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외계 개척 도시와 생태계 오염 문제 본문
[사이언스 픽션들은 쉽게 외계 개척 도시를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닐 겁니다.]
"화성에 화성인이 있다면, 화성의 주인은 화성인이 되어야 한다. 비록 화성인이 그저 미생물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렇게 칼 세이건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구로서 행성 과학자이자 천문학 교수 데이비드 와인트롭이 쓴 <마스 - 화성의 생명체를 찾아서>는 마무리를 짓습니다.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그건 뜨거운 논란거리입니다. 화성에서 아직 탐사 로봇들은 생명체를 찾지 못했으나, 이건 생명체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화성이 척박하다고 해도, 어딘가에는 생명체가 있을지 모릅니다.
화성 환경에서 지구 생명체가 살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화성 생명체는 독특하게 강인하게 진화했을지 모릅니다. 영화 <라이프>가 보여주는 켈빈은 그저 무서운 식인 괴물에 불과하나, 정말 화성 어딘가에서 독특한 생명체들은 독특한 자연 생태계를 구성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주 생물학자들은 우리가 상상력을 이용해 외계 생명체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흔히 우리는 오직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것들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문명은 아직 외계 생명체를 만난 적이 없고, 우리는 오직 지구 생명체들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주 생물학자들이 여기에 동의하나요?
어떤 과학자들은 우리가 오직 지구 생명체들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해 잠수정이 해저 열수공 생태계를 찾기 전까지, 사람들은 해저 생태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있을지 모릅니다. 그저 아직 우리는 그것들을 찾지 못했을 뿐인지 모릅니다. 외계 생명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해저 열수공 생태계처럼, 아직 인류 문명은 외계 생명체들을 찾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주 생물학자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런 상상이 과학이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상상은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은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어떤 현상을 검증하지 못한다면, 그건 과학이 되지 못합니다. 우주 생물학자들은 외계 생명체를 검증하지 못하고, 따라서 우주 생물학은 진짜 과학이 아닙니다. 우주 생물학은 그저 이렇게 저렇게 추측들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아무리 칼 세이건이 대중적인 자연 과학자라고 해도, 칼 세이건은 비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오직 통계 자료들과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들만 과학이 되어야 하나요? 우리가 여러 이론들과 정보들을 늘어놓고, 그것들을 연역하고, 새로운 결론으로 나가지 못하나요? 이 세상이 엄청나게 넓음에도, 이 우주가 엄청나게 넓음에도, 왜 우리는 오직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만 말해야 하나요? 왜 우리가 전망을 연역하지 못하나요?
이런 물음은 꽤나 고전적이고 상투적인 논쟁으로 흘러갑니다. 이른바 연역법과 귀납법의 싸움입니다. 흔히 우리는 인간이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제까지 숱한 인간들이 죽었고, 따라서 인간은 죽습니다. 인간은 유한 생명체입니다. 이건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이웃집 순이는 유한 생명체이고, 옆동네 영희는 유한 생명체이고, 뒷동산 너머 말자 할머니는 유한 생명체입니다. 어슐라 르 귄은 유한 생명체이고, 옥타비아 버틀러는 유한 생명체이고, 이사벨 아옌데는 유한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반증 가능성은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죽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때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진리는 더 이상 진리가 되지 못할 겁니다. 물론 이건 아주 간단한 사례입니다. 이게 너무 간단한 사례이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계속 평행 상태를 추구하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이런 방법론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칼 포퍼와 발터 벤야민이 서로 대조적인 것처럼, 19세기 과학부터 21세기 과학까지, 이런 실증주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외계 생명체를 논의할 때, 우리는 비슷하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오직 지구 생명체들만 바라봐야 하나요? 왜 우리가 다른 정보들을 이용해 연역하지 못하나요? 우리의 시야와 전망이 지구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나요?
