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우주, 바다에서 또 다른 바다로…. 본문
[게임 <엔들리스 스카이>의 한 장면. 이런 게임은 대항해 시대의 우주 판본입니다.]
나오미 노빅이 쓴 소설 <테메레르>에는 데이빗 웨버가 호평하는 추전사가 붙었습니다. 데이빗 웨버는 <테메레르>가 데뷔 소설임에도 나오미 노빅이 흥미롭고 매력적이고 정갈한 이야기를 썼다고 칭찬했어요. 분명히 <테메레르>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나폴레옹 전쟁과 드래곤 편대들은 독특하고 웅장한 풍경들을 선사해요. 하지만 그저 이런 이야기나 풍경 때문에 데이빗 웨버가 <테메레르>를 호평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데이빗 웨버는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을 비롯한 <아너 해링턴> 시리즈를 썼습니다.
<아너 해링터> 시리즈는 우주 함장 아너 해링턴이 함선을 이끌고 전투를 치르는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밀리터리 SF 소설입니다. 동시에 <아너 해링턴> 시리즈는 전열함들에게 찬사를 바치는 소설이에요. 데이빗 웨버는 <혼블로워> 같은 전열 함대가 로망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이고, 그런 로망을 우주에 투영했습니다. <아너 해링턴> 시리즈는 그런 결과일 겁니다. 데이빗 웨버는 <혼블로워>를 좋아하고, 그래서 우주 함대 소설을 썼고, 그래서 <테메레르>에 등장하는 함대 전투를 좋아할지 모릅니다.
언뜻 <혼블로워>와 <바실리스크 스테이션>과 <테메레르>는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소설 같습니다. <혼블로워>는 함대 전투를 다루는 역사 소설이고,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은 우주 함대를 다루는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테메레르>는 나폴레옹 전쟁과 드래곤 편대를 결합한 대체 역사입니다. 하지만 세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함대를 이야기합니다. <혼블로워>나 <테메레르>와 달리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은 우주 함대를 이야기하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세 소설들이 (전열 함대든 우주 함대든) 웅장한 함선을 묘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주는 또 다른 바다가 될 수 있고, 바다는 또 다른 우주가 될 수 있습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우주에 시선을 돌린 이후, 숱한 SF 작가들은 우주와 바다를 뒤섞었습니다. 아마 우주와 바다가 인간에게 비슷한 공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우주와 바다는 똑같이 광대한 공간이고, 거기에 진출하기 위해 인간은 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범선과 우주선은 똑같이 인간을 광대한 공간으로 이끄는 수단입니다. 우주선에 비해 범선은 초라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주선과 범선을 바라보는 두 시선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지 몰라요.
비단 적과 싸우는 함선만 아니라 탐사선이나 화물선 역시 똑같이 우주와 바다로 진출할 수 있겠죠.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소설 <라마와의 랑데부>에서 우주선 선장은 자신을 제임스 쿡 선장에게 투영합니다. 아예 우주선 이름은 인데버입니다. 아서 클라크는 제임스 쿡 선장이 인데버를 타고 바다를 탐험한 것처럼 우주 탐사선 인데버와 우주 승무원들이 라마라는 거대한 우주선을 탐험하기 바랐을 겁니다. 아서 클라크는 독자가 그런 느낌을 받기 원했을지 몰라요. 게다가 우주로 진출하는 여러 소설들 속에서 아서 클라크는 우주적인 대항해 시대를 구현했습니다.
다양한 외계 생명체들과 만나는 <스페이스 비글>은 찰스 다윈이 탑승한 탐사선 비글에서 이름을 땄을 테고요. 찰스 다윈이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난 것처럼 스페이스 비글은 흉악한 괴물이나 기이한 존재를 만납니다. 찰스 다윈이 자연계를 웅장하게 바라본 것과 달리, <스페이스 비글>은 우주를 두렵고 무시무시한 곳으로 묘사했어요. 그렇다고 해도 <스페이스 비글>은 왜 우주가 또 다른 바다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겠죠. <스타타이드 라이징> 같은 소설에서 우주 승무원이 범선을 꿈꾸는 장면 역시 그렇고요.
