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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우드랜드> 질리아, <디앤디> 레인저 본문

SF & 판타지/혼이 깃든 야생

<우드랜드> 질리아, <디앤디> 레인저

OneTiger 2024. 6. 28. 09:35

[이 버섯들이 치유하는 것처럼, 자연에게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들 엇더ᄒᆞ며 져런들 엇더ᄒᆞ료. 萬壽山(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ᄒᆞ리. 우리도 이ᄀᆞᆺ치 얼거져 백년(百年)ᄭᆞ지 누리리라." 이 시에서 '드렁츩'은 진짜 야생(삼림)이 거친 지형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방원은 정몽주가 고려보다 조선에 충성하기 원했습니다. 이 왕족은 진짜 야생(삼림)을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방원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드렁츩이 얼거'지는 것처럼, 야생은 쾌적한 고속 도로가 아닙니다. 날카로운 가시들부터 구불구불한 뿌리들까지, 야생은 거친 지형입니다. 이 환경이 거칠기 때문에, 서사 판타지(에픽 판타지)에서 레인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서사 판타지에서 레인저는 전형적인 등장인물입니다. 비단 서사 판타지만 아니라 던전 탐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서 레인저는 전형적인 등장인물입니다. 야생(삼림)은 이 등장인물의 주된 배경입니다. 레인저는 야생 정찰병, 추적자, 사냥꾼입니다.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와 달리, 야생(삼림)에서 이 정찰병, 추적자, 사냥꾼은 싸웁니다. 야생이 레인저의 주된 배경이기 때문에, 이 배경이 거친 지형이기 때문에, 음, 이 등장인물에게는 이 지형을 돌파하기 위한 특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는 테이블 게임입니다. 이 테이블 게임은 서사 판타지, 던전 탐험입니다.



이 서사 판타지, 던전 탐험에서 레인저는 주연 등장인물입니다. 이 등장인물은 '우드랜드 스트라이드'를 배웁니다. 이 능력은 거친 야생을 돌파하기 위한 재주입니다. 비록 가시들이 찌른다고 해도, 비록 뿌리들이 얽힌다고 해도, 비록 수풀들이 울창하다고 해도, 레인저는 이 지형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이 야생 추적자와 달리,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는 이 능력을 배우지 않습니다. 레인저처럼, 드루이드는 자연 성직자에 가깝습니다. 이 등장인물은 자연의 힘을 휘두릅니다. 드루이드가 자연 성직자이기 때문에, 오~, 비단 레인저만 아니라 이 등장인물 역시 '우드랜드 스트라이드'를 배웁니다.

 

비록 가시들이 찌른다고 해도, 비록 뿌리들이 얽힌다고 해도, 비록 수풀들이 울창하다고 해도, 드루이드는 이 지형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우드랜드 스트라이드'가 반영하는 것처럼, 자연(야생)은 쾌적한 환경이 아닙니다. 이 능력은 자연(야생)이 쾌적한 환경이 아니라고 반영합니다. 자연이 쾌적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부정적인 환경입니다. '우드랜드 스트라이드'는 자연이 부정적인 환경이라고 반영합니다. 비단 <던전스 앤 드래곤스>만 아니라 <우드랜드의 탐험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 보드 게임은 던전 탐험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세계에서 주된 배경은 삼림(우드랜드)입니다.



