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생체 잠수정 소설과 계몽주의라는 우상 숭배 본문

감상, 분류, 규정/괴수들과 개조 생명체들

생체 잠수정 소설과 계몽주의라는 우상 숭배

OneTiger 2020. 9. 17. 20:07



만약 소설 속에서 해양 생태학자들이 생체 잠수정에 탑승하고 심해 환경을 연구한다면, 이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일 겁니다. 많은 소설 독자들은 이게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인정할 겁니다. 만약 소설 작가가 생체 개조 기술과 해양 생태학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면, 이건 하드 SF 소설일 겁니다. 왜 생체 잠수정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이 되나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비(非)현실 설정입니다. 현실에서 생체 잠수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 기술자들은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지 않고, 생태학자들은 생체 잠수정에 탑승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기술자들이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지 않기 때문에, 생체 잠수정은 비현실입니다. 생체 잠수정이 비현실이기 때문에, 생체 잠수정에게는 존재하기 위한 이유와 존재하기 위한 가능성이 필요합니다. 유전 공학 기술이 생체 잠수정을 건조할 수 있나요? 이게 가능한가요? 아무리 유전 공학이 빠르게 발달한다고 해도, 유전 공학 기술이 살아있는 부품들을 조립하고 잠수정을 건조할 수 있나요?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왜 유전 공학이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나요? 해양 생태학자들은 기계 잠수정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계 잠수정보다 생체 잠수정이 훨씬 나은가요?



만약 소설 작가가 생체 잠수정을 쓰기 원한다면, 소설 작가는 존재하기 위한 이유와 존재하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건 소설 작가가 이유와 가능성을 필연적으로 제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 하드 SF 소설들이 구체적인 설정들을 생략하는 것처럼, 소설 작가는 이유와 가능성을 생략하고 오직 생체 잠수정 그 자체만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소설 작가가 설정들을 생략한다고 해도, 유전 공학 기술은 생체 잠수정을 건조하고, 분명히 이건 사실입니다. 첨단 과학(유전 공학 기술)이 비현실(생체 잠수정)을 만들기 때문에,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됩니다.

 

생체 잠수정 소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두 가지 성립 조건을 요구합니다. 하나는 과학이고, 다른 하나는 비현실입니다. 만약 두 가지가 결합하지 않는다면,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못할 겁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은 첨단 과학입니다. 현실에서 국제 우주 정거장은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우주인들은 수경 재배를 실험하거나, 공중에서 토르티야 위에 이것저것(링크) 얹거나, <Space Oddity>를 노래합니다. 이건 현실입니다. 아무리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인이 기타를 열심히 연주한다고 해도,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다. 현실은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않습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과 달리, 만약 생체 잠수정 속에서 해양 생태학자가 토르티야에 으깬 콩을 두껍게 바르고 먹는다면,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될 겁니다. 만약 생체 잠수정 속에서 해양 생태학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파란빛을 눈 앞에 펼쳐 줘~ 저 바다 같이 날 더 시원하게 해 줘~ 부서지는 하얀 파도에~♬"라고 노래한다면, 현실에서 생체 잠수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될 겁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과 생체 잠수정이 다른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에서 비현실은 가장 중요한 성립 조건입니다. 하지만 비현실 설정은 사이언스 픽션을 혼자 구성하지 못합니다.

 

