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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석조 하늘>, SF 장르와 세계 창조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석조 하늘>, SF 장르와 세계 창조

OneTiger 2020. 12. 4. 20:00



이 게임 스크린샷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묘사합니다. 왜 이게 스페이스 오페라인가요? 이 스크린샷이 외계 행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스크린샷에서 녹색 독기는 대지 위를 흐르고, 곰팡이 삼림은 울창하게 자라고, 기이한 벌레들은 구멍들을 들락거리고, 기괴한 노란 구근은 불쑥 솟았고, 황금색 파락사이트는 찬란하게 빛납니다. 이것들은 외계 행성 풍경입니다. 그래서 이 스크린샷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울창한 곰팡이 삼림부터 찬란한 황금색 파락사이트까지, 현실에서 이것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이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들은 비(非)현실 설정입니다.

 

이 스크린샷은 보여주지 않으나, 어딘가에서 부유석은 둥실둥실 떠있고, 제노매스는 질척거리고, 외계 석유는 뭉클거리고, 공성 벌레는 땅굴을 팝니다. 부유석과 제노매스와 외계 석유와 공성 벌레는 외계 행성에 속합니다. 부유석부터 공성 벌레까지, 스페이스 오페라는 비현실 설정입니다.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절대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유석과 공성 벌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비현실 설정을 좋아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사람들이 비현실 설정을 좋아하나요? 어쩌면 '세계 창조'는 대답이 되는지 모릅니다.



고대 신화에서 세계 창조는 주된 소재입니다. 여러 고대 신화들은 세계 창조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고대 신화들은 어떻게 세계가 나타났는지 설명합니다. 세계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인류 문화는 신화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신에게는 여러 능력들이 있으나, 가장 위대한 능력은 세계 창조입니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은 신을 숭배합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종교는 힘을 잃었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세계 창조가 엄청난 로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창조신을 숭배하고, 세계 창조가 엄청난 로망이기 때문에, 만약 인간이 세계를 창조한다면, 이건 엄청난 로망을 충족할 겁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비록 종교가 힘을 잃었다고 해도, 여전히 신은 가장 로망스러운 단어입니다. 그래서 SF 장르에서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신을 언급합니다. "우하하, 나는 신이 되었다!"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풍자하는 것처럼, 만약 인간이 세계를 창조한다면, 인간은 신에게 가까워질지 모릅니다. 어떻게 인간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나요? 예술은 좋은 대답입니다. 만약 작가가 소설을 쓴다면, 작가는 소설 속의 세계를 창조할 겁니다. 작가가 소설 속의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에, 작가는 신에게 가까워집니다. (비단 소설만 아니라 다른 예술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가장 위대한 로망이고, 가장 위대한 로망이 창조자이고, 인간이 창조자를 모방하기 원하기 때문에, 작가는 소설을 쓰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소설 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인간이 세계를 창조하기 원하기 때문에, 작가는 소설을 쓰는지 모릅니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는 궁극적인 기원을 모방할 수 있고, 아무리 소설 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작가는 소설을 놓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이건 모든 소설 작가가 창조신을 꿈꾼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 작가가 소설을 쓰기 원하나요? 대답들은 다양합니다. 세계 창조는 유일한 대답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계 창조는 로망입니다.

 

분명히 세계 창조는 로망입니다. 세계 창조가 로망이기 때문에, 이건 소설을 쓰기 위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세계 창조가 소설을 쓰기 위한 이유이고, 이 이유가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면, 이 지점에서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은 훨씬 커다란 로망일 겁니다. 주류 문학 작가보다 SF 소설 작가가 창조신에게 훨씬 가깝기 때문입니다. 박상영 작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주류 문학입니다. 비록 <대도시의 사랑법>이 주류 문학보다 퀴어 문학이라고 해도, 이 소설은 부유석과 공성 벌레 같은 비현실 설정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반면, <석조 하늘>은 SF 소설입니다.