비록 이방원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드렁츩이 얼거'지는 것처럼, 삼림(야생)은 쾌적한 고속 도로가 아닙니다. 이 환경은 거친 지형입니다. 삼림이 거친 지형이기 때문에, 이 지형을 돌파하기 위해 질리아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드랜드의 탐험가>는 네 주인공들을 제시합니다. 질리아는 이 주인공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이 주인공은 레인저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레인저는 활로 무장(하거나 쌍수검으로 무장)합니다. 활(이나 쌍수검)은 이 등장인물을 상징하기 위한 무기가 됩니다. 레인저처럼, <우드랜드의 탐험가>에서 질리아는 활로 무장합니다. 활은 이 주인공을 상징합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레인저는 우드랜드 스트라이드를 배웁니다. 비록 뿌리들이 얽힌다고 해도, 레인저는 이 지형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질리아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가시들이 찌른다고 해도, 질리아는 이 지형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레인저와 질리아는 비슷합니다. 레인저가 활로 무장하는 것처럼, 질리아는 다르지 않습니다. 질리아가 거친 삼림을 돌파하는 것처럼, 레인저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질리아가 레인저인가요? 게임 제작자들이 이 주인공이 레인저라고 의도했나요?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레인저가 야생 추적자인 것처럼, <우드랜드>에서 질리아가 야생 추적자인가요?



흐음, 글쎄요. 아무리 레인저와 질리아가 비슷하다고 해도, 이건 그저 우연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이 주인공은 레인저보다 궁수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질리아가 거친 야생을 돌파한다고 해도, 이건 레인저 재주가 아닌지 모릅니다. 아마도 게임 제작자들은 질리아가 레인저라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레인저가 활로 무장하는 것처럼, 질리아는 활로 무장합니다. 레인저가 (중무장 전사보다) 경(輕)무장 전사인 것처럼, 질리아는 경무장 전사입니다. 레인저가 거친 야생을 돌파하는 것처럼, 질리아는 거친 야생을 돌파합니다. 이 주인공은 자연이 거칠다고 반영합니다.

 

자연이 거친 지형이기 때문에, 이건 긍정적인 환경이 아닙니다. 게임 제작자들이 질리아가 레인저라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주인공은 자연이 부정적인 환경이라고 반영합니다. 만약 자연이 문명을 뒤덮는다면, 이건 긍정적인 상황이 아닐 겁니다. 21세기 초반, 많은 사람들은 자연(야생)보다 문명(도시)을 선호합니다. 자연(야생)보다 문명(도시)은 인류를 위한 장소입니다. 도시에서 태블릿 컴퓨터를 사용하기는 쉽습니다. 오~, 이 기계는 아주 편리합니다. 도시와 달리, 야생에서 태블릿 컴퓨터를 사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기계가 아주 편리하기 때문에, 음…, 야생은 편리한 장소가 아닙니다.

 

 

[다른 던전 탐험들과 달리,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세계는 삼림(야생)을 보여줍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드루이드와 레인저는 친숙한 관계입니다. 레인저가 야생 추적자이기 때문입니다. 드루이드가 자연 신성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야생)이 본질적인 교집합이기 때문에, 양쪽은 친숙한 관계입니다. 레인저처럼, 드루이드와 질리아가 친숙한 관계가 될 수 있나요? 만약 질리아가 레인저라면, 만약 이 주인공이 야생 추적자라면, 드루이드와 이 주인공은 친숙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게임 제작자들이 질리아가 레인저라고 의도하지 않았다면, 드루이드와 이 주인공은 친숙한 관계가 아닐 겁니다. 게임 제작자들이 질리아가 레인저라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주인공은 거친 야생을 돌파합니다. 질리아처럼, 드루이드는 다르지 않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드루이드는 '우드랜드 스트라이드'를 배웁니다. 질리아가 거친 야생을 돌파하는 것처럼, 드루이드는 거친 야생을 돌파합니다. 이 관점에서 양쪽은 비슷합니다. 양쪽이 비슷한 것처럼, 자연(야생)은 쾌적한 환경이 아닙니다. 이 환경은 비단 거친 지형만 아니라 불편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야생에서 태블릿 컴퓨터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이 환경은 편리한 장소가 아닙니다. 야생은 비단 불편한 장소만 아니라 위험한 환경이기도 합니다. 문명(도시)에서 인간들은 호랑이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문명(도시)과 달리, 열대 밀림(야생)에서 인간들은 호랑이를 걱정할 겁니다. 이 야수는 최고 포식자(알파 프레데터)입니다. 이 포식자는 아주 강력한 야수입니다.



