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생산 과정을 배제하는 거시적인 폭력 본문
예전에 메갈리아 논쟁이 한창 시끄러웠을 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비난했고, 그들이 잘못했다고 떠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비난하는 이유는 메갈리아가 매우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메갈리아는 험악한 단어들을 쏟아냈고,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그게 미러링 전술이든 어쨌든, 메갈리아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보였고, 그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메갈리아가 폭력적이라고 들먹였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유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메갈리아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비난했을까요. 정말 사람들이 폭력을 반대할까요. 정말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관심이 많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폭력에 반대하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은 구조적인 폭력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 인류 문명에서 어마어마한 폭력을 구경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폭력들의 상당수는 자본주의 구조에서 비롯합니다. 자본주의만 폭력을 양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간과한다면, 상당한 폭력을 간과하게 될 겁니다.
자본주의 구조에서 소수 자본가들은 토지를 비롯한 생산 수단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생산 수단과 임금 노동자들을 이용해 상품들을 생산합니다. 자본가들은 시장에서 상품들을 판매하고 이윤을 축적하죠. 자본가들은 그런 행위를 반복하고, 그렇게 자본주의는 굴러갑니다. (자본주의 체계를 훨씬 더 깊이 분석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 그걸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대부분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을 뿐이고,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 참가하지 못하고, 생산 과정을 결정하는 쪽은 소수 자본가들입니다.
생산 과정을 결정하는 동안 자본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대부분 노동자들은 그걸 막지 못합니다. 자본가들이 산업 폐기물들을 배출하거나 매연을 뿜거나 밀림을 밀어버린다고 해도 노동자들은 그런 행위를 막지 못합니다. 환경 오염의 본질은 그것이죠. 그저 사람들이 탐욕스럽거나 대기업들이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환경 오염은 그런 구조에서 비롯합니다. 이렇게 자본이 노동과 자연 환경을 배제할 때, 국가는 자본을 편듭니다. 기득권을 편들면,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민주당처럼 수구 꼴통과 멀어 보이는 정당 역시 자유 무역 협정을 환영하죠.
이런 환경 오염은 폭력일까요. 이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닙니다. 환경 오염은 누군가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칼로 찌르거나 총을 쏘는 행위가 아니죠. 숱한 환경 운동가들은 용역 깡패들에게 목숨을 잃으나, 그렇다고 해도 그건 표면적인 현상이고 본질적인 구조는 아니죠. 하지만 환경 오염은 폭력만큼 많은 피해를 끼칩니다. 어쩌면 물리적인 폭력보다 환경 오염이 훨씬 부정적일지 모릅니다. 산업 폐기물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환경 오염은 미래적이고 행성적인 문제'입니다. '행성적'이라는 표현은 좀 어색하나, 저는 이런 표현을 고수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이게 거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지구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으나, 저는 지구라는 표현보다 행성이라는 표현이 좀 더 와닿는다고 생각해요. 이런 심각한 오염을 해결하고 싶다면, 당연히 자본주의 체계를 없애야 할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생산 과정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당장 그런 사회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길을 가야 할 겁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길을 걸을까요. 물론 이 세상에는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자연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많죠. 그리고 이 한국에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폭력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메갈리아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메갈리아는 감히 비교조차 되지 못하는) 엄청난 오염이 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런 구조적인 폭력(오염)을 옹호해요. 게다가 메갈리아 논쟁이 벌어진 이후에도 아직 강간이나 성 폭행은 별로 뜨거운 화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강간이나 성 폭행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요. 사소한 정책들 이외에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요.
정말 성 폭행을 없애고 싶다면, 가난한 여자들도 권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권력이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이 자본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가난한 시골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땅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요. 아니, 비단 시골 할머니들만 아니라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 여자들조차 자신들의 기반을 얻지 못하죠. 그래서 수많은 여학생들이 성형 수술에 매달리겠죠. 기반이 없기 때문에. 몸뚱이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기반 없는 여자들이 열심히 몸뚱이를 파는 상황에서 성 폭행을 없앤다고요? 웃기는 소리겠죠.
언제나 말하는 것처럼 저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거대 자본들에게 굴종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일개 개인이 지배적인 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겠죠. (강간을 미화하는 행위 역시 지배적인 관념이고요.) 따라서 누군가가 정말 폭력에 반대한다면, 뭐가 더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폭력인지 고민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