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테라포밍 마스>의 삼림 기업, 에코라인 본문
[불모지 우주에서 녹색 생명의 씨앗들을 뿌리는 과정. 이런 설정은 정말 멋지고 환상적입니다.]
게임 <테라포밍 마스>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화성을 지구화해야 합니다. 화성을 지구화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들은 여러 기업들을 선택합니다. 다른 많은 전략 게임들처럼, <테라포밍 마스>에는 개성적인 세력들(기업들)이 있습니다. 어떤 기업은 도시를 많이 늘릴 수 있고, 어떤 기업은 전력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고, 어떤 기업은 열 생산력으로 화성 기온을 팍팍 올릴 수 있습니다. 여러 기업들 중에서 에코라인은 가장 주인공 세력에 가까울 겁니다. 이름처럼 에코라인은 식물 생산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녹색 나뭇잎 같은 기업 문양이 가리키는 것처럼, 게임을 시작할 때, 에코라인은 식물 자원을 보유합니다.
게다가 삼림 지대를 조성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이 식물 자원 8개를 소모할 때, 에코라인은 7개를 소모할 수 있죠. 에코라인은 삼림 지대를 쭉쭉 늘릴 수 있고 여기에서 이득을 얻습니다. 당연히 에코라인 플레이어는 정원사 업적을 노리겠죠. 특징이 뚜렷하고 친환경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에코라인은 주인공 세력에 가깝고 초보자에게 매우 좋은 기업입니다. 생태적인 상상력을 좋아하고 녹색 화성을 보기 원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에코라인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개조 미생물이나 극저온 곰팡이 설정은 정말 멋진 상상력이 아닙니까.
문제는 이런 뚜렷하고 친환경적인 특성이 게임 플레이어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입니다. 특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경쟁 기업들은 이걸 거꾸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에코라인이 삼림 지대를 늘리지 못한다면, 에코라인은 이득을 얻지 못할 겁니다. 만약 경쟁 기업들이 (삼림 지대가 아니라) 다른 사건들로 산소를 팍팍 퍼뜨린다면, 산소 수치는 빨리 포화 수치에 이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코라인이 삼림 지대를 조성한다고 해도, 삼림 지대는 산소 수치를 올리지 못하고, 에코라인은 이득을 얻지 못하죠. 에코라인 플레이어가 의도적으로 정원사 업적을 노린다면, 경쟁 기업들은 정원사 업적을 방해하기 위한 기술 트리를 준비할 겁니다. 누군가가 에코라인을 선택한 순간,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정원사 업적을 방해할지 궁리할 겁니다.
게다가 에코라인이 삼림 지대를 늘린다면, 경쟁 기업들은 에코라인의 삼림을 훼손하기 원할 겁니다. 경쟁 기업들은 소행성을 떨어뜨리거나 핵 탄두를 터뜨릴지 모릅니다. 얼음 소행성이 화성에 떨어진다면, 기업들은 소행성을 분해하고 수분을 추출할 수 있겠죠. 핵 탄두가 터진다면, 강한 열은 지표 기온을 올릴 수 있겠죠. 다른 기업들은 그런 상황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행성과 핵 탄두가 삼림 지대를 날려버리고 오염시킨다면, 에코라인은 그런 상황을 별로 반기지 않겠죠. 특히, 경쟁 기업이 작정하고 소행성을 삼림 지대에 떨어뜨린다면…. (이건 정말 메테오 스트라이크 마법?)
이런 약점 때문에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에코라인이 약한 세력이라고 평가합니다. 에코라인을 공략하기 위한 방법들은 너무 쉽습니다. 개성이 뚜렷하다면, 그 개성을 막을 방법 역시 뚜렷하겠죠. 경쟁 기업들은 집중적으로 에코라인을 다굴칠지 모릅니다. 이런 전략 게임들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이건 우정 파괴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에코라인 플레이어는 엉엉 울면서 테이블에서 뛰쳐나가겠죠. ("미워! 너희들이랑 안 놀 거야!") 물론 게임 플레이어가 노련하다면, 에코라인은 그런 공격들을 막고 승리의 나뭇잎 깃발을 휘날릴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에코라인이 삼림 지대를 쉽게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게다가 에코라인이 삼림 지대에서 많은 이득을 얻기 때문에, 에코라인이 공격들을 버틸 수 있다면, 게임 막바지에 플레이어들은 승리의 나뭇잎 깃발을 바라볼 겁니다. 삼림 지대에서 훨씬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어떤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을 질질 끌지 모릅니다. 삼림 지대가 많다면, 순서 하나에 에코라인은 막강한 점수를 쌓을 수 있을 겁니다. 미생물 카드들과 야생 동물 카드들은 식물 카드와 연계되는 동시에 게임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는 세력으로서 에코라인이 미생물들과 야생 동물들을 감각적으로 삼림 지대에 이용한다면, 한두 세대 동안 에코라인은 커다란 점수를 쌓을 수 있겠죠.
