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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와인드업 걸>과 <울프>, 생물 다양성 위기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와인드업 걸>과 <울프>, 생물 다양성 위기

OneTiger 2020. 6. 10. 19:55

바이러스의 시대, 지금 읽어야 할 작가. 이렇게 민음사 Youtube 채널(링크)은 알베르 카뮈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왜 바이러스 시대에서 독자가 소설 <페스트>를 읽어야 하나요? 코로나 19 사태와 소설 속의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전염병 사태는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위험하고 갑갑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들을 드러냅니다. 소설 속에서도 전염병 때문에 도시는 고립됩니다. 고립된 도시에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반응들을 드러냅니다. 독자는 소설 등장인물들과 현실 속의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건 훨씬 생생한 독서일 겁니다.


민음사 출판사 박혜진 편집자가 <페스트>를 소개했을 때, 소설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박혜진 편집자는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비단 박혜진 편집자만 아니라 많은 평론가들, 독자들이 소설들을 평가할 때, 그들은 등장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사건, 배경, 인물이 소설 3대 구성 요소인 것처럼, 등장인물은 소설을 분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독자는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등장인물 세계관을 관찰하고, 등장인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소설은 여러 문학적인 장치들을 동원하고 등장인물을 묘사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매력적입니다.



소설과 달리, 논픽션에게는 등장인물이 없습니다. 아무리 논픽션이 많은 사람들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그들은 등장인물(캐릭터)이 아닙니다.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 의식의 흐름, 복선과 암시를 이용하고 등장인물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소설 <백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등장인물은 에이허브 선장입니다. '에이허브'라는 이름은 문학적입니다. 이건 뭔가(기독교 신화)를 비유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허먼 멜빌은 핵심 등장인물에게 에이허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겁니다. 단편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화자는 어린 여자 아이입니다. 화자가 순진하기 때문에, 단편 소설 분위기 역시 순진합니다.


소설 <페스트>가 전염병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소설 <둠스데이 북>은 전염병 아포칼립스입니다. 심지어 <페스트>보다 <둠스데이 북>은 훨씬 대규모 전염병을 이야기합니다. <둠스데이 북>은 시간 여행 소설이고, 미래와 과거에서 전염병은 난리법석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코니 윌리스는 익살스러운 등장인물들을 늘어놓습니다. 분명히 <둠스데이 북>은 전염병 아포칼립스이나, 익살스러운 등장인물들 때문에, <둠스데이 북>은 완전히 어둡지 않습니다. 독자는 코니 윌리스가 전염병 사태를 너무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한다고 의심할지 모릅니다. 소설 작가는 전염병 사태에 익살스러운 등장인물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논픽션은 이런 등장인물들을 늘어놓지 못합니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을 늘어놓을 수 있고, 그래서 논픽션보다 소설은 매력적입니다. 만약 독자가 전염병 과학 서적보다 전염병 소설을 읽기 원한다면, 등장인물은 이유가 될지 모릅니다. 독자가 전염병 과학 서적을 읽는 동안, 독자는 등장인물들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반면, 독자가 전염병 소설을 읽는 동안, <페스트>와 <둠스데이 북> 같은 소설들에서 독자는 등장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특히, 문학적인 장치들 때문에, 독자는 등장인물에게 깊게 공감하고, 등장인물에게 몰입하고, 등장인물과 동화할 수 있습니다. 논픽션에서 이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1994년 비디오 게임 <울프>는 생태계 시뮬레이션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야생 늑대를 조종하고 자연 환경을 탐험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다큐멘터리 서적을 읽고 늑대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 <울프> 없이, 사람들은 자연 다큐멘터리 서적을 읽고 늑대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표지 그림이 늑대 얼굴과 인간 얼굴을 합치는 것처럼, <울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늑대가 되고 늑대 생태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무리에서 동료 늑대가 죽었을 때, 게임 플레이어는 훨씬 착잡한 기분을 느낄지 모릅니다. 비디오 게임 <울프>에서 늑대들은 등장인물(캐릭터)입니다.



