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와일드라이프 파크>와 <에일리언>, 자연 환경 본문
[야생 포식자 재규어는 열대 밀림에 속합니다. 재규어는 그저 살육 기계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우주선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가 돌아다닐 수 있나요? SF 장르에서 개척 우주선은 바이오 돔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개척 우주선은 외계 행성을 개척합니다. 게다가 외계 행성에서 개척자들은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거나 심지어 개척자들은 외계 행성 전체를 테라포밍합니다. 만약 개척 우주선이 바이오 돔을 장착한다면, 바이오 돔은 생태계 조성과 테라포밍에 커다란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게다가 만약 개척 우주선이 태양계 외부로 항해하고, 장거리 개척 우주선에게 냉동 수면 장치가 없다면, 어쩌면 몇 십 년 이상, 장거리 우주선에서 개척자들은 살아가야 할 겁니다.
만약 몇 십 년 이상, 장거리 우주선에서 개척자들이 살아가야 한다면, 우주선에서 그들은 자급자족해야 합니다. 우주선에서 개척자들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주선은 농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주선에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개척자들은 폐쇄 생태계 순환에 치중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바이오 돔 과학자들은 '식량 안보'를 책임질 겁니다. 어쩌면 바이오 돔 농장은 산소를 제공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갑갑한 우주선 일상에서 싱그럽고 풍요로운 작물들은 위안이 될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식물들을 키우고 우울증을 몰아내는 것처럼, 바이오 돔 작물들은 갑갑한 기운를 해소할지 모릅니다.
바이오 돔 농장에서 우주선 사람들은 맨발로 흙을 밟고 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고 노래하고 풍요와 번성, 자연을 예찬하는 것처럼, 갑갑한 우주선 일상에서 바이오 돔 농장은 풍요와 번성, 자연이 될 수 있습니다. 딱딱한 기계 우주선과 달리, 바이오 돔 농장은 부드러운 자연이고, 사람들은 대지와 자연에게 기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바이오 돔은 전통적인 토양 재배보다 수경 재배에 가까울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바이오 돔은 번성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들 때문에, SF 장르에서 (장거리) 개척 우주선은 바이오 돔을 장착합니다. 바이오 돔이 너무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생태계이기 때문에, SF 생태학에서 바이오 돔은 아주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척 우주선이 바이오 돔을 장착한다고 해도, 바이오 돔이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생태계이기 때문에, 바이오 돔은 복잡한 생태계를 유지하지 못할 겁니다. 바이오 돔이 복잡한 열대 밀림 생태계를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나요? 아니, 이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개척 과학자들이 열대 밀림 생태계를 바이오 돔에 집어넣기 원한다고 해도, 제한적인 바이오 돔은 이것을 유지하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우주선 바이오 돔이 열대 밀림 생태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이건 그저 어설픈 모방에 불과할 겁니다. 대형 아쿠아리움이 아마존 강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것처럼, 우주선 바이오 돔은 복잡한 생태계를 어설프게 모방할 겁니다. 특히,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생태계에서 최고 포식자는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알파 프레데터이고,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바이오 돔 생태계에서 수마트라 호랑이는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만약 우주선 바이오 돔이 고리 형태(토러스)라면, 고리 내부 벽면이 지상이 되기 때문에, 다른 형태들보다 고리 형태 바이오 돔은 훨씬 넓은 면적을 확보할 겁니다.
어쩌면 고리 형태 바이오 돔은 몇 십 km에 이를지 모릅니다. 만약 몇 십 km짜리 바이오 돔이 열대 밀림 생태계를 유지한다면, 여기에서 수마트라 호랑이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훨씬 넓은 영역을 확보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도 몇 십 km짜리 바이오 돔은 호랑이 영역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주선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가 살아간다면, 이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지 모릅니다. 만약 바이오 돔 과학자들이 수마트라 호랑이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만약 우주선 조종사들이나 과학자들이 안전 장치들을 잘못 조작하고, 바이오 돔이 열리고, 바이오 돔에서 야생 호랑이가 탈출한다면?
