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스타크래프트>와 주관적인 SF 미덕 본문
팥빙수는 달달하고 시원합니다. "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이 노래가 외치는 것처럼, 팥빙수가 맛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팥빙수를 좋아합니다. 팥빙수는 훌륭한 음식 문화입니다. 팥빙수가 훌륭한 문화이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들이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이 비난을 받아야 하나요? 팥빙수가 달달하고 시원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들이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게 잘못인가요? 모든 사람이 팥빙수를 사랑해야 하나요? 노래 가사가 팥빙수를 사랑한다고 외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노래 가사를 따라야 하나요?
이 주장이 타당한가요? 팥빙수가 달달하고 시원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팥빙수를 100% 필연적으로 좋아해야 하나요? 모든 사람이 팥빙수를 좋아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들이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이 잘못인가요? 만약 이웃집 영희가 팥빙수를 좋아하고, 옆동네 철수가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팥빙수가 훌륭한 음식 문화이기 때문에, 옆동네 철수보다 이웃집 영희가 우월한 문명인이 되나요? "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이 노래 가사가 절대적인 법칙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음식) 문화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팥빙수는 (음식) 문화에 속합니다. 문화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문화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왜 문화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가요? 문화가 근본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생명체입니다. 이웃집 영희와 옆동네 철수는 생명체입니다. 아랫집 수진과 뒷동네 말자 할머니는 인간, 생명체입니다. 마가렛 캐번디시와 올랭프 드 구주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인간, 생명체입니다. 이 사람들을 비롯해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생명체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는 영양분을 섭취하고 육체를 유지합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인간이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굶어죽을 겁니다. 만약 인간이 굶어죽기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뭔가를 먹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육체를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존재하기 원한다면, 인간은 뭔가를 먹어야 합니다. 인간이 뭔가를 먹기 때문에, 인간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이건 필연적이고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법칙입니다. 이 현상, 신진대사(물질대사)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 현상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뭔가를 필연적으로 먹고 영양분을 필연적으로 섭취합니다. 필연적인 현상은 과학입니다.
예외 없이, 모든 살아있는 인간에게 신진대사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이건 과학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먹거리는 필수적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먹거리가 필연적이고 필수적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팥빙수를 먹어야 하나요? 팥빙수가 음식이고, 모든 인간이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팥빙수를 필연적으로 먹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옆동네 철수가 팥빙수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옆동네 철수는 다른 음식들을 먹고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비록 옆동네 철수가 팥빙수를 싫어한다고 해도, 옆동네 철수는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존재하기 위해 인간에게 먹거리는 필수적입니다. 인간 존재에게 먹거리는 필연입니다. 이건 과학입니다. 반면, 비록 인간이 팥빙수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은 다른 음식들을 먹고 영양분을 얼마든지 섭취합니다. 팥빙수는 필연이 아닙니다. 팥빙수는 그저 취향에 불과합니다. 팥빙수 없이, 인간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에, 팥빙수는 근본이 아닙니다. 이웃집 영희가 팥빙수를 좋아하든, 옆동네 철수가 팥빙수를 싫어하든, 팥빙수 없이, 인간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음식) 문화는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팥빙수가 맛있다고 해도, 이건 상대적입니다.
옆동네 철수가 팥빙수를 싫어할 수 있는 것처럼, 문화는 주관적입니다.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팥빙수)보다 주체(옆동네 철수)입니다. 주체로서 옆동네 철수는 대상(팥빙수)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문화와 달리, 과학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옆동네 철수가 신진대사를 거부하기 원한다고 해도, 만약 옆동네 철수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옆동네 철수는 굶어죽을 겁니다. 만약 옆동네 철수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옆동네 철수가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학은 근본적입니다. 과학과 달리, 문화가 예외를 인정하기 때문에, 문화는 필연이 아닙니다.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 때문에, 문화 그 자체는 필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화 그 자체가 필연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문화 현상들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이웃집 영희가 팥빙수를 좋아하든, 옆동네 철수가 팥빙수를 싫어하든, 두 사람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문화 현상들은 절대적이지 않고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문화 현상이 절대적이고 고정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이 사람이 문화 상대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독재자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절대적이고 고정적이고 필연적인 문화는 억압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단 음식 문화만 아니라 다른 문화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은 문화입니다. 회화, 소설, 연극, 애니메이션, 조각, 노래, 연주 같은 것들은 문화입니다. 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이 예술을 포함하기 때문에, 적어도 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이 예술과 교집합을 형성하기 때문에, 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은 예술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회화, 소설, 노래, 연주 같은 예술들이 문화이고, 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이 예술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 역시 예술 문화에 속합니다. 팥빙수 같은 음식 문화가 상대적인 것처럼, 예술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예술은 절대적이지 않고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인류 문화가 예술을 보편적으로 만드는 것처럼, 예술 그 자체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지 모르나, 구체적인 예술들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수잔 발라동은 뛰어난 화가입니다. 수잔 발라동 그림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입니다. 모든 사람이 수잔 발라동 그림을 좋아해야 하나요? 이게 절대적인 법칙인가요? 만약 어떤 사람들이 수잔 발라동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이 야만인이 되나요?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가요? 이 물음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예술은 상대적입니다.
