다. 하지만 자칭 중립적인 사람들은 그게 중립이라고 착각합니다. 대단한 착각이죠. <카본 다이어리 2015>는 그런 착각을 지적할까요. 글쎄요. 이 소설은 대놓고 왼쪽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카본 다이어리>는 그저 체계 안에서 변화를 주도하고 체계에 순종하는 듯합니다. 정말 변화를 주도하고 싶다면,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왼쪽으로 달려야 할 겁니다. 그때 기울어진 운동장은 간신히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카본 다이어리>는 좀 더 왼쪽으로 기울었고, 저는 이런 균형 감각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칭 중립적인 사람들보다 <카본 다이어리 2015>가 훨씬 낫겠죠. 자칭 중립은 그저 겉모습만 그럴 듯한 종교 교리에 불과합니다. 중립이라는 종교 교리라고 불릴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