만약 인간과 호랑이가 싸운다면, 이 야수를 이기기는 너무 어려울 겁니다. 호랑이는 인간을 죽일 수 있습니다. 자연(야생)은 이 무서운 야수를 키웁니다. 비단 호랑이만 아니라 다른 포식자들 역시 비슷합니다. 비단뱀부터 바다 악어까지, 자연(야생)은 이 무서운 야수들을 키웁니다. 21세기 초반, 문명이 인간들을 보호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야수들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문명이 보호하지 않는다면, 이 야수들은 인간들을 죽일 겁니다. 이 야수들처럼, 자연(야생)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환경은 위험합니다. 아무리 드루이드가 자연 신성을 숭배한다고 해도, 이 등장인물은 자연이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할 겁니다. 드루이드처럼, 질리아는 인정할 겁니다.

 

비록 게임 제작자들이 질리아가 레인저라고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주인공은 야생이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할 겁니다. 야생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휴~, 이 환경에서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비단 포식자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문제입니다. 도시에서 방향을 찾기는 쉽습니다. 도시와 달리, 야생에서 방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나침반 없이, 야생에서 인간은 방향을 잃어버리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물, 먹거리를 얻기는 쉽습니다. 도시와 달리, 야생에서 물, 먹거리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 환경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던전스 앤 드래곤스>에서 드루이드는 (야생) 생존 지식들을 배웁니다. 드루이드처럼, 레인저는 생존 전문가입니다.



레인저처럼, 질리아가 (야생) 생존 전문가인가요? 이 주인공이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식들을 배우나요? 나침반 없이, 야생에서 질리아가 방향을 찾을 수 있나요? 야생에서 이 주인공이 물, 먹거리를 얻을 수 있나요? 비록 게임 제작자들이 질라아가 생존 전문가라고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분명히, 야생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비록 질리아가 생존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도, 게임 제작자들은 야생이 안전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호랑이가 습격하는 것처럼, 방향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물을 얻기가 어려운 것처럼, 게임 제작자들은 야생이 위험하다고 인정할 겁니다. 야생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건 긍정적인 환경이 아닙니다.

 

자연은 부정적인 환경입니다. 비록 레인저와 질리아가 비슷하지 않다고 해도, 자연은 부정적인 환경입니다. 만약 자연이 긍정적인 환경이라면, 레인저는 우드랜드 스트라이드를 배우지 않을 겁니다.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는 이 능력을 배우지 않습니다. 자연(야생)이 그들의 주된 배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와 달리, 레인저는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식들을 배웁니다. 자연(야생)이 안전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단 생존 지식들만 아니라 야생 감응 역시 비슷합니다. 비록 무서운 호랑이가 습격한다고 해도, 레인저는 이 야수에게 감응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이 등장인물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레인저가 호랑이에게 감응하기 때문에, 이 야수는 이 등장인물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비단 레인저만 아니라 드루이드에게도 이 능력이 있습니다. 이 등장인물과 달리,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에게는 이 능력이 없습니다. 자연(야생)이 그들의 주된 배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호랑이가 도적을 습격한다고 해도, 이 등장인물은 이 야수에게 감응하지 못합니다. 레인저처럼, 질리아가 호랑이에게 감응할 수 있나요? 게임 제작자들이 이게 가능하다고 의도했나요? 흐음, 글쎄요. 아마도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질리아가 호랑이에게 감응한다고 해도, 이건 자연(야생)이 위험한 장소라는 뜻입니다.

 

레인저가 호랑이에게 감응하기 때문에, 야생에서 이 등장인물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레인저와 달리,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에게 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야생에서 그들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적어도, 이건 쉽지 않습니다. 이게 쉽지 않은 것처럼, 자연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거친 지형부터 위험한 포식자까지, 많은 사례들은 자연이 부정적인 환경이라고 증명합니다. 심지어 기생충들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으아악…, 기생충들은 너무 혐오스럽습니다. 비록 이것들이 너무 혐오스럽다고 해도, 생태학자들은 기생충들이 자연에 속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혐오스러운 것들이 자연에 속하는 것처럼, 이건 혐오스럽습니다.