개척 우주선이 첨단 기계 장치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가 탈출한다고 해도, 우주선에서 호랑이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할 겁니다. 심지어 인간조차 우주선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지 모르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첨단 기계 우주선은 훨씬 낯설 겁니다. (장거리) 개척 우주선이 무슨 구조일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아무도 장거리 개척 우주선을 구경한 적이 없고 설계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개척 우주선 구조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우주선 내부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면, 복잡한 우주선 통로들에서 호랑이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할 겁니다. 이 상황에서 호랑이는 사람들을 해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개척 우주선은 작은 사회입니다. 개척 우주선이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우주선 내부 구조는 일상 공간이 됩니다. 일상 공간은 별로 복잡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개척 우주선에서 거주 구역, 일상 공간은 복잡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가 탈출하고 거주 구역에 들어간다면, 여기에서 호랑이는 자유롭게 돌아다닐지 모르고, 호랑이는 사람들을 해칠지 모릅니다.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쉽게 탈출하지 못하는 것처럼,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는 쉽게 탈출하지 못하겠으나, 만약 하드 SF 작가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쓴다면, 하드 SF 작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일반적인 도시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도시와 달리,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여러 난관들에 부딪힐 테고, 그러는 동안, 바이오 돔 역시 문제에 부딪힐지 모릅니다. 만약 바이오 돔이 문제에 부딪힌다면,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는 탈출할지 모르고, 만약 우주선 속에서 야생 호랑이가 돌아다닌다면, 호랑이는 개척자들을 습격할지 모르고, 이건 심각한 사건이 될 겁니다. 여러 이유들 때문에, 우주선 바이오 돔은 호랑이를 키우지 못할 겁니다. 호랑이를 비롯해 다른 육상 알파 프레데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우주선 바이오 돔이 넓다고 해도, 우주선 바이오 돔은 오직 식물들과 안전한 동물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우주선 바이오 돔이 복잡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 같은 알파 프레데터가 살아간다고 해도, 만약 바이오 돔에서 호랑이가 탈출한다면, 우주선 사람들은 난리법석을 일으킬 겁니다. 호랑이를 포획하거나 사살하기 위해 우주선 경비 대원들은 복잡한 우주선 통로들을 누빌 겁니다. 열대 밀림과 우주선 통로들이 다르기 때문에, 호랑이는 경비 대원들을 쉽게 습격하지 못할지 모르나, 호랑이는 태생적인 잠복 사냥꾼이고, 어쩌면 복잡하고 으슥한 통로에서 커다란 호랑이는 경비 대원들에게 은밀하게 접근할지 모릅니다. 이 장면은 하드 SF 소설보다 공포 소설에 어울릴 겁니다.
[만약 우주선에서 호랑이가 여러 개척자들을 해친다면, 이 상황은 제노모프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만약 우주선에서 호랑이가 돌아다니고 여러 개척자들을 해친다면, 어떤 SF 팬들은 이 상황이 영화 <에일리언>과 비슷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우주선 호랑이와 에일리언 제노모프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호랑이와 제노모프는 사납고 커다랗고 날렵한 육식동물입니다. 제노모프는 인간 형태이나, 제노모프에게 꼬리가 있고, 제노모프가 우주선 사람들을 이빨들로 물어뜯기 때문에, 제노모프는 사나운 야수 같습니다. 제노모프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노모프는 문명을 이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노모프는 지적 존재보다 야수에 가깝습니다. 호랑이 역시 지적 존재보다 야수입니다.
<에일리언> 시나리오 작가가 이 영화를 소개했을 때, 시나리오 작가는 '우주 속의 죠스'라고 말했습니다. 제노모프는 우주 속의 죠스입니다. 죠스는 백상아리입니다. 백상아리는 지적 존재보다 야수입니다. 호랑이가 야수인 것처럼, 백상아리는 야수입니다. 호랑이와 백상아리는 야수이고, 제노모프 역시 사나운 야수에 가깝습니다. 이 관점에서 호랑이, 백상아리, 제노모프는 비슷합니다. 만약 우주선에서 호랑이가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해친다면, 우주선 호랑이는 제노모프와 비슷할 겁니다. SF 팬들은 우주선 호랑이와 제노모프가 비슷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건 과잉 해석, 오류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비록 이 해석이 오류가 아니라고 해도, 호랑이와 제노모프 사이에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개척 과학자들이 열대 밀림 생태계를 모방하고 호랑이를 바이오 돔에 집어넣는 것처럼, 호랑이는 자연 환경에 속합니다. 바이오 돔이 싱그럽고 풍요로운 자연이 되는 것처럼, 호랑이는 싱그럽고 풍요로운 자연에 속합니다. 아무리 호랑이가 피에 젖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무섭게 으르렁거린다고 해도, 결국 호랑이는 자연 환경에 속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자연이 이상적인 것처럼, 우리는 '자연'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는 긍정적인 것에 속합니다.
