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헨젤과 그레텔>은 스팀펑크로서 부족한가 본문
[분명히 겉모습은 스팀펑크입니다. 하지만 이런 스팀펑크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떤 비평에서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을 비판했을 때, 듀나는 이 영화가 스팀펑크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마녀 사냥꾼>은 중세 유럽을 설정했으나, 헨젤과 그레텔은 중세 유럽 사람처럼 차려입지 않았습니다. 마치 20세기 옷차림인 것처럼 보이죠. 게다가 헨젤과 그레텔은 회전 기관총이나 전기 충격기를 사용해요. 듀나는 스팀펑크에 자신만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마녀 사냥꾼>이 스팀펑크가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흠, 자신만의 논리…. 스팀펑크 장르에서 자신만의 논리는 뭘까요. 어떻게 스팀펑크는 자신만의 논리를 갖출 수 있을까요.
가령,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 같은 소설은 훌륭한 스팀펑크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이런 소설은 자신만의 논리를 갖추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논리는 뭘까요. 저는 소설 주인공 아이작이 야가렉이라는 조류 인간에게 위기 이론과 토크 실험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그런 논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기 이론은 모순을 이용해 세상 만사를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세상 만물이 언제나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가정하고, 그래서 만물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설명합니다.
위기 이론은 영구적인 모순을 밑바탕에 깝니다. 세상 만물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사물들은 위기 상황에 처했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씁니다. 그래서 만물은 언제나 변합니다. 위기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고, 소설 주인공 아이작은 그런 힘을 연구하기 원합니다. 어쩌면 위기 이론은 변증법을 물리학적으로 구현한 상상력일지 모릅니다. 변증법 역시 세상 만물이 언제나 모순을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세상 만물은 모순을 없애기 위해 언제나 변해야 하고, 세상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영구적인 모순이 있고 그 모순이 세상을 계속 바꾸기 때문에 위기 이론과 변증법 철학은 서로 비슷해 보입니다.
차이나 미에빌이 변증법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든, 위기 이론은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을 떠받드는 중심적인 소재입니다. 동시에 이 소설은 토크 실험이라는 위험하고 끔찍한 실험을 이야기합니다. 그건 일종의 핵 병기 실험처럼 보입니다. 토크 실험은 엄청난 파괴와 흉측한 돌연변이들을 낳았습니다. 덕분에 토크 실험은 과학자들에게 금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도 함부로 토크를 연구하거나 다루지 않아요.
사실 위기 이론이나 토크 실험 이외에 <페르디도 기차역>은 다양한 과학 기술들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과 그걸 바라보는 관념들을 이야기합니다. 아이작은 위기 이론으로 학계와 물질 현상을 설명합니다. 과학자들은 토크를 끔찍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 이외에 다양한 기술들과 그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페르디도 기차역>에서 작가는 어떻게 19세기(처럼 보이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로봇을 만들 수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는 온갖 로봇들이나 개조 생명체들이 등장하나, 차이나 미에빌은 어떻게 기술자들이 그런 것들을 만들 수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아요.
하지만 작가는 어떻게 그런 기술이 관념이나 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죠. 저는 이런 이야기들, 관념들, 사회 구조가 스팀펑크에서 내부적인 논리를 구성한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사람들이 로봇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황당무계합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스팀펑크 작가는 어떻게 로봇이 19세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줍니다. 스팀펑크는 일반적인 SF 소설과 달라 보이나, 스팀펑크 역시 과학 기술과 인간의 관념과 사회 구조를 연결합니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은 그런 내부적인 논리를 갖췄을까요. 이 영화는 과학 기술과 인간의 관념과 사회 구조를 연결할까요. <페르디도 기차역>에서 과학자들이 토크 동력원에 몸서리치는 것처럼 <마녀 사냥꾼>은 가상의 과학과 거기에 따르는 관념을 이야기할까요. 글쎄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상의 과학 기술(각종 총기들)은 그저 액션을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가상의 과학 기술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그것이 인간의 관념이나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지 논의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기관총이나 전기 충격기를 도입한 이유는 마녀들을 화끈하게 날려버리기 위해서입니다. 마녀 사냥이라는 역사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마녀 사냥꾼>은 중세 유럽을 빌렸으나, 역사적인 측면을 고찰하는 것보다 액션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스팀펑크를 모방했고, 그래서 듀나가 <마녀 사냥꾼>이 스팀펑크가 아니라고 비판한 것 같습니다. 부분적이라고 해도 스팀펑크는 사이언스 픽션이고,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과 관념과 사회 구조를 고민해야 할 겁니다. 창작가가 그걸 무시한다면, 당연히 비판을 받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