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 행성 공학의 로망 본문
[붉은 불모지 행성은 풍요로운 녹색 행성이 됩니다. 이건 가장 거대한 생태학 SF 설정입니다.]
비디오 게임 <서바이빙 마스>는 붉은 불모지 외계 행성을 보여줍니다. 붉은 불모지 화성에서 개척자들은 돔 거주지들을 지어야 합니다. 돔 거주지는 녹색입니다. 돔 거주지 안에서 지구 식물들이 자라기 때문에, 돔 거주지는 쉽게 녹색이 됩니다. 불모지 외계 사막과 녹색 돔 거주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척자들이 많은 돔 거주지들을 짓는다고 해도, 결국 화성은 붉은 불모지 외계 행성입니다. 돔 거주지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행성 그 자체는 바뀌지 않습니다. 게임 <서바이빙 마스> 표지 그림은 개척자들이 붉은 불모지를 바라본다고 묘사합니다.
화성은 붉습니다. 인류 문명이 새로운 돔 거주지들을 짓는다고 해도, 화성은 붉습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이 쓴 <붉은 화성>처럼, 화성은 붉습니다. 하지만 개척 과학자들은 화성을 지구화, 테라포밍하기 시작했습니다. 확장 콘텐츠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에서 개척자들은 돔 거주지를 벗어나고 행성 전체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은 화성에서 녹색 자연이 퍼진다고 뜻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 <붉은 화성>은 속편 <녹색 화성>으로 이어집니다. 소설 <녹색 화성>은 화성이 삼림 행성, 녹음 행성이 된다고 뜻하는 것 같습니다. <녹색 화성>과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은 비슷한 제목입니다.
개척 과학자들이 불모지 외계 행성을 지구화하기 원한다면, 개척 과학자들은 대기를 조성할 겁니다. 대기가 나타난 이후, 개척 과학자들은 토양을 검사하고 식물들을 심기 시작할 겁니다. 어쩌면 개척 과학자들에게는 유전자 조작 식물들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만약 어떤 지구 식물도 외계 행성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개척 과학자들은 훨씬 적응력이 강한 식물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테라포밍 과학자들에게 유전자 조작 기술은 필수적일지 모릅니다. 인류 문명이 외계 행성을 지구화하기 원한다면, 인류 문명은 유전자 조작 기술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시끄러운 논란이 될 겁니다. 윤리적인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유전자 조작 기술은 많은 논란들을 부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유전자 조작 기술에게는 상업화 문제 역시 있습니다. 테라포밍 과정은 유전자 조작을 비롯해 다른 수많은 논란들을 부를 겁니다. 어쩌면 돔 거주지는 훨씬 편한 해결책일지 모릅니다. 만약 개척 과학자들이 외계 행성을 테라포밍하지 않는다면, 개척 과학자들이 오직 돔 거주지들만 짓는다면, 이건 훨씬 편한 해결책일지 모릅니다. 외계 행성의 돔 거주지 역시 많은 논란들을 부르겠으나, 테라포밍보다 돔 거주지는 훨씬 작은 개척 과정입니다.
테라포밍보다 돔 거주지가 훨씬 작은 과정이기 때문에, 테라포밍보다 돔 거주지는 훨씬 작은 논란들을 일으킬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소설 <녹색 화성>과 게임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은 화성에서 녹색 자연이 퍼진다고 뜻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속편 소설 <푸른 화성>에서 인류 문명은 더 많은 개척지들을 찾습니다. 심지어 개척 과학자들은 소행성을 굴착하고 소행성 내부에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개척 과학자들은 새로운 생명의 요람을 만들고, 새로운 어머니 자연을 만들고, 새로운 생체 우주선을 만들 수 있습니다.
흔한 비유처럼, 지구가 (다양한 생명 현상들로 가득한) 거대한 우주선이라면, 테라포밍은 생체 우주선들을 늘릴 수 있을 겁니다. 생명의 요람, 어머니 자연, 거대한 생체 우주선. 이런 용어들은 웅장하고 로망스럽습니다. 개척 과학자들이 테라포밍을 시도할 때, 개척 과학자들은 웅장하고 로망스러운 용어들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행성은 거대합니다. 행성보다 소행성은 작으나, 소행성 역시 거대합니다. 개척 과학자들이 이런 거대한 것을 바꾸기 원한다면, 과학자들은 거대하게 상상해야 합니다. 자연은 웅장하고 거대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언급할 때, 우리는 웅장하고 거대한 것을 자연에 덧붙이기 원합니다.