비디오 게임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 레비아탄은 튼튼한 갑주어(甲胄魚)입니다. 레비아탄은 아군 유닛들을 옮길 수 있습니다. 요나 이야기에서 고래가 요나를 옮기는 것처럼, 레비아탄은 생체 철갑 수송선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레비아탄이 이집트 유닛들을 태우고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면, 문자 그대로 레비아탄은 생체 (철갑) 잠수함이 될 수 있습니다. 레비아탄이 생체 잠수함이기 때문에, 레비아탄이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가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레비아탄은 신화에게 기반합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는 고대 신화 판타지입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 레비아탄이 신화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생체 잠수정과 달리, 레비아탄은 사이언스 픽션보다 (고대 신화) 판타지가 됩니다. 현실에서 생체 철갑 수송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레비아탄은 비현실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 비현실이 과학보다 신화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생체 잠수정과 달리, 레비아탄은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않습니다. 생체 잠수정과 레비아탄은 똑같은 비현실이나, 레비아탄이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비현실은 사이언스 픽션을 혼자 구성하지 못합니다. 비현실과 과학이 결합할 때,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됩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두 가지를 함께 요구합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은 과학이나, 이건 비현실이 아닙니다. 레비아탄은 비현실이나, 이건 과학에게 기반하지 않습니다. 만약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과학이 빠져나오고, 레비아탄에서 비현실이 빠져나오고, 과학과 비현실이 만난다면, 이건 사이언스 픽션이 될 겁니다. 생체 잠수정은 국제 우주 정거장과 다르고, 동시에 생체 잠수정은 레비아탄과 다릅니다. 생체 잠수정은 과학(유전 공학)과 비현실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은 대등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비현실보다 과학은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는 고대 신화들에게 기반합니다. 이 게임에서 거대 바다 거북은 이집트 신화에게 기반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신화를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 문화들은 비현실 문학을 이야기했습니다. 신화는 가장 유구하고 대표적인 비현실 문학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신화는 수많은 이야기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SF 소설은 비현실 문학이나, 비현실 문학 그 자체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많은 인류 문화들에서 신화는 가장 커다란 공통점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인류 문화에서 사변 장르(Speculative Fiction)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건 보편적입니다.

 

평론가들은 마가렛 캐번디시나 메리 셸리가 SF 소설 선구자라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17세기 마가렛 캐번디시와 19세기 메리 셸리가 <불타는 세계>와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전에, 이미 인류 문화들은 유구한 비현실 문학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비현실 문학이 유구한 전통이기 때문에, 아주 커다란 공통점으로서 비현실 문학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비현실 문학 그 자체를 내세우지 못합니다. 비현실 문학이라는 범주 속에서 사이언스 픽션과 고대 이집트 신화는 다르지 않습니다. 판타지가 고대 이집트 신화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하드 SF 소설이 생체 잠수정을 묘사하는 것처럼,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는 거대 바다 거북을 묘사합니다. 생체 잠수정과 거대 바다 거북은 다르지 않습니다. 양쪽은 똑같은 비현실 설정입니다. "아니, 뭐야? 나는 사이언스 픽션이야! 나는 판타지와 달라!" 만약 이렇게 사이언스 픽션이 자신을 내세우기 원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자신의 특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생체 잠수정은 비현실이나, 거대 바다 거북이 비현실이기 때문에, 비현실 그 자체는 SF 특성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을 강조합니다. "나는 첨단 과학 기술에게 기반해! 나는 판타지와 달라!"

 

오오, 그렇습니다. 생체 잠수정은 첨단 과학 기술(유전 공학 기술)에게 기반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유전 공학을 알지 못했습니다. 비단 고대 이집트만 아니라 고대 인류 문명들은 리보 핵산이 오탄당의 일종인 리보스를 기반으로 뉴클레오타이드를 이루는 핵산의 한 종류라고 알지 못했습니다. 리보 핵산은 하나의 나선이 길게 꼬인 구조를 보여주나, 고대 인류 문명들은 나선 구조가 지구 생명체를 구성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이른바 근대 문명에서 많은 사람들은 두 나선 구조가 지구 생명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나선 구조는 생명체 상징이 되었습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오릭스와 크레이크 (인간 종말 리포트)>를 썼습니다. 이 소설 표지 그림은 나선 구조를 보여줍니다. 왜 <오릭스와 크레이크> 표지 그림이 나선 구조를 보여주나요? 이 소설에서 개조 동물들이 핵심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생체 잠수정이 생체 개조 기술에게 기반하는 것처럼, <오릭스와 크레이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단 <오릭스와 크레이크>만 아니라 여러 바이오펑크 소설들에서 나선 구조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니치>의 표지 그림과 인터페이스 역시 나선 구조를 보여줍니다. 왜 <니치>의 인터페이스가 나선 구조를 보여주나요?

