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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우주 개척의 신화>와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 본문

SF & 판타지/바이오 돔과 테라포밍

<우주 개척의 신화>와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

OneTiger 2019. 2. 7. 20:30

[게임 <서바이빙 마스>처럼, 외계 개척 이야기들은 종합적으로 문명과 자연을 살필 수 있습니다.]



<SF 가이드 총서>는 SF 소설들과 영화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저자는 고장원님이고, 모두 10권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SF 가이드 총서>는 평행 우주, 중국과 일본 SF 문화, 한국 SF 소설들, 기술적 특이점, SF 영화들, 외계인, 형이상학적인 종교 문제, 사이언스 픽션의 기원,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이야기했습니다. SF 입문자부터 SF 전문가까지, <SF 가이드 총서>는 폭넓은 독자 계층을 상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SF 입문자들은 훨씬 이 총서를 반길 겁니다. SF 세상에 입문하고 싶다고 해도, SF 입문자들은 쉬운 안내 서적을 쉽게 찾지 못합니다. 국내에는 SF 안내 서적이 많지 않죠.


어떤 분야에서든 기본기는 중요하나, SF 입문자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할 겁니다. 만약 이런 SF 입문자들이 너무 어려운 하드 SF 소설이나 추상적인 뉴웨이브 소설을 읽는다면, 그들은 고개들을 흔들면서 SF 세상을 떠날지 모르겠습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비디오 게임들이 널린 상황에서 SF 입문자들은 구태여 골치가 아픈 소설들을 읽고 싶어하지 않겠죠. 이런 사람들에게 <SF 가이드 총서>는 친절한 안내 서적이 될 겁니다. SF 입문자들은 어떻게 SF 소설들이 나타났는지 이해하고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겠죠.



<SF 가이드 총서>의 11번째 주제는 우주 여행과 외계 개척입니다. 제목은 <우주 개척의 신화, 우주 여행에서 식민지 개척까지>입니다. 아직 11번째 총서는 나오지 않았으나, 고장원님은 대략적인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하나는 우주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외계 개척입니다. 우주 여행과 외계 개척은 서로 다른 영역이나, 우주 여행 없이 외계 개척은 없겠죠. 미래 인류가 외계 행성을 개척하기 원한다면, 그들은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으로 떠나야 합니다. 어떤 소설들은 차원 관문을 통과하는 설정을 이야기하나, 차원 관문보다 우주선 항해는 훨씬 현실적인 대안일 겁니다. 문제는 깊고 깊은 우주까지, 우주선이 쉽게 항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죠.


적어도 태양계 내부 항해는 낫습니다. 하지만 우주선이 태양계를 넘고 다른 항성계로 가고 싶다면, 우주선은 엄청난 시간을 항해해야 할 겁니다. 어떤 소설들은 우주선들이 초공간 도약으로 다른 항성계에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나, 그건 그저 스페이스 오페라 설정일 뿐이죠. 게다가 이런 초공간 도약이 가능하다고 해도, 수많은 행성들에서 시간들은 서로 다르게 흘러갈지 모릅니다. 이 행성의 100년은 저 행성의 300년일지 모릅니다. 이 우주선의 20년은 저 위성의 500년일지 모르죠. 어쩌면 외계 개척보다 우주 여행은 훨씬 힘든 문제일지 모릅니다.



만약 미래 인류가 무사히 외계 행성에 도착했다면, 그들은 임시 주거지를 짓거나 테라포밍 및 팬트로피를 시도할 겁니다. 외계 행성에 자연 생태계가 있다면, 미래 인류는 훨씬 수월하게 자연 생태계를 이용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외계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오랜 동안 개척자들은 죽도록 고생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외계 자연 생태계보다 불모지 환경은 훨씬 나을지 모릅니다. 정체 모를 전염병보다 죽은 행성은 훨씬 낫겠죠. 외계 행성이 불모지 환경이라면, 개척자들은 (지구와 똑같은)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기 원할 겁니다. 어떤 소설들은 팬트로피를 이야기하나, 팬트로피보다 테라포밍은 훨씬 많은 인기를 끕니다.


테라포밍은 외계 환경을 바꾸고, 팬트로피는 (외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 신체를 바꿉니다. 팬트로피를 거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지 모릅니다. 인간은 인간성을 잃을지 모릅니다. 인간은 기이한 외계 생명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SF 독자들 역시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SF 독자들은 이런 변화를 반가워하지 않을지 모르죠. 게다가 팬트로피는 오직 특정한 환경에만 어울립니다. 지느러미들과 아가미가 달린 수중 인간은 사막 행성으로 쉽게 떠나지 못하겠죠. 팬트로피는 보편성보다 특수성을 너무 강조하고, 그래서 팬트로피는 범용적이지 않습니다. SF 작가들은 팬트로피보다 테라포밍이 훨씬 낫다고 생각할 겁니다.



