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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유동적인 문화 예술과 근본적인 자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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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인 문화 예술과 근본적인 자연

OneTiger 2020. 9. 13. 20:05

[소설 세계 설정과 비디오 게임 세계 설정은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 예술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SF 설정인가요? 네, 이건 SF 설정입니다. 지킬 박사가 약물을 마시고 다른 인간 하이드로 변신하기 때문에, 이건 바이오펑크 설정입니다. 지킬 박사는 과학 기술을 이용하고 자신의 신체를 바꿉니다. 인크레더블 헐크가 SF 설정인 것처럼,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SF 설정입니다. 하지만 어떤 소설 독자들에게 이건 사이언스 픽션보다 고전 문학입니다. 그들은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보다 고전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뭐야? 어떻게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일 수 있지? 이건 말이 안 돼! 이건 그저 억지 대입에 불과해!" 이렇게 어떤 소설 독자들은 반박할지 모릅니다.


비단 <지킬 박사와 하이드>만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나 <멋진 신세계>나 <유리알 유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소설 독자들은 이 소설들이 사이언스 픽션보다 고전 문학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민음사 TV가 박상준님을 초대했을 때, 조대한 평론가는 <멋진 신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인지 물었고, 박상준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멋진 신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인 것처럼, 이른바 세계 고전 문학들 중에서 어떤 소설들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하지만 소설 독자들은 박상준님을 비난할지 모릅니다. "아니, 뭐야? <멋진 신세계>는 고작 SF 따위가 아니야! 이건 엉터리 해석, 억지 대입이야!"



저는 지인들에게 <프랑켄슈타인>이 사이언스 픽션, 바이오펑크라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인들은 <프랑켄슈타인>이 사이언스 픽션보다 세계 고전 문학, 고딕 호러 소설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건 그저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하지 않을 겁니다. 조대한 평론가가 SF 범주를 묻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유리알 유희>와 <멋진 신세계>가 사이언스 픽션보다 고전 문학이라고 간주할 겁니다. 아무리 박상준님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어떤 소설 독자들은 박상준님이 <멋진 신세계>를 SF 장르에 억지로 집어넣는다고 비난할지 모릅니다.


<멋진 신세계>가 SF 소설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소설 독자들은 SF 장르에서 <강철 군화>를 제외할지 모릅니다. 한때 국내 SF 소설 독자들은 <사슴 벌레 여자>가 사이언스 픽션인지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누군가는 이 소설이 어중간한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젓습니다. <사슴 벌레 여자>는 사이언스 픽션이 되거나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SF 장르는 흐릿한 경계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이 무엇인지 논의하고, 이 논의 그 자체는 사이언스 픽션인지 모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유동적인 흐름입니다.



하지만 오직 SF 장르만 흐릿한 경계선인가요? 오직 사이언스 픽션만 유동적인 흐름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비단 사이언스 픽션만 아니라 많은 문화 예술들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문화 예술들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것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합니다. 문화 예술들이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어떤 해석들은 대립할지 모릅니다. 적대적인 두 해석은 똑같은 문화 예술에게 기반합니다. 어떻게 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나요? 어떻게 적대적인 두 해석이 똑같은 문화 예술에게 기반할 수 있나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인간이 문화 예술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이걸 바꿀 수 있습니다.


좁은 관점에서 문화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경기 같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넓은 관점에서 문화는 자연 현상을 제외하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자연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만들지 못합니다. 만약 불모지 소행성에서 개척 과학자들이 회전축을 꼽고, 인공 중력을 생성하고, 온실 가스 장치들을 뿌리고, 대기를 조성하고, 수분을 뿌리고, 바다를 만들고, 개조 미생물들을 뿌리고, 기초적인 생태계를 조성하고, 결국 복잡한 자연 생태계를 이룩한다면,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가 문화인가요? 인간이 소설을 만드는 것처럼, 개척 과학자들은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인간 없이, 소설은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문화에 속합니다. 인간 없이,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는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소설이 문화에 속하는 것처럼,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가 문화에 속하나요? 개척 과학자들이 개입했기 때문에, 분명히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에는 문화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는 문화적인 측면을 포함합니다. 한편으로 소설과 달리, 개척 과학자들은 먹이 그물망 그 자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개척 과학자들이 나타나기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하기 전에, 아주 아주 오랜 전부터, 이미 먹이 그물망은 존재했습니다. 이건 원초적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하기 전에, 이미 먹이 그물망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건 원초적입니다. 인간보다 먹이 그물망이 원초적이기 때문에, 이건 문화가 아닙니다. 먹이 그물망은 자연입니다. 원초적인 것은 자연에게 속합니다. 먹이 그물망이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는 문화가 아닙니다. 적어도 소행성 테라포밍 '생태계'는 문화가 아닙니다. 소행성 '테라포밍'은 문화가 되는지 모르나, 테라포밍 '생태계'가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로서 소설과 문화로서 테라포밍은 크게 다릅니다. 먹이 그물망과 달리, 인간은 소설을 직접 만듭니다. 그래서 인간은 소설을 직접 해석합니다.



