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거대 삼림 맹금과 번성하는 자연 본문
이 장면은 비디오 게임 <토탈 워: 워해머> 스크린샷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드 엘프 진영 거대 맹금들은 고블린들을 습격합니다.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우드 엘프는 자연 친화적인 진영입니다. 이 진영은 비단 우드 엘프들만 아니라 나무 거인들과 포레스트 드래곤들을 포함합니다. 그들은 울창하고 신비롭고 거대한 삼림을 보호합니다. 나무 거인들이 울창한 삼림을 보호하는 것처럼, 우드 엘프 진영이 자연 친화적이고, 거대 맹금이 이 진영에 속하기 때문에, 거대 맹금은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입니다. 이건 <토탈 워: 워해머>에서 모든 거대 맹금이 자연 친화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비단 우드 엘프만 아니라 하이 엘프 역시 거대 맹금을 운영합니다. 하이 엘프는 자연 친화적인 진영이 아닙니다. 우드 엘프들에게 울창한 삼림은 성역이나, 하이 엘프들은 삼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드 엘프 진영이 포레스트 드래곤을 포함하는 것처럼, 하이 엘프 진영은 드래곤을 포함하나, 하이 엘프 드래곤들은 삼림에 속하지 않습니다. 포레스트 드래곤은 식물들을 걸치고 야생 분위기를 선사하나, 선 드래곤, 문 드래곤, 스타 드래곤은 번성하는 자연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선 드래곤과 문 드래곤, 스타 드래곤이 자연을 보호하지 않는 것처럼, 하이 엘프 거대 맹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이 엘프 진영이 자연 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에, 하이 엘프 진영에서 거대 맹금은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가 아닙니다. 반면, 우드 엘프 진영이 울창한 삼림 아델 로렌을 숭배하기 때문에, 우드 엘프 진영에서 거대 맹금은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입니다. (선 드래곤, 문 드래곤, 스타 드래곤과 달리, 포레스트 드래곤은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입니다.) 포레스트 드래곤과 달리, 거대 맹금은 식물을 걸치지 않고 번성하는 분위기를 풍기지 않으나, 포레스트 드래곤처럼, 분명히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울창한 삼림을 숭배합니다. 거대 맹금이 자연 친화적이기 때문에, 이건 비주류 설정입니다.
일반적으로 거대 괴수들은 파괴적입니다. SF/판타지에서 거대 괴수들은 파괴를 담당합니다. 거대 괴수들에게는 자연 친화라는 수식어보다 파괴라는 수식어가 어울립니다. SF/판타지 팬들이 거대 괴수들을 바라볼 때, 그들은 거대 괴수들이 울창한 삼림을 보호한다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대 괴수들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짓밟는다고 기대합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드래곤은 가장 대표적인 괴수입니다. 일반적으로 드래곤은 자연의 여신을 숭배하기보다 사람들을 괴롭히고 도시를 불태웁니다. 소설 <호빗>에서 화염 드래곤 황금의 스마우그는 아주 전형적인 악당입니다.
황금의 스마우그가 아주 전형적인 악당인 것처럼, 중세 판타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거대 괴수 드래곤은 악당입니다. 악당과 자연 친화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자연 친화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나, 악당은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비단 중세 판타지만 아니라 사이언스 픽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거대 괴수는 울창한 삼림을 보호하기보다 사람들을 괴롭히고 도시를 불태웁니다. 고지라는 가장 대표적인 SF 거대 괴수입니다. 그래서 고지라가 자연 환경을 보호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1954년 영화 <고지라>에서 이 거대 괴수는 도시를 무참하게 파괴합니다.
