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Creatura>와 생체 전투기, 과학이라는 신화 본문
외계 행성에서 생태학자들은 생태계를 연구합니다. 그들은 외계 생태계를 응용하고, 생명체를 인공적으로 진화시키고, 생체 우주 전투기를 만듭니다. 생체 전투기는 비행 생명체와 비슷하나, 인공 진화 덕분에, 우주에서 생체 전투기는 활약할 수 있습니다. 신진대사 과정에서 생체 우주 전투기는 영양분을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고, 기계 전투기들과 달리, 비록 생체 우주 전투기가 주력함(Capital Ship)에게 의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생체 우주 전투기는 지속 가능한 동력을 유지합니다. 기계 전투기는 미사일을 쏘나, 생체 전투기가 생명체와 비슷하기 때문에, 생체 전투기는 독액을 뿜습니다.
만약 어떤 소설이 이것을 이야기한다면, 소설 독자들은 생체 전투기가 스페이스 오페라 설정이라고 분류할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장르 명칭이 가리키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에서 '과학'은 중요한 생산 조건입니다. 근대 생태학과 진화 이론은 과학입니다. 근대 생태학과 진화 이론 없이, 외계 행성 생태학자들은 생체 우주 전투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비롯해 사이언스 픽션에게 과학은 중요한 생산 조건입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과 과학(사이언스)은 쉽게 이어집니다. 하지만 신화는 어떤가요? 과학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가 이어지나요?
과학과 신화는 대립합니다. 과학은 합리적으로 검증하나, 신화는 미화하고 정당화합니다. 과학은 회의하나, 신화는 맹목적입니다. 근대화 이후, 과학은 나타났으나, 근대화 이전에, 이미 신화는 존재했습니다. 생체 전투기는 진화 이론에게 기반하고, 특히, 진화 이론은 자연 과학을 대표합니다. 사람들이 자연 과학 이론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은 진화 이론을 떠올립니다. 19세기 서구 문명에서 종교 권력이 진화 이론을 비난했기 때문에, 아니, 여전히 몇몇 사이비 종교가 진화 이론을 비난하기 때문에, 종교는 과학을 부각하고, 사람들은 진화 이론이 자연 과학을 대표한다고 각인합니다.
여러 측면들에서 과학과 신화는 대립합니다. 과학과 신화가 대립하고, 과학(사이언스)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를 비롯해 사이언스 픽션이 비롯했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가 대립하나요? 하지만 의외로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는 가깝습니다. 단편 소설부터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은 신화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신화를 인용하거나, 신화와 과학을 혼합하거나, 신화 형식에게 기반합니다. 단편 소설 <최후의 심판>은 신화(종교)를 이야기합니다. 문자 그대로 크툴루 신화는 신화입니다. 소설 <신들의 사회>와 <히페리온> 역시 강렬한 신화 분위기를 풍깁니다.
<듄>은 아라비아 구원자 신화를 공개적으로 인용합니다. 애니메이션 <고지라: 괴수 행성> 3부작 역시 장대한 신화 분위기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세 주연 괴수들(고지라, 모스라, 기도라) 중에서 모스라와 기도라는 신화 분위기를 풍깁니다. 모스라는 선한 (여)신이고, 기도라는 나쁜 (남)신입니다. 이 사례들을 비롯해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은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가 가깝다고 증명합니다. 게다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짝궁입니다. 판타지는 신화, 전설, 민담에게 기반합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그리폰 라이더가 번개 망치를 던지는 것처럼, 판타지에게 신화, 전설은 중요한 생산 조건입니다.
판타지가 신화와 전설, 민담에게 기반하고,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짝궁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는 멀지 않습니다. 명칭이 가리키는 것처럼, 사이언스에서 사이언스 픽션은 비롯하고, 과학과 신화는 대립하나,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는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는 친숙합니다. 비록 SF 독자가 메리 도리아 러셀의 <스패로>를 읽지 않는다고 해도, SF 독자는 많은 사례들을 분석하고 이 장르와 신화가 가깝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왜 사이언스 픽션과 신화가 가깝나요? 과학과 신화는 대립하고, 신화에서 판타지는 비롯하나, 왜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짝궁인가요?
