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시에나이트와 마스터 요다가 구태여 손을 뻗는 이유 본문
[여러 초능력들과 마법들, 주술들은 특별한 동작들을 요구합니다. 왜 이런 동작들이 필요한가요?]
노라 제미신이 쓴 <다섯 번째 계절>에는 오로진이라는 초능력자들이 있습니다. 오로진들은 대지 초능력자들입니다. 그들은 지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고, 열점을 찾을 수 있고, 지진을 일으킬 수 있고, 화산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주연 등장인물들 중에서 하나인 시에나이트 역시 오로진이고 지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항구에서 관리들과 함께 시에나이트는 해안 지하 구조를 파악합니다. 여기에서 초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시에나이트는 해안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사실 이런 동작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초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특별한 동작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동작 없이, 시에나이트는 얼마든지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지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리들은 오로진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입니다. 평범한 인간들은 지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래서 오로진들은 평범한 인간들을 둔치들이라고 부릅니다. 둔치들은 오로진 초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관리들을 위해 시에나이트는 의도적으로 손을 뻗습니다. 시에나이트는 자신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중이라고 보여주기 원했습니다. 시에나이트가 해안을 향해 손을 뻗었기 때문에, 관리들은 오로진이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스타 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는 늪에서 엑스윙 전투기를 꺼내기 원합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포스를 이용해 엑스윙을 꺼냅니다. 여기에서 루크는 엑스윙을 향해 손을 뻗고 포스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엑스윙은 너무 무겁고, 루크 스카이워커는 포기합니다. 마스터 요다는 한숨을 쉬고 현명한 스승으로서 모범을 보입니다. 마스터 요다는 직접 포스를 이용해 엑스윙을 꺼냅니다. 루크가 손을 뻗고 포스를 발휘하는 것처럼, 포스를 발휘하기 위해 마스터 요다 역시 엑스윙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예전에 SF 동호회 JoySF 회원들은 왜 요다가 손을 뻗어야 했는지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포스는 정신적인 초능력입니다. 포스는 육체적인 능력보다 정신적인 능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요다가 볼품없는 난쟁이임에도, 요다는 훌륭한 제다이 마스터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전투 드로이드가 달려든다고 해도, 광검 없이 마스터 요다는 오짓 손짓만으로 전투 드로이드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만약 포스가 정신적인 초능력이라면, 왜 마스터 요다가 구태여 엑스윙을 향해 손을 뻗어야 했나요? JoySF 회원들은 '집중하기 위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포스가 정신적인 능력이라고 해도, 요다는 정신을 집중해야 했습니다. 요다가 엑스윙을 향해 손을 뻗는다면, 이 동작은 정신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뭔가를 고민할 때, 우리는 턱을 괴거나, 서성거리거나, 이마를 두드립니다. 이런 동작들 없이, 우리는 고민할 수 있습니다. 고민은 육체적인 활동보다 정신적인 활동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여러 동작들은 정신을 끌어모을 수 있고, 우리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고민할 때, 우리는 턱을 괴거나, 서성거리거나, 이마를 두드립니다. 정신을 끌어모으기 위해 마스터 요다 역시 엑스윙을 향해 손을 뻗었는지 모릅니다. 이게 공식 설정이 아니라고 해도, 여기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마스터 요다는 손을 뻗었을 겁니다.
만약 마스터 요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마스터 요다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할 겁니다. 영화는 영상 매체이고, 영상 매체는 뭔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마스터 요다는 시각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마스터 요다는 자신이 포스를 이용해 엑스윙을 움직이는 중이라고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마스터 요다는 엑스윙을 향해 손을 뻗었을 겁니다. 관리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시에나이트가 해안을 향해 손을 뻗은 것처럼,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마스터 요다는 엑스윙을 향해 손을 뻗었을 겁니다. 관객들은 요다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서 진 그레이는 텔레파시 초능력자이고 동시에 텔레키네시스 초능력자입니다. 진 그레이가 텔레파시 및 텔레키네시스 초능력을 발휘할 때, 종종 진 그레이는 손을 뻗습니다. 아무 동작 없이, 진 그레이는 주사기를 들어올리거나, 문을 닫거나, 미사일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 그레이가 토드를 막을 때, 나이트크롤러를 멈출 때, 사이클롭스의 옵틱 블라스트를 막을 때, 진 그레이는 손을 뻗습니다. 특히, 사이클롭스가 옵틱 블라스트를 엄청나게 뿜기 때문에, 진 그레이는 두 손을 뻗어야 했습니다. 초능력을 끌어모으기 위해 진 그레이는 두 손을 뻗었는지 모릅니다.