소설 <둠스데이 북>이 익살스러운 등장인물을 제시하는 것처럼, 비디오 게임 <울프>는 등장인물 클라우드송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전염병 과학 서적보다 <둠스데이 북>은 매력적이고, 자연 다큐멘터리 서적보다 <울프>는 매력적입니다. 이건 소설을 비롯해 여러 창작물들에서 등장인물이 반드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작가들은 등장인물이 그저 장기말에 불과하다고 취급할지 모릅니다. 단편 소설 <사나스에 찾아온 운명>에서 등장인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배경, 사건은 훨씬 중요합니다. 만약 문학 강사가 등장인물을 설명하기 원한다면, <사나스에 찾아온 운명>은 좋은 사례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많은 소설(들과 게임들을 비롯해 여러 창작물)들은 등장인물들에 주목하고, 소설에서 등장인물은 고유한 매력이 됩니다. 그래서 독자는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 Big Farms make Big Flu> 같은 전염병 과학 서적보다 <페스트>와 <둠스데이 북> 같은 전염병 소설을 읽기 원할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사태와 <페스트>가 정말 어울리나요? 많은 독자들은 코로나 19 사태와 <페스트>를 연결하나, 만약 코로나 19 사태와 <페스트>가 어울린다면, 소설 <와인드업 걸> 역시 어울릴 겁니다. 전염병 아포칼립스로서 <와인드업 걸>은 대대적인 전염병이 작물들과 가축들을 죽이고 세계 곳곳이 아수라장이라고 묘사합니다.



대대적인 전염병 때문에, 식량 기업들과 농민들은 개조 작물들, 가축들을 키웁니다. 개조 작물들, 가축들은 전염병에 맞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국적 식량 기업들은 유전자 해커들을 동원하고 농민들을 압박합니다. 농민들은 개조 작물들을 키우나, 유전자 해커들은 이것들을 조작하고, 농민들은 거대 식량 기업들을 당하지 못합니다. 환경 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환경 경찰들은 수입 작물들을 검역하나, 거대 기업 로비에서 환경 경찰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와인드업 걸>은 비단 전염병 사태만 아니라 환경 오염과 시장 경제 횡포를 함께 보여줍니다. 전염병, 환경 오염, 시장 경제는 복잡하게 얽힙니다.


<페스트>와 달리, <와인드업 걸>은 전염병 사태와 환경 오염과 거대 기업 횡포가 맞물린다고 보여줍니다. 이 관점에서 <와인드업 걸>은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와인드업 걸>이 다국적 식량 기업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만약 독자가 <와인드업 걸>과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를 비교한다면, 독자는 두 책이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 역시 다국적 식량 기업들과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를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6월 9일 게시글이 설명한 것처럼, 진화 생물학자 롭 월리스는 자본주의 농업이 전염병 사태를 부른다고 경고합니다.



롭 월리스는 거의 모든 신자유주의 사업들이 약소 국가들의 토지들과 자원들을 약탈한다고 주장합니다. 식량 기업들은 식량 시장을 지배하기 원하고, 신자유주의가 세계화했기 때문에, 세계(지구 생물권)는 거대한 산업화 농장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산업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지구 생물권은 거대한 산업화 농장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가 세계화를 말할 때, 세계화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가리킵니다. 산업화 농장은 오직 이윤 창출만 추구합니다. 무한 경쟁 시장에서 원초적인 자연은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치열한 무한 경쟁 시장에서 더 이상 생물권은 생물권이 아닙니다. 생물권은 이윤 창출 기계입니다.


지구 생물권이 산업화 농장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자연의 복잡함, 생물 다양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윤 창출입니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는 자연의 복잡함과 생물 다양성을 쓸어버립니다. 획일화 농장이 훨씬 높은 이윤을 보장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생물 다양성을 짓밟습니다. 17세기 이후, 서구 문명이 식민지들을 수탈하는 동안, 이미 서구 문명은 생물 다양성을 짓밟았고 플랜테이션 사업을 벌였습니다. 플랜테이션 사업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뒷받침했습니다. 그래서 도나 해러웨이는 자본주의를 플랜테이션 시대라고 부릅니다. 초기 자본주의가 나타났을 때, 이미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 범죄자였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농업을 장악하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산업화 농업이 자연 생태계를 쓸어버리기 때문에, 병원체는 위험성과 전염성을 극대화합니다. 산업화 농업은 공장 축산들을 추구하고, 공장 축산들은 엄청난 환경 오염들을 저지릅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이것이 외부 비용이라고 계산하나, 만약 이런 환경 오염들이 기업 대차대조표에 들어간다면, 이건 비싼 청구서가 될 겁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부유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절대 부유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그저 비싼 청구서를 외면할 뿐입니다. 롭 월리스는 만약 산업화 농업이 환경 오염 비용들을 치른다면 산업화 농업이 망할 거라고 주장합니다.