왜 신화에서 사이언스 픽션이 벗어나지 않나요? 어쩌면 신화가 너무 유구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아주 오랜 동안, 신화는 인류 문화에게 스몄습니다. 아주 오랜 동안, 신화와 인류 문화는 함께 흘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근대 문명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나, 근대 문명 역사는 너무 짧습니다. 19세기 이후, (서구) 근대 문명은 그저 200년을 약간 넘었을 뿐입니다. 근대 문명은 그저 200년 역사에 불과합니다. 반면, 몇 천 년 동안, 심지어 몇 만 년 동안, 신화와 인류 문화는 함께 흘렀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대단하다고 해도, 신화에게 과학은 그저 꼬꼬마에 불과합니다. 과학보다 신화는 훨씬 유구합니다.
과학보다 신화가 훨씬 유구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에게 과학이 중요한 생산 조건이라고 해도, 신화에서 사이언스 픽션은 벗어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사이언스 픽션은 신화에게 과학을 덧붙이고 신화를 계승하는지 모릅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3부작에서 근대 환경 오염들을 정화하고 그레이 구를 방지하기 위해 열대 밀림 부족민들은 새로운 유전 형질을 받아들이고 모스라를 숭배합니다. <괴수 행성> 3부작은 어떻게 스페이스 오페라(사이언스 픽션)가 신화에게 과학을 덧붙이고 신화를 계승하는지 보여줍니다. 신화가 유구하기 때문에, 신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 비단 신화만 아니라 다른 전근대적(前近代的)인 것들 역시 마찬가지인지 모릅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기사들은 암흑 군대를 향해 돌진합니다. 선두에서 장군은 크게 외칩니다. "For the king~!! 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이 감동적이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공화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가 공화주의 시민이라고 인정합니다. 공화주의와 왕당파는 대립합니다. 공화주의와 왕당파가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에, 19세기 서구 문명은 처절한 피의 혁명들을 거쳤습니다. 수많은 공화주의자들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공화주의 사회는 나타났습니다.
19세기 서구에서 왕당파는 공화주의를 탄압했습니다. 왕당파와 공화주의가 대립하고, 공화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공화주의를 편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중세 판타지를 보고 감동합니다. "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은 이 문구가 감동적이라고 느낍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군주가 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공화주의 정부조차 군주가 위인이라고 인정합니다. 왜 공화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군주를 존경하나요? 왜 공화주의 시민들이 군주가 위인이라고 생각하나요? 공화주의 역사는 너무 짧습니다. 과학이 근대화에 속하는 것처럼, 공화주의는 근대화에 속합니다.
과학과 공화주의는 근대화에 속하나, 19세기 이후, 근대화가 그저 200년을 약간 넘었을 뿐이기 때문에, 과학 역사가 너무 짧은 것처럼, 공화주의 역사는 너무 짧습니다. 반면, 중세 1,000년이라는 용어처럼, 군주 제도는 훨씬 유구합니다. 공화주의보다 군주 제도가 훨씬 유구하기 때문에, 여전히 공화주의 시민들은 군주 제도를 미화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공화주의 시민들은 엘사 여왕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전형적인 군주로서 엘사 여왕은 공화주의 시민들을 탄압하고 처형할 겁니다. 하지만 현실 속의 공화주의 시민들은 엘사 여왕을 좋아합니다. 유구한 군주 제도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분석이 옳지 않다고 해도, 분명히 공화주의보다 구식 신분 질서는 훨씬 유구합니다. 공화주의보다 구식 신분 질서가 유구하기 때문에, 여전히 공화주의 시민들은 구식 신분 질서에 연연합니다. 20세기 초반 혁명가들은 귀족들을 몰아내기 원했으나, 정말 공화주의 사회에서 귀족들이 사라졌나요? 이제 귀족들이 존재하지 않나요? 아니, 많은 공화주의 시민들은 거대 재벌을 귀족이라고 인정합니다. 귀족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귀족들은 그저 바뀌었을 뿐입니다. 만약 20세기 초반 혁명가들이 21세기 초반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본다면, 그들은 귀족들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분노할 겁니다.