 

게임 플레이어가 유전 형질들을 결합하고 새로운 동물종을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비단 <니치>만 아니라 여러 생태계 시뮬레이션들에서 나선 구조는 인터페이스를 장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소설 작가가 생체 잠수정을 쓴다면, 이 소설 표지 그림은 나선 구조를 보여줄지 모릅니다. 만약 비디오 게임이 생체 잠수정을 묘사한다면, 이 비디오 게임 인터페이스는 나선 구조를 장식할지 모릅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 표지 그림처럼, 나선 구조는 지구 생명체를 상징할 수 있으나, 고대 인류 문명들은 리보 핵산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대 인류가 서구 근대화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구 근대화 이후, 진화 이론은 본격적인 자리를 잡았습니다.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가 "만약 우리가 진화에게 빛을 비추지 않는다면, 생물학에게는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진화 이론은 생물학에게 영향을 미쳤고, 20세기에서 유전 공학은 나타났습니다. 만약 서구 근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화 이론은 자리를 잡지 못했을 테고, 유전 공학 역시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생체 잠수정은 과학에게 기반하고, 과학은 서구 근대화에게 기반합니다. 결국 생체 잠수정, 사이언스 픽션은 서구 근대화에게 기반합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이 자신을 내세우기 원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보다 서구 근대화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서구 근대화의 전부가 아닙니다. 서구 근대화는 훨씬 폭넓습니다. 계몽주의는 오직 과학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계몽주의에서 자유 민주주의는 비롯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와 과학은 다릅니다. 생물학 교과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생물학 저널 <셀>은 존 로크와 자연 상태를 운운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셀>이 최고 생물학 저널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셀>이 자유 민주주의를 설명한다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생물학 교과서가 자유 민주주의를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계몽주의에서 과학은 전부가 아닙니다. 계몽주의는 서구 근대화에 속합니다. 그래서 과학은 서구 근대화의 전부가 아닙니다. 합리적인 사상 역시 계몽주의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신화와 종교를 비판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신이 합리적인 사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전근대적인 사람들과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종교에서 인간이 벗어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계몽주의에 속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계몽주의에 속하고, 계몽주의에서 과학이 비롯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을 응원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을 응원하는 것처럼, 서구 근대화에서 과학은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소설이 미래 마르크스주의 사회를 묘사한다면, 이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이 될 겁니다.

 

아직 현실에서 이상적인 마르크스주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비에트 연방과 다른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유 민주주의와 너무 처절하게 맞섰기 때문에, 그들은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20세기 초반 사건이나, 20세기 중반 자유 민주주의는 2차 세계 대전을 저질렀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 건설보다 끔찍한 세계 대전에게 치중해야 했고, 자유 민주주의가 개망나니 짓거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애석하게도 이상적인 마르크스주의 사회는 비현실입니다.



이상적인 마르크스주의 사회가 비현실이고, 동시에 마르크스주의가 계몽주의에게 속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소설이 미래 마르크스주의 사회를 묘사한다면, 이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이 될 겁니다. 생체 잠수정 소설이 SF 소설인 것처럼, 마르크스주의 소설은 SF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생체 잠수정 소설과 달리, 마르크스주의 소설은 하드 SF 소설이 아닐지 모르나, 생체 잠수정과 미래 마르크스주의 사회는 똑같은 SF 설정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이 되는 것처럼, 페미니즘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습니다. 생체 잠수정과 페미니즘 사회는 SF 설정입니다.