한편으로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위해 진 그레이는 두 손을 뻗었는지 모릅니다. 만약 진 그레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영화 분위기는 썰렁해졌을지 모릅니다. 사이클롭스가 엄청난 안광을 쐈기 때문에, 진 그레이는 필사적으로 옵틱 블라스트를 막아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뭔가에 저항하기 원할 때, 우리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뻗습니다. 진 그레이는 필사적으로 옵틱 블라스트를 막아야 했고, 이걸 보여주기 위해 진 그레이는 두 손을 뻗었는지 모릅니다. 초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종종 매그니토 역시 손을 뻗습니다. 이것 역시 관객을 위한 손짓인지 모릅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마법사들은 특별한 동작들을 이용해 마법을 부립니다. 마법사들이 마법진들을 만들거나 움직일 때, 마법사들은 손을 움직입니다. 마법진들은 물리적인 실체이고, 물리적인 실체를 움직이기 위해 마법사는 손을 움직이는지 모릅니다. 동시에 이건 관객을 위한 손짓일 겁니다. 마법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마법진들이 나타나고 움직인다면, 이건 시각적으로 어색할지 모릅니다. 아무 동작 없이, 마법진들이 나타나고 움직인다면, 이건 너무 어색할 겁니다. 특히, <닥터 스트레인지>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영상 매체이고, 영상 매체는 뭔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나오미 노빅이 쓴 <업루티드>에서 마법은 시각적이지 않습니다. 소설 <업루티드>에서 마법, 주문 구현은 추상적입니다. <업루티드>는 소설이고, 소설은 글자들입니다. 글자들은 사회적인 기호이고, 사회적인 기호는 추상적인 영역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업루티드>는 추상적인 주문 구현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마법사 아그니에슈카는 마법 주문이 숲 속에서 오솔길을 찾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그니에슈카가 말괄량이 아가씨이기 때문에, 마법 주문 역시 말괄량이 아가씨를 반영하는지 모릅니다. 소설은 글자들을 이용해 마법 주문과 길 찾기를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닥터 스트레인지>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추상적인 영역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고 비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영화 속에서 닥터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특별하게 두 손을 휘젓는지 모릅니다. 애니메이션 <아바타: 아앙의 전설>에서 원소 벤딩들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특히, 원소에 따라, 벤딩은 달라집니다. 물이 부드럽게 흐르는 것처럼, 워터 벤딩은 부드러운 동작입니다. 대지가 딱딱한 것처럼, 어스 벤딩은 딱딱한 동작입니다. 바람이 자유로운 것처럼, 에어 벤딩은 아주 호쾌합니다. 영화 <반지 원정대>에서 마법사들 역시 특별하게 지팡이들을 뻗거나 움직입니다. 회색의 간달프와 백색의 사루만이 싸울 때, 간달프와 사루만은 특별하게 지팡이를 뻗거나 움직입니다.
하지만 소설 <반지 원정대>는 간달프가 지팡이를 팍팍 뻗는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소설과 달리, 영화가 시각적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간달프와 사루만은 지팡이를 팍팍 뻗어야 했을 겁니다. 이렇게 소설 <다섯 번째 계절>부터 애니메이션 <아바타: 아앙의 전설>까지, 수많은 매체들은 초능력과 주문에 특별한 동작이 필요하다고 설정합니다. 이런 특별한 동작들이 없다면, 우리는 초능력 발현과 마법 주문이 시시하고 밋밋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우리가 시각적인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눈으로 뭔가를 보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두 눈으로 동작을 보고 싶어합니다.
어쩌면 초능력 발현 및 마법 주문은 율동과 비슷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춤이라는 시각적인 동작으로 추상적인 감정과 사상을 표현합니다. 우리가 구태여 춤을 추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각적인 동물입니다. 감정과 사상은 추상적이고, 우리는 추상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원합니다. 특히, 우리가 춤을 출 때,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이용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각적인) 신체를 직접 이용해 우리의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춤을 출 때, 우리는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이용하기 때문에, 춤은 산문과 그림과 음악과 다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직접 이용하기 때문에, 춤은 훨씬 감각적입니다. 춤이 감각적인 것처럼, 초능력 발현 및 마법 주문 역시 감각적일 수 있습니다. 소설 <다섯 번째 계절>이 오로진 초능력을 추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업루티드>가 마법 주문을 추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초능력과 마법은 추상적입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영역을 시각적으로, 감각적으로 확인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초능력자들과 마법사들은 특별하게 손을 휘젓거나 몸을 비트는지 모릅니다. 워터 벤더 카타라가 부드러운 동작으로 물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처럼, 특별한 동작은 추상적인 영역을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으로 전환합니다.
어쩌면 수많은 초능력들과 주문들에는 적합한 동작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중세 판타지 속에서 드루이드가 주문을 외울 때, 드루이드는 자연 생태계를 특별한 동작들로 표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드루이드는 두 손을 휘젓고, 꽃들이 만개하거나, 덩굴들이 휘감거나, 버섯들이 솟아나는 장면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드루이드가 자연 환경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드루이드는 이런 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동작들은 마법이라는 추상적인 영역을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영역으로 전환하고, 이런 전환은 물리적인 실체들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드루이드는 덩굴을 조종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야생적인 힘(추상적인 것)을 얻기 위해 고대 주술사가 동굴 벽면에 야수 그림(시각적인 것)을 그리는 것처럼, 초능력, 마법, 주술에서 추상적인 것이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중요할 겁니다. 우리는 이런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예술을 춤이라고 규정합니다. 이건 춤과 초능력 발현이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초능력 발현과 율동 사이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실 여러 초인들과 마법사들의 특별한 동작들을 구경하는 행위는 발레 공연 관람과 비슷한지 모릅니다.
※ 그림 <Waterbender Katara> 출처: nargyle, http://fav.me/dqn5g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