관객들은 <고지라>를 보고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느끼지 않습니다. <고지라>는 처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깝습니다. 고지라는 가장 대표적인 거대 괴수이나, 이 거대 괴수가 처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출하는 것처럼, 거대 괴수는 파괴적입니다. 킹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33년 영화 <킹콩>에서 거대 유인원과 자연 환경 보호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킹콩>은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 영화에서 킹콩이 자연 친화를 담당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킹콩>은 거친 야생 분위기를 풍기나, 이 거친 분위기는 자연 환경보다 야만이라는 단어에 가깝습니다.
SF 장르에서 고지라와 킹콩은 거대 괴수 양대 산맥입니다. 양대 산맥은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보다 파괴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고지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깝습니다. 일반적으로 거대 괴수가 자연 친화보다 도시 파괴에 가깝기 때문에,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신나는 액션과 전투, 파괴를 연출하기 원할 때, 거대 괴수는 좋은 소재입니다. 그래서 SF/판타지 팬들이 거대 괴수를 바라볼 때, 그들은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기대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언제나 모든 거대 괴수가 오직 도시 파괴만 담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거대 괴수들은 웅장하고 번성하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파괴적인 거대 괴수는 장르 법칙이 아닙니다. 아무리 고지라와 킹콩이 파괴적이라고 해도, 이건 장르 법칙보다 장르 전형에 가깝습니다. 파괴적인 거대 괴수가 장르 전형이기 때문에, 이 전형에서 거대 괴수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고지라와 킹콩조차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 몬스터버스는 고지라와 킹콩 설정을 바꾸고 두 괴수가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고 연출합니다. 고지라가 자연의 힘을 상징하기 때문에, 2014년 영화 <고지라>에서 고지라는 파괴신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고지라는 생태계 균형을 담당하고, 인류 문명을 우회하고, 오직 무토 부부만 사냥합니다.
몬스터버스에서 고지라가 자연의 힘을 상징하기 때문에, 고지라와 모스라는 공생 관계입니다. 토호 원작 시리즈에서 고지라가 파괴신이기 때문에, 토호 고지라와 토호 모스라는 공생 관계가 아닙니니다. 오히려 두 거대 괴수는 적대 관계입니다. 외계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고지라와 모스라는 동맹이 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두 괴수는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화 <고지라: 파이널 워즈>에서 고지라는 모스라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러 거대 괴수들 중에서 모스라는 거의 유일한 아군이나, 고지라는 거의 유일한 아군에게 아무것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토호 고지라와 토호 모스라는 투닥투닥 싸우곤 합니다. 심지어 고지라와 모스라는 상대를 죽이기 원할지 모릅니다. 토호 고지라가 자연의 힘을 상징하기보다 파괴신에 가깝고, 토호 모스라가 어머니 자연에 가깝기 때문에, 두 거대 괴수는 공생 관계보다 적대 관계입니다. 몬스터버스는 이 설정을 뒤집고 고지라와 모스라가 친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고지라를 보호하기 위해 모스라는 자신을 희생할지 모릅니다.) 몬스터버스가 설정을 뒤집는 것처럼, 괴수는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얼마든지 풍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괴수는 자연 친화보다 도시 파괴에 가깝습니다.