중국 우한 시장이 야생 동물들을 밀렵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우한 시장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오직 우한 시장만 야생 동물들을 밀렵하나요? 환경 운동가들은 고개들을 저을 겁니다.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야생 자연은 그저 상품에 불과합니다. 상품은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야생 동물들이 상품이기 때문에, 야생 동물들은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밀수꾼들은 야생 동물들이 상품이라고 간주합니다. 제가 게시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밀수꾼들은 야생 동물들을 학대하는 중일 겁니다. 밀수꾼들이 야생 동물들을 함부로 거래하기 때문에, 이건 치명적인 전염병 사태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롭 월리스는 산업화 농업을 비판하고 농업이 자연 환경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생태적인 농업은 전염병을 예방할 겁니다. 오직 롭 월리스만 이것을 주장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많은 생태학자들과 환경 운동가들과 지역 농민들은 비슷한 의견들을 공유합니다. 이른바 녹색 혁명이 유행이 되었을 때, 이미 제3세계 지역 농민들은 녹색 혁명이 산업화 농업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대항해 시대(를 빙자하는 대학살 시대) 이후, 서구 문명이 식민지들을 수탈하는 동안, 플랜테이션 농업은 이윤을 추구했고 생물 다양성을 파괴했습니다. 여전히 21세기 초반에서도 플랜테이션 농업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결국 자본주의, 환경 오염, 산업화 농업, 전염병 사태, 생물 다양성 감소는 개별적인 문제들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복잡하게 얽히고 연쇄 작용들을 일으킵니다. 자연 생태계가 그물망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산업화 농업을 강요할 때, 이건 연쇄 작용들을 일으키고,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는 인류 사회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어쩌면 비디오 게임 <울프> 역시 이런 연쇄 작용들에 들어갈지 모릅니다. <울프>는 생태계 시뮬레이션입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으로서 <울프>는 서식지 감소를 언급합니다. <울프>에서 서식지 감소는 주된 소재가 아니나, 분명히 게임 플레이어는 다른 무엇보다 야생 동물(늑대)을 조종합니다.



5살짜리 암컷 늑대 클라우드송은 야생 동물(늑대)입니다. 클라우드송은 비디오 게임 등장인물(캐릭터)이나, 클라우드송은 사무스 아란이 아니고, 하이랄 용사 링크가 아니고, 마일즈 프로워(테일즈)가 아니고, 라라 크로프트가 아니고, 마스터 치프가 아닙니다. 테일즈는 여우이나, 테일즈는 야생 동물이 아닙니다. 테일즈는 그저 의인화 여우에 불과합니다. 테일즈와 야생 여우는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반면, 클라우드송은 야생 늑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클라우드송은 야생 동물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수많은 야생 동물들은 서식지 감소와 밀렵과 기후 변화와 심각한 환경 오염들에 부딪힙니다.


세렝게티와 마사이 마라는 가장 대표적인 야생 보호 구역이나, 탄자니아 야생 연구 소장 시몬 음두마는 인구 증가가 세렝게티와 마사이 마라 생태계를 압박한다고 걱정합니다. 비단 시몬 음두마만 아니라 여러 생태학자들은 근본적인 정책들이 야생 보호 구역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생태학 SF 작가로서 킴 스탠리 로빈슨이 제안한 것처럼, 만약 인류 문명이 지구 절반을 비운다면, 이 대안은 생태계 압박 문제를 해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지구 절반 대안'이 가능한가요? 만약 인류 문명이 지구 절반을 비운다면, 시장 경제에서 지구 절반은 자유로울 겁니다. 신자유주의가 이것을 환영할까요?