비디오 게임 <레우스>는 이른바 신 게임(god game) 장르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여러 신들을 조종하고, 여러 신들은 자연의 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신들은 대지를 으깨고, 나무들을 키우고, 바다를 넓히고, 질척거리는 늪지를 퍼뜨릴 수 있습니다. 신들은 거대합니다. 영화 <고지라> 시리즈에 나오는 에비라처럼, 바다의 신은 아주 거대한 갑각류 괴수 같습니다. 게임 컨셉 아트는 자연의 신들이 아주 거대하고 압도적이라고 묘사합니다. 인간은 감히 바다의 신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합니다. 거대한 갑각류 괴수가 조각배를 굽어볼 때, 선원은 거대한 갑각류 괴수를 우러러봐야 합니다.
이런 신 게임처럼, 우리가 자연의 힘을 언급할 때, 우리는 거대하고 웅장하고 압도적인 것을 상정합니다. 현실 속에서 지구 행성 생태계가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명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지구 곳곳에서 생물 다양성은 번성하는 중이었습니다. 자연 생태계는 원초적입니다. 인류 문명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생물 다양성은 스스로 지구 전체에 퍼졌습니다. 생물 다양성은 혹독한 빙하와 컴컴한 동굴 속과 깊고 깊은 해저로 퍼졌습니다. 인류 문명이 해저에 접근하지 못하고 관찰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해저 생물 다양성은 꿈틀거리며 번성했습니다. 자연 생태계는 폭넓습니다.
생물 다양성이 행성 전체로 퍼졌기 때문에, 이런 생물 다양성 없이 우리가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는 거대합니다. 이건 엄청난 개념입니다. 우리는 감히 두 눈으로 행성을 담지 못합니다. 우리는 감히 행성 자연 생태계를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생명체를 직접 만들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영원히 생명 현상을 창조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생명 현상이 비롯했는지 파악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이미 존재하는) 생명 현상을 조절할 뿐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유전자 가위로 유전 형질을 싹둑싹둑 자른다고 해도, 우리는 신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창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능숙한 장인이 될 뿐입니다. <인텔리젠트 디자인> 같은 진화 생물학 게임은 신 게임(god game)이라고 불리나, 진화 생물학 게임은 신보다 능숙한 장인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생명체를 직접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 자연 생태계를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비단 생명 현상만 아니라 기후, 지리, 지질, 다른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합니다. 인류 문명은 여기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회오리, 해일, 지진, 화산 폭발, 벼락은 정말 거대합니다. 인류 문명은 이것들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자연 생태계는 신과 같습니다. 만약 개척자들이 테라포밍을 시도한다면, 개척자들은 신처럼 아주 거대하고 압도적인 행위에 도전해야 합니다. 테라포밍이 아주 거대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테라포밍은 로망입니다. 어떤 생태적인 상상력이 테라포밍에 도전할 수 있습니까? 거대 괴수? 행성보다 거대 괴수는 훨씬 작습니다. 아무리 거대 괴수가 100m, 200m, 300m를 넘어간다고 해도, 행성 전체보다 거대 괴수는 티끌에 가깝습니다. 게임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대기, 기후, 수분, 식물, 주거지 레벨 같은 굵직한 요소들을 조절해야 합니다.
개척자들은 이끼들과 지의류들을 퍼뜨리고 자연 생태계 기반을 다질 수 있습니다. 나중에 개척자들이 나무들을 심기 시작한다면, 녹색 자연은 훨씬 풍요로워질 테고, 녹색 자연은 스스로 순환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겁니다. 화성은 살아있는 어머니 행성이 될 겁니다. 돔 거주지들이 살아있는 어머니 행성에 닿을 수 있나요? 돔 거주지들보다 살아있는 어머니 행성은 훨씬 거대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돔 거주지들에서 <서바이빙 마스>는 만족하지 못했을 겁니다. 외계 개척 이야기는 지구화, 테라포밍으로 가야 합니다. 소설 <붉은 화성>에서 과학자들이 테라포밍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처럼, 외계 개척 이야기는 테라포밍으로 가야 합니다.