호랑이 그 자체는 부정적인 것인지 모르나, 자연 생태계 속에서 호랑이가 진화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과 호랑이가 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호랑이는 긍정적인 '자연'에 속합니다. 부정적인 호랑이보다 긍정적인 '자연'은 훨씬 압도적이고 원초적입니다. 그래서 호랑이 역시 긍정적인 측면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타이토 에콜로지> 같은 생태계 시뮬레이션은 호랑이를 비롯해 여러 야생 포식자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호랑이를 비롯해 야생 포식자들은 그저 무서운 살육 기계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야생 포식자들은 생태계 구성 요소입니다. 야생 포식자들은 먹이 그물망을 구성합니다.
히말라야 생태계에서 호랑이는 부정한 악마보다 먹이 그물망 구성 요소입니다. 아무리 호랑이가 피에 젖은 송곳니를 드러낸다고 해도, 전반적인 먹이 그물망 관점에서 호랑이는 그저 연결 고리에 불과합니다. 먹이 그물망은 수많은 날줄들과 씨줄들을 엮고, 여기에서 호랑이는 그저 연결 고리에 불과합니다. 반면, 에일리언 제노모프는 부정한 악마입니다. 제노모프에게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습니다. 호랑이는 싱그럽고 풍요로운 '자연'에 속할 수 있으나, 제노모프는 '자연'에 속하지 못합니다. 문자 그대로 제노모프는 무시무시한 살육 기계입니다. 제노모프는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다시 죽입니다.
공포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 작가는 제노모프를 만들었고, 본질적으로 제노모프는 살육 기계입니다. 제노모프에게는 실존이 없습니다. 제노모프는 의자와 비슷합니다. 목수가 의자를 만드는 것처럼, 공포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는 제노모프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누가 호랑이를 만들었나요? 아무도 호랑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누가 호랑이를 만들었는지 반문하는 것처럼, 호랑이는 스스로 발생했습니다.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나, 어머니 자연은 호랑이를 키웠습니다. 만약 윌리엄 블레이크가 신(야훼)보다 어머니 자연을 탐구했다면, 윌리엄 블레이크는 고민하지 않았을 겁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한 양과 포악한 호랑이를 대조하나, 양과 호랑이는 어머니 자연에 속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타이토 에콜로지>를 플레이하고, 먹이 그물망을 연결하고, 호랑이가 어머니 자연에 속한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제노모프는 '자연'에 속하지 않습니다. 어떤 SF 팬들은 제노모프가 '자연'을 드러낸다고 해석하거나, 적어도 제노모프는 '야생'을 상징하는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제노모프는 어머니 자연에 속하지 않을 겁니다. 제노모프와 어머니 자연 사이에는 너무 많은 차이들이 있습니다. 어머니 자연은 부정한 악마로서 제노모프를 몰아낼 겁니다. 제노모프와 어머니 자연은 대립합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 <타이토 에콜로지>는 교육 소프트웨어입니다. <타이토 에콜로지>가 식물상과 동물상과 분해자들을 배치하고, 먹이 그물망을 구성하고, 생태학을 연구하기 때문에, <타이토 에콜로지>는 교육 소프트웨어입니다. <타이토 에콜로지>가 교육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누구나 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비단 <타이토 에콜로지>만 아니라 많은 생태계 시뮬레이션들은 교육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생태계 시뮬레이션들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타이토 에콜로지>가 교육 소프트웨어가 되는 것처럼, <와일드라이프 파크>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와일드라이프 파크>는 생태계 시뮬레이션보다 동물원 게임이나, 생태계 시뮬레이션과 동물원 게임 사이에는 여러 유사성들이 있습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들이 여러 동물상들과 식물상들을 배치하고, 먹이 그물망을 연결하고, 생태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와일드라이프 파크>는 여러 동물상들과 식물상들을 배치하고, 유사 야생 환경을 조성하고, 생태학을 연구합니다. 비단 <와일드라이프 파크>만 아니라 다른 동물원 게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원이 억압적인 감옥이기 때문에, 동물원 게임보다 생태계 시뮬레이션은 훨씬 나으나, 적어도 동물원 게임 역시 생물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동물원 게임으로서 <와일드라이프 파크>는 밝고, 활발하고, 아기자기합니다. 비단 이것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동물원 게임들은 밝고 활발하고 건강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동물원 게임들은 인공적인 유사 자연을 구성하고, '자연'이 긍정적이기 때문에, 동물원 게임들 역시 밝고 활발하고 건강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리고 동물원 게임들에서 호랑이는 인기 스타입니다. 동물원 게임들은 호랑이를 빼놓지 않습니다. 심지어 <와일드라이프 파크>에서 호랑이는 표지 그림을 차지합니다. 동물원 게임들이 호랑이를 빼놓지 않고, 동물원 게임들이 밝고 활발하기 때문에, 호랑이 역시 이런 측면들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돔은 긍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야생 포식자 역시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반면, 에일리언 제노모프는 밝고 활발하고 건강한 분위기를 절대 연출하지 못합니다. 제노모프가 엄청난 인기를 끌기 때문에, 제노모프 비디오 게임들은 많고 많습니다. 이런 비디오 게임들이 밝고 활발하고 건강한 분위기를 연출하나요? 나이와 성별과 상관없이, 게임 플레이어들은 여러 동물원 게임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게임 플레이어들이 제노모프 비디오 게임들을 좋아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심파크>부터 <플래닛 주>까지, 동물원 게임들은 즐거운 전자 놀이터가 될 수 있으나, 피칠갑 게임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아이들을 위한 전자 놀이터가 되지 못할 겁니다.
