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애플>과 바이오 돔과 생체 우주선 본문
격노한 폭풍, 고요한 아침 햇살, 교활한 여우, 강력한 곰…. 드루이드는 이것들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드루이드는 자연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자연이 지배 대상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벌이나, 자연 지배는 공허한 단어입니다. 드루이드는 자연을 지배하기보다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드루이드는 자연과 동화하고, 자연의 힘을 발휘하고, 못된 흡혈귀를 처치합니다. 이렇게 <던전스 앤 드래곤스>는 드루이드를 소개합니다. 이 소개 문구들은 드루이드가 자연의 힘(격노한 폭풍, 교활한 여우)을 휘두른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건 이상합니다. 어떻게 폭풍과 여우가 똑같나요?
폭풍은 (격렬한) 기후 현상입니다. 반면, 여우는 야생 동물입니다. 기후 현상과 야생 동물이 똑같은가요? 폭풍에게는 의지가 없습니다. 기후 현상에게는 본능이 없습니다. 반면, 여우에게는 먹고 살기 위한 의지가 있습니다. 야생 동물에게는 생존 본능이 있습니다. 폭풍이 먹고 살지 않기 때문에, 폭풍은 먹이 그물망을 구성하지 않습니다. 여우가 먹고 살기 때문에, 여우는 먹이 그물망을 구성합니다. 사람들이 자연 생태계라는 단어를 들을 때, 사람들은 영양분 순환을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사람들이 영양분 순환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처럼, 종종 '자연'은 풍요로운 먹거리를 가리킵니다.
여우를 비롯해 야생 동물들, 생명체들은 먹고 삽니다. 줄무늬 다람쥐는 먹고 살고, 수마트라 호랑이는 먹고 살고, 장수 거북은 먹고 살고, 고래 상어는 먹고 삽니다. 자연 속에서 생명체들이 먹고 살기 때문에, 종종 '자연'은 생물 다양성을 가리킵니다. 자연 생태계, 먹이 그물망, 생물 다양성은 비슷한 의미들입니다. 우리 인간들 역시 먹고 삽니다. 우리 인간들이 먹고 살기 때문에, 자연에서 인류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장수 거북이 먹는 것처럼, 인간들은 먹고 삽니다. 자연 속에서 인류가 먹고 살기 때문에, 자연은 긍정적입니다. 폭풍은 여기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폭풍은 먹고 살지 않습니다.
폭풍이 먹고 살지 않기 때문에, 폭풍은 자연 생태계, 먹이 그물망, 생물 다양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던전스 앤 드래곤스>는 격렬한 폭풍과 여우의 교활함이 자연의 힘이라고 설명합니다. 드루이드에게 격렬한 폭풍과 여우의 교활함은 똑같은 자연입니다. 비록 폭풍이 먹고 살지 않는다고 해도, 폭풍 역시 자연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여러 기후 현상들을 가리키고 자연의 힘(포스 오브 네이처)이라고 말합니다. 폭풍과 여우, 기후 현상과 야생 동물은 대조적이나, 양쪽은 똑같은 자연입니다. 폭풍과 여우가 똑같은 자연이 되는 것처럼, '자연'은 아주 폭넓은 의미들을 포괄합니다.