게임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이 웅장한 녹색 자연을 보여주는 것처럼, 생태학 SF 설정들 중에서 테라포밍은 가장 거대할 겁니다. 세대 우주선 속의 폐쇄 인공 생태계 같은 생태적인 상상력은 감히 테라포밍에게 깝치지 못합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녹색 화성>을 썼고 <오로라>를 썼습니다. 소설 <오로라>는 테라포밍을 묘사하나, 이 소설에는 세대 우주선 속의 폐쇄 인공 생태계가 있습니다. 세대 우주선은 다양한 지구 자연 환경들과 생물 다양성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대 우주선이 다양한 지구 환경들을 품었다고 해도, 고작 세대 우주선 따위가 압도적인 행성 생태계에 깝칠 수 있나요?
많은 SF 독자들은 세대 우주선 속의 폐쇄 인공 생태계보다 테라포밍이 훨씬 로망이라고 느낄 겁니다. 어떤 SF 독자들은 세대 우주선 생태계를 훨씬 좋아하겠으나, 이런 독자들은 상대적으로 적을 겁니다. 이건 다소 슬픈 일입니다. 세대 우주선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폐쇄 인공 생태계는 훨씬 흥미진진합니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한계들을 넘고 승리할 때, 카타르시스는 훨씬 짜릿할 겁니다. 그래서 테라포밍보다 세대 우주선 생태계는 훨씬 짜릿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세대 우주선 생태계는 작습니다. 이건 너무 작습니다. 많은 SF 독자들은 세대 우주선 생태계보다 테라포밍을 읽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테라포밍이 너무 거대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둘째 문단이 설명하는 것처럼, 테라포밍은 숱한 논쟁들을 부를 겁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테라포밍은 또 다른 환경 오염들이 될 겁니다. 만약 개척 과학자들이 정말 안전하게 테라포밍에 성공했다고 해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지구화 외계 행성을 그냥 놔둘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끊임없이 잉여 자본을 투입하고 싶어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과잉 생산을 일으킵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인건비를 낮추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늘리고, 제대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주의 경제는 계속 상품들을 양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상품들을 소비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과잉 생산에 다다릅니다. 이렇게 경제가 막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새로운 경로를 뚫고 싶어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계속 새로운 곳에 투자하고, 투자하고, 투자하고, 다시 투자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시장이 반드시 포화 상태(과잉 생산)에 이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계속 새로운 뭔가를 시장 경제 안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만약 개척자들이 외계 행성을 지구화한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지구화 외계 행성을 시장 경제 안으로 끌어들일 겁니다.
지구화 외계 행성이 시장 경제 안으로 들어간다면, 지구화 외계 행성이 상품화한다면, 이건 심각한 환경 오염들을 일으킬 겁니다. 이미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지구 자연 생태계를 상품화했고, 심각한 환경 오염들을 일으켰고, 기후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지구화 외계 행성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환경 오염들을 반복할 겁니다. 아무리 개척 과학자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이건 심각한 환경 오염들이 될 겁니다. 테라포밍은 환경 오염이라는 비참한 말로로 몰락할 겁니다. 우리가 풍요로운 지구화 외계 행성을 바란다면, 우리에게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타파해야 합니다.
이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사라지기 전에 개척 과학자들이 외계 행성을 지구화한다면, 이건 오직 또 다른 환경 오염들이 될 뿐입니다. 게임 <서바이빙 마스: 그린 플래닛>에서 대기를 조성하기 위해 개척 과학자들은 온실 가스를 뿜어야 합니다. 만약 개척 과학자들이 너무 많은 온실 가스를 뿜는다면, 대기는 산성비를 뿌릴 테고, 토양은 식물들을 키우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영리 기업들은 온실 가스, 산성비, 핵 폐기물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영리 기업들은 얼마든지 자연 환경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