외계 행성에서 개척자들이 도시를 짓고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여기에는 새로운 문명이 나타날 겁니다. 외계 행성 개척은 쉽게 새로운 문명으로 이어질 수 있죠. 외계 행성에서 개척자들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외계 행성에 간섭하지 못합니다. 개척자들이 지구를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개척자들은 관습을 버리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외계 행성 개척은 단절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개척자들은 관습을 끊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토피아 소설들에게 외계 행성 개척은 중요한 소재입니다.


개척자들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그들은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을 겁니다. 개척자들이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다고 해도, 외계 행성 개척은 새로운 문명으로 이어질 겁니다. 개척자들이 관습을 따르고 싶다고 해도, 새로운 자연 환경과 새로운 도시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이 바뀐다면, 분명히 사회 역시 바뀔 겁니다. 어쩌면 개척자들이 관습을 원한다고 해도, 새로운 사회는 관습을 거부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면, 새로운 사회는 엄청난 갈등들을 부를지 모릅니다. 문명이 새롭게 일어서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자연 환경부터 인류 사회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기 때문에, 외계 개척 이야기는 문명을 다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외계 개척 이야기는 어떻게 문명이 나타나고 번성하고 망하고 흐르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문명'은 꽤나 거창한 단어이고 거창한 소재입니다. 문명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고, 문명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외계 개척 이야기는 문명이 일어서고 번성하고 망하는 과정을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죠. 그래서 외계 개척 이야기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입니다. 자연 환경부터 인류 사회까지, 개인부터 사회까지, 첨단 과학부터 사회 철학까지, 외계 개척 이야기는 종합적인 소재들을 건드려야 합니다.


이건 외계 개척 이야기가 선사하는 가장 커다란 미덕이겠죠. SF 작가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꽤나 매력적일 겁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해도, 이걸 쓰기는 쉽지 않겠죠. 오히려 이게 종합적이고 총체적이기 때문에 이걸 쓰기는 어려울 겁니다. 문명이 꽤나 거창한 소재이기 때문에, 이야기들을 잘못 구성한다면, 오히려 작가는 새로운 문명을 망칠지 모릅니다. 새로운 문명을 묘사하고 싶다면, SF 작가는 수많은 것들을 폭넓게 살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이런 분야에서 대표적인 SF 작가는 킴 스탠리 로빈슨일 겁니다. SF 팬들이 테라포밍과 외계 행성 개척을 논의할 때, <화성> 3부작은 여전히 손꼽히는 소설입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오직 불새 출판사가 번역한 반쪽짜리 <붉은 화성>만 있을 뿐입니다. <화성> 3부작이 테라포밍과 외계 행성 개척을 대표하는 소설임에도, 국내 SF 독자들은 <화성> 3부작을 읽지 못하죠. 하지만 테라포밍과 외계 행성 개척 그 자체는 드물지 않습니다. <듄> 연대기는 개척 이야기가 아니나, 분명히 테라포밍을 포함하고 어떻게 인류 사회와 자연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 표현합니다. <빼앗긴 자들>은 어떻게 새로운 인류 사회가 척박한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지 보여줍니다.


<달을 향한 모험>은 외계 행성을 개척하기 전에 우주 승무원들이 감동적으로 달을 탐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녹색 손가락 이야기는 테라포밍으로 이어질 수 있겠죠. <우주의 개척자>나 <조던의 아이들>이나 <은하를 넘어서>는 10대 성장 소설과 외계 행성 개척을 합쳤습니다. 하드 SF 독자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열심히 깝니다. 그렇다고 해도 <파피용>은 꽤나 대중적인 외계 개척 이야기겠죠. <타우 제로>는 어떻게 우주선 사회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SF 소설들 이외에 외계 건설 게임들 역시 비슷한 소재를 묘사합니다. <테라포밍 마스>나 <플래닛 베이스>나 <에이븐 콜로니>는 좋은 사례가 되겠죠.



물론 외계 개척 이야기에서 식민지 문제는 빠지지 못할 겁니다. 이미 어슐라 르 귄이 이야기한 것처럼, 외계 개척과 식민지 문제는 서로 떨어지지 못합니다. <우주 개척의 신화, 우주 여행에서 식민지 개척까지>라는 제목 역시 '식민지'를 이야기하죠. 11번째 총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고장원님 역시 외계 식민지의 정치 경제학을 빼놓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주 항해와 외계 개척은 그저 첨단 상상 과학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지배적인 경제 현상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입니다. 무한하게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수탈하고 싶어합니다. 이미 19세기 이후,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계속 확장하고 수탈할 거라고 경고했죠.


대표적으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모든 것을 수탈할 때까지 자본주의가 확장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식민지 수탈 없이 자본주의는 나타나지 못했을 겁니다. 열대 밀림을 파괴하고 플랜테이션 농장들을 짓지 않았다면, 19세기 서구 자본주의는 절대 나타나지 못했을 겁니다. 자본주의는 수탈과 함께 나타났고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계속 확장해야 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아메리카는 혼란스럽습니다. 왜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가 극심한 혼란에 시달리겠습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식민지를 끊임없이 공격해야 합니다. 외계 '식민지' 역시 예외가 아니겠죠. 어쩌면 외계 개척 이야기는 어떻게 문명이 식민지를 수탈하는지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재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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