 

올랭프 드 구주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썼습니다. 이 선언문은 계몽주의에 속합니다. 이 선언문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이 계몽주의에 속하기 때문에, 미래 페미니즘 사회는 SF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올랭프 드 구주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에서 '사이언스'는 오직 과학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사이언스'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 계몽주의, 서구 근대화를 가리킵니다. 논리적인 사고 방식과 서구 근대화 때문에, 생체 잠수정은 거대 바다 거북보다 미래 페미니즘 사회에 훨씬 가깝습니다.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가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선을 묘사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우주선은 핵심 소재입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 계몽주의, 서구 근대화에서 우주선은 비롯했습니다. 고대 인류가 리보 핵산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고대 인류는 우주 항공 역학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대 신화들은 우주 항공 역학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가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 계몽주의, 서구 근대화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서구 근대화를 강조합니다.

 

"나는 판타지와 달라! 나는 거대 바다 거북과 달라! 나는 사이언스 픽션이야! 내가 서구 근대화에게 기반하기 때문이야!" 이렇게 생체 잠수정은 자신이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게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뚜렷한 특성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종교는 대립하는 것 같습니다. 근대 문화에서 종교는 맹목적인 믿음을 대표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합리성과 종교를 대조하고 종교를 조롱합니다. 종교가 무지몽매하고, 계몽주의가 합리적이기 때문에, 생체 잠수정은 종교를 비웃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정말 계몽주의가 합리적인가요? 누가 이것을 증명하나요?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비웃습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보다 계몽주의를 편듭니다. 하지만 계몽주의가 합리적인가요? 계몽주의가 합리적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오직 합리적인 인간만 계몽주의가 합리적이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로완 윌리엄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어떻게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스스로 증명하나요? 계몽주의에게 합리성은 전제가 되나, 이 합리성이 무엇에게 기반하나요? 이 지점에서 계몽주의는 치명적인 함정에 빠집니다. 계몽주의는 합리성에게 기반하나, 이 합리성은 공허합니다. 이 합리성은 뭔가에게 기반하지 않습니다.

 

이건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대 인류와 달리, 21세기 초반 고생물학자들은 스피노사우루스가 반수생 동물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고생물학자들이 반수생 거대 동물 스피노사우루스를 분석하는 것처럼, 분명히 합리적인 사고 방식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종종 합리적인 사고 방식은 함정에 빠집니다. 20세기 초반 백인들이 흑인들을 무시했을 때, 백인들은 이게 진화 생물학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흑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백인들은 진화 생물학,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내세웠습니다. 환경 오염을 부정하기 위해 기후 회의론자들 역시 계몽주의를 내세웁니다.



마리 루티는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 차별이 불편합니다>를 썼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합리적인 사고 방식, 계몽주의, 과학이 여자들을 차별하는지 설명합니다. 장 자크 루소가 에밀을 편들고 소피아를 차별하는 것처럼, 이미 예전부터 페미니즘은 계몽주의가 가부장적인 도구라고 비판했습니다. 페미니즘은 계몽주의에 속할 수 있으나, 계몽주의 내부에서 페미니즘과 가부장 편견은 대립합니다. 페미니즘과 가부장 편견이 대립하는 것처럼, 계몽주의는 완벽한 합리성이 아닙니다. 마리 루티가 '과학'을 고발하는 것처럼, 합리적인 사고 방식과 계몽주의와 과학은 편견인지 모릅니다.

 

계몽주의가 편견인지 모르기 때문에, 계몽주의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스스로 증명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종교는 훨씬 낫습니다. 종교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증명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믿습니다.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합리성보다 신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종교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신은 우주를 창조했으나, 이건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우주 창조는 인과 관계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인과 관계에서 우주 창조는 '자유롭게' 벗어납니다. 그래서 종교는 자유 의지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필연적인 인과 관계보다 신념은 훨씬 중요합니다.