SF/판타지에서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들과 파괴적인 거대 괴수들 중에서 어떤 쪽이 훨씬 많은 쪽수들을 자랑하고, 어떤 쪽이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나요? 대답은 전자보다 후자일 겁니다.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들보다 파괴적인 거대 괴수들은 훨씬 많은 쪽수들을 자랑하고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겁니다. 만약 파괴적인 거대 괴수가 장르 전형이라면, 이건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가 장르 전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가 장르 전형이 아니기 때문에, 이건 비주류 설정입니다. <토탈 워: 워해머>에서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입니다.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가 비주류 설정이고,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이 울창한 삼림을 숭배하기 때문에, 이건 비주류 설정입니다. 거대 삼림 맹금을 비롯해 자연 친화적인 괴수들보다 파괴적인 괴수들은 주류 설정입니다. 2016년 영화 <신고지라>가 1954년 영화 <고지라>를 계승하는 것처럼, 영화 <캐리비안 해적>에서 크라켄이 범선을 휘감고 파괴하고 침몰시키는 것처럼, 거대 괴수와 문명 파괴는 주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문명 파괴보다 자연 친화는 거대 괴수와 훨씬 어울릴 수 있습니다. 비록 이게 장르 전형이 아니라고 해도, 자연 친화는 훨씬 좋은 수식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도시 파괴보다 자연 친화가 훨씬 좋은 수식어가 될 수 있나요? 왜 문명 파괴보다 자연 친화와 거대 괴수가 어울릴 수 있나요? 거대 괴수는 야생 동물과 비슷합니다. SF/판타지 작가들이 거대 괴수들을 설정하는 동안, 거대 맹금처럼, 그들은 야생 동물들을 참고합니다. SF/판타지 작가들이 야생 동물들을 참고하고 거대 괴수들을 설정하는 것처럼, 거대 괴수는 야생 동물과 비슷합니다. 이건 언제나 모든 거대 괴수가 야생 동물과 비슷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거대 괴수들은 야생 동물들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거대 괴수들에게 야생 동물들은 생산 조건입니다.
거대 괴수에게 야생 동물이 생산 조건이고, 야생 동물이 자연 환경에 속하기 때문에, 거대 괴수는 자연 환경에 속합니다. 거대 괴수가 자연 환경에 속하기 때문에, 거대 괴수는 자연 환경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 환경이 거대하다고 표현합니다. 자연은 소자연보다 대자연입니다. 야생 동물이 자연 환경에 속하고, 자연이 거대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야생 동물이 거대하다면, 이건 자연 환경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거대 맹금이 거대한 야생 동물이기 때문에, 거대 맹금은 자연 환경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거대 맹금이 자연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건 자연 친화와 어울립니다.
거대 맹금이 자연 환경을 강조하기 때문에, 거대 맹금과 자연 친화는 어울릴 수 있습니다. 거대 맹금을 비롯해 괴수들이 자연 친화와 어울리기 때문에, 파괴적인 거대 괴수보다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는 훨씬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파괴보다 자연 친화가 거대 괴수와 훨씬 어울리기 때문에, 비록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이 비주류 설정이라고 해도, 이건 좋은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토탈 워: 워해머>는 비단 우드 엘프 거대 맹금과 포레스트 드래곤만 아니라 다른 여러 거대 괴수들을 보여줍니다. 이 중세 판타지는 여러 진영들을 포함하고, 여러 진영들은 여러 거대 괴수 병기들을 운영합니다.
우드 엘프 진영에게 거대 맹금이 있는 것처럼, 뱀파이어 진영에는 바르굴프가 있습니다. 거대 맹금이 (비행) 괴수 역할을 담당하는 것처럼, 바르굴프는 (지상) 괴수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관점에서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는 비슷한 위상입니다.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는 (비행/지상) 괴수 유닛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가 똑같은 괴수 유닛이라고 해도, 거대 맹금은 자연 생태계를 숭배합니다. 바르굴프가 뱀파이어 진영에 속하기 때문에, 바르굴프는 거대 흡혈귀입니다. 거대 흡혈귀 바르굴프는 싱그럽고 번성하는 자연 생태계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흡혈귀는 생명력에게 기생합니다.
흡혈귀를 비롯해 언데드들이 자연의 섭리를 부정하고 생명력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자연 친화적인 진영은 언데드를 적대합니다. 인류 제국에서 비취 마법사들, 드루이드 마기스터들은 생명력, 번성을 관장합니다. 드루이드 마기스터들이 번성을 관장하기 때문에, 그들은 언데드를 적대합니다. 드루이드와 우드 엘프는 일치하지 않으나, 드루이드들이 번성하는 자연을 선호하는 것처럼, 우드 엘프들은 자연(아델 로렌)을 숭배합니다. 우드 엘프들이 울창한 삼림을 숭배하기 때문에, 언데드와 우드 엘프는 적대적입니다. 거대 맹금이 자연 친화적이기 때문에, 거대 맹금과 흡혈귀는 적대적입니다.