유구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구한 것은 새로운 것을 포섭합니다. 신화와 과학 역시 마찬가지인지 모릅니다. 유구한 신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구한 신화는 새로운 과학을 포섭하고, 과학은 신화를 새롭게 떠받듭니다. 생체 전투기 설정처럼, 대체 진화 역사는 근대 생태학과 진화 이론에게 기반합니다. 맥시스는 <스포어>를 만들었고 이것을 '진화 시뮬레이터'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명칭을 비웃습니다. 진화 시뮬레이터들이 유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록 진화 시뮬레이터가 유명하지 않다고 해도, 이건 명맥을 어느 정도 자랑합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진화 시뮬레이션 비디오 게임들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비디오 게임 <스포어>가 나오기 전에, 맥시스는 <심라이프>를 만들었습니다. <심라이프>는 진화 시뮬레이터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행성 생물 다양성을 조절하고, 여러 유전 형질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1997년 <에볼루션> 역시 진화 시뮬레이터입니다. 특히, 이 게임은 생명체들이 진화하고 지적 문명을 세운다고 묘사합니다. 이 게임은 비단 자연 생태계만 아니라 지적 문명을 묘사합니다. <스포어>에게 <에볼루션>은 선배입니다. 그리고 <에볼루션>에게 1990년대 초반 게임 <심어스>는 선배입니다.
비록 게임 플레이어들이 진화 시뮬레이터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다고 해도, <심어스>는 진화 시뮬레이터 원형을 보여줬습니다. <스포어>는 <심어스>를 계승합니다. <스포어> 이후, 진화 시뮬레이터들은 훨씬 늘어났습니다. <니치>와 <제노블룸>, <인텔리젠트 디자인>, <Creatura> 같은 게임들은 진화 시뮬레이터에 속합니다. 이 게임들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생물 다양성을 조절하고, 여러 유전 형질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니치>는 4족 보행 동물들을 묘사하고, <제노블룸>은 외계 식생들을 묘사하고, <인텔리젠트 디자인>은 미물들을 묘사하나, 근본적인 설정들은 비슷합니다.
<니치>와 <제노블룸>, <인텔리젠트 디자인>, <Creatura>는 비슷한 범주, 장르(진화 시뮬레이터)에 속할 수 있습니다. 비록 <스포어>가 지적 문명을 묘사하고, <제노블룸>이 지적 문명을 묘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진화 과정, 생물 다양성, 자연 생태계가 근본적인 유사성이기 때문에, <스포어>와 <제노블룸>은 비슷한 범주에 속합니다. <니치>는 복잡한 게임 규칙들을 선사하고, <제노블룸>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게임입니다. <니치>는 3D 그래픽을 선보이나, <제노블룸>은 단순한 측면 시점 픽셀 그래픽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니치>와 <제노블룸>에서 진화 과정, 생물 다양성, 자연 생태계는 근본적인 유사성입니다.
그래서 <스포어>와 <제노블룸>은 비슷한 범주에 속합니다. 어떻게 이 진화 시뮬레이터들이 나타날 수 있나요? 비록 <제노블룸>이 단순한 픽셀 그래픽 게임이라고 해도, 17세기 사람들은 이 진화 시뮬레이터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니치>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유전 형질들을 선택하고 새로운 동물종을 키우나, 17세기 사람들은 <니치> 같은 게임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7세기 사람들이 생체 우주 전투기가 진한 독액을 뿜는다고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유전 형질 조합과 새로운 동물종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왜 17세기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고, 왜 21세기 초반 게임 플레이어가 새로운 동물종을 키우나요?
