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사소한 정의>가 SF '소설'이 되는가 본문
"레골라스는 금발인가?" 오랜 동안 소설 <반지 전쟁> 독자들은 이걸 토론했습니다. <반지 전쟁> 독자들은 레골라스가 금발이거나 흑발일 거라고 추정합니다. 레골라스가 속한 가계는 흑발입니다. 따라서 레골라스 역시 흑발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레골라스가 금발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남깁니다. 이 암시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레골라스가 금발일 거라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소설 작가와 소설 모두 레골라스가 금발이라고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저 추측할 뿐이고 레골라스가 정말 금발인지 확신하지 못하죠. 어떤 사람들은 레골라스가 금발이라고 확신할지 모릅니다. 영화 <반지 원정대>가 금발 레골라스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소설은 레골라스가 금발이라고 확실히 묘사하지 않습니다. 사실 소설 속의 레골라스와 영화 속의 레골라스가 똑같이 생겼는지 사람들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소설은 레골라스가 잘생긴 엘프라고 이야기하나, 구체적으로 외모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사실 소설이 구체적으로 외모를 묘사하고 싶다고 해도, 소설은 그림이 아니죠. 소설 <반지 전쟁> 속에서 레골라스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등장인물이 아닙니다. 레골라스는 글자들로 이루어졌고 시각적이지 않은 등장인물입니다.
글자들은 시각적이지 않습니다. 글자들은 어떤 심상을 제시할 수 있으나, 그건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소설 역시 시각적이지 않죠. 시각적인 측면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설은 등장인물을 묘사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 색깔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설 <반지 전쟁>은 얼마든지 레골라스를 이야기할 수 있죠. 반면, 영화 <반지 원정대>는 레골라스가 금발이라고 보여줘야 합니다. 영화는 영상 매체이고 시각적입니다. 시각적인 측면을 배제한다면, 영화는 등장인물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겠죠. 그래서 영화는 레골라스가 금발이라고 확정했을 겁니다.
어쩌면 영화 제작자들 역시 레골라스의 머리카락이 무슨 색깔인지 확신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는 등장인물을 직접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금발이라고 확정했죠. 머리카락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존 로널드 톨킨은 얼마든지 레골라스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피터 잭슨을 비롯해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그런 방법이 없죠. 소설 속에서 레골라스는 글자들이나, 영화 속에서 레골라스는 동영상입니다. 그래서 영화 제작자들은 시각적인 측면을 배제하지 못했어요. 물론 어떤 영화들은 시각적인 측면을 감추거나 배제합니다. 그런 영화들은 적지 않죠.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세요. 카이저 소제는 시각적인 측면을 아주 많이 배제합니다.
하지만 카이저 소제는 꽤나 특별한 등장인물입니다. 그 자체로서 카이저 소제는 시각적이지 않습니다. 카이저 소제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아무도 카이저 소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평범한 등장인물들은 정체를 감추지 않고 그래서 그들은 시각적인 측면을 드러내야 하죠. 레골라스 역시 구태여 정체를 감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 <반지 원정대>는 레골라스가 금발이라고 확정해야 했어요. 하지만 소설에서 존 로널드 톨킨은 (레골라스가 사방에 정체를 드러낸다고 해도) 머리카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었죠.
글자들은 피사체를 시각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글자들은 피사체의 어떤 특징을 포착하고 심상을 제시할 수 있으나, 피사체를 날것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자들은 시각적이지 않고 소설은 영화보다 피사체를 자세히 묘사하지 못합니다. 때때로 글자들은 아예 피사체의 외모를 간과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금발 벽안 백인이라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나사렛 출신입니다. 어쩌면 예수는 흑발이고 갈색 눈이고 피부가 짙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신약 성경>에서 예수가 글자들로 이루어진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약 성경>은 꾸준히 예수를 떠드나, 예수의 외모를 언급하지 않죠.
