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스타 워즈>가 다원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인가 본문
[아무리 여러 외계인들이 나온다고 해도, 얼마나 이게 다원화를 추구할 수 있을까요.]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영화 <스타 워즈>에는 온갖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클래식 3부작 역시 다양한 종족들을 보여주나, (발달된 시각 효과 덕분에) 프리퀄 3부작은 더 많은 종족들을 자랑하는 것 같군요. 클래식 3부작은 건간 종족 같은 외계인을 보여주지 못했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스타 워즈>가 다원적인 세계를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하고 희한한 종족들은 정말 다원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지 루카스가 다양한 종족들을 내놓는다고 해도, 결국 주연 등장인물들은 백인 남자들입니다. 이상하게 여자 제다이들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유색인 제다이나 여자 제다이는 별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다른 외계 종족 제다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루크 스카이워커, 오비완 케노비, 아나킨 스카이워커, 콰이곤 진, 두쿠 백작은 전형적인 백인 남자들입니다. 그 명성과 달리, 마스터 요다는 직접 활약하지 않습니다. 마스터 요다는 출중한 능력을 선보이나, 다른 백인 남자 제다이들을 보조하는 역할입니다.
<스타 워즈> 클래식 3부작에서 포스 유저는 별로 없습니다. 제다이나 포스는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한 솔로 역시 포스를 별로 믿지 않았죠. 반면, 프리퀄 3부작에서 구공화국은 한창 힘을 쓰는 중이었습니다. 덕분에 (대부분 제다이들이었으나) 포스 유저들 역시 많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포스 유저들, 아나킨 스카이워커, 오비완 케노비, 콰이곤 진은 백인 남자들이죠. 외전에 여자 제다이들이나 외계인 제다이들이 많이 등장한다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외전은 외전이고, 진짜 중요한 것은 극장판 실사 영화죠. 극장판 실사 영화에서 여자 제다이나 외계인 제다이는 별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어요. 메이스 윈두는 (배우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최강 제다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저 실력만 최고일 뿐이고, 사건 전개에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에서 메이스 윈두가 드로이드들과 우주선과 사이보그를 열심히 두들겨패는 장면은 꽤나 멋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메이스 윈두가 최고 실력자라고 해도, 메이스 윈두는 사건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오히려 마스터 요다가 메이스 윈두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치죠. 마스터 요다가 메이스 윈두보다 훨씬 뛰어난 포스 유저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이미 말한 것처럼 마스터 요다가 보조적인 역할이기 때문이죠.
SF 세상에서 <스타 워즈>는 정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스타 워즈>가 대단하다고 인정할 겁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이 우주 전쟁 영화라고 오해하고, 우주 함선과 외계인과 보행 로봇과 광선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골수 하드 SF 독자들은 <스타 워즈>에게 이를 박박 갈죠. 하지만 그렇게 <스타 워즈> 시리즈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함에도, 프리퀄 3부작에는 중요한 여자 제다이나 외계인 제다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나쁘다고 지적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지 루카스가 백인 남자 제다이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백인 남자 제다이를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스타 워즈>는 조지 루카스가 계획하고 연출하는 창작물입니다. 감독이 백인 남자 제다이를 원한다면, 백인 남자 제다이를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인종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관객들이 <스타 워즈>가 다원적인 세계를 추구한다고 말한다면, 저는 딴지를 걸겠습니다. 다양한 종족들이 나온다고 해도, 그들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정말 다원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보고 싶다면, 어슐라 르 귄이나 이안 뱅크스나 켄 맥레오드가 훨씬 낫겠죠.
무엇보다 <스타 워즈> 시리즈는 서구적인 근대화를 추종합니다. 오비완 케노비는 자신이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부르짖었으나, 그건 고작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불과하죠. <스타 워즈> 시리즈가 자본주의를 제대로 비판한 적이 있나요? <스타 워즈> 시리즈가 서구적인 대의 제도를 부정하고 밑바닥 계급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나요? 아니, 없습니다. <스타 워즈> 시리즈는 철두철미하게 서구적인 근대화를 추종합니다. 하지만 서구적인 근대화는 그냥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럽 침략자들이 숱한 부족민들을 학살하고 내쫓았기 때문에 서구적인 근대화는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 워즈>는 그런 점을 별로 반성하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이 다원적인 세계 운운해도, 그건 그저 피상적인 다원성에 불과하죠. 어떻게 서구적인 근대화, 자본주의, 자유 민주주의, 대의 제도, 가부장적 구조에 목숨을 거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다원적인 세계가 될 수 있겠어요. 그건 시각 효과를 포함하는 영화가 무조건 SF 영화라는 발언과 별로 다르지 않겠죠. 저는 조지 루카스가 이런 스페이스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스타 워즈>를 다원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른다면, 그건 그저 착각에 불과합니다.
※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문명 역시 별로 다원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숱한 개성들을 자랑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정체성들은 그저 다양한 소비들로 이어질 뿐이죠. 다들 똑같이 소비 문화에 매달리는 상황이 다원적일 수 있겠어요. 이 세상에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손가락질을 받고, 일터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학살을 당하죠. 이게 무슨 다원성입니까. 이건 그저 덮어놓고 자본주의 만만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