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과 구닥다리 로봇들 본문
[게임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이 보여주는 19세기 투박한 플로지스톤 강화복.]
비디오 게임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은 소설 <드라큐라>를 과장한 액션 롤플레잉입니다. 게임 주인공은 반 헬싱이나, 이 게임은 <드라큐라>와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은 온갖 고딕 호러들과 스팀펑크들을 조합했고, 악마들과 괴물들과 개조 생명체들과 흑마법들과 증기 기관 로봇들을 선보입니다. 이 게임을 본다면, 19세기 환상 소설가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그들은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이 정말 괴악한 짬뽕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늑대인간은 전기 장치를 달았고, 부유 로봇은 연기를 칙칙 뿜고, 구닥다리 무인기는 악마에게 총을 쏘고, 어설픈 강화복은 철컥거리며 유령을 때려 잡습니다. 사람들은 위어드 사이언스를 두려워하고, 반 헬싱은 증기 기관을 조작하는 동시에 유령 아가씨를 사귑니다. 누군가는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이 산만한 잡탕 찌개라고 평가할 테고, 누군가는 이게 매력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하겠죠. 개인적으로 이런 잡탕 찌개를 좋아합니다. 저는 스팀펑크 창작물에서 마법과 과학과 괴물과 로봇과 드래곤과 거대 비행선을 함께 보고 싶습니다.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은 그걸 충족하는 설정이죠.
문제는 설정이 아니라 주제일 겁니다. 사실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 이외에 다른 스팀펑크 판타지들 역시 잡탕 찌개 설정을 자랑합니다. 문제는 주제입니다. 왜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은 그런 잡탕 찌개 설정을 선보일까요. 게임 플레이어에게 고정 관념을 타파하는 이질적인 세계를 선사하기 위해?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을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주류적인 관습을 거부하고 인식의 지평선을 넓힐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에 그런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이 게임은 멋진 설정들을 조합했으나, 그것들은 그저 요란한 액션으로 이어질 뿐이고, 고정 관념과 주류적인 관습을 부수지 않습니다. 이 게임이 노리는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닐 겁니다.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은 그저 열심히 악마들과 괴물들과 로봇들을 때려잡기 원할 뿐입니다. 게임 제작진은 아주 거대하고 매력적인 세계를 창조했으나, 그 세계 속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열심히 징그러운 적들을 학살할 뿐이에요.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게임에게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을지 모르죠.
솔직히 각종 로봇들이나 장치들은 멋집니다. 이런 것들은 19세기 스팀펑크가 자랑하는 디자인을 확실히 드러냅니다. 21세기 관점에서, 미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좋아하는 시각에서, 이런 스팀펑크 디자인은 구닥다리일지 모릅니다. 게임 속에서 반 헬싱은 커다란 부유 로봇을 데리고 다닙니다. 부유 로봇은 프로펠러들을 돌리고,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뿜고, 기관총을 발사합니다. 부유 로봇은 넓적한 원반처럼 생겼어요. 세련되거나 미려한 구석은 없고, 사람들은 이 로봇이 투박하다고 느낄 겁니다. 부유 로봇 이외에 반 헬싱은 다른 보행 로봇들이나 비행 로봇들을 만듭니다. 그것들 역시 투박하게 보여요.
비행 무인기는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제작한 헬기를 모방한 것 같습니다. 반 헬싱이 입는 강화복 역시 뭔가 어설프게 보입니다. 20세기나 21세기 SF 소설이 묘사하는 강화복과 달리, 19세기 강화복은 어설픈 장난감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매력이 될 수 있겠죠. 어쩌면 누군가는 왜 이런 구닥다리 디자인들을 좋아하는지 물을지 몰라요. 누군가는 21세기가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함에도 왜 스팀펑크 팬들이 계속 옛날 구닥다리 디자인에 매달리는지 물을지 모르죠.
그게 그저 복고적인 취향 때문일까요? 어쩌면 어떤 스팀펑크 팬은 복고적인 디자인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21세기가 온갖 세련된 디자인들을 내놓는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겠죠. 하지만 스팀펑크 팬들은 구닥다리 전투 비행선과 첨단 우주 구축함을 함께 좋아할 수 있어요. 스팀펑크 팬들은 구닥다리 디자인과 세련된 디자인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전투 비행선과 우주 구축함이 모두 비일상적인 상상력이라는 사실입니다. 디자인이 구닥다리거나 화려하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시대적인 감성은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과장된 19세기와 첨단 23세기는 똑같이 비일상적인 상상력이고, 그래서 스팀펑크 팬은 그저 비일상적인 상상력을 좋아할 뿐인지 모르죠. 저는 전투 비행선이나 증기 기관 잠수함이 멋진 설정이라고 생각하나, 광대한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 탐사선 역시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SF 팬이 스팀펑크 설정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그 SF 팬이 우주 탐사 설정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수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은 중세 판타지와 스페이스 오페라를 함께 즐깁니다. 그런 것처럼 SF 팬들은 구닥다리 거대 비행선과 첨단 우주 탐사선을 함께 좋아할 수 있어요. 스팀펑크 팬들이 구닥다리 디자인에 매달린다는 표현은 옳지 않은 표현일 겁니다.
그리고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에는 그런 디자인들이 가득합니다. 비록 이 게임은 액션 롤플레잉이나, 분명히 디자인들은 멋집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다면, <파반>이나 <마술사가 너무 많다>나 <모털 엔진> 같은 소설들을 읽어도 나쁘지 않겠죠. 이런 소설들은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