레골라스와 예수처럼, 글자들은 등장인물을 추상적으로 다룹니다. 사실 글자들은 대상들을 추상적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추상적인 철학, 사상, 관념을 이야기할 때, 우리에게 글자들은 좋은 도구가 됩니다. 심지어 이건 과도한 사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무엘 베케트가 쓴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건입니다. 소설을 읽거나 만화를 보거나 연극을 관람할 때, 우리는 어떤 사건이 벌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런 기대를 배신하고 아무 사건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흔히 평론가들이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처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일이 벌어졌죠.
하지만 이게 가능할까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존재와 무를 논증하는 것처럼,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면, 일어남은 일어나지 않음이 부재하는 상황일까요? 누군가는 이게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간주할 겁니다. 그렇게 글자들은 뭔가를 추상적인 영역으로 신나게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외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설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여러 방법들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외모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등장인물들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죠.
게다가 피사체를 아주 날것으로 보여주고 싶을 때, 글자들은 별로 적절한 도구가 되지 않습니다. 트와이스 팬들, 이른바 원스들은 사나가 예쁘다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원스들이 떠든다고 해도, 심지어 원스들이 지상 최대의 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글자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글자들에게는 한계가 하나 있습니다. 글자들은 고유한 특징을 가리키지 못합니다. 단어들은 보편적입니다. 예쁘다는 표현은 일반 형용사입니다. 그 자체로서 예쁘다는 형용사는 예뻐지지 못합니다. 독특함이라는 명사는 일반 명사이고 그 자체로서 독특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편성을 깨뜨리기 위해 소설 작가들은 온갖 필력들을 동원할 수 있으나, 단어들이 보편적이라는 한계 그 자체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원스들은 사나가 아주 많이 예쁘다고 강조할 수 있으나, '아주'와 '많이'와 '예쁘다'는 모두 보편적인 단어들이죠. 사나가 보여주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다면, 원스들은 예쁘다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언어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호라는 약속을 위반하겠죠. 그래서 글자들은 사나가 드러내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어설픈 사나 직캠은 지상 최대의 필력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반면, 그 덕분에 글자들을 이용한다면, 사람들은 거리의 투박한 돌멩이가 사나처럼 예쁘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글자들은 추상적이고 피사체를 추상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죠.
이렇게 글자들과 동영상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등장인물을 묘사합니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는 서로 들어맞지 않을지 모릅니다. 레골라스로서 올란도 블룸은 많은 인기들을 끌었으나, 어떤 독자들은 영화 속의 레골라스가 원작 소설을 무시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영화 <반지 원정대>를 관람할 때, 관객들은 아라곤이 소설책에서 걸어나왔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건 외모가 똑같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설이 제시한 몇몇 특징을 영화가 효과적으로 옮겼기 때문이죠. 심지어 존 로널드 톨킨조차 아라곤과 똑같이 생긴 배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겁니다. 소설이 시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종종 소설 작가들은 등장인물들을 추상적으로, 외모 묘사 없이 묘사하곤 합니다. SF 작가들에게 이건 특별히 중요한 문학 방법입니다. SF 소설들은 일상을 깨뜨리고 편견을 깨뜨리고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싶어합니다. 만약 SF 소설들이 물리적인 외모를 감춘다면, SF 소설들이 의도적으로 외모를 묘사하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고정 관념을 깨뜨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소설 <아웃사이더>에서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일부러 외모를 감춥니다. 소설 <유령 여단> 도입부에서 존 스칼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사소한 정의>는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하지만 <사소한 정의>는 절대 등장인물들의 외모들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건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로봇 비전>이나 피에르 불이 쓴 <혹성 탈출> 역시 마찬가지죠.
만약 <사소한 정의>가 영화가 된다면, 영화 제작자들은 어떻게 등장인물들을 묘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겁니다. 사실 <사소한 정의>는 소설입니다. 소설이기 때문에 <사소한 정의>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매체를 떠난다면, <사소한 정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해요. 만화,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 게임과 달리, 오직 소설만이 등장인물들을 글자들로, 추상적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정의>는 비단 SF 소설일 뿐만 아니라 SF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