계몽주의가 완벽한 합리성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에서 합리성보다 신념이 중요한 것처럼, 계몽주의에서도 합리성보다 신념은 훨씬 중요한지 모릅니다. 흑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백인들은 진화 생물학을 내세우나, 이건 합리성보다 신념입니다. 백인들은 그저 깜둥이 새끼들이 열등하다고 믿을 뿐입니다. 기후 회의론자들은 과학을 내세우나, 그들은 그저 환경 오염을 부정하기 원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가부장 편견이 진화 생물학이라고 믿습니다. 이건 그저 믿음에 불과합니다. 계몽주의에서 합리성보다 신념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계몽주의와 종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아이돌(idol) 가수들에게는 종교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우상 숭배처럼,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 가수들을 숭배합니다. 아무리 아이돌 경연 대회가 승부 투표를 조작했다고 해도, 아무리 아이돌 그룹이 조작 그룹이라고 해도, 아이돌 팬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이돌 팬덤은 조작 그룹을 열심히 떠받듭니다. 아무리 투표 조작이 만천하에 밝혀졌다고 해도, 아이돌 팬덤은 온갖 변명들을 찾아내고, 변명들을 덧붙이고, 조작 그룹을 신나게 떠받듭니다. 중요한 것은 투표 조작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념입니다.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 가수들이 좋다고 믿습니다. 오직 이것만 중요합니다.



신념은 뭔가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념은 든든합니다. 바뤼흐 스피노자는 신이 신 그 자체에게 기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이 신 그 자체에게 기반하는 것처럼, 신념은 뭔가를 증명하기보다 신념 그 자체에게 기반합니다. 강력한 신념은 아주 든든한 디딤돌입니다. 신념이 뭔가를 증명하지 않기 때문에, 든든한 디딤돌로서 신념은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돌 팬덤이 온갖 변명들을 찾아내고 조작 그룹을 신나게 떠받드는 것처럼, 신념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든든한 디딤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아이돌 팬덤이 광신적이라고 비판하나, 오직 이 신념만 광신적인가요?

 

아이돌 팬덤은 조작 그룹을 광신적으로 떠받드나, 오직 이 아이돌 팬덤만 광신적인가요? 아이돌 팬들에게 아이돌 가수들은 인생의 디딤돌입니다. 아무리 인생이 지치고 힘들다고 해도, 아무리 온갖 스트레스들이 인생을 짓누른다고 해도, 아이돌 가수가 미소를 지을 때, 아이돌 팬들은 행복을 느끼고 미소를 함께 짓습니다. 우상 숭배는 인생의 활력소입니다. 지치고 힘든 인생에서 우상 숭배는 행복한 안식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종교가 고단한 민중의 아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건 오직 종교만 아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과학, 합리성, 이성, 논리, 계몽주의 역시 아편인지 모릅니다.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전체주의가 나쁘다고 열심히 나불거립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에서 가장 심각한 전체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입니다. 자본주의는 식민지 수탈에게 기반합니다. 자본주의는 인종 차별입니다. 자유 민주주의가 이것을 지적하나요? 자유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인종 차별을 비판하나요? 아니, 오히려 자유 민주주의는 식민지 수탈을 은폐하고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교 교육은 어떻게 제3세계 민중들이 서구 자본주의에게 저항하는지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은 수요-공급 곡선과 공유지의 비극을 열심히 가르칩니다. 이건 인종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교 교육이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백인들이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내세우고 흑인들을 차별하는 것처럼, 합리적인 사고 방식은 그저 믿음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합리적인 사고 방식은 그저 너무 든든한 디딤돌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자유 민주주의가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공산주의 역시 마찬가지인지 모릅니다. 공산주의는 자신이 과학적인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나, 아이돌 팬덤이 아이돌 가수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공산주의자들은 그저 빨갱이 팬덤, 극렬한 우상 숭배자들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사실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위인은 우상화를 피하지 못할 겁니다. 여러 측면들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대단한 위인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여자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변방 출신, 유대인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장애인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적인 약자였으나, 20세기 초반, 본격적인 서구 제국주의가 나타나는 길목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야만과 평화를 판가름했습니다. 20세기 초반 서구 제국주의가 21세기 초반 세계화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전히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은 중요합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함께) 제국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오늘날, 유럽 중심주의 비판은 로자와 레닌을 계승하고 서구 제국주의를 고발합니다. 로자가 아주 굉장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로자를 숭배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인 숭배를 비판했으나, 공산주의자들은 아이돌 팬덤, 로자 빠순이/빠돌이들인지 모릅니다. 지치고 힘든 인생에서 멘토와 우상으로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든든한 디딤돌입니다. 만약 공산주의자들이 그저 국제적인 아이돌 팬덤에 불과하다면, 공산주의에게 아무 가치가 없나요? 만약 공산주의가 그저 신념에 불과하다면, 공산주의가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면, 공산주의에게 무슨 가치가 있나요? 가난한 사람들은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근대 사회 사상들 중에서 공산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열심히 떠듭니다. 심지어 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조차 공산주의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페미니즘이 급진적이라고 해도,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은 페미니즘보다 공산주의 영역입니다. 이건 페미니즘보다 공산주의가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그저 공산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열심히 떠든다는 뜻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열심히 떠들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기 때문에, 비록 공산주의가 빨갱이 광신이라고 해도, 공산주의에게는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계몽주의에서 자유 민주주의가 비롯했기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존 로크를 종교 신도보다 계몽주의 철학자라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정말 자유 민주주의가 합리적인가요? 자유 민주주의는 공산주의가 폭력적이라고 떠벌입니다. 만약 공산주의가 정말 폭력적이라면, 왜 러시아보다 유럽이 2차 세계 대전을 저질렀나요? 20세기 인류 문명에서 2차 세계 대전은 가장 커다란 비극입니다. 유럽은 가장 커다란 비극을 저질렀고, 러시아는 가장 심각한 전쟁 피해자입니다. 만약 공산주의가 정말 폭력적이라면, 왜 러시아가 가장 심각한 전쟁 피해자인가요?