거대 맹금과 흡혈귀가 적대적이기 때문에,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는 적대적입니다. 게임 규칙 관점에서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가 똑같은 (비행/지상) 괴수 유닛이기 때문에,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는 비슷한 역할일 수 있으나, 판타지 설정 관점에서 거대 맹금이 자연 친화적이고, 바르굴프가 언데드이기 때문에,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는 대립합니다. 거대 맹금과 바르굴프가 대립하는 것처럼, <토탈 워: 워해머>에서 여러 괴수들은 자연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비단 바르굴프만 아니라 다른 거대 괴수들 역시 번성하는 자연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 친화와 거대 괴수는 잘 어울리는 짝궁입니다.
자연 친화와 거대 괴수가 잘 어울리는 짝궁이기 때문에, 다른 여러 거대 괴수들보다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훨씬 독특한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 해적들부터 노스카까지, 썩어가는 레비아탄부터 야생 만티코어까지, 여러 진영들은 여러 거대 괴수들을 포함하나, 이것들 중에서 거대 맹금은 가장 독특한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비단 거대 맹금만 아니라 다른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들 역시 가장 독특한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 파괴보다 자연 친화와 거대 괴수가 잘 어울리는 짝궁이기 때문에, 이 관점에서 바르굴프와 썩어가는 레비아탄과 야생 만티코어보다 거대 맹금은 낫습니다.
만약 거대 괴수에게 자연 친화보다 도시 파괴가 핵심이라면, 거대 괴수는 다른 파괴적이고 거대한 것들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모니터 함선은 거대하고 파괴적입니다. 거대 괴수와 모니터 함선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파괴, 거대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 괴수는 야생 동물과 비슷합니다. 모니터 함선은 야생 동물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스팀펑크 작가가 기상천외한 모니터 함선을 구상한다고 해도, 모니터 함선은 야생 동물과 비슷하지 않을 겁니다. 기발한 모니터 함선을 구상하기 위해 스팀펑크 작가는 야생 동물을 참고하지 않을 겁니다. 모니터 함선에게 야생 동물은 생산 조건이 아닙니다.
모니터 함선과 달리, 거대 괴수에게 야생 동물은 생산 조건입니다. 거대 괴수와 모니터 함선에게는 공통점이 있으나, 오직 거대 괴수에게만 야생 동물은 생산 조건입니다. 이 생산 조건에서 거대 괴수는 비롯합니다. 거대 맹금이 현실 속의 맹금을 뻥~튀기하는 것처럼, 야생 동물 때문에, 거대 괴수는 나타납니다. 거대 맹금과 모니터 함선에게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 결정적인 차이, 야생 동물은 거대 맹금과 다른 거대하고 파괴적인 것들을 구분합니다. 야생 동물은 자연 환경에 속합니다. 생태계 테라포밍이 번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자연에서 중요한 것은 파괴보다 번성입니다.
SF 독자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이 파괴를 가리킨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SF 독자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이 번성을 가리킨다고 간주합니다. 자연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파괴보다 번성입니다. 하와이 신화에서 화산의 여신과 자연의 여신이 일치하는 것처럼, 자연은 파괴를 가리킬 수 있으나, 잿더미가 울창한 녹지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궁극적인 것은 화산의 여신보다 자연의 여신입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화산 악마 테카보다 자연의 여신 테 피티가 궁극적인 것처럼, 자연은 파괴보다 번성입니다. 자연은 번성이고, 야생 동물은 자연에 속합니다. 거대 괴수에게 야생 동물은 생산 조건입니다.
