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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인간의 본질이 자유라는 공허한 망상 본문

사회주의/우익 이데올로기 비판

인간의 본질이 자유라는 공허한 망상

OneTiger 2019. 8. 10. 20:03

"미래의 악몽과 현실적인 디테일이 결합한 디지털 아포칼립스 스릴러. 지금 이 시대를 담은 현실적인 디테일과 묵시론적 상상력을 담은 작품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이건 소설 <피드>의 홍보 문구입니다. 이런 문구를 이용해 인터넷 서점들은 소설 <피드>를 홍보합니다. 닉 클라크 윈도가 쓴 <피드>는 사이버펑크이고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소설 속의 미래 시대에서 사람들은 별다른 장치 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생각들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이건 거의 텔레파시에 가깝고, 하루 종일 사람들은 인터넷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디지털 텔레파시 생활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나, 이 세상에 영구적인 기계는 없습니다. 인터넷 접속이 멈췄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이건 대재난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넷 두절 때문에 인류 문명은 종말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피드>는 어떻게 인간으로서 인간이 사는지 이야기합니다. 비단 <피드>만 아니라 숱한 사이버펑크들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이른바 '인간의 본질'을 운운합니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이버펑크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사이버펑크는 인간을 다른 것들과 뒤섞을 수 있습니다. 사이버펑크 속에서 인간은 정보가 되고, 부품이 되고, 돈이 됩니다. 인간이 가상 세계에 접속할 때,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디지털 정보가 됩니다. 다국적 기업들이 노동자를 고용할 때,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부품이 됩니다. 시장 경제가 모든 것을 상품화할 때,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돈이 됩니다. 사이버펑크는 가상 세계와 다국적 기업들과 시장 경제를 이용해 인간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상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잃고 정보가 될지 모릅니다. (이윤을 위한) 정보는 인간의 전부가 아니나, 가상 세계는 정보가 전부라고 간주할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신이 부품이 아니라고 항변하나, 다국적 기업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저 부품에 불과합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인간은 생명이 소중하다고 외칠 수 있으나, 시장 경제는 이런 외침을 무시합니다. 시장 경제는 오직 상품으로서만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게다가 사이버펑크는 인간과 비슷한 로봇과 인조 인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인조 인간들이 활보하고, 인간과 인조 인간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때, 사람들은 묻습니다. "누가 인간인가? 무엇이 인간인가?" 옹고집 설화처럼, 이미 사이버펑크가 나타나기 전부터, 사람들은 무엇이 인간인지 물었습니다. 사이버펑크는 옹고집 설화를 21세기로 끌어올립니다.



사이버펑크가 가상 세계와 다국적 기업들과 시장 경제를 이용한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야만을 이용합니다. 사이버펑크는 화려한 첨단 기술들을 늘어놓으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우중충하고 추레하고 투박한 생존들을 늘어놓습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이른바) 문명인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문명인이 아니라 야만인이 되어야 합니다. 야만인은 거칠고 잔인하고 억압적으로 생존해야 합니다. 여러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문명이라는 허울 뒤에 야만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문명은 연약합니다. 문명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얼마든지 야만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문명이라는 허울은 야만을 감추나, 야만은 문명을 찢어발깁니다.


야만은 쉽게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인간의 본질이 문명보다 야만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가면들을 쓸 수 있으나, 허례허식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질 때, 모든 것은 혼란에 빠지고, 폭력은 모든 것을 장악합니다. 생존하기 위해 사람들은 살인들과 성 폭행들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문명은 절대 든든한 지지대가 아닙니다. 문명은 그저 갸날픈 천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문명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그게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야만을 보여주고 "보라, 인간의 본질은 이것이다!"라고 외칩니다.



이렇게 사이버펑크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인간의 본질을 물을 수 있습니다. 소설 <피드>는 사이버펑크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합쳤습니다. 당연히 <피드>는 인간이 무엇인지 훨씬 깊게 물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들은 <피드>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고 홍보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소설들을 읽을 때, 독자들은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SF 소설들이 인간의 본질을 물을 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SF 소설들이 자유주의 성향을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정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비단 SF 소설들만 아니라 이미 SF 소설들을 읽는 독자들 역시 인간의 본질이 자유주의 성향이라고 간주할 겁니다.