자연이 아주 폭넓은 의미이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 자연인지 인식하기는 헛갈립니다. 폭풍과 여우 중에서 무엇이 진짜 자연인가요? 대자연, 그레이트 아웃도어라는 단어처럼, 자연은 작은 것보다 거대한 것을 가리킵니다. 여우보다 폭풍이 거대하기 때문에, 폭풍이 진짜 자연인가요? 먹이 그물망이라는 단어처럼, 자연은 풍요로운 먹거리입니다. 여우가 먹고 살기 때문에, 여우가 진짜 자연인가요? 많은 사람들은 자연이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이라고 느낍니다. 알록달록한 꽃밭에서 아름다운 나비가 예쁜 꽃송이를 향해 날아갈 때, 이건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자연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아름다운 나비와 어여쁜 꽃송이만 자연을 조성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혐오스러운 기생충들과 끔찍한 전염병들 역시 자연에 속합니다. 생태학자들이 자연 환경을 평가할 때, 여러 기준들 중에서 하나는 기생충입니다. 자연과 기생충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생충이 혐오스럽기 때문에, 자연은 혐오스럽습니다. 자연은 목가적이기보다 혐오스럽습니다. 게다가 자연은 폭력적입니다. 백상아리를 보세요. 백상아리는 물개를 난폭하게 물어뜯습니다. 푸른 바다는 시뻘겋게 바뀌고, 뭉클거리는 붉은 기운 속에서 너덜거리는 살점들은 떠다닙니다. 이건 낭만적이기보다 폭력적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자연인가요? 목가적인 나비가 자연인가요? 아니면 혐오스러운 기생충이 자연이거나 폭력적인 백상아리가 자연인가요?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는 자연 친화적인 측면들을 보여줍니다. 데뷔 타이틀 노래부터 최근 수록 노래까지, 노래 제목부터 핵심 안무까지, 도입부 효과음부터 후렴구 가사까지, 여러 측면들에서 여자친구는 자연 친화적입니다. <귀를 기울이면>과 <해야>와 <애플>은 자연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세 노래들은 자연을 똑같이 표현하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전형적이고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자연을 표현합니다. 도입부 새들의 지저귐은 싱그럽습니다.
뮤직 비디오 <귀를 기울이면>은 싱그러운 꽃밭들과 활기찬 소녀들과 맑은 강물을 보여줍니다. 기차 여행은 낭만적인 감성을 사방으로 풍깁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낭만 그 자체입니다. <귀를 기울이면>이 자연을 표현하는 것처럼, <해야>는 자연을 표현합니다.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여자친구 멤버들은 둥글게 모이거나, 일렬로 서거나, 두 팔을 둥글게 펼칩니다. 하지만 목가적인 <귀를 기울이면>과 달리, <해야>는 아련하고 격정적입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깨끗하고 맑은 영혼을 자랑하나, <해야>는 아득한 그리움을 향해 격렬하게 솟구칩니다. 두 노래에서 자연은 똑같지 않습니다.
<애플> 역시 자연을 표현합니다. 도입부가 시작하자마자, 여자친구 멤버들은 사과 나무를 조성합니다. 일렬 좌우 이동이 잔상을 일으키고, 나뭇가지들이 순차적으로 사방을 향해 (두두두둥~) 뻗기 때문에, 나무 안무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여자친구 멤버들은 열매를 따고, 우아하게 휘돌고, 별들을 띄우고, 자연을 계속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 자연은 낭만적이지 않고 목가적이지 않습니다. 이 자연은 아련하지 않고 격정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플>이 목가적이거나 격정적인 측면을 포함한다고 해도, <애플>에서 목가적인 측면이나 격정적인 측면보다 주술적인 측면은 훨씬 압도적입니다.
<애플>이 마녀를 노골적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애플>은 주술적입니다. <자연의 죽음>에서 캐롤린 머천트가 자연과 마녀를 연결하는 것처럼, <애플>은 자연(나무)과 마녀를 연결하고 주술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귀를 기울이면>과 <해야>와 <애플>은 자연을 표현하나, 세 가지 자연들은 다릅니다. 어떤 것은 낭만적이고 목가적입니다. 어떤 것은 아련하고 격정적입니다. <자연의 죽음>에서 캐롤린 머천트는 여러 목적들을 위해 인류 문화(서구 문화)가 자연 환경을 다양하게 표현한다고 분석합니다. <자연의 죽음>이 분석하는 것처럼, 여자친구 노래들 역시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이건 그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한지 모르나, 이른바 3세대 (여자/남자/혼성) 아이돌 그룹들 중에서 여자친구는 자연 환경을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러블리즈가 청순 발랄에게 기반한다고 해도, <지금, 우리>와 <아츄>와 <그 날의 너>는 기후와 식생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드림캐쳐가 일렉트릭 기타를 징징징~ 울리고 빡센 안무를 선보인다고 해도, 관객들은 드림캐쳐가 자연보다 악몽과 디스토피아에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반면, 여자친구가 아련·격정을 추구하든, 일렉트릭 기타를 징징징~ 울리고 빡센 안무를 자랑하든, 여자친구는 기후와 식생을 표현합니다.
