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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섀도우런>의 임금 노예와 취직 문제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섀도우런>의 임금 노예와 취직 문제

OneTiger 2018. 3. 4. 07:08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한다면, SF 창작물은 임금 노예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까요.]



롤플레잉 게임 <섀도우런>은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와 검마 판타지를 종합한 게임입니다. 일반적인 배경 설정은 흔한 사이버펑크와 비슷하나, 이 게임에는 엘프들이나 트롤들이 있고, 오래된 드래곤들이 있고, 마법사들이나 주술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대 기업들이 지배하는 메트로폴리스에서 사이버웨어를 장착한 엘프나 트롤이 기관단총이나 돌격 소총을 들고 로봇들이나 정령들과 싸울 수 있죠. 아마 누군가는 이런 설정이 독특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어요. 아마 누군가는 사이버펑크 장르를 검마 판타지에 억지로 집어넣었다고 비판할지 모르고요.


<섀도우런>의 절반은 사이버펑크이나, 절반은 <던전스 앤 드래곤스>와 비슷한 검마 판타지죠. SF 세상에서 이렇게 과학과 마법을 결합하는 방법은 별로 드물지 않습니다. 프랭크 허버트나 잭 밴스나 앤 맥카프리 같은 작가들은 어떻게 사이언스 픽션이 판타지를 만날 수 있는지 보여줬고요. 저는 <섀도우런>이 저런 작가들의 작품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섀도우런>은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니라 그저 사이버펑크일 뿐이죠. 대기업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휘두르는 암울한 세상입니다.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암울한 세상답게 <섀도우런>에는 임금 노예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임금 노예. 꽤나 사회주의적인 용어입니다. 게임 제작진이 이런 사실을 아는지 저는 좀 궁금하군요. 이미 19세기에 사회주의자들은 노예와 임금 노동자를 연결했습니다. 사회주의 철학에서 임금 노예는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했기 때문에 오랜 동안 소수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수탈했습니다. 생산 수단을 차지하기 못했기 때문에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에게 복종해야 했습니다.


임금 노동자 역시 다르지 않죠. 생산 수단이 없기 때문에 임금 노동자는 오직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 수 있을 뿐입니다. 임금 노동자는 스스로 먹고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임금 노동자는 그럴 수 있는 기반이 없습니다. 취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20세기에 취직은 아주 진부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취직을 이야기하고, 누구나 취직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왜 취직이 문제일까요. 왜 다들 취직을 이야기할까요. 왜 <섀도우런> 같은 진부한 사이버펑크 게임조차 임금 노예라는 용어를 들먹거릴까요.



취직은 자본가가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행위입니다. 자본가에게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임금을 벌기 위해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굴종해야 합니다. 노동하기 싫다고 해도, 노동자는 자본가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왜 노동자가 자본가의 명령에 따라야 할까요.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는 똑같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굽신거려야 할까요. 왜 자본가는 다른 인간을 지배할 권리가 있을까요. 누가 그런 권리를 부여했을까요. 정답은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가 탄생한 역사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런 권리가 수탈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자본가들은 막대한 토지를 소유했습니다. 만약 자본가들이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지 않았다면, 자본가들은 거기에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창고를 짓지 못했을 테고, 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하거나 상품들을 생산하지 못했겠죠. 그런 막대한 토지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45억 년 전에 지구가 탄생했을 때, 자본가들이 지구를 만들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토지를 만든 주인공은 자연 생태계입니다. 자본가들은 그걸 소유할 아무 근거가 없어요.



어쩌면 누군가는 자본가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다고 말할지 모르겠군요. 아, 그래요? 임금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지 않았나요? 21세기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으나, 19세기에 임금 노동자들은 정말 소모품이었습니다. 임금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기계에 잃었고, 더러운 작업 환경에서 떠나지 못했어요. 그렇게 죽도록 일하는 임금 노동자들이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흔히 우리는 부자들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자들은 그저 생산 수단을 차지했을 뿐입니다. 노예 주인이나 귀족이나 왕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막대한 토지를 차지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을 학살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뿐입니다. 유럽 백인들이 아메리카 부족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하지 못했겠죠. 자본가 역시 다르지 않아요. 부자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관념은 그저 추상적인 헛소리에 불과해요. 그래서 임금 노동자는 임금 노예가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추상적인 헛소리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당연히 자본가들이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임금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굴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세뇌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섀도우런>이 임금 노예라는 용어를 들먹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임 제작진은 임금 노예라는 용어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사실을 알까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섀도우런>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그저 흔한 디스토피아 설정을 따를 뿐입니다. 비단 <섀도우런>만 아니라 숱한 사이버펑크 작가들 역시 자본주의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죠. 다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굴종한다는 사실을 아주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제가 <섀도우런> 같은 사이언스 픽션을 자꾸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창작물들이 그런 지배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을 재생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섀도우런> 같은 창작물이 자본주의를 정말 제대로 분석하고 비판한다면, <섀도우런>을 플레이하는 숱한 게임 플레이어들은 자본주의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지 모릅니다. 하지만 SF 소설가들, 감독들, 게임 제작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음에도 그들은 함부로 미래 사회 운운하죠. 저는 그게 굉장히 무지한 만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닐 겁니다. 기득권들이 워낙 심하게 세뇌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완전히 보편적인 기본 소득 같은 개념이 더 널리 퍼져야 할 겁니다. 완전히 보편적인 기본 소득은 임금 노동자에게 힘을 보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섀도우런> 같은 디스토피아를 좀 더 우회할 수 있을지 모르죠. 정말 미래 사회 운운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숱한 SF 소설가들이나 게임 제작진들이 아니라) 완전한 기본 소득을 지지하는 녹색당 같은 사람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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