노라 제미신은 SF 작가입니다. 여기에서 'SF'는 사이언스 픽션을 가리키거나 사이언스 판타지를 가리킵니다. <석조 하늘>은 사이언스 픽션보다 사이언스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석조 하늘>이 너무 아득하고 놀라운 세계 설정들을 묘사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보다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SF'가 사이언스 픽션을 가리키든, 사이언스 판타지를 가리키든, 분명히 <석조 하늘>은 비현실 설정을 묘사합니다. 커쿠사부터 코어 포인트까지, 온갖 비현실 설정들은 <석조 하늘>을 구성합니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석조 하늘>에서 비현실 설정은 가장 커다란 차이입니다.

 

박상영 작가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썼기 때문에, 박상영 작가는 <대도시의 사랑법> 속의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의 세계와 현실은 너무 비슷합니다. 소설 속의 세계와 현실이 가깝기 때문에, 박상영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상영 작가는 현실을 모방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속의 세계는 창조보다 모방에 가깝습니다. 노라 제미신은 <석조 하늘> 속의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달리, <석조 하늘> 속의 세계와 현실은 아주 다릅니다. <석조 하늘>은 살아있는 나무 건물, 생체 건물을 보여줍니다. 이건 비현실 설정입니다.



현실에서 생체 건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수많은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으나, 우리는 이 건물들이 살아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건물들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건물들은 죽은 것입니다. 반면, <석조 하늘>은 생체 건물을 묘사합니다. 건물은 살아있습니다. 심지어 건물 발코니에서 인간이 추락한다면, 건물은 덩굴을 뻗고 인간을 안전하게 붙잡을 수 있습니다. 건물이 살아있기 때문에, 이 건물은 왕성한 생명력을 뿜고, 이 생명력은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동력이 됩니다. 생체 건물들이 도시를 구성하고, 생체 건물들이 생명력들을 뿜기 때문에, 도시는 왕성한 동력을 얻습니다.

 

현실에서 생체 도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석조 하늘> 속의 세계와 현실은 아주 다릅니다. <석조 하늘> 속의 세계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박상영 작가는 현실을 모방했으나, 노라 제미신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박상영 작가와 노라 제미신은 다릅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속의 세계는 모방에 가까우나, <석조 하늘> 속의 세계는 새로운 세계이고, 박상영 작가보다 노라 제미신은 창조자와 훨씬 비슷합니다. 이건 노라 제미신이 현실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박상영 작가처럼, 노라 제미신은 현실을 모방했습니다. 모든 소설 작가는 현실을 필연적으로 모방합니다.



아무리 소설 작가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해도, 오직 현실에서만 소설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합니다. 아무리 노라 제미신이 기발한 생체 건물을 창조한다고 해도, 오직 현실에서만 노라 제미신은 창조합니다. 현실에서 노라 제미신은 절대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노라 제미신이 노력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합니다. 노라 제미신은 노동자입니다. 동시에 노라 제미신은 흑인, 여자입니다. 노동자, 흑인, 여자로서 노라 제미신은 3중 약자입니다. 계급, 인종, 성별에서 노라 제미신은 너무 불리합니다. 그래서 휴고상 수상 소감에서 노라 제미신은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노라 제미신이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노라 제미신은 3중 약자입니다. 차이나 미에빌 같은 SF 작가보다 노라 제미신은 너무 너무 불리합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백인, 남자입니다. 아무리 SF 독자들이 옥타비아 버틀러를 그랜드 데임이라고 칭송한다고 해도, 오랜 동안, 백인 남자들은 SF 장르를 장악했습니다. 아직 이 나쁜 관습이 완전히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휴고상 수상 소감에서 노라 제미신은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아직 이 나쁜 관습이 완전히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이나 미에빌보다 노라 제미신은 불리합니다. 현실은 부당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라 제미신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은 너무 너무 부당해! 자본주의 사회는 흑인 여자를 너무 차별해! 현실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벗어날 거야!" 아무리 이렇게 노라 제미신이 원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노라 제미신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이 정당하든, 부당하든, 현실에서 노라 제미신은 살아갑니다. 비단 노라 제미신만 아니라 다른 많고 많은 소설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에서 소설 작가가 살아가기 때문에, 현실에서 소설 작가가 절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소설 작가는 현실을 필연적으로 반영합니다. 아무리 소설 작가가 생체 건물을 창조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소설 작가는 생체 건물을 창조합니다.