인간이 소설을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소설을 해석하고 바꿀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새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오직 한 가지 해석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인간이 소설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소설에게 개입하고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슴 벌레 여자>는 사이언스 픽션이 되거나 되지 않습니다. <사슴 벌레 여자>가 사이언스 픽션이 되거나 되지 않는 것처럼, 인간은 문화 예술을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아무도 정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인간이 문화 예술을 직접 만들고, 직접 해석하고, 직접 바꾸기 때문에, 문화 예술은 고정적이기보다 아주 유동적입니다.


비단 사이언스 픽션만 아니라 다른 문화 예술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비극입니다. 이 소설은 무시무시합니다. 무섭고 비극적인 소설과 행복한 결혼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혼 부부가 행복하기 원합니다. 많은 신혼 부부들은 결혼이 파탄나지 않기 원합니다. 인생에서 결혼은 가장 중요한 행사들 중에서 하나이고, 많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행사로서 결혼이 행복하고 화사하기 원합니다. 화사한 결혼과 비극적인 소설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결혼 축가로서 <지금 이 순간>을 불렀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노래입니다.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무섭고 비극적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아주 웅장하고 멋집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게 기반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무섭고 비극적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무섭고 비극적인 소설이고, <지킬 앤 하이드>는 무섭고 비극적인 소설에게 기반하고, <지금 이 순간>은 <지킬 앤 하이드> 노래이고, 많은 사람들은 결혼 축가로서 <지금 이 순간>을 불렀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무섭고 비극적인 소설에게 기반하고, 행복한 결혼과 비극적인 소설은 대립하나, 많은 사람들은 결혼 축가로서 <지금 이 순간>을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문화 예술에게는 정답이 없습니다.


문화 예술에게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이 무섭고 비극적인 노래보다 웅장하고 멋진 노래라고 '해석'합니다. 이 '해석'은 <지금 이 순간>을 고딕 호러 바이오펑크보다 행복하고 감동적인 결혼 행사에게 연결합니다. 문화 예술에게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해석은 이것과 저것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결혼과 비극적인 소설이 대립하는 것처럼, 비록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이 결혼 축가가 되는 것처럼, '해석'은 적대적인 두 가지를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해석'은 메리 셸리를 고전 문학 작가에게 연결하거나 SF 소설 작가에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첨단 우주 시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클래식이라는 단어는 과거, 전통, 질서 분위기를 풍깁니다. 반면, 첨단 우주 시대는 미래, 전망, 도전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과거와 미래, 전통과 전망, 질서와 도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첨단 우주 시대는 어울리지 않거나, 심지어 양쪽은 대립합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 <홈월드>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편곡하고 스페이스 오페라에 집어넣습니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스페이스 오페라 음악이 되는 것처럼, 문화 예술로서 클래식 음악에게는 정답이 없습니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쿠샨 모선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플래툰>은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담습니다. 엘리어스는 두 팔을 위로 뻗고 쓰러집니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이 유명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 장면은 최후, 너무 비극적인 최후를 뜻합니다. 이건 이상합니다. <홈월드>가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려줄 때, 이 장면은 최후보다 시작입니다. 우주 조선소에서 쿠샨 모선은 기나긴 여정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이건 첫 걸음, 첫 단추입니다. 이건 시작입니다. <홈월드>에서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시작'을 강조합니다. 반면, <플래툰>에서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최후'를 강조합니다. 똑같은 음악은 대립적인 두 개념(시작 대 최후)을 강조합니다.