지구 절반 대안은 생물 다양성과 생물량을 보장하나, 자본주의는 이것을 시장 경제에 집어넣기 원할 겁니다. 대항해 시대부터 오늘날 신자유주의까지, 언제나 자본주의가 생물 다양성을 짓밟았고 이윤을 창출했던 것처럼, 인류 문명이 지구 절반을 비우든, 소행성을 테라포밍하고 야생 보호 구역을 지정하든, 결국 자본주의는 악랄한 마수를 뻗고, 환경 오염들을 저지르고, 생물 다양성을 파괴할 겁니다. 자본주의, 생물 다양성 멸종, 서식지 감소, 야생 동물 문제는 복잡하게 얽힙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으로서 <울프>는 늑대를 비롯해 야생 동물들을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야생 동물들이 서식지 감소에 부딪히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자본주의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울프>와 자본주의는 개별적이지 않습니다. <울프>와 생물 다양성과 자본주의는 복잡하게 얽힙니다.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와 생물 다양성과 자본주의는 복잡하게 얽힙니다. 소설 <와인드업 걸>은 다국적 식량 기업들과 환경 오염과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울프>와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와 자본주의와 생물 다양성과 <와인드업 걸>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언뜻 <울프>와 <와인드업 걸>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으나, 생태계 시뮬레이션과 환경 아포칼립스로서 <울프>와 <와인드업 걸>은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를 썼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역시 연결 고리입니다.



[생태계 게임과 나오미 클라인이 무슨 관계를 맺나요? 자본주의와 생물 다양성은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야생 동물들을 탐구하지 않습니다.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와 달리,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대대적인 전염병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와인드업 걸>이 환경 아포칼립스인 것처럼,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 변화를 비판합니다.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 변화와 자본주의를 연결합니다.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기후 변화는 생물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세계화 자본주의는 생물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관점에서 <울프>와 <거대 농장 거대 독감>과 <와인드업 걸>과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이어집니다.


<와인드업 걸>은 유일한 환경 아포칼립스가 아닙니다.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와인드업 걸>을 쓴 것처럼, 정세랑 작가 역시 산업 자본주의가 대대적인 전염병과 환경 아포칼립스를 일으킨다고 썼습니다. 누가 아나요? 정세랑 작가가 지구 생물권을 덕질하기 때문에, 생태학 덕후 정세랑 작가는 <울프>를 좋아할지 모릅니다. 비록 정세랑 작가가 <울프>를 싫어한다고 해도, 생태계 시뮬레이션으로서 <울프>와 생태학 SF 작가로서 정세랑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소설 모음집 <곰과 함께>에서 곰(야생 동물)이 환경 보호 상징이 되는 것처럼, 야생 동물은 환경 보호 상징이 될 수 있고, <울프>는 야생 동물 클라우드송을 이야기합니다.



이 관점에서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와 <와인드업 걸>과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와 <울프>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정세랑 작가와 <곰과 함께>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연결 고리들이 억지라고 반박할지 모릅니다. 어떻게 비디오 게임 <울프>와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가 이어질 수 있나요? 어떻게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야생 동물 게임이 이어질 수 있나요? 언뜻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와 <울프>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생물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연결 고리들에게는 '배후'가 있습니다.


<둠스데이 북>은 시간 여행 소설입니다. <와인드업 걸>은 시간 여행 장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소설은 다릅니다. 하지만 두 소설 '배후'에서 '서구 근대화+비일상적인 상상력'이 장르를 분류하기 때문에, <둠스데이 북>과 <와인드업 걸>은 똑같은 SF 장르에 속합니다. 아무리 <둠스데이 북>과 <와인드업 걸>이 다르다고 해도, 두 소설이 똑같은 SF 장르에 속하는 것처럼, 대대적인 전염병 사태와 <와인드업 걸>과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와 <울프>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정세랑 작가와 <곰과 함께>는 비슷한 범주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건 과잉 해석이 아닐 겁니다.



많은 독자들은 <페스트>를 추천하나, <와인드업 걸> 역시 코로나 19 사태에 어울립니다. 특히, <페스트>는 자본주의가 생물 다양성을 짓밟는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21세기 초반 기후 변화 시대에서 알베르 카뮈가 살아간다고 해도, 많은 얄팍한 진보들처럼, 알베르 카뮈는 자본주의가 플랜테이션 범죄자라고 비판하지 않을 겁니다. 자랑스럽고 훌륭한 노벨상 문학 작가느님 알베르 카뮈에게는 기후 정의를 탐구하기 위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반면, <와인드업 걸>은 이것을 깊게 탐구합니다. 바이러스 시대에서 <와인드업 걸>은 커다란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와인드업 걸>은 <울프>를 비롯해 여러 연결 고리들을 제시합니다. 환경 사회학 서적 <거대 농장은 거대 독감을 만든다>부터 소설 모음집 <곰과 함께>까지, SF 독자는 연결 고리들을 바라보고 '배후'로서 자본주의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 게임 <울프> 스크린샷 출처: JayPlays,

https://www.youtube.com/watch?v=G1Jcy6XVX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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