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안드로메다 성운>이 남성 판타지를 드러내는가 본문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에는 이른바 '위대한 원'이라는 외계 모임이 나옵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외계 문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외계 문명들은 너무 멀리 떨어졌어요. 지구 역시 다른 외계 문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지구인들은 그들을 직접 만나지 못해요. 지구인들은 그저 장거리 영상 통화를 보내고, 상당히 오랜 시간 이후, 외계인들은 그걸 받아볼 수 있죠. 이런 일방향 장거리 영상 통화는 외계 문명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드문 방법입니다.
지구인들은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그래서 직접 외계 문명을 만나기 위해, 지적 도약을 위해, 장거리 항해 우주선을 건조합니다. 하지만 그건 소설 후반부이고, 장거리 항해 우주선을 만들기 전까지 지구인들은 꾸준히 일방향 장거리 영상 통화를 보내야 합니다. 영상 통화를 보낼 때,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철학, 사상, 역사, 과학을 담습니다. 그걸 설명하는 사람은 베다라는 역사학자입니다. 베다는 아주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자이고, 등장인물들 역시 연이어 베다가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칭송합니다. 베다는 거의 걸어다니는 여신이나 지상에 강림한 선녀와 같습니다.
왜 베다가 지구 문명의 발표자가 되었을까요. 외계인들에게 영상을 보낼 때, 왜 우주 위원회가 베다를 내세웠을까요. 소설은 여자와 남자 중 여자가 훨씬 아름답고,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이 지구를 대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발언은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왜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 지구를 대표해야 할까요. 왜 외모가 중요할까요. 누군가가 못생기거나 뚱뚱하다고 해도, 풍부한 지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구를 대표할 수 있을 겁니다. 뭐, 이는 우주 위원회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주 위원회는 외계 문명들에게 지구를 자랑하고 싶어했겠고,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내세웠겠죠.
외계인들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면, 베다는 거기에 제일 적합한 사람일 겁니다. 사실 다른 외계 문명 역시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여자 무용수를 찍은 영상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여자 무용수를 봤을 때, 지구인들은 그저 감탄사만 발했을 뿐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하드 SF 소설에서조차 여자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넘어간다면) 아마 외계인들 역시 여자가 남자보다 아름다움을 훨씬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안드로메다 성운>은 아름다운 여자를 찬양해요.
독자는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비슷한 몇몇 사례를 더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화가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그리고 싶어합니다. 누군가는 화가에게 왜 남자를 그리지 않는지 묻습니다. 화가는 여자들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대답합니다. 소설 속에서 차라 같은 여자는 정말 살아있는 미의 화신입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풍만하고 훤칠한 몸매, 우아한 행동거지는 인간을 넘어섰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꾸준히 여자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특별한 존재라고 칭송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를 더 묻고 싶습니다. 정말 여자가 그런 존재인가? 왜 언제나 여자가 남자보다 아름다워야 하나요? 그건 생물적인 이유인가요, 아니면 문화적인 이유인가요. 숱한 남성 판타지들은 여성을 아름답고 고귀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묘사합니다. 여성은 남성이 쉽게 닿지 못하는 이상향이고, 아름다운 여성은 독보적입니다. 여성은 일종의 보상입니다. 남성이 힘든 과업을 수행했을 때, 남성은 여성을 얻을 수 있어요. 이런 남성 판타지 속에서 여성은 여자가 아닙니다.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움과 섹스라는 쾌락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남성 판타지는 가부장적인 시각입니다. 이런 남성 판타지에서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사회 구성원이 아닙니다. 남성은 사회 활동에 참가할 수 있으나, 여성은 남성을 위로하고 즐거움을 주는 존재죠. 납치된 공주와 용감한 왕자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악마가 공주를 납치했을 때, 공주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용감한 왕자가 악마를 무찌르고 공주를 구출할 때까지, 공주는 얌전히 기다려야 합니다. 용감한 왕자가 악마를 쓰러뜨렸을 때, 공주는 왕자에게 아름답고 쾌락적인 보상이 됩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이 그런 시각을 드러낼까요.
이 소설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평등하다고 말하고, 여자들 역시 사회적인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합니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공동 생산 및 공동 분배를 이루고, 여자들 역시 중요한 생산자들입니다. 따라서 여자들 역시 사회에 (남자들처럼) 기여하고, 여자와 남자는 똑같은 사회 구성원입니다. 만약 인류 사회가 이렇게 바뀐다면, 숱한 성 차별들이나 성 폭행들은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저는 왜 그렇게 작가가 베다나 차라 같은 여자들을 우아한 여신이라고 칭송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상당히 진보적인 소설이나, 어느 정도 남성 판타지를 가미한 것 같아요.
이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수구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미래 우주 사회를 전망하고, 진보를 추구하는 소설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에게는 진보적인 SF 소설들을 대표할 자격이 있습니다. <반지 전쟁> 같은 소설이 여전히 남성 판타지에 매달릴 때, <안드로메다 성운>은 급진적인 성 평등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 평등조차 어느 정도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1950년대 러시아 사회라는 한계 속에서 <안드로메다 성운>은 진보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