한편으로 칼 세이건의 물음은 다른 고민들을 제시합니다. 만약 화성에서 인류가 정말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비록 그게 그저 미생물에 불과하다고 해도, 인류가 화성 개척을 포기해야 할까요? 만약 개척 과학자들이 화성 개척 도시를 짓는다면, 그건 '침략'이 될지 모릅니다. 화성의 주인이 화성 미생물들이고, 화성 개척 도시가 화성 미생물 생태계를 오염시킬지 모르기 때문에, 개척 과학자들은 화성 개척 도시를 포기해야 할지 모릅니다. 소설 <화성의 왕궁>에서 생태학자 루시 맥킬리안과 생물학자 쑹 리가 화성 생태계와 지구 작물을 논의하는 것처럼, 화성 개척 도시는 오염 가능성을 회피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화성 미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고 어떤 화성 미생물들을 관찰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화성에서 개척 도시는 인간이 파악하지 못하는 생태계를 오염시키거나 무너뜨리거나 멸종시킬지 모릅니다. 이런 위험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왜 우주 비행사들이 구태여 우주를 가로지르고 외계 행성에 도착하고 개척 도시를 지어야 하나요? 환경 오염들 때문에? 자원 고갈 때문에? 지구가 환경 오염들에 시달리기 때문에? 스티븐 호킹은 그렇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산업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들을 저질렀습니다. 우리가 정말 환경 오염들을 걱정한다면, 대안은 화성 개척 도시가 아니라 '자본주의 이후 사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번성을 추구한다고 말할 겁니다. 모든 생명체는 번성을 추구하고, 번성하기 위해 인류는 우주로 나가야 합니다.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면, 지구는 너무 비좁을 겁니다. 만약 인구가 200억을 넘는다면, 정말 인류 문명은 외계 개척 도시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겁니다. 만약 태양계가 소멸할 때까지 인류 문명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 인류 문명에게 다른 방법은 없을 겁니다. 태양계가 소멸한다면, 인류 문명은 태양계를 벗어나고 다른 항성계를 찾거나 우주 거주지를 지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주 거주지보다 외계 개척 도시는 훨씬 현실적인 방법일 겁니다.
게다가 인류 문명이 우주 거주지를 짓는다고 해도, 어떻게 인류 문명이 자재들을 구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우주 거주지를 짓고 싶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자재들을 구해야 할 겁니다. 지구는 모든 자재를 공급하지 못할 겁니다. 좋든 싫든, 사람들은 외계 행성들에서 자재들을 뽑아내야 할 겁니다. 사람들이 우주 거주지를 짓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외계 행성들에 손을 대야 합니다. 게다가 언젠가 태양계가 소멸한다면, 화성 역시 사라질 테고, 화성 미생물 생태계 역시 사라질 겁니다. 소멸하는 태양이 화성 생태계를 없애든, 화성 개척 도시가 화성 생태계를 없애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론 어떤 생물종이 '자연적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인류가 그 생물종을 '인위적으로' 없앨 수 있나요? 인류에게 이런 권한이 있나요? 누가 권한을 주었나요? 아무 이유 없이, 칼 세이건은 미생물이 화성의 주인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주장은 인간 중심주의를 꾸짖습니다. 다른 생명체들처럼, 인류 역시 자연에서 비롯했습니다. 꿀벌과 아무르 표범과 참나무와 송이 버섯처럼, 인류 역시 자연에서 비롯했습니다. 하지만 꿀벌과 아무르 표범과 참나무와 송이 버섯이 지구 생명체인 것처럼, 인류는 지구 생명체입니다. 지구 생명체 인간이 화성 미생물 생태계를 망칠 수 있나요? 우리에게 권한이 있나요?
인류 문명이 지구 자연 생태계를 바꾼다면, 그건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지구에서 우리는 비롯했고, 지구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따라서 우리는 지구 자연 생태계를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화성은 지구가 아닙니다. 지구 생물권과 화성 생물권은 엄연히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가 화성 생물권보다 지구 생물권을 중시해야 하나요? 어쩌면 우리는 외계 행성들을 놔두고 (정말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소행성들을 개척하거나 채굴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소행성들을 채굴할 때, 정말 생명체가 있는지 우리는 아주 자세하게 살펴야 하겠죠.
무엇보다 칼 세이건의 물음은 비단 외계 생태계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산업 자본주의는 함부로 비인간 생명체들을 없앱니다. 아니, 인간 중심주의는 오직 산업 자본주의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이 동물 권리를 개무시하는 것처럼, 산업 자본주의가 사라지고 이상적인 공산주의 문명이 나타난다고 해도, 공산주의 문명은 비인간 생물종들을 차별할지 모릅니다. 지구에서 인간들이 비인간 생명들을 차별한다면, 외계 행성에서 인간들은 외계 생명체들을 훨씬 많이 차별할 겁니다.
따라서 칼 세이건의 물음을 고민할 때, 우리는 머릿속에 밸 플럼우드를 비롯해 에코 페미니즘을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에코 페미니즘이 외계 생태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도, 칼 세이건의 물음과 에코 페미니즘은 비슷한 고민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