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디스아너드>의 고래 기름과 동물 권리 본문
[이런 잔인한 도살을 보여줌에도, <디스아너드> 시리즈는 동물 권리를 크게 중시하지 않죠.]
SF 창작물들은 독특한 자원들을 선보이곤 합니다. 에너지는 산업 문명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고, 그래서 SF 작가들은 가상의 동력원이나 엔진을 상상합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의 아나메존이나 <기시감>의 타키온 드라이브나 <에코토피아 비긴스>의 저렴한 태양열이나 <아바타>의 언옵타늄은 그런 결과겠죠. 비디오 게임 <디스아너드>에서 고래 기름은 무한단물 같습니다. <디스아너드>는 19세기 스팀펑크 판타지이고, 사람들은 고래 기름을 다양한 곳들에 이용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죽은 고래를 운송하는 거대한 선박이나 고래 기름 엔진을 볼 수 있고, 심지어 공장 직원들이 거대한 고래를 묶어놓고 기름을 뽑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어요.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향유 고래는 현실 속의 향유 고래와 많이 다릅니다. 크기가 훨씬 크고 옹골찹니다. 이빨들 역시 훨씬 크고 날카롭습니다. 촉수 비슷한 기관들이 달려있고, 다른 부위들 역시 다르죠. 하지만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도, 게임의 향유 고래는 현실의 향유 고래를 과장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고래 기름은 아주 중요한 동력원이나, 고래에게는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설정이 없습니다.
고래 기름이 워낙 여기저기에서 출몰하기 때문에 저는 향유 고래에게 뭔가 특별한 설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고래 기름을 다른 동력원으로 바꾸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디스아너드>에서 선박들이나 보행 기계들이 아나메존이나 타키온 드라이브나 태양열 엔진을 사용한다고 해도, 아무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고래 기름 엔진은 알맹이가 아니라 그저 껍질에 불과합니다. 19세기 분위기를 풍기는 껍질에 불과하죠. 하지만 껍질 역시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테고, 고래 기름 엔진 덕분에 <디스아너드>는 고색창연한 19세기를 풍미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공장 기계가 고래에게서 기름을 뽑는 장면은 정말…. 업튼 싱클레이어가 이 게임을 플레이했다면, 아주 이를 북북 갈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게임 제작진이 <정글>을 읽었을지 모르죠. 게임 제작진이 <정글>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무자비한 동물 도살을 비판하는 소설들은 많습니다. 주류 문학과 SF 소설 모두 동물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진짜 동물이나 유전자 조작 동물을 이야기합니다. <디스아너드>에서 거대하고 웅장한 고래가 기계들에게 묶이고 애처롭게 신음하는 장면은 그런 소설들과 비슷해요.
그래서 <디스아너드>는 동물 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스팀펑크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공장 기계들에 묶인 향유 고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정이나 연민에 머물 뿐입니다. 그런 시각은 분노와 비판으로 나가지 않아요. 인간이 다른 종을 차별한다면, 동물 권리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우리는 다른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사냥이나 낚시나 사육이나 양식은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저는 그런 사냥이나 낚시나 유목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는 더 많은 에너지와 상품과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이 동물들에게 무리하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고래 기름이 없어도 인간은 범선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랜 동안 사람들은 범선을 이용해 바다를 가로질렀습니다. 콘티키는 그걸 증명하는 실험이었고, <모아나> 같은 애니메이션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태여 고래 기름을 뽑는 이유는 그게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연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고래 기름 엔진 따위가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아무리 사람들이 고래 기름을 열심히 뽑아도, <디스아너드>는 스팀펑크 디스토피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고래 기름을 뽑고 싶지 않아도, 공장 주인들은 계속 노동자들에게 기름을 뽑으라고 명령할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자들은 고래를 도살해야 합니다. 공장 주인이 고래를 동정한다고 해도, 고래 기름을 팔지 않는다면, 공장은 파산할 겁니다. 공장 주인이 고래를 동정한다고 해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공장은 계속 기름을 뽑고 팔아야 합니다. 따라서 향유 고래를 수탈하고 싶지 않다면,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계를 타파해야 합니다. 동물 권리가 무조건 자본주의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사라진다고 해도, 사람들이 다른 동물을 차별한다면, 동물 권리는 살아나지 못할 겁니다. 다람쥐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말똥가리를 비행 무인기로 쫓아다니는 행위는 자본주의와 관계가 없어요. 사람들은 다른 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동물 차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이윤과 임금을 얻기 위해 공장들과 노동자들이 계속 고래들을 도살한다면, 어떻게 동물 권리가 살아날 수 있겠어요. 현실 속의 공장 축산업이나 동물 까페나 애완동물 산업 역시 똑같은 문제입니다. 그것들은 이윤과 임금과 자본주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자본주의는 한 인간(자본가)이 다른 인간(노동자)를 억압하는 구조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이 다른 생물종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겠어요.
스팀펑크 디스토피아로서 <디스아너드>는 19세기 자본주의를 충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디스아너드>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디스아너드>는 그저 잠입 액션 게임일 뿐이고, 자본주의나 동물 권리에 하등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생태주의 SF 소설들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동물 학대를 볼거리로서 이용한다면, 누군가는 그게 중요하다고 외쳐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