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안드로메다 성운>의 화석 발굴 장면 본문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에는 화석 발굴 장면이 잠시 등장합니다. 고생물 연구원들이 화석을 발굴하는 동안, 다르 베테르라는 주연 등장인물은 장대한 진화와 인류 역사를 떠올립니다. 지구에서 생명은 오랜 역사를 흘렀습니다. 대략 30억 년 동안 원시 생명체들은 지구 환경을 크게 바꿨습니다. 5억 년 전에 본격적으로 복잡한 동물들과 식물들과 균류들이 탄생했고, 다시 몇 억 년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인류가 등장했으나, 인류는 무엇이 이성적인 방법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죠.
하지만 여러 혼란들을 거치는 동안, 인류는 국가와 민족과 재산과 성별을 넘어서야 한다고 깨달았고,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룩했습니다. 다르 베테르는 미개한 고대 야수와 진보된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비교하고, 공산주의에게 손을 들어줍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꽤나 선형적인 역사 발전 단계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꽤나 인간 중심적이죠. 소설 속에서 어떤 사람은 그런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나, <안드로메다 성운>은 전반적으로 선형적인 발전과 인간 중심주의를 예찬하는 듯합니다. 역사는 점차 복잡하고 진보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그래서 인간은 고대 야수보다 위대합니다.
이는 꽤나 고전적인 공산주의 사상 같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가 선형적으로, 원시적인 자연 환경에서 진보된 산업 문명으로 발전한다고 믿었고, 자본주의 역시 그런 과정에 속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가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죠. 러시아 볼셰비키 정당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고, 공산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빨리 자본주의(서구적인 근대화)에 도달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이는 그저 사상적인 결과물이 아닙니다. 러시아는 가난한 나라였고, 인민들은 굶주리는 중이었습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1차 대전을 일으켰고, 러시아는 더욱 굶주리게 되었죠. 볼셰비키는 소비에트 노선에서 탈선했고, 소비에트보다 중앙 집중적인 국유화에 몰두했습니다. 이후 소비에트 연방은 (이름과 달리) 소비에트들을 중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비단 현실적인 굶주림만이 아니라 사상적인 측면 역시 중앙 집중적인 국유화를 뒷받침했을 겁니다. 볼셰비키는 농민 사회주의적인 모습을 몇 번 보여줬으나, 결국 농민들을 수탈하고 중공업을 밀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이미 지나간 전철이었죠. 그렇게 볼셰비키는 자본주의를 따라갔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그런 전형적인 공산주의와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 성운>과 전형적인 공산주의는 똑같이 선형적인 역사 발전, 인간 중심주의, 서구적인 근대화를 찬양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소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인민들이 국가를 넘어서고, 민족을 넘어서고, 성별을 넘어서고, 재산을 넘어서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21세기 SF 소설들조차 우파적인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1957년에 나왔습니다. 1957년에 나왔음에도 <안드로메다 성운>은 21세기 SF 소설들보다 훨씬 급진적이죠.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 같은 막대한 환경 오염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런 대안 사회는 환경 오염을 피하는 전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보여주는 선형적인 역사 발전, 인간 중심주의, 서구적인 근대화가 많은 문제점들을 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생물학자가 화석을 발굴하는 장면은 그것들을 함축하고요.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이성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인간 이외에 어떤 지구 생물이 광대한 우주에 경탄할까요.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그렇게 잘났을까요. 어쩌면 다른 생물들은 인간과 다른 측면에서 인간보다 똑똑할지 모르죠.
<안드로메다 성운>은 자연 생태계를 자세히 파고들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는 그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뒷받침하는 디딤돌에 불과하죠. 당연히 생태 철학 역시 부족하고, 생태 연구원 역시 별로 보이지 않아요. 작가 이반 예프레모프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를 그저 디딤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생물학자나 생태학자에게 별로 비중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설사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생태학자가 등장하고 자연 생태계를 탐험했다고 해도, 그 생태학자는 자연 생태계를 비하하고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찬양했을지 몰라요. 공산주의를 찬양하기 위해 생태학자는 들러리를 섰을지 모르죠.
저는 그런 점이 아쉽습니다. <붉은 별> 같은 소설은 자연 환경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그래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인간이 조절하는 만큼 자연 환경은 척척 바뀔 뿐입니다. <붉은 별>과 <안드로메다 성운>은 똑같이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그리나, 자연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이반 예프레모프보다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가 드러내는 시각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 이 소설에서는 남자가 커다란 동물을 죽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공산주의 남자들은 황소를 죽이고, 커다란 문어를 죽이고, 보아뱀을 죽이고, 호랑이를 죽입니다. 마치 신화 속의 위대한 영웅이 드래곤을 물리치는 것처럼. 이는 인간이 야수를 쓰러뜨리고 자연을 정복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비록 이런 장면들은 사소하게 지나가나, 저는 이것들이 인간 중심주의를 찬양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