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24세기 사람들이 바라보는 셜록 홈즈와 과학 추리 본문
그레이엄 무어가 쓴 <셜로키언>은 19세기 아서 코난 도일과 21세기 해럴드 화이트를 번갈아 조명합니다. 이 소설은 셜록 홈즈를 만든 아서 코난 도일을 쫓아가는 동시에 셜록 홈즈를 열정적으로 추앙하는 소설 팬을 쫓아가요. 해럴드 화이트는 어떤 살인 사건에 부딪히고, 셜록 홈즈에 열광하는 매니아로서 이 사건을 셜록 홈즈처럼 풀어보느라 애씁니다. 셜록 홈즈가 그랬던 것처럼, 해럴드 화이트는 발자국들을 살펴보고, 안락 의자에서 골똘히 생각하고, 진술들을 비교하고, 사람들을 프로파일링합니다.
문제는 셜록 홈즈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셜록 홈즈는 허구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해럴드 화이트가 셜록 홈즈를 추앙한다고 해도, 허구를 현실에 적용시키기는 무리입니다. 셜록 홈즈는 가장 유명한 소설 등장인물이나, 그렇다고 해도 허구는 허구입니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고,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해럴드 화이트는 이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주홍색 연구>를 비롯한 홈즈 시리즈는 셜록 홈즈를 띄워주기 위한 무대이고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은 소설과 다릅니다. 해럴드 화이트는 탐정이 아니라 소설 독자일 뿐이고, 소설과 다른 현실에 계속 부딪히고, 때때로 좌절합니다.
한편으로 해럴드 화이트는 21세기 사람입니다. 셜록 홈즈(와 아서 코난 도일)는 19세기 유럽 사람이고요. 19세기와 21세기는 여러 모로 다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셜록 홈즈가 사용했던 추리 방법들은 더 이상 21세기에 통하지 않습니다. 19세기에 한국인이 영국 런던에 놀러가는 상황은 아주 드물었을 겁니다. 하지만 21세기에 그런 상황은 드물지 않습니다. 19세기 유럽 사람 셜록 홈즈는 아시아를 아주 피상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셜록 홈즈는 아시아 문화를 쉽게 접하지 못했고, 그걸 자세히 연구할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세계화를 가속했기 때문에 21세기 유럽 사람들은 19세기 유럽 사람들과 다른 시각을 갖추었습니다.
게다가 20세기 이후 온갖 첨단 감식 방법들이 등장했고, 그런 것들은 인간이 추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셜록 홈즈는 유전자 검사는 고사하고 지문 판별조차 몰랐습니다. 아무리 셜록 홈즈가 똑똑하다고 해도, 19세기 추리 방법은 21세기에 별로 먹히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는 19세기에 갇힌 사람입니다. 만약 독자가 빅토리아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셜록 홈즈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독자가 21세기 문화를 선호한다면, 셜록 홈즈가 꽤나 구닥다리로 보일 겁니다. 이때 유럽에서는 아동 노동이 유행했고, 여자들이 투표하지 못했고, 본격적인 노동법이 없었죠. 그런 시대를 살았음에도, 셜록 홈즈는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천재 탐정임에도, 셜록 홈즈는 죽어나가는 아동 노동자들에게 절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지문 판별조차 하지 못하는 탐정? 이런 탐정이 명탐정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오히려 <명탐정 코난>은 셜록 홈즈보다 나을지 몰라요.
해럴드 화이트 역시 이런 점을 꾸준히 의식합니다. 21세기는 19세기와 다르고, 셜록 홈즈가 사용하는 방법은 21세기에 통하지 않습니다. 비단 해럴트 화이트만 아니라 진짜 셜록 홈즈 매니아들 역시 이런 점을 의식할 겁니다. 소설 매니아들은 셜록 홈즈가 강조하는 과학적인 추리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런 방법을 현실에 적용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이런 측면(과학적인 추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측면) 때문에 셜록 홈즈는 계속 인기를 얻을 수 있었겠죠. 21세기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셜록 홈즈 매니아들은 (19세기 사람의) 과학적인 추리를 현실에 적용하기 원하고요.
하지만 19세기와 21세기 사이에는 까마득한 격차가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프로파일링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사건 수사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과학적인 추리를 원론적으로 적용한다면, 그런 행위에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추리를 21세기 현실에 날것으로 적용한다면, 그건 꽤나 많은 문제들을 일으킬 겁니다. 19세기 셜록 홈즈는 지문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1세기 경찰은 당연히 지문을 중시합니다. 소설 <셜로키언>은 이런 차이를 계속 강조하고, 오늘날 셜록 홈즈 매니아들이 무슨 문제에 부딪혔는지 보여줍니다. 세상은 바뀌고, 셜록 홈즈는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과학적 상상력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소설 <셜로키언>은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과학 기술이 바뀌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상상하는 방식 역시 바뀌었습니다. 이는 SF 소설이 좋아하는 과학적 상상력이죠. 비록 21세기까지 상상하기 때문에 <셜로키언>은 SF 소설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상상할 수 있어요. 만약 셜록 홈즈가 계속 인기를 얻는다면, 23세기나 24세기 독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23세기와 19세기는 훨씬 다를 테고, 24세기와 19세기는 훠어어얼씬 다를 겁니다.
어쩌면 24세기에 인류는 사라지고 다른 주체들이 나타날지 몰라요. 인류 문명이 아니라 또 다른 지적 문명이 나타날지 모르죠. 그때 아무도 셜록 홈즈를 기억하지 않겠죠. 이게 너무 극단적인 상상이라고 해도, 24세기 인류 문명은 지금과 엄청나게 다를 겁니다. 당연히 셜록 홈즈는 훨씬 구닥다리 등장인물이 되겠죠. 21세기 초기 사람이 셜록 홈즈를 낡았다고 생각한다면, 24세기 사람은 훨씬 더 그렇게 생각하겠죠. 과학적인 추리 방법은 원론적으로 계속 빛을 발할지 모르나, 셜록 홈즈 매니아들조차 더 이상 그걸 현실에 적용하지 못할지 모르죠. 셜록 홈즈의 유명세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이런 주제를 이야기하는 SF 소설이 이미 존재할지 모릅니다.
베네틱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셜록>은 이런 흐름에 저항(?)하는 물결일지 모릅니다. <셜록>은 21세기 셜록 홈즈를 보여주고, 어떻게 19세기 과학적인 추리 방법이 21세기에 적응하는지 보여줍니다. 저는 그런 의도가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위해 셜록 홈즈는 어느 정도 바뀌어야 했습니다. 소설 속의 셜록 홈즈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셜록은 서로 다릅니다. 이는 단순한 재해석이 아니라 21세기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입니다. 이렇게 셜록 홈즈가 22세기, 23세기, 24세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저는 그걸 구경하지 못하겠군요.
어쩌면 SF 독자들 역시 셜록 홈즈 매니아들에게 어느 정도 공감할지 모르겠습니다. SF 독자들 역시 과학적 상상력을 현실에 적용하고 싶겠죠. SF 소설들이 미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때마다, SF 독자들은 뭔가 뿌듯하다고 느끼겠죠. 하지만 셜록 홈즈가 허구적인 등장인물인 것처럼, 과학적 상상력 역시 현실이 아니라 상상입니다. 어지간한 SF 소설들이 이야기하는 설정들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아요. 아무리 SF 소설들이 엄중한 척한다고 해도, 소설은 소설이죠. 이런 관점에서 셜록 홈즈 매니아와 하드 SF 독자들은 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