[비록 레인저와 질리아가 비슷하지 않다고 해도, 자연(야생)은 혐오스럽습니다.]



기생충들이 자연에 속하는 것처럼, 이건 부정적인 환경입니다. 자연(야생)이 부정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이 환경을 파괴해야 하나요? 지구에서 모오오드은 자연(야생)이 사라져야 하나요? 이 행성에서 오직 문명(도시)들만 존재해야 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자연에게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도, 이건 100% 전부가 아닙니다. 자연에게는 비단 부정적인 측면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 역시 있습니다. 지구에서 생명 진화 역사는 35억 년을 넘어섭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많은 생명체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인류는 똑같습니다. 인간은 생명체입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생명체들로서, 인류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자연에서 인간이 비롯하기 때문에, 자연에서 인간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비단 무서운 포식자, 혐오스러운 기생충만 아니라 맛있는 열매, 좋은 약초 역시 키웁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많은 생명체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많은 생명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맛있는 열매들, 좋은 약초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21세기 초반, 농업은 문명을 뒷받침합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비단 21세기 초반만 아니라 다른 시대들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옥수수부터 고구마까지, 호두부터 단호박까지, 농업은 문명을 뒷받침합니다. 인간이 단호박을 창조했나요? 인간이 고구마를 창조했나요? 인간 때문에, 옥수수가 나타났나요? 인간 때문에, 호두가 나타났나요? 그건 아닙니다. 생물 다양성 덕분에, 인간은 나타났습니다. 인간처럼, 생물 다양성 덕분에, 고구마는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농민들이 식물들을 개량한다고 해도, 만약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식물들을 개량하기는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메리카 신화는 인간이 옥수수를 창조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고대 신화조차 인간이 작물을 창조한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인간이 비롯하는 것처럼, 자연에서 옥수수는 비롯합니다. 옥수수처럼, 자연에서 고구마, 호두, 단호박은 비롯합니다. 고구마처럼, 자연은 먹거리들을 선사합니다. 비단 먹거리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비슷합니다. <우드랜드의 탐험가>에서 첫 번째 캠페인은 '장로를 위한 버섯'입니다. 독사가 장로를 물었기 때문에, 약물들을 제조하기 위해 치유사에게는 버섯들이 필요합니다. 이 재료들을 찾기 위해 네 주인공들은 삼림의 중심으로 향합니다. 자연(야생)에서 그들은 약물들을 제조하기 위한 버섯들을 채집합니다. 이 캠페인처럼, 자연(야생)은 비단 먹거리만 아니라 약 역시 선사합니다.



삼림에서 버섯들이 번성하는 것처럼, 자연은 많은 생명체들을 키웁니다. 이 생명체들은 위험하고, 혐오스럽고, 무섭습니다. 한편으로, 이 생명체들은 먹거리들, 약들이 됩니다. 자연에게는 비단 부정적인 측면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 역시 있습니다. 특히, 자연-인간(문명)은 고정된 관계가 아닙니다. 500년 전에, 인간에게는 자동 소총이 없었습니다. 21세기 초반, 자동 소총은 보편적인 무기입니다. 이 무기처럼, 더 이상, 호랑이는 무서운 포식자가 아닙니다. 솔직히, 이 야생 동물은 멸종 위기에 빠졌습니다. 호랑이가 이 위기에 빠지는 것처럼, 언제나 자연-인간(문명)은 고정된 관계가 아닙니다.