우리가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인간의 본질이 자유주의라고 제한합니다. 오직 자유주의 성향 속에서만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문자 그대로 전세계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입니다.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개인이 뭔가를 소유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여러 자유주의 혁명들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세금 문제를 외쳤습니다. 세금 문제는 개인의 소유로 이어집니다.



개인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여기에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 재산은 중요한 것이고 자유로운 개인을 뒷받침하는 요소입니다. 개인 재산 없이, 자유로운 개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이후, 수많은 사람들은 세금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시장에서 상인들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시장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자유주의 논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뒷받침합니다. 이런 자유주의 논리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재산을 소유해야 합니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싸워야 합니다.


누군가가 개인 소유를 침범할 때, 인간은 거기에 저항해야 합니다. 인간의 본질은 그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것만이, 오직 개인 소유만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개인 소유가 인간의 본질인가요? 개인 소유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개인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나요? 땅부자는 엄청나게 넓은 땅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왜 땅부자가 혼자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나요? 어떻게 땅부자가 혼자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나요? 누가 그걸 인정했습니까? 전세계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그걸 인정했나요? 왜 누군가가 넓은 땅을 차지하고, 왜 작은 텃밭조차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굶어죽어야 합니까? 왜? 무엇 때문에?



북아메리카 대륙은 백인들 소유입니다. 하지만 왜 백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소유합니까? 어떻게 백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까? 끔찍한 학살 없이, 백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소유할 수 있었나요? 백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을 끔찍하게 학살하지 않았다면, 미국 백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요? 미국 백인들은 부유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 백인들이 부유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과 많이 다르나, 분명히 미국에는 엄청난 부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그 부가 나왔나요? 미국에는 흑인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미국 백인들은 흑인 노예들을 죽도록 부려먹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막대한 부를 생산했습니다. 심지어 노예 해방 이후, 흑인 노예들은 흑인 노동자들이 되어야 했고 계속 착취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흑인들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나요? 흑인들이 막대한 부를 생산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흑인들이 부자가 되고 떵떵거릴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그게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개인 소유가 중요하다고 간주하고 자유주의 성향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로서 개인 소유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어떻게 개인 소유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그 자체로서 개인 소유가 개인 소유입니까?



이건 환상입니다. 이건 망상입니다. 이건 거짓말입니다. 이건 착각이고 오해이고 세뇌입니다. 그 자체로서 개인 소유는 개인 소유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개인 소유가 정말 중요하다면, 미국 백인 부자들은 인디언들과 흑인들과 원주민들에게 재산을 모두 반납해야 할 겁니다. 개인 소유는 모순입니다. 끔찍한 학살들과 폭력들 속에서 자유주의 성향이 나타났기 때문에, 개인 소유는 모순입니다. 만약 개인 소유가 정말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는 끔찍한 학살들과 폭력들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런 청산 없이, 우리는 개인 소유를 떠들지 못합니다. 독자들이 SF 소설들을 읽을 때, 독자들 역시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겁니다.


우리가 자유를 떠드는 이유는 그 자체로서 자유가 소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배적인 관념, 자본주의 체계가 초월적인 시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더 이상 역사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인류 문명이 종착역에 도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인류 문명 종착역이고, 더 이상 인류 문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미래는 자본주의 확장 판본입니다. 인류 그 자체가 바뀔 때, 자본주의 역시 바뀔 겁니다. 인류 문명은 스스로 자본주의를 바꾸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종착역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보수 우파는 모든 것을 '결과적으로' 바라봅니다.



자본주의가 종착역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의 끝에서 보수 우파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보수 우파는 초월적인 시공간을 좋아합니다. 보수 우파는 특정한 시대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서구 계몽주의 이후, 보수적인 실증주의가 나타났을 때, 이미 실증주의는 특정한 시대 상황들을 무시했고 모든 것이 초월적이고 결과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역사의 종착역에서 실증주의는 역사를 재단합니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로 귀결하기 때문에, 역사의 종착역에서 실증주의는 오직 결과만으로 역사를 판단합니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보수 우파는 자유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떠듭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자유를 붙드는 이유는 그 자체로서 자유가 소중하기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보수 우파, 자유주의, 실증주의는 자본주의가 저지른 엄청난 폭력들을 관대하게 용서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자본주의로 귀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수적인 실증주의는 망상입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직 끔찍한 학살들과 폭력들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SF 소설들이 가상 세계와 다국적 기업들과 인조 인간들과 멸망한 문명을 들이댄다고 해도, 독자들은 끔찍한 학살들과 폭력들을 인식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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