예술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비록 어떤 사람들이 수잔 발라동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그저 취향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취향들을 존중합니다. 취향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구체적인 취향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건 억압이 될 겁니다. 만약 우리가 특정한 문화가 필연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문화 독재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문화에 속합니다. 장르 명칭과 달리,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예외를 인정합니다. 이건 절대적인 법칙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굶어죽을 겁니다. 사람들이 굶어죽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망할 겁니다. 이건 절대적인 법칙입니다. 이 법칙에서 그 어떤 문명도 예외가 아닙니다. 극지 마을부터 아라비아 거대 도시까지, 모든 문명은 이 법칙을 인정합니다. 반면, 사이언스 픽션은 법칙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 없이, 인류 문명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 없이, 인류 문명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예외를 인정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보다 문화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문화(예술)는 상대적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절대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이 장르가 절대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사이언스 픽션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좋아하지 않나요? 대답은 긍정적입니다. 남한에서 <스타크래프트>는 국민 게임입니다. 1편과 달리, 비록 2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해도, <스타크래프트 2>는 유명한 게임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합니다. 이게 국민 게임이기 때문에, 이건 남한 사람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우주 전투기는 SF 설정입니다. 절지류 외계인은 SF 설정입니다. 초능력 역시 SF 설정입니다. 이것들이 SF 설정이기 때문에, 만약 어떤 문화가 이것들을 표현한다면, 이 문화는 사이언스 픽션일 겁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우주 전투기, 절지류 외계인, 초능력을 포함합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SF 설정들은 핵심 비중을 차지합니다. SF 설정들이 핵심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사이언스 픽션이고, 남한 사람들이 이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남한 사람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주장에 반대할 겁니다. "아니, 뭐야? <스타크래프트>는 진짜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야! 진짜 사이언스 픽션은 하드 SF 소설들이야! 남한 사회에서 하드 SF 소설들은 유행하지 않아! 남한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하지 않아!"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남한 문화가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겁니다. 어떤 관점에서 이건 사실입니다. 남한 문화는 하드 SF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드 SF 소설들이 SF 장르에 속하고, 남한 문화가 하드 SF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남한 문화가 SF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사이언스 픽션이고, 남한 문화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남한 문화가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가 '진짜 SF'가 아니라고 반박할지 모르나, 만약 <스타크래프트>가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면,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스타크래프트>가 사이언스 픽션이 아닌가요? 이 비디오 게임에서 우주 전투기, 절지류 외계인, 초능력은 핵심 비중을 차지하나, 왜 이 게임이 SF가 아닌가요? 이 게임이 과학 기술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이 과학 기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나요? 사이언스 픽션에게 이게 의무인가요? 예외 없이, 모든 사이언스 픽션이 과학을 필연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나요? 이게 절대적인 법칙인가요? 만약 이게 절대적인 법칙이라면, 누가 이 법칙을 결정했나요? 어떤 사람이 이 법칙을 결정했을 때, 이 사람에게 법칙을 결정하기 위한 권위가 있었나요? 만약 이 사람에게 권위가 있었다면, 누가 권위를 부여했나요? 어떻게 이 사람이 권위를 얻었나요? SF 팬들이 SF 교황을 떠받들어야 하나요? SF 교황이 절대적인 권위를 휘두르고 오소독스를 규정하나요?
아니,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문화에 속합니다. 장르 명칭과 달리,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보다 문화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문화이고, 문화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상대적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오소독스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이 오소독스하다고 해도, 이 오소독스는 판타지를 포함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가 사이언스 픽션보다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주장하는지 모르나, 마가렛 캐번디시가 <불타는 세계>를 썼을 때, 이미 사이언스 픽션은 판타지를 포함했습니다.
<불타는 세계>는 원형적인 SF 문학이 판타지를 포함했다고 증명합니다. 이미 원형적인 SF 문학이 판타지를 포함했기 때문에, 이건 전통이 되고, 오소독스한 사이언스 픽션은 사이언스 판타지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은 타당합니다. 이 해석은 논리적인 근거(마가렛 캐번디시와 <불타는 세계>)를 제시합니다. 이 해석이 타당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오소독스한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고, 비록 <스타크래프트>가 사이언스 판타지라고 해도, <스타크래프트>는 오소독스한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국내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아주 유명합니다.