어떻게 시작과 최후를 강조하기 위해 <홈월드>와 <플래툰>이 똑같은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이용하나요? 어떻게 똑같은 음악이 대립적인 두 개념을 연출하나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원초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문화 예술입니다. 문화 예술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문화 예술이 원초적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이것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문화 예술을 새롭게 해석하고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문화 예술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홈월드>에서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시작을 강조하고, <플래툰>에서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최후를 강조합니다.


<플래툰>에서 서구 자본주의 군대는 제3세계를 짓밟습니다. <홈월드>는 스페이스 오페라, 우주 전쟁 게임입니다. 어떻게 제국주의 영화와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이 똑같은 음악을 다룰 수 있나요? <홈월드>에서 무인 드론 프리깃은 무인 드론들을 멋지게 전개하고 적군 전투기 편대를 격추합니다. 만약 <플래툰>에서 베트남 병사들이 무인 드론 프리깃을 운영한다면, 관객들은 이 영화가 엉터리 사기꾼이라고 욕할 겁니다. <플래툰>은 무인 드론 프리깃을 묘사하지 못합니다. <플래툰>과 스페이스 오페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홈월드>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플래툰>과 <홈월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플래툰>과 <홈월드>는 어울리지 않으나, 양쪽은 똑같은 음악을 연출하고, 이 연출은 아주 감동적입니다. 엘리어스 장면과 쿠샨 모선 장면은 아주 감동적입니다.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엘리어스는 남자입니다. 엘리어스는 군인입니다. 카란 스젯은 여자입니다. 모선(엄마)이라는 단어처럼, 카란 스젯은 수많은 쿠샨 사람들을 품습니다. 남자 군인과 엄마(여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리어스 장면과 쿠샨 모선 장면은 아주 감동적입니다. 남자 군인과 엄마(여자)는 어울리지 않으나, <플래툰>과 <홈월드>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감동적으로 연출합니다. 문화 예술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디오 게임 <엠퍼러: 배틀 포 듄>은 하코넨 미사일 전차를 묘사합니다. 비디오 게임 <엠퍼러: 배틀 포 듄>은 소설 <듄> 연대기에게 기반합니다. 소설 <듄> 연대기는 하코넨 미사일 전차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소설에서 아무도 기갑 부대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소설 <듄>은 기갑 부대를 묘사하지 않고, 게임 <배틀 포 듄>은 소설 <듄>에게 기반하나, <배틀 포 듄>은 기갑 부대를 묘사합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문화 예술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과 달리, 비디오 게임은 2족 보행 병기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은 소설을 새롭게 해석하고 SF 설정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소설 <듄>을 알지 못한다면,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오직 <배틀 포 듄>만 플레이했다면, 나중에 이 게임 플레이어가 소설 <듄>을 읽을 때, 게임 플레이어는 고개를 갸웃거릴 겁니다. "어라, 이건 너무 이상해. 왜 소설 설정과 게임 설정이 다르지? 양쪽 모두 똑같은 <듄>이나, 어떻게 똑같은 <듄>이 다를 수 있지?" 만약 이 게임 플레이어가 개봉 예정 영화 <듄>을 관람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고개를 갸웃거릴 겁니다. 하지만 <듄> 설정들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만들지 못하나, 자연과 달리, 인간은 문화를 만듭니다. <듄>은 유동적인 문화 예술입니다.


국내 아이돌 팬들은 여자친구 노래들이 애니메이션 음악 분위기를 풍긴다고 평가합니다. 여자친구 노래들이 (이른바) '록킹한 사운드'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여자친구가 록 기반 그룹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아이돌 팬들은 여자친구가 대중적인 록 기반 아이돌의 마지노선이라고 부르나, 여자친구는 본격적인 록 기반 그룹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경쾌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들은 여자친구 노래들을 뒷받침합니다. 그래서 록 밴드 마이티 락스터즈는 여자친구 노래 <라비린스>를 커버했을 겁니다. 여자친구 버디 팬들은 록 판본 <라비린스>가 저어어어어어엉마알 잘 어울린다고 호평합니다.



[어쩌면 정말 여자친구는 밝은 드림캐쳐인지 모릅니다. 이 해석이 음알못, 억지 대입인가요?]