야생 동물이 자연에 속하고, 자연이 번성이기 때문에, 거대 괴수에게 번성은 생산 조건입니다. 하와이 신화에서 자연의 여신에게 번성이 생산 조건인 것처럼, <모아나>에서 테 피티가 번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거대 괴수에게 번성은 생산 조건입니다. 이건 언제나 모든 거대 괴수가 번성을 가리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절대적인 장르 규칙이 아닙니다. SF/판타지는 거대 괴수와 번성을 얼마든지 분리할 수 있습니다. SF/판타지에서 파괴적인 거대 괴수가 주류 설정인 것처럼, 거대 괴수는 파괴신입니다. 하지만 만약 생물 다양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괴수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번성하지 않았다면, 다양한 야생 동물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테고, 야생 동물들은 거대 괴수들을 위한 생산 조건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거대 괴수에게 파괴보다 번성은 핵심, 근본이 될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에게 파괴보다 번성이 핵심, 근본이기 때문에,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는 잘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토탈 워: 워해머>는 여러 거대 괴수들을 보여주나, 바르굴프부터 썩어가는 레비아탄과 선 드래곤과 야생 만티코어까지, 여러 거대 괴수들 중에서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번성을 가장 상징할 수 있습니다. 거대 맹금이 울창한 삼림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비단 다른 동물들만 아니라 우리 인류에게도 번성은 가장 근본적인 미덕입니다. 인류는 동물, 생명체입니다. 이웃집 영희는 생명체입니다. 옆동네 철수는 생명체입니다. 아랫집 수진은 생명체입니다. 뒷동네 말자 할머니는 생명체입니다. 이웃집 영희부터 뒷동네 말자 할머니까지, 모두 동물, 생명체입니다. 이웃집 영희와 옆동네 철수와 아랫집 수진과 뒷동네 말자 할머니를 비롯해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동물, 생명체입니다. 동물은 먹고 삽니다. 만약 동물이 먹지 않는다면, 만약 동물이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동물은 굶어죽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 인류에게도 번성은 근본적인 단어입니다.
어떤 철학자들과 문학 작가들은 보편적인 행복이 억압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행복들 역시 아주 다양합니다. 행복들이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행복들에게는 공통점들이 너무 적거나 없습니다. 행복들에게 공통점들이 너무 적거나 없기 때문에, 보편적인 행복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어떤 철학자들과 문학 작가들은 보편적인 행복을 부정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이 주장은 옳습니다. 보편적인 행복은 억압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죽은 인간은 행복(을 비롯해 다른 여러 감정들)을 절대 느끼지 못합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기 전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살아있어야 합니다.
살아있기 위해 인간은 먹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굶어죽을 테고, 죽은 인간은 행복(을 비롯해 다른 여러 감정들)을 절대 느끼지 못합니다. 행복들은 아주 다양할 수 있으나, 행복이 무엇이든,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상의 생태학 설정이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상의 생태학 설정에서 행복은 비롯합니다. 우주 바이오 돔에서 행복은 비롯합니다. 우주 바이오 돔보다 다른 것들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저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우주 바이오 돔이 시시하고 밋밋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행복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우주 바이오 돔이 아주 매력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제가 바이오 돔 설정을 덕질하는 동안, 저는 행복에 빠집니다. 저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이 설정이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우주 바이오 돔에서 행복이 비롯하거나 지루함이 비롯하는 것처럼, 행복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이든, 죽은 인간은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행복이 우주 바이오 돔이 되든, 벚꽃 놀이가 되든, 축구 경기가 되든, <Tulou Tagaloa> 같은 노래가 되든, 인간이 행복을 느끼기 전에, 인간은 먹어야 합니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먹기 때문에, 인간에게 먹거리는 필수적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먹거리를 얻나요?