국내에서 <스타크래프트>가 아주 유명하고, <스타크래프트>가 오소독스한 사이언스 픽션이기 때문에, 이건 국내 문화가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오직 하드 SF 소설들만 진짜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아, 네, 좋습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는 엉터리 가짜 사이언스 픽션이고, 하드 SF 소설들은 진짜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남한 문화가 진짜 사이언스 픽션을 필연적으로 좋아해야 하나요? 남한 사회에서 진짜 사이언스 픽션(하드 SF 소설들)이 필연적으로 유행해야 하나요? 이게 법칙인가요?
남한 문화는 하드 SF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한 문화에서 하드 SF 소설들은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답들은 다양합니다. 흔한 농담처럼, 단군 이후, 언제나 출판사들이 불황이고, 하드 SF 소설들이 출판 서적이기 때문에, 하드 SF 소설들은 인기를 끌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20세기 초반 제국주의부터 20세기 후반 군사 정부까지, 남한 사회가 온갖 독재들을 겪었기 때문에, 하드 SF 소설들은 발달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남한 사회가 급속한 자본주의를 거쳤기 때문에, 하드 SF 소설들은 뒷전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하이텔 소설, 천리안 소설 같은 인터넷 장르 소설이 발달하는 동안, 중세 유럽 판타지가 유행했기 때문에, 중세 판타지 인기는 하드 SF 인기를 흡수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유는 다른 것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이유가 되는지 모르고, 아니면 몇몇 원인이 결합했고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모릅니다. 문화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왜 남한 문화에서 하드 SF 소설들이 발달하지 않았는지 밝히기는 다소 어려울지 모릅니다. 문학 해석에게 정답이 없는 것처럼, 문화 분석, SF 소설 분석에게도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유들이 무엇이든, 국내 문화에서 하드 SF 소설들이 필연적으로 발달해야 하나요? 만약 남한 사람들이 하드 SF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남한 사람들이 야만인이 되나요? 야만인보다 문명인이 되기 위해 남한 사람들이 하드 SF 소설들을 필연적으로 읽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옆동네 철수가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옆동네 철수가 야만인이 아닌 것처럼, 비록 남한 사람들이 하드 SF 소설들을 별로 읽지 않는다고 해도, 남한 사람들은 야만인이 아닙니다. 하드 SF 소설들이 발달하든, 발달하지 않든, 하드 SF 소설들은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SF 생산 조건이 진보한 과학이기 때문에, 진보한 근대 사회에서 SF 그 자체는 필연인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진보한 사회에서 사이언스 픽션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SF 그 자체가 필연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SF 문화들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특정한 SF 문화(하드 SF)가 발달했기 때문에, 모든 근대 사회가 이 SF 문화를 똑같이 따라가야 하나요? 이게 절대적인 법칙인가요? "오직 특정한 SF 문화, 하드 SF 소설들만 진짜 SF이다." 이 주장이 타당한가요? 아니, 오히려 이건 오만방자한 문화 독재입니다.
남한 문화가 하드 SF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남한 사회에서 하드 SF 소설들이 인기를 끌지 못하기 때문에, 국내 하드 SF 작가들은 고군분투합니다. SF 평론가가 이것을 가장 중시해야 하나요? SF 평론가에게 하드 SF 소설들이 가장 중요한 작업인가요? 만약 구체적인 SF 문화들이 다양하다면, 왜 하드 SF 소설들이 가장 중요한 작업인가요? 왜 사이언스 판타지 게임이 중요한 작업이 아닌가요? 이미 사이언스 판타지 게임은 대중적이나, 왜 이게 중요하지 않은가요? 사이언스 판타지 게임이 불가촉 천민 계집이고, 하드 SF느님께서 너무 고매하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하드 SF 소설들이 과학을 진지하게 고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하드 SF 소설들이 과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인가요? 아니, 잠깐. '과학'이 무엇인가요? 이게 무엇을 가리키나요? 서구 사회에서 과학은 비롯했습니다. 과학은 서구 관념입니다. 비단 과학만 아니라 계몽, 진보, 근대 같은 관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학, 계몽, 진보, 근대는 함께 움직입니다. 이것들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이것들은 비롯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학, 계몽, 진보, 근대를 논의하고 고민하는 동안, 우리는 서구 사회를 주목합니다.
우리가 서구 사회를 주목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지역들이 그저 주변에 불과하다고 무시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서구 사회를 주목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구 중심주의에 빠질지 모릅니다. 서구 사회는 비단 과학, 계몽, 진보, 근대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만들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자본주의를 믿습니다. 서구 사회가 자본주의를 만들었고, 우리가 자본주의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서구 사회를 믿습니다. 서구 중심주의는 지배적인 관념입니다. 아무리 서구 중심주의가 악랄하다고 해도, 남한 사회는 이것을 열심히 떠받듭니다.
