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가상 현실의 폭력과 현실 속의 원대한 폭력 본문
사이버펑크 소설에서 사람들은 가상의 폭력을 즐기곤 합니다. 현실에서 살인은 돌이키지 못하는 죄악이나, 가상 현실 속에서 살인은 그저 전자 코드에 불과하죠. 가상 현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폭력들을 저지르고, 그런 내용은 사이버펑크 소설을 장식하곤 합니다. 특히, 비디오 게임 시장이 엄청나게 발달한 21세기에 그런 사이버펑크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사이버펑크가 죽었다는 선언만큼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과 가상 현실의 폭력은 비슷할지 모르죠.
솔직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대중적인 비디오 게임들은 매우 폭력적입니다. 인기 순위 목록에서 상위권에 오른 게임들을 살펴보면, 뭔가를 죽이거나 파괴하는 비디오 게임들이 많습니다. 1인칭 사격 게임, 실시간 전략 게임,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4X 전략 게임, 온라인 결투장 게임, 오픈 월드 게임, 아주 간단한 유사 로그 게임들까지…. 이런 게임들 속에서 플레이어는 어느 캐릭터나 부대를 조종하고, 뭔가를 죽이거나 파괴합니다. 그래서 종종 누군가는 비디오 게임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고, 비디오 게임을 멀리 해야 한다고 느낄지 모르죠.
물론 비디오 게임만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수많은 소설들과 영화들도 폭력적입니다. 전쟁은 대중적인 소설들과 영화들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소설들이나 영화들을 자주 접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들도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현실 자체는 이미 폭력적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대기업들이 계속 이윤을 축적해야 경제가 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이윤을 축적할 수 있다면, 대기업들이 온실 가스를 뿜고 숲을 밀어내고 바다에 쓰레기들을 버린다고 해도, 사람들은 대기업들을 용납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비디오 게임이 폭력적이라고 말하나, 이 세상에서 비디오 게임만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소설들도 폭력적이고, 영화들도 폭력적이고, 무엇보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제일 폭력적입니다. 현대 문명에서 자본주의는 가장 커다란 폭력이고, 가장 심각한 폭력입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 폭력적이라고 난리법석을 떠는 사람들도 자본주의의 수탈을 외면하곤 합니다. 그들은 그저 경제 성장만 숭배합니다. 경제 성장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빈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야생 동물들을 멸종시켜도 사람들은 그런 폭력에서 시선을 돌립니다.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이죠.
비디오 게임 속에서 가상의 생명체들이 죽을 때, 사람들은 비디오 게임이 폭력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대기업들이 야생 동물들을 학살할 때, 사람들은 경제 성장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어마어마한 폭력에 비한다면, 비디오 게임은 애교 수준일 겁니다. 아니, 애교조차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빈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야생 동물들을 멸종시키는 방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고작 비디오 게임이 폭력적이라고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가상의 폭력이 나쁘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은 진짜 현실적이고 심각한 폭력을 외면해요. 솔직히 저는 그런 사람들이 폭력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게임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저 귀가 얇기 때문이죠. 게임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게임을 비난할 뿐이겠죠. 딱히 논리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배 계급이나 언론이 뭐라고 떠들기 때문에 그저 앵무새처럼 수많은 사람들은 지배 계급이나 언론을 모방할 뿐이겠죠. 정말 비디오 게임이 폭력적이라면, 왜 현실의 어마어마한 수탈과 오염을 모른 척할까요.
예전에 한 번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이를 메갈리아 논쟁과 비교해도 괜찮겠죠. 많은 남자들은 메갈리아가 폭력적이라고 비난합니다. 맞아요, 메갈리아는 폭력적으로 보이죠. 하지만 그런 남자들이 정말 폭력에 반대한다면, 왜 성 폭력은 도마 위에 오르기가 이다지 힘들까요. 비단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니나, 우리나라에서 성 폭행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수많은 여자들은 어디에서 갑자기 폭력에 휘둘릴지 모르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 폭행은 별로 논란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 폭행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글들도 아무렇지 않게 인터넷을 돌아다닙니다.
만약 메갈리아를 비난하는 그 수많은 남자들이 정말 폭력에 반대한다면, 왜 성 폭행은 메갈리아만큼 논쟁이 되지 않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런 남자들이 폭력 때문에 메갈리아를 비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남자들이 훨씬 거대한 폭력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겠죠. 비디오 게임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비슷합니다. 정말 거대한 폭력을 외면하고, 사소하고 작은 폭력에만 매달리죠. 마치 그게 굉장히 대단한 것처럼.
물론 정말 거대한 폭력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 폭력은 지배 계급에서 비롯하고, 지배 계급은 온갖 수단들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상들을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폭력에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훨씬 거대한 폭력, 지배 계급에서 비롯하는 폭력을 봐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