록 판본 <라비린스>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록 판본 <교차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라비린스>와 <교차로>가 록 음악이었다면, 여자친구는 록 기반 여자 아이돌 그룹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을 겁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국내 음악 문화에서 록과 메탈은 비주류입니다. 국내 웹소설 문화에서 사이언스 픽션이 비주류인 것처럼, 여러 사람들은 국내 음악 문화에서 록과 메탈이 비주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자 아이돌 그룹과 록 음악은 쉽게 만나지 못합니다. 만약 <라비린스>와 <교차로>가 록 음악이었다면, 어떻게 아이돌 팬덤이 반응했을까요? 어쩌면 드림캐쳐는 대답이 될지 모릅니다.


드림캐쳐는 여자 아이돌 그룹과 록 음악을 결합했습니다. 아이돌 팬덤은 (여자친구 노래들처럼) 드림캐쳐 노래들이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풍긴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건 위험한 시도입니다. 록과 메탈이 비주류이기 때문에, 드림캐쳐는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드림캐쳐가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만약 <교차로>가 록 음악이었다면, 여자친구는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다행히 최근에 드림캐쳐는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중입니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나, 드림캐쳐가 인지도를 높이는 것처럼, 만약 여자친구가 록 음악에게 기반한다면, 이건 위험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만약 여자친구가 록 음악에게 기반한다면, 국내 아이돌 문화에서 여자친구와 드림캐쳐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지 모릅니다. 아직 드림캐쳐는 이른바 1군 그룹에 속한 적이 없으나, 노래 <시간을 달려서>가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을 때, 여자친구가 1군 그룹에 속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드림캐쳐보다 여자친구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합니다. (노래 <시간을 달려서> 역시 비장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들려줍니다.) 만약 여자친구가 록 음악에게 기반한다면, 여자친구와 드림캐쳐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지 모릅니다. 이미 아이돌 팬덤은 드림캐쳐와 여자친구가 비슷하다고 분류한 적이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이른바 칼군무를 정립했습니다. 여자친구는 빡센 안무와 역동적인 무대 공연과 벅차오르는 가창력을 자랑합니다. 드림캐쳐 역시 과감한 안무와 파격적인 무대 공연과 짜릿한 가창력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한때 아이돌 팬덤은 드림캐쳐를 어둠의 여자친구라고 불렀습니다. 만약 이 별명이 틀리지 않는다면, 여자친구는 밝은 드림캐쳐가 됩니다. 밝은 드림캐쳐와 어두운 여자친구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이 옳은가요? 아무리 어떤 두 가지에게 유사성이 있다고 해도, 이건 두 가지가 비슷한 범주에 필연적으로 속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자친구가 밝은 드림캐쳐가 될 수 있나요?



아무리 여자친구가 벅차오르는 가창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아무리 드림캐쳐가 파격적인 무대 공연을 보여준다고 해도,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비슷한 범주에 속하나요? 아무리 <라비린스>와 <교차로>가 록 음악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비슷한 범주에 속하나요? 어떤 아이돌 팬들은 여자친구x드림캐쳐 콜라보를 기대합니다. 이 아이돌 팬들은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고 분류합니다. 이게 '유사성의 함정'이 아닌가요? 이 해석들이 억지 대입이 아닌가요? 어떻게 여자친구와 록 음악이 어울릴 수 있나요? 어떻게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이어질 수 있나요?


민음사 TV에서 박상준님이 <멋진 신세계>와 사이언스 픽션을 연결했기 때문에, 어떤 소설 독자들은 박상준님을 비난할지 모릅니다. "아니, 뭐야? 이건 억지 대입이야! 이건 엉터리 해석이야! 어떻게 <멋진 신세계>와 사이언스 픽션이 이어질 수 있지?" 만약 여자친구와 록 음악이 이어지거나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이어진다면, 어떤 아이돌 팬들은 이 해석을 비난할지 모릅니다. "아니, 뭐야? 이건 억지 대입이야! 이건 엉터리 해석이야! 어떻게 감히 고작 여자친구 따위와 록 음악과 드림캐쳐가 이어질 수 있지? 이 해석은 음알못이야! 드림캐쳐는 짱짱 록 그룹이고, 여자친구는 그저 어중간한 그룹에 불과해!"