아무리 서구 중심주의가 끔찍한 식민지 수탈과 열대 밀림 파괴를 정당화한다고 해도, 남한 사회는 지리상의 발견, 신항로 개척, 대항해 시대 같은 단어들을 덧붙이고 악랄한 제국주의를 떠받듭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과학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나요? 아니, 심지어 하드 SF 독자들조차 서구 중심주의를 정당화합니다. 하드 SF 소설은 문화이나, 식민지 수탈과 열대 밀림 파괴는 문화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과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원한다면, 하드 SF 소설보다 제국주의 반대는 훨씬 근본적입니다. 하드 SF 소설은 제국주의 반대를 필연적으로 보장하지 않습니다.
SF 독자들은 로버트 하인라인이 엉터리 SF 작가라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짜 SF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이 제국주의에 열심히 반대하나요? 아니, 오히려 로버트 하인라인은 제국주의를 정당화합니다. 차이나 미에빌과 노라 제미신은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가 진짜 SF가 아니기 때문에, 차이나 미에빌과 노라 제미신은 진짜 SF 작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두 작가는 제국주의에 열정적으로 반대합니다. 로버트 하인라인과 차이나 미에빌과 노라 제미신은 진짜 SF 작가와 제국주의 반대가 필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이 문장이 무엇을 뜻하나요? 어떻게 우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나요? 어떤 관점이 올바른 관점인가요? 이른바 SF 전문가들이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나요? 만약 어떤 SF 작가나 어떤 SF 평론가가 특정한 관점을 제시한다면, 이게 올바른 관점인가요? 만약 아주 유명한 SF 편집자가 백인 남자 주인공들을 늘어놓는다면, 이게 사이언스 픽션을 바라보기 위한 올바른 관점이 되나요? 흑인 여자보다 백인 남자가 과학자와 어울리기 때문에, 유명한 SF 편집자가 백인 남자 과학자를 제시해야 하나요?
기후 변화는 아주 심각한 과학 문제입니다. 심지어 이건 가장 심각한 문제인지 모릅니다. 녹색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를 왜곡합니다. 기후 변화가 아주(가장) 심각한 과학 문제이고, 녹색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를 왜곡하기 때문에, 만약 하드 SF 독자가 녹색 자본주의에 찬성한다면, 이건 과학적인 사고 방식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그래서 하드 SF 독자가 녹색 자본주의에 100% 필연적으로 반대하나요? 아니, 오히려 하드 SF 독자는 녹색 자본주의에 찬성하고 기후 변화 문제를 왜곡할지 모릅니다. 고매하신 하드 SF느님께서는 헛소리에 찬성할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드 SF 소설이 SF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사이언스 판타지가 SF 정수보다 SF 주변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드 SF 소설이 빛나는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에, 저는 국내 문화에서 하드 SF 소설들이 유행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드 SF 소설들이 빛나는 정수라고 해도, 모든 SF 문화가 오직 이것만 따라가야 하나요? 오직 이것만 진리가 되나요? 오직 하드 SF 소설들에서만 진지한 과학 논의가 비롯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문화에서 대상보다 주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하드 SF 소설은 주체보다 대상입니다.
비록 게임 플레이어가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 같은 4X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해도, 대상(스페이스 오페라 게임)보다 주체(게임 플레이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과학 기술을 진지하게 고민할지 모릅니다. 문화(하드 SF 소설)에 상관없이, 건강한 사회에서 주체는 과학 기술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는 진지한 과학 논의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만약 오직 특정한 문화, 하드 SF 소설에서만 진지한 과학 논의가 비롯한다면, 이 사회는 병든 사회일 겁니다. 이건 하드 SF 소설들에게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드 SF 소설들은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도울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드 SF 소설들은 진지한 과학 문화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진지한 과학 문화를 형성하기 원한다면, 하드 SF 소설들은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드 SF 소설들에서 진지한 과학 문화가 비롯한다고 해도, 이건 필연보다 개연입니다. 아무리 하드 SF 소설들이 진지한 과학 논의를 뒷받침한다고 해도, 하드 SF 소설들은 필연성보다 개연성을 확보합니다. 문화가 주관적이기 때문에, 문화는 필연성에 닿지 못합니다. 문화는 개연성을 확보합니다. 문화에게 이건 최선입니다.
진짜 SF 작가가 제국주의 반대를 필연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남한 사회에서 고매하시고 훌륭하신 하드 SF 소설느님들께서 발달하신다고 해도, 남한 문화는 과학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문화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보다 근본적인 것을 중시할 때, 우리는 과학을 진지하게 고민할 겁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하드 SF 소설들을 주구장창 떠든다고 해도, 이건 그저 하드 SF 우월론에 불과합니다. 하드 SF 우월론을 주구장창 떠들기보다 달달하고 시원한 팥빙수를 먹기는 훨씬 나을 겁니다.
※ 게임 <스타크래프트 2> 스크린샷 출처: streel ga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