 

자연과 인간(문명). 이 관계는 바뀔 수 있습니다. 이 관계가 바뀌기 때문에, 더 이상, (자연의) 부정적인 측면은 부정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호랑이가 무서운 포식자보다 멸종 위기 동물이 되는 것처럼, (자연의) 부정적인 측면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측면이 바뀌기 때문에, 비록 지구에서 모오오드은 자연(야생)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비록 이 행성에서 오직 문명(도시)들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 자연의 다양한 측면들과 함께, 인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례들은 자연의 부정적인 측면이 고정되지 않았다고 보여줍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생태계 테라포밍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외계 행성에서 개척 과학자들이 새로운 야생 식물들, 동물들을 퍼뜨리기 때문에, 자연은 증가(확장)합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오직 지구만 이른바 '가이아'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생태계 테라포밍 덕분에, 비단 지구만 아니라 다른 행성들 역시 가이아들이 됩니다. 이건 자연이 확장(증가)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자연에게 오직 부정적인 측면만 있다면, 왜 스페이스 오페라가 이게 증가한다고 묘사하나요? 왜 개척 과학자들이 야생 식물들, 동물들을 퍼뜨리나요? 스페이스 오페라는 자연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21세기 초반, 많은 소설가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들을 씁니다. 소설처럼, 만화부터 보드 게임까지,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많습니다. 500년 전에, 아무도 이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500년 전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대중적인 문화·예술이 아니었습니다. 이 소설처럼, 아무도 생태계 테라포밍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이건 대중적인 문화·예술이 아니었습니다. 16세기와 달리, 21세기 초반, 스페이스 오페라는 생태계 테라포밍을 묘사합니다. 이 문화·예술처럼, 오호라~, 자연-인간(문명)은 고정된 관계가 아닙니다. 이 관계가 바뀌기 때문에, 개척 과학자들은 새로운 생명체들을 퍼뜨립니다.

 

 

[이 맛있는 먹거리들처럼, 자연에게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자연-문명이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만약 어떤 소설들이 오직 현실만 모방한다면, 개척 과학자들이 새로운 생명체들을 퍼뜨린다고 묘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 현실적인 소설들보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자연-인간(문명)이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이 관계가 바뀌기 때문에, 비록 지구에서 모든 자연(야생)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연의 다양한 측면들과 함께, 인간들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21세기 초반, 생물 다양성은 커다란 위기에 빠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규모 산업들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과 달리, 부유한 사람들은 대규모 산업들을 소유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본주의에게 기반합니다. 이 경제에서 대규모 산업들은 너무 많은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자본주의가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석탄들, 석유들, 가스들은 많은 돈들을 벌었습니다. 이 연료들이 많은 돈들을 벌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많은 돈들을 벌기 원하기 때문에,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양쪽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1세기 초반, 여전히, 세계화 자본주의, 이 지배적인 경제는 석탄들, 석유들, 가스들을 태웁니다.



아무리 재생 에너지 산업들이 증가하는 중이라고 해도, 아직 이 산업들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이 산업들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재생 에너지 산업들보다 석탄들, 석유들, 가스들이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는 이 연료들을 버리지 못합니다.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 위해 이 경제가 너무 많은 석탄들, 석유들, 가스들을 태우기 때문에, 지구 대기 중에서 위험한 가스들은 너무 많습니다. 이 가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지구 평균 온도는 상승합니다. 이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합니다. 이 재앙은 지구 가열화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때문에, 생물 다양성은 감소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 가열화가 (자본주의 문제보다) 인류 문제라고 착각합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만약 지구 가열화가 인류 문제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인류에 속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가스들을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타당하지 않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구 가열화가 인류 문제보다 자본주의 문제라고 증명합니다. 이 악랄한 경제 때문에, 심지어 대규모 멸종조차 다가오는 중입니다. 게임 제작자들이 질리아가 레인저라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본주의와 생물 다양성은 대립합니다.



※ 게임 <우드랜드의 탐험가> 킥스타터 페이지:
http://www.kickstarter.com/projects/fromthewoodsstudio/

※ 사진 <Assorted Spices …> 출처: Engin Akyurt,
http://www.pexels.com/photo/assorted-spices-on-black-frying-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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