만약 에코라인이 생태계 보호 구역을 정하거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면, 에코라인은 삼림 지대를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 기업들은 에코라인의 삼림 지대를 훼손하지 못할 테고, 에코라인은 견제를 막고 점수를 쌓을 수 있겠죠. 제가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 게임 플레이는 제 설명과 다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설명은 아주 크게 엇나가지 않았을 겁니다.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는 기업으로서 에코라인에게 생태계 보호 구역은 거의 필수적일 겁니다. 어쩌면 이건 전략 게임에서 친환경 세력이 떠맡는 숙명(?)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배틀 포 노스웨스>는 하드 SF 게임이 아니라 중세 유럽 판타지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는 행성 공학이나 생태계 조성 설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배틀 포 웨스노스>에서 저항군 세력에는 우드 엘프들이 있습니다. 삼림 지형에서 엘프 레인저나 엘프 드루이드는 은신 능력이나 높은 방어 이득을 얻습니다. 당연히 저항군 플레이어는 삼림 지형들을 이용하기 원할 테고, 상대 플레이어는 삼림 지형들을 견제하기 원할 겁니다. 만약 저항군 플레이어가 너무 삼림 지형들에 치중한다면, 상대 플레이어는 이걸 거꾸로 적용하고 쉽게 우드 엘프 유닛들을 처치할 수 있겠죠. 비단 <테라포밍 마스>와 <배틀 포 웨스노스>만 아니라 여러 전략 게임들에서 친환경 세력과 삼림 지대는 긴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반다나 시바가 보여준 것처럼, 현실 속에서 환경 운동이 삼림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전략 게임들 역시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 운동과 삼림 보호를 함께 연상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 운동이 녹색 나뭇잎이라고 간주하겠죠. 지구 생태계에는 삼림 지대 이외에 다른 지형들이 많습니다. 극지, 고산, 사막, 평원.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지형들이 '자연'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대중적인 인식 속에서 '자연'은 '녹색 나뭇잎'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아예 행성 전체에 삼림을 조성하기 원할지 모릅니다. 그게 가능할지 그건 확실하지 않겠으나, 설사 삼림 행성이 가능하다고 해도, 우리가 정말 행성 생태계를 완전히 삼림으로 바꿔야 할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극지, 고산, 사막, 평원 역시 자연 생태계에 속하고, 그런 다양한 생태계들 속에서 우리는 생물 다양성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이용할 수 있겠죠. 소설 <듄>에서 프레멘들은 녹색 씨앗들을 뿌리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라키스 행성이 녹색 삼림 행성이 되었을 때, 모래벌레들을 비롯해 다른 사막 생명체들은 더 이상 살지 못했습니다. 이게 꽤나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레토 아트레이드 2세는 아예 자신의 몸 속(문자 그대로 몸뚱이)에 모래송어 유전 형질을 보관합니다. 이런 사례처럼, 녹색 삼림 행성은 능사가 아닐 겁니다. 설사 우리가 소행성 내부나 궤도 거주지에 독립적인 사막 생태계나 극지 생태계를 조성한다고 해도, 그건 전부가 아닐 겁니다. 자연이 녹색 나뭇잎이라는 관념은 그저 삼림 보호를 위한 상징에 불과할 겁니다.
문제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삼림 행성이라는 로망스러운 행성 공학은 고사하고) 남아있는 삼림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이겠죠. 에코라인은 꽤나 로망이 넘치는 설정입니다. 이런 기업이 나타난다면, 환경 운동가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런 에코라인 같은 기업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자본주의 세계화 속에서 에코라인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식민지 수탈 시대에 유럽 문명이 자본주의를 형성했을 때, 이미 자본주의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밀어붙였고 열대 우림을 파괴했습니다.
여전히 자본주의는 환금 작물을 원하고 열대 우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가축들이 온실 가스를 뿜는다고 해도, 고급 식당이 멀쩡한 식량들을 버린다고 해도, 유전자 조작 작물과 생선이 생태계를 교란한다고 해도, 공장 축산이 전염병을 퍼뜨린다고 해도, 자유 시장 경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유 시장 경제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기 원합니다. 작고 작은 식물 플랑크톤부터 거대한 긴수염고래까지, 자유 시장 경제에서 모든 생명체는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에코라인은 나타나지 못합니다. 엉터리 세계 정상 회담들은 그걸 반증합니다. 설사 자유 시장 경제에서 에코라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독점 자본들은 에코라인을 다굴치겠죠. 현실 속의 여러 환경 운동 단체들처럼, 에코라인은 버티지 못하고 침몰할 겁니다.
에코라인 같은 단체가 활약해야 한다면, 우리는 에코라인을 위한 사회 구조를 마련해야 할 겁니다. 환경 운동 단체 하나가 날뛴다고 해도, 스스로 숲이 늘어나고 물고기들이 늘어나겠어요? 그건 그저 낭만적인 꿈에 불과할 겁니다. 거대 독점 자본들이 환경 운동들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숲을 복원하지 못하고 생물 다양성을 지키지 못할 겁니다. 환경 운동은 단체 하나가 날뛰는 상황이 아닙니다. 환경 운동은 우리가 평등한 사회 구조에 수렴하는 과정입니다. 평등한 사회 없는 환경 운동은 실패할 겁니다. 평등한 사회에 수렴하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몰아내는 구조, 가부장 문화가 여자들을 짓밟는 구조, 서구 강대국들이 제3세계를 수탈하는 구조를 없애야 할 겁니다. 환경 운동을 향한 출발점은 그런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