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건축을 기다린다는 의미 본문

SF & 판타지/유토피아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건축을 기다린다는 의미

OneTiger 2018. 10. 24. 18:49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성공하면 왜 운이 좋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발달 법칙의 불변성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건축이 한없이 위로 솟아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의 현명함이란 현재 순간에 너무 높은 수준이 무엇인지 때맞춰 인정하고 멈추어 서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경로를 변경하는 겁니다."



위 대사는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에 나왔습니다. 그건 어떤 지도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논의하는 장면이었죠. 그 지도자는 자신이 인류를 훨씬 진보적인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도자는 그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판단은 엄청난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도자는 너무 높은 수준을 파악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대사를 읽었을 때, 어떤 독자들은 살짝 놀랐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안드로메다 성운>이 공산주의 유토피아 소설이고, 전통적인 공산주의처럼 <안드로메다 성운>이 끊임없는 진보를 찬양하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룩했고 역사가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류 문명은 모든 것을 정복했습니다. 비극적인 빈곤, 끔찍한 전쟁, 악독한 환경 오염, 치명적인 질병, 위험한 야수들, 혹독하거나 메마른 기후. 인류 문명은 지구 기후조차 바꾸었고 자연을 정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전형적인 공산주의 유토피아로서 <안드로메다 성운>은 인류가 꾸준히 앞으로,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작가 이반 예프레모프가 뭐라고 생각했든, <안드로메다 성운>은 그런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정말 인류가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건 가능할지 모릅니다. 문제는 발전 속도입니다. 무한한 발전을 믿는 사회는 빨리 발전하고 싶어할 겁니다. 미래에 훨씬 나은 사회가 기다린다면, 다들 빨리 거기에 도달하기 원할 겁니다. 다들 빨리 달리기 원할 겁니다. 누군가가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수많은 눈총들을 받겠죠. 하지만 다들 그렇게 빨리 달린다면, 어딘가에 심하게 부딪히거나 바닥에 넘어질지 모릅니다.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에 다들 커다란 부상들을 입겠죠. 그런 실수들은 비극적이고 거대한 사고들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너무 높은 건물이라는 비유는 이런 상황을 가리킬 겁니다. 자꾸 사람들이 건물을 높이, 더 높이 짓는다면, 언젠가 고층 건물은 버티지 못할지 모릅니다.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함에도, 사람들이 다급하게 건물을 짓는다면? 언제 사고가 터질지 아무도 모를 테고, 그런 사고는 엄청난 사상자들을 부를지 모릅니다. 발전은 나쁘지 않습니다. 인류 문명은 발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 인류 문명이 무조건 빨리 발전해야 하나요? 하지만 너무 빠른 발전은 수많은 부작용들을 이끌고 다닐 겁니다. 이는 어린 아이에게 성장 촉진제를 먹이는 행위와 별로 다르지 않겠죠. 이는 너무 무리한 성장입니다.



하지만 숱한 사람들은 무리한 성장을 숭배합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하고, 성장하고, 성장하고, 성장하고, 다시 성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안드로메다 성운>에 등장하는 지도자보다 훨씬 단기적인 믿음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그 지도자는 인류 전체의 진보를 앞당기기 원했습니다. 적어도 그런 야심에는 진실성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밑바닥 계급을 차별하지 않고, 성별이나 인종을 가르지 않고, 개인을 숭배하지 않고, 자연 환경을 마구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진실성이 있었음에도, 그 지도자는 엄청난 비극을 저질렀습니다. 아무리 진실성이 있다고 해도, 너무 빠른 발전은 재앙을 부를지 모릅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세상에는 아예 그런 진실성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이 무리한 성장을 숭배하는 이유는 그들이 대기업들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대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면 그런 혜택이 사방으로 흘러넘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오직 이윤을 축적할 뿐입니다. 이윤을 위해 대기업들은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자연 환경을 파괴합니다. 경제 성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도, 그걸 위해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것들을 파괴합니다.



왜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이 대기업들에 매달려야 합니까? 왜?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오버로드 같은 외계인이 대기업들에게 절대적인 권능을 부여했나요? 아닙니다. 사람들이 대기업들에게 권력을 몰아주자고 합의했나요? 아닙니다. 대기업들이 평화롭게 생산 수단을 얻었나요?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 이유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대기업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들 스스로 노예가 되기 원하고 대기업들에게 영혼들과 육체들을 바칩니다. 이는 광신적인 태도입니다. 광신도들이 사이비 종교에 영혼들과 육체들을 바치는 장면과 절대 다르지 않아요.


대기업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고, 대기업들은 절대적인 주인이 아닙니다. 당장 대기업들을 없애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임금 노동을 없애고, 노동자들이 훨씬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일터 민주주의를 세우고, 자본가 계급에게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핵 발전소나 기후 변화 같은 장기적인 문제는 우리 후손들을 오염시키고 파멸로 몰아갈지 모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처럼 <안드로메다 성운>은 무한한 발전을 긍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안드로메다 성운>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오직 이윤만 추구하나, <안드로메다 성운>은 필요에 따라 발전하죠.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달리, <안드로메다 성운>은 잠시 사람들이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무조건 산업 발전을 좋아한다고 말하나, 그건 오해일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사회가 되었든, 잠시 우리는 멈출 수 있어야 할 겁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