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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셜로키언>에서 추론할 수 있는 시대 변혁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셜로키언>에서 추론할 수 있는 시대 변혁

OneTiger 2018. 7. 16. 20:20

"시간이 가도 죽지 않는, 한갓 모더니티가 죽일 수 없는, 그 세기만의 힘." 이는 그레이엄 무어가 쓴 소설 <셜로키언>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동시에 이는 브람 스토커가 쓴 <드라큐라>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왜 브람 스토커가 이런 문구를 소설에 집어넣었을까요? 왜 그레이엄 무어가 <셜로키언>에 이런 문구를 집어넣었을까요? 그 이유는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있기 때문일 겁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은 여기에서 파생했습니다.


서구적인 근대화, 자본주의, 산업 혁명, 첨단 과학 이론, 노동 운동, 1차 및 2차 세계 대전, 성 평등, 치명적인 환경 오염은 '모더니티'에서 비롯했죠. 이런 것들은 여전히 21세기 초반까지 세계화를 장악하는 문제들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과 브람 스토커는 그런 시대를 살았습니다.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는 그런 시대에 나타난 등장인물입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가 어느 쪽에 속할까요? 양쪽이 20세기 초반에 속할까요? 아니면 양쪽이 (모더니티가 아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19세기에 속할까요?



당연히 많은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가 19세기에 속한다고 여길 겁니다.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는 모더니티에서 벗어나는 등장인물입니다. 모더니티가 현대 문명을 장악하기 전에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는 활약했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과 브람 스토커는 가스등이 전기등으로 바뀌는 시대를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전기등과 어울릴까요? 드라큐라가 전기등과 어울릴까요? 숱한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오늘날의 도시 판타지는 흡혈귀를 아무렇지 않게 현대적인 도시에 내보냅니다. 오늘날의 하드 보일드 소설은 탐정을 아무렇지 않게 거대 마천루들 사이로 내보냅니다.


하지만 드라큐라는 그런 흡혈귀들과 다릅니다. 셜록 홈즈는 그런 하드 보일드 탐정들과 다릅니다.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는 모더니티에 속하지 않은 등장인물입니다. 그레이엄 무어 역시 여기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 <셜로키언>에서 브람 스토커는 아서 코난 도일에게 말합니다. "셜록 홈즈는 가스등 시대에 속한 등장인물이다. 절대 셜록 홈즈를 전기 불빛 아래로 가져오지 말라." 셜록 홈즈는 그런 등장인물입니다.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19세기 빅토리아 영국 런던을 낭만적으로 포장합니다. 셜록 홈즈는 그런 낭만에 속했습니다.



어쩌면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복고적인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19세기 빅토리아 영국 런던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영국 런던은 빅토리아 시대와 다르고, 홈즈 골수팬들은 이걸 참지 못할 겁니다. 소설 <셜로키언>은 홈즈 골수팬들이 그런 상황을 슬퍼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게 사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빅토리아 시대를 낭만적으로 포장합니다. 문제는 시대가 계속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인류 문명은 이제까지 계속 바뀌었고, 앞으로 계속 바뀔 겁니다. 문화, 사상, 과학 등등 많은 것들은 계속 바뀝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지 못했습니다. 21세기에 사람들은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자들은 투표하지 못했습니다. 21세기에 여자들, 적어도 서구 강대국 여자들은 투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계속 바뀝니다. 물론 거시적인 것들은 그렇게 당장 바뀌지 않습니다. 침략 전쟁은 무려 6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이나 평화 운동이 거세다고 해도, 침략 전쟁을 당장 없애지 못할 겁니다.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은 200살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150년짜리 운동이 6천 년짜리 역사를 당장 바꾼다면, 그건 꽤나 웃긴 망상일 겁니다.



하지만 느리게 바뀐다고 해도, 우리는 분명히 변화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 역시 바뀔 거라고 우리는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슬퍼합니다. 모더니티가 셜록 홈즈를 밀어내기 때문에. 전기 불빛이 가스등을 밀어내기 때문에. 21세기 런던이 빅토리아 시대를 밀어내기 때문에. 소설 <셜로키언>은 19세기 빅토리아 런던이 절대 낭만적인 시대가 아니라고 인정합니다. 여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는 시대. 아동 노동이 만연하는 시대. 인종 청소가 훈장감인 시대. 21세기 초반 역시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이나, 19세기 빅토리아 런던은 절대 낭만적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흐름 속에서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절망하거나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할 겁니다. 소설 <셜로키언>에서 전기 불빛을 봤을 때 아서 코난 도일은 저도 모르게 반감을 느낍니다. 코난 도일은 자신이 속한 시대, 가스등 시대가 밀려난다고 느끼고, 거기에 반감을 느낍니다. 브람 스토커와 아서 코난 도일은 자신들이 시대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인식하는 세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그건 맞는 말일지 모릅니다. 그런 모더니티가 21세기 초반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대는 계속 바뀔 테고, 수많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세대가 밀려난다고 느낄 겁니다. 22세기, 23세기, 24세기 사람들 역시 그런 서글픔을 느낄지 모릅니다. 비록 <셜로키언>은 미래를 전망하지 않으나, 독자들은 이런 논리를 24세기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저는 <셜로키언>이 과학적 상상력 담론을 드러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가 시대적인 변혁과 단절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시대적인 변혁과 단절이야말로 좋은 SF 소설이 되는 조건일 겁니다. 아무리 로봇들이 열심히 총질하고, 우주 구축함들이 함포들을 쾅쾅 쏜다고 해도, 그게 무조건 좋은 SF 소설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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