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어떻게 렝가가 프레데터를 오마쥬할 수 있는가 본문
영화 <프레데터>는 우주 사냥꾼이라는 걸출한 설정을 낳았습니다. 우주 사냥꾼 프레데터는 야만적인 사냥꾼과 첨단 과학 기술을 결합한 결과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이런 설정을 별로 내놓지 않기 때문에 프레데터는 독특한 위상을 확보했고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게다가 저 유명한 에일리언 제노모프를 사냥하기 때문에 프레데터는 훨씬 주가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프레데터가 유명한 이유는 자체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라 프레데터가 에일리언을 사냥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에일리언(야수)이 유명하기 때문에 프레데터 역시 덩달아 유명해졌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프레데터라는 설정 자체를 무시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야만적인 사냥꾼과 첨단 과학 기술의 결합은 분명히 독특하고, 이는 프레데터를 다른 외계인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위상에 올려놨습니다. 명예로운 사냥을 추구하는 프레데터는 본능적인 외계 괴물들이나 외계인 침략자들과 다릅니다. 프레데터는 아주 강력한 플라즈마 포를 쏠 수 있으나, 평상시에 손목칼을 이용하곤 합니다. 프레데터는 상대를 아주 쉽게 죽일 수 있으나, 일부러 어려운 방법들을 동원하곤 합니다.
게다가 존 맥티어난이 감독한 <프레데터>는 분명히 힘차고 아슬아슬한 긴장을 연출하는 영화입니다. 이건 심장이 쫄깃해지고 똥꼬가 오그라드는, 그런 힘이 있는 영화죠. 영화 그 자체로서도, SF 설정으로서도, 프레데터는 독특합니다. 이런 프레데터는 몇몇 후대 창작물에게 영감을 미쳤습니다. 비디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는 그것들 중 하나일 겁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렝가라는 플레이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렝가는 인간형 사자이고, 비수와 손목칼로 무장했습니다. 렝가는 날렵하게 밀림 속을 돌아다니고, 명예로운 사냥을 위해 목숨을 걸어요. 게다가 은신의 달인이고, 몰래 사냥감을 주시할 수 있죠. 인간 사냥꾼 복장은 정말 프레데터와 똑같이 보입니다. 프레데터에게 제노모프라는 적수가 있는 것처럼 렝가 역시 카직스라는 적수가 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렝가라는 플레이 캐릭터를 뭐라고 평가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플레이 캐릭터들처럼 렝가에게는 능동적인 일반 기술들 셋과 궁극 기술 하나가 있습니다. 아마 렝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기술은 궁극 기술일 겁니다. 은신하고 사냥한다는 관점에서 그건 프레데터와 제일 비슷하고요. 하지만 궁극 기술이 존재한다고 해도, 렝가는 포악함이나 전투 포효, 올가미 볼라 같은 일반 기술들을 이용해야 합니다. 궁극 기술이 존재한다고 해도, 일반 기술들 없이 렝가는 사냥하지 못해요.
프레데터와 렝가는 서로 비슷하나, 두 사냥꾼은 각자 다른 장르에 속했습니다. 프레데터는 SF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프레데터는 외계인이고,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합니다. 덕분에 프레데터는 우주선을 타고 드넓은 우주를 떠돌아다닐 수 있고, 제노모프 같은 외계 괴물을 사냥할 수 있어요. 열정적인 하드 SF 독자들은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를 거세게 비판하겠으나, 프레데터가 SF 울타리를 떠날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프레데터>가 나름대로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는 공포나 기괴한 첨단 기술을 독특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데터>는 강렬한 영화이고, 다른 수많은 단점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분명히 힘이 있는 사이언스 픽션이죠. 반면, 렝가는 하이 판타지에 속했습니다. 렝가는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 마법과 주술이 존재하는 세상을 떠돕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렝가는 다른 마법사들이나 주술사들이나 검사들과 싸웁니다.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 자체가 사이언스 픽션과 별로 관계가 없어요. 이런 비디오 게임을 구현하고 싶다면, 기반 설정이 사이언스 픽션이거나 하이 판타지거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겠죠.
프레데터는 SF 울타리 안에 속하나, 렝가는 하이 판타지 울타리 안에 속합니다. 서로 비슷하다고 해도, 각자 다른 장르에 속했어요. 사이언스 픽션과 하이 판타지라는 경계가 그렇게 얇을까요. 사이언스 픽션과 하이 판타지라는 경계가 얇기 때문에 렝가가 프레데터를 쉽게 오마쥬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프레데터>가 하드 SF 영화였다면, 렝가는 프레데터를 쉽게 모방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프레데터>가 하드 SF 영화였다면, 프레데터와 렝가는 서로 다른 감성을 풍겼을 겁니다. <중력의 임무>는 하드 SF 소설을 상징하는 소설입니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오디세이아> 같은 해양 문학과 비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항해 이야기라고 해도, <중력의 임무>에서 중요한 것은 항해 그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구와 완전히 다른 외계 행성, 외계 행성에서 비롯하는 사고 방식과 관념이죠. 누군가가 작은 벌레 외계인들을 이용해 범선 항해 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런 독특한 사고 방식과 관념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중력의 임무>를 모방하지 못할 겁니다. 오직 하드 SF 장르만 그런 것을 묘사할 수 있죠. 반면, 프레데터는 다릅니다. <프레데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과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냥꾼이 인간들을 추격하는 긴장감입니다.
그래서 SF 장르가 아님에도, 렝가는 프레데터를 오마쥬할 수 있습니다. <프레데터>에서 SF 요소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게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프레데터>가 외계 생명체를 좀 더 진지하게 고찰하는 하드 SF 영화였다면, 야만적이고 첨단적인 외계 사냥꾼은 나타나지 못했을 겁니다. <프레데터>는 그런 고찰과 관계가 없고, 그래서 렝가는 쉽게 프레데터를 오마쥬할 수 있었죠. 사이언스 픽션과 하이 판타지를 비교할 때, 근본적인 차이를 찾고 싶다면, 우리는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