만약 러시아가 2차 세계 대전을 저질렀다면,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공산주의가 전쟁 범죄자라고 게거품을 물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히려 소비에트 연방은 가장 심각한 전쟁 피해자입니다. 유럽은 자유 민주주의 지역이고, 자유 민주주의 지역에서 파쇼주의는 나타났습니다.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이것을 절대 지적하지 않습니다. 보수 우파들은 악의 평범성을 떠벌이고 인간 그 자체가 나쁘다고 나불거립니다. 전쟁 범죄자 자유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보수 우파들은 인간을 모욕합니다. 이건 광신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나, 자유 민주주의는 끔찍한 광신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계몽주의에 속하나, 자유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폄하하고 인류를 모욕하는 것처럼, 과학은 과학보다 종교인지 모릅니다. 종교는 이름을 바꿨고 과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지적한 것처럼, 만약 전능한 인간이 신을 밀어낸다면, 과학과 종교는 다르지 않을 겁니다. 과학과 종교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생체 잠수정과 거대 바다 거북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체 잠수정은 외칠지 모릅니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어떻게 과학과 종교가 비슷할 수 있지? 나는 사이언스 픽션이야! 나는 거대 바다 거북과 달라!"



네, 좋습니다. 분명히 고대 인류는 리보 핵산과 나선 구조를 알지 못했고, 사이언스 픽션(생체 잠수정)과 판타지(거대 바다 거북)는 다릅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니체가 빈정거린 것처럼, 계몽주의가 또 다른 종교인지 모르기 때문에, 계몽주의는 차별을 경계해야 합니다. 만약 계몽주의,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차별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흑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백인들이 진화 생물학을 내세운 것처럼, 합리적인 사고 방식은 그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든든한 신념에 불과할 겁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들을 편든다면, 생체 잠수정과 거대 바다 거북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 게임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스크린샷 출처: BeastyqtSC2,

www.youtube.com/watch?v=uILF1vYR7XI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