하늘에서 먹거리가 뚝 떨어지나요? 종교 경전이 묘사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먹거리가 뚝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이 먹거리를 얻나요? 그건 아닙니다. 인간이 열매를 먹든, 곡물을 먹든, 버섯을 먹든, 꿀을 먹든, 치즈를 먹든, 생선을 먹든, 자연 환경 속에서 인간은 먹거리를 얻습니다. 인간이 열매를 따든, 곡물을 추수하든, 버섯을 줍든, 꿀벌을 치든, 염소를 먹이든, 생선을 낚시하든, 인간은 자연을 가공하고 먹거리를 얻습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먹거리를 얻기 때문에, 불모지 행성에서 인간은 먹고 살지 못합니다. 불모지 행성에서 인간이 먹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외계 행성 개척자들에게 바이오 돔은 필수적입니다.
외계 행성 개척자들에게 바이오 돔이 필수적인 것처럼, 자연 환경이 풍요롭게 번성하기 때문에, 인간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먹거리를 얻기 위해 인간에게 자연 환경은 필수적입니다. 인간에게 자연 환경이 필수적이고,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이 자연 환경(울창한 아델 로렌)을 숭배하기 때문에, 다른 괴수들보다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훨씬 독특합니다. 인류에게 자연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 관점에서 거대 삼림 맹금에게 썩어가는 레비아탄 같은 악마 괴물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번성은 근본적입니다. 거대 삼림 맹금이 번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어쩌면 여러 괴수들 중에서 거대 삼림 맹금은 가장 특별한지 모릅니다.
<토탈 워: 워해머>에서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가장 독특한 거대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포레스트 드래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포레스트 드래곤이 치렁치렁한 식물들을 걸치기 때문에, 거대 맹금보다 포레스트 드래곤은 훨씬 독특합니다.) 우드 엘프 거대 맹금처럼, SF/판타지는 거대 괴수를 제시하고 자연 친화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주류 문학이 이것을 표현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주류 문학은 거대 괴수를 상상하지 못하고 자연 친화를 강조하지 못합니다. 이 관점에서 주류 문학보다 SF/판타지는 매력적입니다. 주류 문학 환경 운동가보다 거대 맹금은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모아나>가 테 피티를 보여주는 것처럼, 외계 개척자들이 우주 바이오 돔을 조성하는 것처럼, 테 피티와 우주 바이오 돔과 거대 삼림 맹금은 이어지고, 주류 문학보다 이 연결은 훨씬 매력적입니다. 비단 주류 문학만 아니라 다른 예술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F/판타지가 예술에 속하고, 거대 삼림 맹금이 테 피티와 우주 바이오 돔과 이어지고 근본적인 미덕(번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다른 예술들보다 거대 삼림 맹금은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떤 가요가 엄청난 인기를 끈다고 해도, 가요가 근본적인 미덕을 강조할 수 있나요? 가요가 자연 생태계와 먹고 살기를 강조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가요는 거시적인 흐름, 거대 서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테 피티는 어머니 자연입니다. 어머니 자연 신화는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인류가 진화했고, 자연 생태계 속에서 인류가 먹고 살기 때문에, 이건 거시적인 흐름, 거대 서사에 속합니다.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이 거시적인 흐름, 거대 서사, 유구한 역사와 맞닿습니다. 거대 삼림 맹금과 달리, 일반적인 가요는 거대 서사와 맞닿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떤 가요가 아주 아주 엄청난 인기를 끈다고 해도, 아주 아주 엄청난 인기 가요보다 자연 친화적인 괴수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이건 (가요를 비롯해) 다른 예술들보다 거대 삼림 맹금이 우월한 예술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행복이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예술에는 우월과 열등이 없습니다. 행복들이 다양한 것처럼, 미학들은 다양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월한 예술과 열등한 예술을 구분하고 우월한 예술을 강요한다면, 이건 억압일 겁니다. (아이돌 팬 문화가 이른바 1군, 2군, 3군을 구분하고 비난하기 때문에, 아이돌 팬 문화에는 억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예술에 우월과 열등이 없기 때문에, 거대 삼림 맹금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자연 친화적인 괴수들은 거시적인 흐름과 맞닿습니다.