 

아무리 소설 작가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소설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합니다. 소설 작가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동안, 소설 작가는 현실을 필연적으로 모방합니다. 박상영 작가처럼, 노라 제미신은 현실을 모방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박상영 작가보다 노라 제미신은 훨~~씬 새롭고 기발한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특히, 소설 주인공이 오로진이기 때문에, <석조 하늘>에서 '세계 창조'는 훨씬 돋보입니다. 행성은 세계입니다. 세계는 다양한 것들을 가리키나, 행성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행성이 세계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오로진은 행성과 맞닿습니다.



오로진은 행성 정수와 맞닿습니다. 오로진은 세계와 맞닿습니다. 그래서 오로진은 독특합니다. SF 장르에서 초인들은 넘치고 넘칩니다. <인간을 넘어서>부터 <아이언맨>까지, SF 장르는 많고 많은 초인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이 초인들은 행성 정수와 맞닿지 않습니다. 오로진이 행성(세계)과 맞닿기 때문에, 오로진은 어떻게 세계가 시작하고, 바뀌고, 망하고, 다시 시작하는지 고민합니다. 오로진은 행성이 무엇인지 파악합니다. 반면, 많고 많은 초인들은 행성, 세계에 닿지 않습니다. 많고 많은 초인들은 그저 초능력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래서 많고 많은 초인들과 오로진은 아주 다릅니다.

 

오로진이 행성(세계)과 맞닿기 때문에, 오로진이 어떻게 세계가 시작하고, 바뀌고, 망하고, 다시 시작하는지 고민하기 때문에, 오로진은 '세계 창조'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석조 하늘> 홍보 문구는 세계 창조와 멸망을 언급합니다. 비단 <석조 하늘>만 아니라 <다섯 번째 계절>과 <오벨리스크의 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오로진이 조산술과 생명력 마법을 결합하기 때문에, 오로진은 복원하고 치유할 수 있고, 부서진 세계에게 복원과 치유는 필수적입니다. 오로진이 부서진 세계(행성)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석조 하늘>에서 '세계 창조'는 훨씬 돋보입니다. 이건 행성급 감동입니다.



오로진이 행성과 맞닿기 때문에, <석조 하늘>은 행성급 감동을 선사합니다. <석조 하늘>과 달리, <대도시의 사랑법>은 행성급 감동을 선사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이 세계 창조를 강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진이 비현실 설정(조산술 초인)이기 때문에, <석조 하늘>은 세계 창조를 부각합니다. 비단 <석조 하늘>만 아니라 다른 사이언스 픽션(판타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명: 비욘드 어스>는 조산술 초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욘드 어스> 속의 세계와 현실은 다릅니다. 부유석부터 공성 벌레까지, <비욘드 어스> 속의 세계와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이건 모방이 아닙니다.

 

적어도 <대도시의 사랑법>보다 <비욘드 어스>는 모방이 아닙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속의 세계와 현실이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대도시의 사랑법>은 모방에 가깝습니다. 반면, 부유석부터 공성 벌레까지, <비욘드 어스>가 비현실 설정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세계는 새롭고 기발합니다. 새롭고 기발한 세계는 모방보다 창조에 가깝습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조화 친화도를 선택한다면, <석조 하늘>처럼, 조화 친화도는 행성 정수에 맞닿을지 모릅니다. <석조 하늘>처럼, 조화 친화도는 세계 창조를 부각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보다 <비욘드 어스>는 창조에 가깝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보다 <비욘드 어스>가 창조에 가까운 것처럼, 비현실 설정은 창조에 가깝습니다. 비현실 설정이 창조에 가깝기 때문에, 이건 훨씬 뛰어난 로망입니다. 박상영 작가보다 노라 제미신은 훨씬 뛰어난 로망을 충족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스페이스 오페라, 사이언스 판타지, 비현실 설정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이건 사이언스 판타지에게 오직 세계 창조 로망만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에게는 다른 여러 미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미덕들 중에서 세계 창조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지 모릅니다. 창조신, 세계 창조가 가장 위대한 로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이언스 판타지가 새로운 세계를 묘사하기 때문에, 지배적인 관념에서 사이언스 판타지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세계화 자본주의는 지배적입니다. 지배적인 자본주의는 지배적인 관념을 세뇌합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세뇌하고, 사람들은 자본주의에게 충성충성~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열대 밀림을 파괴하고, 온실 가스를 내뿜고, 여섯 번째 멸종에 다가간다고 해도,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충성충성~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가 새로운 세계를 묘사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배적인 관념에서 사이언스 판타지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판타지는 저항과 해방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건 사이언스 판타지가 저항과 해방을 필연적으로 추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노라 제미신이 <석조 하늘>을 썼던 것처럼, 현실에서 사이언스 판타지는 비롯합니다. 현실에서 사이언스 판타지가 비롯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지배적인 관념을 반영할지 모릅니다. 솔직히 많은 사이언스 판타지들은 저항과 해방을 추구하기보다 지배적인 관념에 충성충성~합니다.