쏘스뮤직이 자연 묘사를 의도했나요? 쏘스뮤직이 여자친구에게 자연이 구심점이라고 기획했나요? 어쩌면 이건 기획보다 그저 우연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이게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고 해도, <귀를 기울이면>과 <해야>와 <애플>과 다른 여러 노래들은 자연 환경을 표현합니다. 이것들은 똑같은 자연이 아닙니다. <해야>에서 여자친구 멤버들이 태양을 띄우는 것처럼, <레인보우>에서 여자친구 멤버들은 빗방울들을 흘리고 무지개를 그립니다. <레인보우>는 <귀를 기울이면>보다 <해야>에 가깝습니다. <해야>처럼, <레인보우>는 자연을 표현하기 위한 아련한 동작들을 늘어놓습니다.
<귀를 기울이면>과 달리, <레인보우>는 목가적이지 않습니다. 이건 아련하고 격정적입니다. 이 자연은 <해야>에 가깝습니다. <해야>와 달리, <애플>은 주술적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짜 자연인가요? 자연이 목가적이고 낭만적인가요? 아니면 자연이 아련하고 격정적이거나 주술적인가요? 무지개는 기후 현상입니다. 사과 나무는 생명체입니다. 폭풍과 여우처럼, 무지개와 사과 나무는 다릅니다. 무지개는 먹지 않으나, 사과 나무는 영양분을 생산합니다. 열매(사과)는 먹거리입니다. 사과 나무는 자연 생태계와 먹이 그물망, 생물 다양성에 속하나, 무지개는 먹이 그물망에 속하지 않습니다.
무지개가 진짜 자연인가요, 아니면 사과 나무가 진짜 자연인가요? 심지어 <애플>은 편곡(링크)하고 일렉 기타 징징징~을 들려줍니다. 일렉 기타 징징징~과 자연이 어울릴 수 있나요? 일렉 기타가 자연 감성보다 도시 감성에 어울리지 않나요? 일렉 기타가 도시 감성에 어울리기 때문에, <애플>이 잘못 편곡했나요? <귀를 기울이면>부터 <애플>까지, 여자친구가 다양한 자연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자연'은 아주 폭넓습니다. '자연'이 폭넓기 때문에, 무엇이 자연인지 결정하기는 헛갈릴지 모릅니다. 이 그림(링크)은 우주 바이오 돔을 표현합니다. 우주에서 바이오 돔은 자연 환경을 조성합니다.
이 그림에서 자연 환경은 울창한 삼림을 가리킵니다. 바이오 돔 그림이 삼림을 묘사하는 것처럼, 자연 환경은 삼림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모래 사막 역시 자연 환경입니다. 모래 사막 역시 생태계와 먹이 그물망과 생물 다양성을 조성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주 바이오 돔 그림이 사막을 묘사한다면, 사람들은 이 그림이 어색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분명히 사막은 생물 다양성을 조성하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연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자연은 사막보다 삼림입니다. 사막 생태계 역시 자연이나, 소설 <듄>이 아라키스 행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연과 사막이 대조적이라고 느낍니다.
생명체들이 먹고 살기 때문에, 바이오 돔은 '바이오' 돔입니다. 자연과 사막이 대조적이기 때문에, 바이오 돔 그림은 사막을 묘사해서는 안 됩니다.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우주 바이오 돔 그림들은 삼림을 묘사합니다. 비디오 게임 <프로젝트 이글>에서 이글 돔은 우주 바이오 돔입니다. <프로젝트 이글>은 바이오 돔 내부를 보여주지 않으나, 천편일률적으로 우주 바이오 돔 그림들이 삼림을 묘사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글 돔은 다른 자연 환경들보다 삼림을 조성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산호초 숲 역시 자연 환경입니다. 만약 이글 돔이 육상 삼림보다 산호초 숲을 키운다면, 이 해석이 옳은가요?