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가 비주류 설정이기 때문에, 이 설정은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소설 <반지 전쟁>을 보세요. <반지 전쟁>은 가장 대표적인 중세 유럽 판타지입니다. <토탈 워: 워해머>가 우드 엘프 거대 맹금들을 보여주는 것처럼, <반지 전쟁>은 거대 맹금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과이히르를 비롯해 중간계 거대 맹금들은 울창한 삼림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과이히르를 비롯해 중간계 거대 맹금들은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를 묘사하기보다 고귀하신 왕족 가계도를 그리느라 너무 바쁩니다. 이 소설은 너무 왕족 친화적입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왕족들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습니다. 너무 오랜 동안, 고대부터 초기 근대까지, 왕족이라는 것들이 민중들을 핍박했고, 성별/신분을 차별했고, 난리법석을 떨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우리는 고귀하게 대단하신 왕족들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지 전쟁>은 고귀하신 왕족 가계도를 그리느라 바쁩니다. 자연 친화적인 거대 괴수보다 왕족 가계도는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반면, <워해머> 세계 설정은 비단 거대 삼림 맹금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자연 친화적인 괴수들(링크)을 보여줍니다. 이 거대 풍뎅이는 온 몸으로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거대 풍뎅이에서 나뭇가지들이 뻗고 버섯들이 자라기 때문에, 이 거대 풍뎅이는 번성하는 자연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번성하는 거대 풍뎅이와 거대 삼림 맹금과 포레스트 드래곤은 잘 어울립니다. <반지 전쟁>이 거대 풍뎅이 같은 자연 친화적인 괴수를 묘사하나요? 아무리 <반지 전쟁>이 가장 대표적인 중세 유럽 판타지라고 해도, 이 소설이 괴수에서 나뭇가지들이 뻗고 버섯들이 자란다고 묘사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 소설은 자연 친화적인 괴수보다 고귀하신 왕족느님들을 열심히 떠받듭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왕족들을 구경할 수 있으나, 심지어 판타지조차 이 현실을 너무 모방합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자연 친화적인 괴수를 구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드 엘프 거대 풍뎅이는 훨씬 환상적입니다. 이게 훨씬 판타스틱하기 때문에, 이건 훨씬 좋은 판타지입니다. 이 관점에서 <반지 전쟁>보다 <워해머>는 훨씬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21세기 초반 오늘날은 행성급 환경 오염 시대입니다. 서구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확장하고 엄청난 환경 오염들을 저지르기 때문에, 행성급 환경 오염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 기술이 행성급 환경 오염을 해결한다고 떠벌이나, 제국주의는 과학 기술 문제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 구조입니다.
기후 변화는 21세기 초반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19세기 산업 자본주의에서 이른바 하키 곡선이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산업 자본주의는 식민지들을 끔찍하게 수탈했습니다. 19세기 서구 사회에게 충분한 태양광 발전기들이 없었기 때문에, 19세기 서구 사회가 식민지들을 수탈했나요? 이건 너무 멍청하고 한심한 헛소리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 기술보다 사회 구조입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사회 구조이고, 이미 19세기 서구 산업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른바 녹색 자본주의 역시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녹색 자본주의는 그저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서구 제국주의라는 착취적인 사회 구조 때문에, 행성급 환경 오염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21세기 초반이 행성급 환경 오염 시대이기 때문에, 만약 거대 괴수가 파괴보다 자연 친화를 강조한다면, 이건 훨씬 시사적인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혐오스러운 바르굴프부터 썩어가는 레비아탄과 선 드래곤과 야생 만티코어까지, 여러 괴수들보다 우드 엘프 거대 맹금은 훨씬 시사적인 상징입니다.
※ 게임 <워해머: 토탈 워> 스크린샷 출처: samesonite,
www.youtube.com/watch?v=L5733Z9LS28
※ 사진 <Cake … Sweets Baked> 출처: mamiza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