<와일드라이프 파크>와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다릅니다. 양쪽은 너무 다릅니다. 아무리 동물원이 억압적인 감옥이라고 해도, 적어도 <와일드라이프 파크>는 밝고 활발하고 건강합니다. 반면,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이 수식어들을 얻지 못합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드루이드는 호랑이로 변신합니다. 드루이드가 자연 계열 성직자이기 때문에, 드루이드가 자연의 여신을 숭배하기 때문에, 드루이드는 호랑이로 변신하고 부정한 악마들을 몰아냅니다. 드루이드와 달리, 제노모프는 부정한 악마에 가깝습니다. 만약 드루이드와 제노모프가 만난다면, 드루이드는 제노모프를 몰아내기 원할 겁니다.
제노모프는 SF 설정입니다. 인류 문명이 나타나기 전에, SF 장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류 문명이 나타난 이후, SF 장르는 나타났고, 제노모프는 나타났습니다. 공포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가 제노모프를 만들었기 때문에, 제노모프는 공포 영화에게 종속됩니다. 반면, 호랑이는 자연 환경에 속하고, 인류 문명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자연 환경은 존재했습니다. 아니, 자연 환경에서 인류는 비롯했습니다. 인류와 호랑이는 똑같은 폭넓은 범주, 자연 환경에 속합니다. 아무리 우주선 호랑이와 제노모프가 비슷하다고 해도, 제노모프가 우주 속의 죠스라고 해도, 야생 포식자와 제노모프는 다릅니다.
야생 포식자가 생물 다양성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가 야생 포식자를 언급할 때, 우리는 자연 환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제노모프를 우주 속의 죠스에 비유하는 것처럼, 많은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은 야생 포식자가 그저 무서운 살육 기계에 불과하다고 묘사하나, 이건 너무 얄팍한 묘사입니다. 개척 과학자들이 바이오 돔과 열대 밀림 생태계와 수마트라 호랑이를 함께 고려하는 것처럼, 제노모프와 야생 포식자 사이에서 '자연'은 결정적인 차이가 되고, 우리가 야생 포식자를 바라볼 때, 에코 페미니스트 밸 플럼우드가 자연, 문명, 악어, 인간을 고민한 것처럼, 우리는 자연과 문명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자연과 문명은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합니다. 자연 생태계는 순환해야 하나, 산업 인류 문명은 순환을 방해하고 가로막습니다. 지구 생물권에서 자연적인 순환 과정은 질소를 생산하나, 공장들과 농장들은 이것을 제거합니다. 자연적인 과정은 토양을 움직이나, 자연적인 과정보다 산업 문명은 토양을 훨씬 급격하게 제거하고 고갈시킵니다. 이게 너무 급격하기 때문에, 심지어 산업 문명은 지질학적인 흔적을 남깁니다. 산업 혁명 이후, 2018년 기준에서 인류 문명은 2.2조 메트릭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배출했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4% 증가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산호초들을 파괴합니다.
지난 40년 동안,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개체 숫자들은 평균적으로 58% 감소했습니다. 멸종은 자연적인 과정이나, 인류 문명이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멸종 속도는 1,000배 빨라졌습니다. 육상 대형 포유류 중량 중에서 오직 3%만 야생 동물들입니다. 97% 중에서 30%는 인류이고, 67%는 가축들입니다. <와일드라이프 파크>와 <타이토 에콜로지>는 밝고 활발하고 건강한 분위기를 연출하나, 비디오 게임들과 달리, 현실에서 자연 생태계는 절대 밝지 않고, 활발하지 않고,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류는 자연의 적이야. 탐욕스러운 인류는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 인류는 나빠."
