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소설이 이야기하는 변혁, 미래, 과학 본문
[이런 소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에게는 미래, 과학 그리고 변혁이 어울립니다.]
과학, 미래, 변혁. 이런 단어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규정합니다. 이런 단어들 없이 사이언스 픽션은 존재하지 못할 겁니다. 이 세 단어들 중 사이언스 픽션과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가 뭘까요? 세 단어 모두 사이언스 픽션과 필수적인 관계를 맺었을 겁니다. 이것들 중 구태여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이 사이언스 픽션과 제일 잘 어울릴까요? 저는 변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변혁을 말하는 장르이고, 변혁은 사이언스 픽션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사이언스 픽션은 인류 문명과 자연 생태계와 심지어 우주가 끊임없이 바뀐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류 문명이 바뀌는 과정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100년조차 살지 못하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인류 문명이 바뀌는 과정을 직접 겪을 수 있어요. 정보화 바람이 불 때, 사람들은 조잡한 원격 통신이 인터넷으로 발전하고 삐삐와 벽돌 휴대 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발전하고 무거운 개인용 컴퓨터가 태블릿 컴퓨터로 발전하는 장면들을 지켜봤습니다. 이런 변화는 (비록 아랍의 봄이 순수한 민중 투쟁이 아니라고 해도) 아랍의 봄 같은 사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죠.
자연 생태계 역시 바뀝니다. 진화가 아주 거시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시적으로 진화를 관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 사람들은 생명 진화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받아들입니다. 흔한 오해와 달리,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처음으로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과학자들(자연 철학자들)은 진화론을 생각했죠. 심지어 장 자크 루소 같은 사상가조차 원시 자연을 상상했고 생명체들이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현대 문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진화론을 입증하는 숱한 증거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화석 기록은 생명체들이 무슨 역사를 걸었는지 보여줍니다. 생명체들은 정말 장대한 역사를 걸었고, 그런 기나긴 여정 앞에서 우리는 고귀한 엄숙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진화 역사와 변혁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변혁과 변화는 다릅니다. 변혁은 변화를 원하는 주체가 투쟁한다는 느낌이죠. 하지만 자연 생태계가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여정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여정을 이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구 생태계를 바꾸고, 다른 행성 생태계를 바꾸고, 아예 인류라는 종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변화들은 변혁이 되겠죠. 하드 SF 소설들은 이런 변혁을 다루고요.
우주 역시 무한하지 않습니다. 흔히 우리는 우주가 무한할 거라고 생각하나, 우주조차 유한할지 모릅니다. 언젠가 이 우주는 끝장이 날지 몰라요. 지구가 멸망하고 태양이 멸망할 때, 우리는 우주나 다른 항성계로 무사히 대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주 그 자체가 멸망한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우주와 함께 우리가 망해야 할까요? 글쎄요, 이건 꽤나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입니다. 하지만 이미 하드 SF 소설들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스티븐 백스터가 쓴 <타임십> 같은 소설은 차원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차원들이 있고, 차원을 여행하는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만약 이 우주가 망할 때, 우리가 다른 차원들로 대피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다른 차원을 열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런 차원 생명체로 진화하거나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개조해야 할까요? 이건 아주 비약적인 상상입니다. 어쩌면 최신 하드 SF 소설들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SF 소설이 이런 우주적인 변혁까지 내다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변혁을 이야기하는 장르입니다.
이런 변혁의 시대 배경은 미래입니다. 변혁은 미래를 동반합니다. 변혁과 미래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입니다. 미래가 찾아온다면, 세상(인류 문명과 자연 생태계와 드넓은 우주)은 바뀔 겁니다. 하지만 미래는 오직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 그 자체만 의미합니다. 미래가 긍정적일지 아니면 부정적일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변혁은 긍정적인 단어이나, 미래에는 긍정이나 부정이 없습니다. 저는 주체(인류)가 세상을 바꾸는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SF 작가들이 미래를 상상할까요? SF 작가들이 무력한 인류가 뒤바뀌는 세상에 휩쓸리기 원할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SF 작가들이 미래를 상상하는 이유는 변혁을 미래에 투영하기 위해서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 장르조차 암시적으로 묵시적으로 변혁을 이야기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멸망을 통해 변혁을 부르짖죠. 인류가 죽어나가는 꼬락서니를 즐기기 위해 SF 작가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쓰겠어요? 그건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을 표면적으로 읽는 행위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보다 변혁이 사이언스 픽션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그냥 찾아오지 않아요.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어요.
당연히 과학은 이런 변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우리가 개조 생명체를 만들고, 장거리 우주선을 만들고, 궤도 거주지를 만들고, 행성 생태계를 만들고, 심지어 우리 스스로를 개조한다면, 첨단 과학 기술은 필수적인 도구일 겁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중요하다고 해도, 과학은 도구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온실 가스를 뿜고, 핵 폐기물을 버리고, 전략 병기를 만드는 끔찍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주체는 우리 인류입니다. 과학은 수단이고요. 그래서 저는 과학보다 변혁이 사이언스 픽션과 잘 어울리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