삼림 그림들은 고정 관념인지 모릅니다. 모래 사막과 산호초 숲이 자연에 속하기 때문에, 우주 바이오 돔은 삼림보다 사막과 산호초 숲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이건 삼림 그림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막보다 숲에서 우리가 쾌적하게 느끼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육상 동물이기 때문에, 우주 바이오 돔 그림들은 사막과 산호초 숲보다 삼림을 묘사할 겁니다. 지구 행성에서 육지보다 바다는 압도적인 면적을 차지하나, 우리는 이 행성을 地球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육지보다 바다가 압도적인 면적을 차지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 행성을 둥근 바다보다 둥근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이상한가요?
둥근 땅이 틀린 이름인가요? 둥근 바다가 옳은 이름인가요? 심지어 생태학자들조차 이 행성을 둥근 땅이라고 부릅니다. 생태학자들은 이 행성을 둥근 바다, 海球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니, 이러러러럴수가! 생태학자들은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생태학자들은 사기꾼들, 허풍쟁이들입니다! 이 행성에서 육지가 30% 면적을 차지하고, 바다가 70%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생태학자들은 이 행성을 地球보다 海球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지만 생태학자들은 이 행성을 둥근 바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생태학자들은 틀린 이름을 부릅니다. 노라 제미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서진 '대지'는 오류입니다.
노라 제미신은 <부서진 대지> 3부작을 썼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훨씬 압도적인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대지'는 틀린 표현입니다. 노라 제미신은 아버지 대지를 설정했으나, 이 설정은 틀립니다. 생태학자들이 사기꾼, 허풍쟁이인 것처럼, 노라 제미신은 허풍쟁이입니다. 그래서 SF 독자들이 노라 제미신을 비난해야 하나요? 생태학자들이 사람들에게 뻥을 치기 원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건 그저 관습에 불과합니다. 地球라는 단어가 관습이기 때문에, 노라 제미신은 부서진 '대지'라고 설정했습니다. 지구와 부서진 대지가 관습인 것처럼, 우주 바이오 돔과 삼림 역시 관습적인 묘사일 겁니다.
하지만 비록 우주 바이오 돔과 삼림 그림이 관습이라고 해도, 자연이 폭넓기 때문에, 우주 바이오 돔 그림은 고정 관념을 포함하는지 모릅니다. 화가들이 우주 바이오 돔을 그릴 때, 화가들은 삼림 이외에 사막과 산호초 숲 같은 다양한 자연들을 표현해야 합니다. 이 그림들은 '자연'에 훨씬 가깝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해석에 반대할지 모릅니다. 우주 바이오 돔에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급자족입니다. 우주 궤도와 외계 행성에서 개척자들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개척자들에게는 바이오 돔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주 바이오 돔 그림들은 모래 사막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주 바이오 돔 그림들이 삼림을 천편일률적으로 묘사한다고 해도, 이건 고정 관념보다 자급자족입니다. 자급자족을 가리키기 위해 화가들은 우주 바이오 돔이 울창한 삼림을 조성한다고 묘사합니다. 그래서 이게 고정 관념인가요, 아니면 우주 개척 고증인가요? 우주 바이오 돔 그림이 모래 사막을 묘사해야 하나요? 아니면 이게 그저 쓸데없는 오지랖에 불과한가요? 우주 바이오 돔처럼, 진화 시뮬레이션 게임은 자연을 표현합니다. 진화 시뮬레이션 <Creatura>는 테라리움, 아쿠아리움을 조성합니다. 진화는 생명체를 규정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준입니다. 자연 생태계는 진화하고 진화합니다.