19세기 서구 근대화에서 진화 이론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진화 이론은 커다란 인기를 끕니다. 진화 이론은 아주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진화 이론은 자연 과학을 대표합니다. 사람들이 자연 과학 이론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은 진화 이론을 떠올립니다. 특히, 19세기 서구 문명에서 종교 권력이 진화 이론을 비난했기 때문에, 종교는 과학을 부각하고, 사람들은 진화 이론이 자연 과학을 대표한다고 각인합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태생적인 본질입니다. 다른 여러 자연 과학들과 달리, 진화 이론은 어떻게 생명체들이 태어나는지 연구합니다. 진화 이론은 태생적인 생명체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태생적인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태생적인 본질은 내재적인 속성입니다. 그래서 진화 이론은 태생적인 본질을 언급하고 누군가를 차별할지 모릅니다. 진화 이론은 악랄한 우생학이 될지 모릅니다. 많은 백인들은 백인이 우월하게 진화했고 인디언이 열등하게 퇴화했다고 믿었습니다. 우월한 백인은 열등한 인디언을 학살합니다. 이건 정당합니다. 학살은 정당합니다.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 적자생존처럼, 우월한 백인은 열등한 인디언을 학살합니다. 이건 학살이 아닙니다. 이건 자연 과학입니다. 대대적인 학살은 자연 과학, 진화 이론이 됩니다. 우생학은 진화 이론을 악용하고 약자들을 학살합니다.
생물학은 흑인이 열등하다고 입증했습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닙니다. 흑인은 동물입니다. 흑인이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황소를 부리는 것처럼, 백인은 흑인을 착취합니다. 이건 정당합니다. 흑인이 동물이기 때문에, 흑인과 황소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인간(백인)은 가축(흑인)을 착취합니다. 이건 착취가 아닙니다. 21세기 초반 시각에서 이건 어처구니 없는 헛소리이나, 20세기 중반까지, 많은 백인들은 이게 과학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게 과학이라고 믿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봐. 아프리카 흑인들은 너무 가난해. 이유가 무엇이지? 태생적으로 흑인들이 열등하기 때문이야."
서구 제국주의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짓밟았으나, 수많은 사람들은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은 서구 제국주의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아프리카 흑인들이 열등하다고 비난합니다. 심지어 구호 단체들조차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쌍한 흑인들을 도와야 한다." 이 문구는 흑인이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이 문구는 흑인이 식민지 피해자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문구는 서구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수탈했다고 규탄하지 않습니다. 이 문구는 서구 제국주의를 정당화합니다. 그래서 구호 단체들은 서구 제국주의 앞잡이가 되고 인종 차별이 됩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여전히 우생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근대 시민들은 합리적인 것 같으나, 그들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기보다 편견에 빠집니다. 과학은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뒷받침하기보다 편견을 떠받듭니다. 진화 이론은 합리적인 사고 방식보다 서구 백인 신화를 떠받듭니다. "태생적으로 열대 민족은 야만적이야. 열대 민족은 서구 문명을 본받아야 해." 이렇게 서구 백인 신화는 진화 이론을 포섭하고, 진화 이론은 서구 백인 신화를 떠받듭니다. 그래서 세계화는 서구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근대 문명이 세계화(글로벌화)라고 말하나, 여기에서 세계(글로벌)는 세계 그 자체보다 서구 문명을 가리킵니다.
생체 우주 전투기와 <Creatura>처럼, 근대화 이후, 과학은 발달했고, 과학은 사이언스 픽션과 진화 시뮬레이터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많은 SF 팬들은 진화 시뮬레이터가 SF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겁니다. 생체 우주 전투기는 SF 장르에 속할 수 있으나, 진화 시뮬레이터는 속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SF 장르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사람들은 진화 시뮬레이터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사람들이 생체 전투기를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17세기 사람들은 진화 시뮬레이터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이후, 진화 이론을 비롯해 근대 과학이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진화 시뮬레이터 <Creatura>가 SF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17세기 사람들이 생체 전투기를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Creatura>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7세기 사람들은 이질적인 동물, 바다 괴수를 상상했으나, 17세기 이질적인 동물은 진화 이론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서구 근대화가 진화 이론을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Creatura>가 SF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체 전투기 설정이 과학과 비(非)현실을 결합하는 것처럼, <Creatura>는 과학과 비(非)현실을 결합하고 대체 진화 역사를 구현합니다. <Creatura>와 생체 전투기는 교집합을 형성합니다.