여러 스페이스 오페라들 속에서는 우주 해적이 해적 깃발을 휘날리거나, 외계 식민지가 근대 남아메리카 식민지를 모방하거나, 바다 괴수가 배를 습격한 것처럼 우주 드래곤(!)이 우주선을 습격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쓰기 위해 SF 작가들은 근대적인 대항해 시대를 참고합니다. <스타십 트루퍼스> 같은 소설은 해군을 별로 예찬하지 않으나, 우주와 바다가 비슷하다는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우주군은 해군이라고 불립니다. 해군은 바다에서 싸우는 군대이기 때문에 우주군에게는 해군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로버트 하인라인은 편리하게 우주군을 해군이라고 불렀고, 아무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 만화들, 영화들, 게임들 중 우주군을 우주군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습니다. 다들 우주군을 해군이라고 부르겠죠. SF 팬들 역시 거기에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아너 해링턴> 시리즈에는 어뢰가 등장합니다. 어뢰는 물 속에서 목표를 파괴하는 무기입니다. 하지만 어뢰가 우주를 날아다녀도 아무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처럼 SF 세상에서 바다와 우주는 깊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되돌리지 못하는 공식이 되었어요. 누군가가 우주군을 해군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노골적으로 대항해 시대나 전열 함대를 따라가거나 태평양 함대를 본뜹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 등장하는 고속정이나 구축함, 항공 모함, 전투기 편대는 태평양 전쟁을 우주로 옮긴 것 같아요. 인류가 정말 우주로 진출한다면, 이런 전투가 펼쳐질까요. 우주에서 항공 모함이 우주 전투기들을 싣고 외계 행성을 공격할까요.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고 엉뚱한 발상이 아닐까요. 아무리 바다와 우주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도, 우주 해병은 진짜 해병이 아닙니다. 스페이스 마린은 아주 전형적인 용어가 되었으나, 왜 우주 병사가 해병이라고 불려야 할까요. 소설 <영원한 전쟁>에는 지구 인류 우주선과 토오란 외계 우주선이 초장거리에서 미사일을 쏘고 회피 기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짜 우주 함대 전투는 이런 초장거리 전투가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우주 함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죠.
비단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이나 <라마와의 랑데부> 같은 SF 소설만 이야기할 이유는 없을 듯합니다. 비디오 게임들 역시 노골적으로 바다와 우주를 뒤섞기 때문입니다. <엔들리스 스카이> 같은 게임은 우주 항해를 묘사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우주선 선장이 되고, 작은 우주선을 몰고 다닙니다. 작은 우주선은 수많은 외계 행성들과 우주 정거장들을 돌아다니고, 화물이나 승객을 운반합니다. 그렇게 화물이나 승객을 운송하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우주 해적에게 쫓기거나, 우주 해군을 만나거나, 식민지들을 둘러봅니다.
만약 충분히 자금을 모았다면, 주인공 선장은 좀 더 커다란 화물선을 구하거나 함대를 꾸릴 수 있습니다. 주인공 선장은 우주 해적들에게 반격하거나 아예 그들을 내쫓을 수 있어요. 이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저는 코에이가 제작한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떠올렸습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16세기 원양 항해를 다루고, <엔들리스 스카이>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묘사합니다. 하지만 두 게임에는 공통점들이 많습니다. <엔들리스 스카이>처럼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선장이 되고, 작은 범선을 구입합니다. <엔들리스 스카이>처럼 <대항해시대>에서 주인공 선장은 해적들에게 쫓기고, 해군을 만나고, 무역품들을 운송하고, 다양한 항구들과 대륙들을 돌아다니고, 나중에 커다란 함대를 꾸리죠.
아마 <대항해시대>를 재미있게 즐긴 사람은 <엔들리스 스카이> 역시 재미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서로 겉모습(근대 원양 항해와 깊은 우주 탐사)은 다르나, <대항해시대>와 <엔들리스 스카이>는 비슷한 감성을 공유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선장이 되고, 드넓은 공간을 돌아다니고, 물품들을 운송하고, 해적이나 해군과 만나고, 다양한 지역들을 둘러봅니다. <엔들리스 스카이>에서 몇몇 부분을 수정한다면, <엔들리스 스카이>는 쉽게 <대항해시대>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대항해시대>에 몇몇 SF 설정을 추가한다면, <대항해시대>는 <엔들리스 스카이>가 될 수 있을지 몰라요.
이는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닐 겁니다. 이미 아서 클라크나 데이빗 웨버나 로버트 하인라인이 증명한 것처럼 바다는 우주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대항해시대> 역시 <엔들리스 스카이>가 될 수 있겠죠. 인류가 배를 타고 드넓은 공간으로 진출하는 광경을 보고 싶다면, 그게 바다이거나 우주이거나, 크게 상관이 없을지 모릅니다. 디즈니의 <보물성> 같은 애니메이션은 스팀펑크를 이용해 우주와 바다를 묘하게 결합합니다. SF 작가들이 바다와 우주를 비슷하게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었겠죠. 아니, 필립 리브가 쓴 <러크라이트>는 어떨까요.