자연 생태계가 진화하기 때문에, 자연과 진화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진화 시뮬레이션은 생태계 시뮬레이션이 됩니다. 진화 시뮬레이션은 유전 형질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식물과 동물을 키웁니다. 진화 시뮬레이션에서 이건 가장 커다란 재미입니다. 선구적인 <심라이프>부터 최근의 <니치>까지, 진화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유전 형질 조합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유전 형질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식물과 동물을 키우기 때문에, 이건 바이오펑크 감성을 풍깁니다. 바이오펑크 역시 유전 형질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식물과 동물을 제시합니다. 진화 시뮬레이션과 바이오펑크는 맞닿습니다.
바이오펑크 소설은 생체 우주선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생체 우주선이 유명한 소재가 아니라고 해도, 바이오펑크 소설에서 유전 공학 기술자들은 생체 우주선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진화 시뮬레이션이 자연을 표현하고, 진화 시뮬레이션과 바이오펑크가 맞닿고, 바이오펑크 소설이 생체 우주선을 묘사할 수 있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은 자연 생태계, 먹이 그물망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SF 독자들이 여기에 동의하나요? SF 독자들은 우주 바이오 돔이 자연 생태계를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주 바이오 돔과 생체 우주선은 다릅니다. <프로젝트 이글>과 생체 우주선은 다릅니다.
우주 바이오 돔은 SF 생태학 소재입니다. 생체 우주선이 SF 생태학 소재가 될 수 있나요? 먹이 그물망과 생물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SF 작가가 생체 우주선을 쓸 수 있나요? 어떤 SF 독자들은 동의할지 모릅니다. 어떤 SF 독자들은 반대할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생체 우주선이 아주 로망스러운 SF 생태학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우주 바이오 돔처럼, 저는 생체 우주선이 자연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태학자들이 지구를 우주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생체 우주선은 행성 생물권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게시글이 문화 표현에 너무 집착한다고 지적할지 모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용이야? 드루이드가 격렬한 폭풍이 되든, 교활한 여우가 되든, 이건 중요하지 않아. 아무리 <귀를 기울이면>이 목가적거나 <애플>이 일렉 기타를 징징징~ 울린다고 해도, 이건 중요하지 않아. 아름다운 나비가 자연이든, 폭력적인 백상아리가 자연이든, 우주 바이오 돔 그림이 삼림을 묘사하든, 산호초 숲을 묘사하든, 생체 우주선이 자연 생태계를 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이것들은 그저 문화 표현에 불과해. 뭐라고 우리가 자연을 표현하든, 문화 표현은 근본이 아니야." 네, 이 지적은 옳습니다.
문화 표현은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뭐라고 우리가 자연을 표현하든, 자연 속에서 인간이 먹고 살기 때문에, 문화 표현보다 먹고 살기는 훨씬 근본적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저는 여러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을 분석하나, 이 분석들은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소설 해석보다 먹고 살기는 훨씬 근본적입니다. 이 블로그의 모든 게시글보다 딱딱하고 맛없는 빵 한 조각은 훨씬 중요합니다. 문제는 지배적인 관념입니다. 지배적인 관념은 자연의 법칙을 들먹이고 착취와 수탈을 정당화합니다. 여자들은 조신합니다. 왜 여자들이 조신한가요? 이게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조신한 여자는 자연입니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는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 생물학이 가부장 신화에게 진화 이론을 뒤집어씌웠다고 비판했습니다. 사회 생물학이 가부장 신화가 진화 이론이라고 포장한 것처럼, 알프레드 마샬과 존 베이츠 클라크는 수탈이 자연 법칙이라고 정당화했습니다. 지배적인 관념이 수탈을 정당화하기 원할 때, 자연은 아주 좋은 핑계가 됩니다. "약육강식, 무한 경쟁은 자연 법칙이야! 비록 약자들이 죽어나간다고 해도, 이건 자연이야! 아무도 자연을 거스르지 못해!" 이렇게 지배적인 관념이 자연을 들먹이고 수탈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자연인지 의심해야 합니다.
※ 뮤직 비디오 <애플> 사진 출처: Big Hit Labels,
www.youtube.com/watch?v=BmTZ39P9vEc
※ 게임 <Creatura> 스크린샷 출처: Alonso Fuega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