비록 <Creatura>가 SF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슷한 생산 조건에서 <Creatura>와 생체 전투기는 비롯합니다. 생체 전투기에게 진화 이론이 중요한 생산 조건인 것처럼, (문자 그대로) 진화 시뮬레이터에게 진화 이론은 중요한 생산 조건입니다. 생체 우주 전투기와 진화 시뮬레이터는 진화 이론, 과학을 강조합니다. 생체 우주 전투기와 대체 진화 역사가 비현실 설정이기 때문에, 두 가지는 과학을 훨씬 강조합니다. SF 독자는 생체 우주 전투기를 보고 근대 문명이 과학 문명이라고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화는 과학을 포섭할지 모르고, 과학은 신화를 떠받들지 모릅니다.
진화 이론이 엉터리 사회 생물학이 되고 인종 차별을 떠받드는 것처럼, 진화 이론이 서구 백인 신화를 떠받드는 것처럼, 과학은 편견을 포장하고, 편견은 과학이 될지 모릅니다. 진화 이론처럼, 기후 회의론은 자신이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기후 회의론자는 자신이 광신적이라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는 광신적이야! 나는 합리적이지 않아! 그래서 나는 기후 회의론을 지지해! 내가 광신적이기 때문에, 나는 기후 변화 이론을 믿지 않아!" 이렇게 기후 회의론자가 자신을 의심하고 비판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기후 변화 이론이 과학인 것처럼, 기후 희의론자는 자신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태학과 진화 이론이 과학인 것처럼, 기후 변화 이론은 과학입니다. 환경 아포칼립스(SF)는 기후 변화 이론(과학)에게 기반합니다. 하지만 기후 회의론 역시 자신이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기후 변화 이론과 기후 회의론은 대립합니다. 두 과학이 대립하는 것처럼, 편견은 과학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쓸지 모릅니다. 편견은 온갖 통계들을 늘어놓고 자신이 과학이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환경 사회학 서적 <의혹을 팝니다>는 어떻게 편견이 과학으로 둔갑하는지 보여줍니다. 편견이 과학으로 둔갑하는 것처럼, 종종 과학이 무엇인지 판단하기는 헛갈립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구 근대화가 과학을 중시하기 때문에, 서구 근대화 이후, 수많은 것들은 자신들이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편협한 사회 생물학이 과학보다 편견인 것처럼, 수많은 과학들은 과학보다 그저 편견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과학(기후 변화 이론)과 과학(기후 회의론)이 대립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대립합니다. 사회주의는 자신이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 역시 자신이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이 진짜 과학인가요? 이건 어려운 물음입니다. 과학이 무엇인지 판단하기가 헛갈리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에서 무엇이 진짜 과학인지 판단하기는 헛갈립니다.
하지만 비록 무엇이 과학인지 판단하기가 헛갈린다고 해도,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자본주의는 부자들을 편듭니다. 사회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듭니다. 심지어 수구 꼴통들과 보수 우파들조차 이것에 동의합니다. 중세 수도사들부터 20세기 흑표범 정당까지, 언제나 사회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서구 근대화 이후, 대부분 철학 사상들이 오직 인간의 본질만 신나게 부르짖는 동안,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본질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가난한 밑바닥 사람들을 응원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싫어합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쓰레기통에 버리기 원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쓰레기통에 들어갈 때, 가난한 사람들은 쓰레기통에 함께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소중합니다. 며칠 전에, 11월 10일 게시글(링크)은 공유 사회가 과학이라고 설명했으나, 과학이 무엇인지 판단하기가 헛갈리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과학'을 의심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고, 이게 아주 깔끔하고 간단한 사실이기 때문에, 공유 사회 역시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