 

애석하게도 저항과 해방은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판타지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정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게 필연적인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저항하기 위한 가능성이 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에게는 가능성, 잠재력이 있습니다. 만약 SF 작가가 이것을 의식한다면, 사이언스 판타지에서 가능성, 잠재력은 훨씬 커질 겁니다.



세계라는 단어는 다양한 개념들을 가리키고, 생물권 역시 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생물권은 우리를 둘러쌌습니다. 생물권에서 우리는 진화(비롯)했습니다. 생물권이 풍요롭기 때문에, 우리는 곡물을 키우고, 열매를 따고, 버섯을 줍고, 꿀벌을 칩니다. 생물권은 세계입니다. 바이오 돔은 인공 생물권입니다. 바이오 돔은 인공 세계입니다. 만약 개척 과학자들이 바이오 돔을 건설한다면, 이건 세계 창조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개척 과학자들은 세계(바이오 돔)를 창조(건설)합니다. 바이오 돔 건설과 세계 창조는 비슷한 위상입니다.

 

세계 창조가 로망이기 때문에, 바이오 돔 건설은 로망입니다. 바이오 돔 건설이 로망이기 때문에, SF 생태학은 로망입니다. 블로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SF 생태주의>는 SF 생태학을 덕질합니다. 이 블로그는 로망을 덕질합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매력적입니다. 국내 SF 문화에서 여러 작가들, 평론가들, 독자들보다 이 블로그가 SF 생태학을 훨씬 덕질하기 때문에, 이 블로그는 훨씬 매력적인지 모릅니다. 오오~.

 

 

※ SF/판타지는 세계 설정(world setting, world building)을 중시합니다. SF/판타지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부유석과 공성 벌레처럼, 커쿠사와 코어 포인트처럼, 새로운 세계에는 고유한 세계 설정이 있습니다. 세계 설정은 물리 법칙, 기후와 지리, 생물 다양성, 문명과 역사, 문화와 언어 같은 것들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이것들을 세계관이라고 부릅니다. 흠, 세계관…. 세계관이 올바른 용어인가요? 세계관은 물리 법칙이 아닙니다. 세계관은 기후와 지리가 아니고, 생물 다양성이 아니고, 문명과 역사가 아니고, 문화와 언어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세계관(世界觀)은 세계를 바라보기 위한 관점을 가리킵니다. "주디스 오어는 자본주의 사회가 성 차별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 문구는 주디스 오어의 세계관을 가리킵니다. 주디스 오어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성 차별 사회이기 때문에, 이 세계관은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유석과 공성 벌레는 관점이 아니고 사상이 아닙니다. 커쿠사와 코어 포인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세계관보다 세계 설정은 훨씬 올바른 용어입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건 오직 SF/판타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자친구 세계관과 투바투 세계관은 이어진다. <BOF>와 <뮤직뱅크>에서 여자친구와 투바투는 똑같은 무대 배경을 설정한 적이 있다. 이건 여자친구 세계관과 투바투 세계관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만약 여자친구 후배 그룹이 데뷔한다면, 여자친구와 투바투처럼, 여자친구 후배 그룹은 세계관을 연결할지 모른다." 이렇게 비단 SF/판타지 팬덤만 아니라 아이돌 팬덤 역시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저는 세계관이 잘못된 용어라고 생각하나, 이미 세계관이 익숙한 용어이기 때문에, 이것을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를 고치기가 어려운 것처럼. 



※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 스크린샷 출처: Cousken,

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33808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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