하지만 이게 사실인가요? 인류가 자연의 적인가요? 탐욕스러운 인류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나요? 사람들은 '인류세'라는 용어가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인류세가 인류 전체를 가리키나요? 문제는 이겁니다. 이미 몇 십만 년 전에 인류는 나타났으나, 19세기 초반에서 세계 인구는 10억을 넘었습니다. 19세기 초반 이후, 세계 인구는 20억에 도달했고, 그 이후, 세계 인구는 75억으로 늘어났습니다. 19세기 산업 혁명은 지구 온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20세기 후반에서 신자유주의는 화석 연료들을 급격하게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화석 연료 소비량은 '하키 스틱 곡선'을 그립니다.
19세기부터 산업 문명이 지질학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19세기는 인류세 시발점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반대하고 이미 17세기 초반이 인류세 시발점이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환경 역사학 서적 <인간 행성 The Human Planet>에서 사이먼 루이스와 마크 마슬린은 17세기가 지질학적인 지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고 지적합니다. 왜 17세기 초반이 인류세 시발점(Orbis Spike)이 되나요? 대항해 시대(를 빙자하는 대학살 시대) 이후, 이른바 콜럼버스 교환 이후, 수십 년 동안, 5천 만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죽어나갔기 때문입니다. <인간 행성>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수탈에서 인류세가 시작했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인류세는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지 수탈에 기반합니다. 세계 체제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서구 문명이 아메리카 식민지라는 열차표를 냈고 일등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인류세는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인류세 시발점이 19세기가 된다고 해도, 상황은 별로 바뀌지 않습니다. 어떻게 19세기 서구 문명이 산업 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나요? 제임스 블로트와 로버트 마르크스는 서구 문명이 식민지들을 수탈했기 때문에 산업 자본주의가 나타났다고 주장합니다. 20세기 초반에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서구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확장하고 식민지 수탈을 강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식민지 수탈이 격렬해지기 때문에, 서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고, 이건 1차 세계 대전이 됩니다. 1차 세계 대전은 2차 세계 대전에 영향을 미치고, 2차 세계 대전은 20세기 최대 비극이 됩니다. 그래서 인류세는 산업 자본주의, 식민지 수탈, 제국주의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인류는 자연의 적이야." 이 주장은 오류입니다. 이 주장은 틀립니다. 인류세가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지 수탈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 클라인은 자본주의와 기후 변화를 연결하고 이것(자본주의)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이것, 산업 자본주의입니다. '자연의 적'은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지 수탈'입니다.
[이 스크린샷처럼, 동물원 게임들은 밝고 활기찹니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는 활기차지 않습니다.]
이건 오직 자본주의 시장 경제만 환경 오염들을 일으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랜 동안, 인류 문명은 여러 환경 오염들을 저질렀고, 아무리 자본주의가 사라진다고 해도, 대대적인 환경 오염들은 사라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자본주의는 행성급 환경 오염, 지구 온난화 범죄자입니다. 만약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행성급 환경 오염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나오미 클라인은 시민 배당을 조심스럽게 제안했으나, 시민 배당은 아주 강력한 대안이 되어야 합니다. 시민 배당에는 재원이 필요하고, 무산자 민중들은 자본가 계급과 국가 정부를 압박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환경 오염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탐욕스러운 인류가 자연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과학 학습 만화들조차 이것을 주장합니다. 왜 사람들이 인류세를 파악하지 못하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지배 계급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입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제국주의(서구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사라질 테고, 자본가 지배 계급은 권력을 잃을 겁니다. 자본가 지배 계급은 자본주의가 옳다고 사람들을 세뇌해야 합니다. 이런 세뇌 없이, 자본가 계급은 지배 계급이 되지 못합니다.
이건 자본가 계급이 의도적으로 세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개별적인 자본가들보다 사회 구조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옳다고 착각하고, 이건 지배적인 관념이 됩니다. 지배적인 관념은 사람들을 장악하고, 이 악순환에서 (자본가 계급을 비롯해) 사람들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쩌면 어떤 선량한 자본가는 세계화에 반대하고 토착 농업을 중시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이윤율이 떨어지고, 거품이 불어나고, 경제 공황이 터진다면, 1997년 외환 위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에 빠진 것처럼, 선량한 자본가는 망할 겁니다.
아무리 자본가가 선량하다고 해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오직 이윤 창출만 추구하기 때문에,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망치기 때문에, 선량한 자본가는 근본적인 대안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회 구조이고, 인류 문명은 자본주의를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야생 포식자, 호랑이를 바라볼 때, 우리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우주선 호랑이와 에일리언 제노모프 사이에는 이런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호랑이를 비롯해 야생 포식자들이 자연 생태계에 속하기 때문에, 아무리 우주선 호랑이와 제노모프가 비슷하다고 해도, 두 가지는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