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상상 과학, 소설에서 현실로 본문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아당이 쓴 소설 <미래의 이브>는 안드로이드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요제프와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은 로봇이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렸고요. 그리고 <아이 로봇>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공학이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렸죠. 제가 듣기로 아이작 아시모프는 자신이 로봇 공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런 용어가 이미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시모프 이전에 아무도 로봇 공학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안드로이드와 로봇과 로봇 공학은 사이언스 픽션에서 비롯한 용어입니다. 하지만 이제 다들 안드로이드, 로봇, 로봇 공학이라는 용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죠. 일상에서 우리가 안드로이드나 로봇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고 해도, 그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것들 이외에 다른 몇몇 개념 역시 소설에서 일상으로 옮겼어요. SF 소설들은 상상 과학을 이야기하나, 가끔 상상 과학은 창작물에서 튀어나오고 현실에 스며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SF 소설이 미래를 예측하는 창작물이라고 이야기하죠. SF 소설가들 역시 그런 특징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고요.
말이 나온 김에 안드로이드와 로봇의 차이점은 뭘까요. 여기에 사이보그를 덧붙일 수 있겠죠. 안드로이드, 로봇, 사이보그. 어떤 사람들은 이 세 가지가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세 가지는 분명히 서로 다른 개념들입니다. 사실 뭐가 정확히 뭐라고 정의하기는 어렵겠죠. 특히, SF 창작물 속에서 세 가지 개념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마 창작가마다 안드로이드와 로봇과 사이보그를 서로 다르게 생각할 겁니다. 글쎄요, 어쩌면 해외 SF 백과사전에서 안드로이드와 로봇과 사이보그를 이미 명확히 정의했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그것들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늘어놓는다면…. 안드로이드는 인간형 기계나 인간형 인공 생명체입니다. 만약 어떤 기계나 인공 생명체가 인간처럼 생겼다면, 우리는 그걸 안드로이드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안드로이드는 외모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사실 <미래의 이브>에서 과학자가 안드로이드를 만든 이유는 아름다운 여자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목적은 그거였죠. 아름답고 인공적인 여자. 어떤 기계나 인공 생명체가 인간처럼 생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기계나 인공 생명체를 안드로이드라고 부르지 못할 겁니다.
반면, 로봇은 생김새와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SF 소설들은 숱한 인간형 로봇들을 묘사하나, 로봇은 그저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를 가리킬 뿐이죠. 로봇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스스로 수행하는 기계들입니다. 로봇은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 도구입니다.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로봇들은 노동자들입니다. 그들은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들이죠. 만약 어떤 로봇이 인간처럼 생겼다면, 그 로봇은 안드로이드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인간처럼 생기지 않은 로봇들 역시 많습니다. 필립 딕이 쓴 <두 번째 변종>은 안드로이드와 여러 살상 로봇들을 보여주죠. 모두 똑같은 로봇들이나, 어떤 것은 안드로이드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 번째 변종>은 어떻게 안드로이드와 로봇이 다른지 강조합니다. 종종 SF 창작물과 현실 속에서 로봇은 소프트 로봇을 의미합니다. 공학자들은 표면이 말랑말랑하거나 기계와 유기체가 결합한 로봇을 소프트 로봇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흔히 사람들은 하드 로봇을 로봇이라고 생각하죠.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가 결합한 결과물입니다. 안드로이드는 기계이거나 유기체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 로봇들은 기계죠. 하지만 사이보그는 유기체입니다. 유기체가 주인이고 기계는 손님이죠. 물론 T-800을 만든 제임스 카메론처럼 어떤 창작가는 유기체가 손님이라고 설정할지 모릅니다. 법칙은 없어요.
하지만 이런 정의와 상관없이, 안드로이드나 로봇을 가리키는 개념은 많이 변했습니다. <미래의 이브>에서 안드로이드는 복제인간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은 1886년에 나왔어요. 19세기 작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간형 로봇을 떠올리지 못했을 겁니다. 아무리 빌리에 드 릴아당이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절대 <두 번째 변종>을 쓰지 못했겠죠. 그래서 <미래의 이브>가 묘사하는 안드로이드와 21세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드로이드는 서로 다릅니다. 로봇 역시 마찬가지죠.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로봇은 공장 기계가 아니었어요. 이것 역시 복제인간에 가까웠죠. <로섬의 만능 로봇>이 묘사하는 로봇과 21세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로봇은 서로 다릅니다. 21세기 사람들은 인공 지능으로 날아다니는 드론을 로봇이라고 부르겠으나, 차페크 형제는 그런 걸 떠올리지 못했을 겁니다. <블라인드사이트>에서 외계 생명체들을 공격하는 엄청난 무인기 편대는 차페크 형제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겠죠. 솔직히 저는 <미래의 이브>나 <로섬의 만능 로봇>이 미래를 예측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 소설과 희곡에서 유용한 개념들을 뽑았을 뿐이죠.
저는 SF 소설이 미래를 예측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SF 소설들은 그저 여러 특이한 개념들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들 중 필요한 개념들을 고를 뿐입니다. 그래서 SF 작가들은 미래를 의도적으로 예측하지 못합니다. SF 작가들은 그저 우연히 미래를 때려맞출 뿐입니다. 따라서 SF 소설은 미래를 본격적으로 전망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런 우연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SF 작가가 미래를 예측하고, 그게 SF 소설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게 꽤나 커다란 오해라고 생각해요. SF 소설은 미래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SF 소설은 미래를 이용해 현실을 바라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