이게 사실인가요? 만약 아이돌 팬들이 여자친구x드림캐쳐 콜라보를 기대한다면, 이 '해석'이 음알못이 되나요? 메리 셸리가 SF 소설 작가보다 고전 문학 작가가 되는 것처럼, <멋진 신세계>와 사이언스 픽션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고작 여자친구 따위와 록 음악과 드림캐쳐가 어울리지 않나요? "여자친구와 드림캐쳐는 비슷하다. 여자친구는 천사이고, 드림캐쳐는 악마이다. 하지만 천사와 악마 모두 인간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쪽은 잘 어울린다." 이 해석이 유치하고 황당무계한가요?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헤어져야 하는 것처럼, 메리 셸리와 <멋진 신세계>가 사이언스 픽션과 헤어져야 하나요?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헤어져야 하는 것처럼, <유리알 유희>가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못하나요? 하지만 문화 예술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무섭고 비극적인 소설이나, <지금 이 순간>은 행복한 결혼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시작과 최후는 대립하나, <홈월드>와 <플래툰>은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똑같이 연출할 수 있습니다. <플래툰>과 스페이스 오페라는 어울리지 않으나, 양쪽은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감동적으로 연출합니다. 소설 <듄>과 비디오 게임 <배틀 포 듄>에서 세계 설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모래벌레는 하코넨 미사일 전차를 습격할 수 있습니다.



거대 모래벌레가 하코넨 기갑 부대를 우적우적 씹는 것처럼, 문화 예술들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비단 메리 셸리와 <지금 이 순간>과 <홈월드>와 <배틀 포 듄>만 아니라 많고 많은 사례들은 문화 예술이 고정적이지 않다고 증명합니다. 평론가는 비슷한 사례들을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문화 예술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여자친구와 록 음악은 어울릴 수 있고, 여자친구와 드림캐쳐는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건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필연적으로 어울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메리 셸리는 SF 소설 작가가 됩니다.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어울릴 수 있는 것처럼, 메리 셸리와 <멋진 신세계>와 사이언스 픽션은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상준님은 틀리지 않습니다. 박상준님과 고전 문학 독자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나, 박상준님 해석은 옳을 수 있고, 메리 셸리와 <멋진 신세계>와 사이언스 픽션은 어울릴 수 있습니다. 메리 셸리와 <멋진 신세계>와 사이언스 픽션이 어울릴 수 있는 것처럼, 문화 예술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문화 예술들은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문화 예술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게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문화 예술들은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하고, 이건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문화 예술은 유동적입니다. 문화와 달리, 자연, 먹고 사는 문제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입니다.]



문화와 달리, 자연은 원초적입니다. 이 게시글에서 넷째 문단이 설명하는 것처럼, 자연은 원초적입니다. 문화보다 자연이 원초적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고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문화보다 자연을 파악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자연'은 먹고 사는 문제가 됩니다. 그저께 9월 11일 게시글은 드루이드와 자연 환경과 먹고 사는 문제를 설명했습니다. 인간이 먹고 살아야 하고, 오직 자연 속에서만 인간이 식량을 구하기 때문에, '자연'은 먹고 사는 문제가 됩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는 문화보다 먹는 문제를 분석해야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 구조, 경제 영역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회 구조, 경제 영역보다 문화 예술에게 매달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아프리카 흑인 민중들이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저항하는지 파악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흑인 여자 배우를 섭외하는지 파악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흑인 민중 운동과 사회주의 저항보다 블록버스터 영화에게 매달립니다. 그들은 사회 구조, 경제 영역보다 문화 예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래벌레가 하코넨 전차를 우적우적 씹는 것처럼, 문화 예술은 유동적입니다.



※ 여자친구 노래들 중에는 <드림캐쳐>가 있습니다. 그렇다는 뜻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여자친구와 드림캐쳐가 (록 사운드 기반의) 일본 아니메 OST 삘을 풍긴다고 투덜거립니다. 왜 이게 비난을 받아야 하나요? <마법 기사 레이어스>에서 <ゆずれない願い>, <마동왕 그랑조트>에서 <大地のテ―マソング>, <에반게리온 Q>에서 <Dark Defender>(라고 쓰고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기사 회생>이라고 읽는), <환상 게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건 완전한 OST가 아니나) <괴도 세인트 테일>에서 <明日へと駆け出してゆこう> 같은 음악들은 두고 두고 회자될 명곡입니다. 만약 이런 분위기가 널리 퍼진다면, 이건 반가운 현상일 겁니다.


※ 사진 <Nature Creek Landscape…> 출처: jggrz,

https://pixabay.com/photos/nature-creek-landscape-flowing-4579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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