저는 알렉산더 훔볼트나 찰스 다윈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이 바다를 건너고 새로운 지역들을 둘러봤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저는 <별을 쫓는 사람들>이나 <라마와의 랑데부>나 <블라인드사이트>를 좋아합니다. 그런 소설들 역시 우주를 건너고 새로운 행성들을 둘러보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훔볼트와 <별을 쫓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어떤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겠죠. 저는 이런 감성이 그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성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위에서 꾸준히 설명한 것처럼, 아서 클라크 같은 경이적인 하드 SF 작가부터 <엔들리스 스카이>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까지, 여러 SF 창작물들은 그런 감성을 노래하죠. SF 창작물들 이외에 탐험 다큐멘터리들 역시 그런 상황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탐험 다큐멘터리들은 고대 항해사들부터 근대 탐험가들과 우주 탐사선까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작은 책자부터 두꺼운 사전까지, 탐험 다큐멘터리들은 폴리네시아 항해사들과 제임스 쿡 같은 근대 유럽 탐험가와 보이저 무인 탐사선을 함께 설명해요. (어떤 다큐멘터리는 아서 클라크를 언급하더군요.)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광활한 공간. 그 공간을 누비는 배들. 끝없는 모험과 탐사. 바다와 우주는 똑같이 이런 것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는 모든 SF 팬이 이런 감성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독자들은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이 너무 노골적으로 범선 시대를 예찬하다고 불평합니다. 아무리 바다와 우주가 비슷하다고 해도, 우주에게는 자신만의 색깔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서 클라크가 제임스 쿡 선장을 긍정적으로 호평했다고 해도, <라마와의 랑데부>는 근대 항해 탐험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습니다. 반면,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은 최대한 범선 시대를 재현하느라 애쓰고, 충각 돌격 같은 구닥다리 전술을 모방합니다. 가끔 그런 노력이 눈물겹게 보입니다. 왜 구태여 스페이스 오페라를 이용해 힘들게 범선 시대를 묘사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요.
저는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을 비판하는 독자들에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는 바다이고, 우주는 우주입니다. 아무리 칼 세이건이 <백경>을 인용했다고 해도, <딥 임팩트> 같은 영화가 범선 항해를 찬사한다고 해도, 바다는 우주가 되지 못합니다. 우주는 그저 비유적으로 바다가 될 수 있을 뿐이죠. 진짜 우주를 바라보기 원하는 SF 독자는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을 비롯한 각종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SF 작가들은 계속 우주가 또 다른 바다라고 이야기하겠죠. 누군가는 그런 감성을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그게 유치한 비유라고 비판하겠죠. 개인적으로 우주가 또 다른 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엔들리스 스카이>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가 싫지 않습니다. 데이빗 웨버가 <혼블로워>를 예찬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어요. 만약 인류가 정말 우주 시대를 열어 젖힌다면, 우주 시대 사람들은 이런 스페이스 오페라를 비웃을지 모릅니다. 옛날 사람들은 항해 지도에 바다 괴수들을 그렸어요. 우리는 그런 그림들이 그저 미신에 불과하다고 비웃습니다.
그것처럼 우주 시대 사람들 역시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유치한 비유라고 비웃을지 몰라요. 하지만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가 유치하다고 해도, 바다와 우주를 똑같이 노래하는 감성은 장엄하고 감동적입니다. <별을 쫓는 사람들> 같은 소설과 <엔들리스 스카이> 같은 게임에는 끝없는 탐사를 찬양하는, 우리가 쉽게 무시하지 못할 감동이 있어요. 우주 시대 사람들 역시 그런 감동을 비웃지 못할 겁니다. 우주 시대 사람들은 <아너 해링턴> 시리즈를 읽고 피식 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너 해링턴>은 함선이라는 로망을 밑바닥에 깔았고, 우주 시대 사람들 역시 거기에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 우주 항해 이야기들은 제국주의 항해를 아무 여과 없이 모방합니다. 저는 이게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스페이스 오페라가 범선 시대를 찬미한다고요? 네,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끝없는 탐사라는 로망과 별개로) 스페이스 오페라가 제국주의 항해를 찬미하거나 그대로 모방한다면, 그건 커다란 문제가 될 겁니다.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이런 개척, 탐험, 정복을 아무렇지 않게 우주에 투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제국주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들 역시 제국주의 항해를 이어가죠.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강대국들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를 침략했고 수탈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국가들은 강대국이고,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굶주리는 중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국가들을 칭송하고,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모욕합니다. 콜럼버스는 여전히 위대한 탐험가이고, 아무도 죽은 원주민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우리가 제국주의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들 역시 노골적인 침략 항해를 계속 떠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