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상흔>, 아방 형태와 묘사 본문
※ 이 게시글에는 차이나 미에빌이 쓴 <상흔>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생체 철갑 수송선은 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변 장르가 이런 설정을 구체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묘사할 수 있나요?]
비디오 게임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는 실시간 전략 게임입니다. 제목처럼,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는 여러 고대 신화들에 기반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유닛들을 생산할 수 있고, 한편으로 게임 플레이어는 신화 유닛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 식량, 목재, 귀금속 같은 자원들과 함께 기적은 자원이 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식량, 목재, 귀금속을 얻는 것처럼, 게임 플레이어는 몇몇 방법을 이용해 기적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적 자원은 신화 유닛들을 생산하기 위한 비용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비용(기적)을 지불하고 신화 유닛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신화 유닛들은 거인들, 괴물들, 거대 야수들입니다. 만약 거인들, 괴물들, 거대 야수들이 빠진다면, 신화는 별로 흥미롭지 않을 겁니다. 래리 고닉이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 신화는 별로 흥미롭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화에는 거인들, 괴물들, 거대 야수들이 없습니다. 몇몇 기적은 경이로우나, 그렇다고 해도 해일과 거대 바다 괴수는 다릅니다. 거대 바다 괴수가 생명체이기 때문에, 해일보다 거대 바다 괴수는 훨씬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북유럽 신화,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에서 온갖 거인들, 괴물들, 야수들은 각축전을 벌입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역시 신화 유닛들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당연히 신화 유닛들 중에는 거대 바다 괴수들이 있습니다. 함선들은 거대 바다 괴수와 함께 바다를 가로지릅니다. 신화적인 바다에는 거대 바다 괴수가 있어야 합니다. 바다는 깊고 드넓습니다. <해저 2만리>가 지적하는 것처럼, 바다는 거대 괴수를 위한 고향입니다. 만약 거대 괴수에게 진정한 고향이 있다면, 거기는 육지보다 바다일 겁니다. 인간에게 바다는 낯선 공간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바다에 친숙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인간은 육상 동물입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아무리 모아나가 위대한 항해사가 된다고 해도, 결국 섬(육지)에서 모아나는 살아갑니다. 바닷속에서 모아나는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바다는 낯선 공간입니다. 그래서 육상 괴수보다 바다 괴수는 훨씬 이질적입니다. 만약 신화, 판타지, 사이언스 픽션이 이질성을 강조하기 원한다면, 육상 괴수보다 바다 괴수는 훨씬 나은 선택일 겁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도 육상 괴수들보다 바다 괴수들은 훨씬 이질적입니다.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육상 괴수들을 훨씬 사랑할지 모르나,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도 바다는 낯선 공간입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 기본적인 배경 무대는 육지입니다. 육지에서 바다로 게임 유닛들은 진출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배경 무대가 육지이기 때문에, 바다는 낯설고, 바다 괴수는 낯섭니다.
함선들이 바다 괴수와 함께 항해할 때, 이 장면은 훨씬 기이할 겁니다. 보병 부대가 육상 괴수와 함께 진군할 때, 이 장면은 기이할 수 있으나, 이런 장면보다 함선들과 바다 괴수는 훨씬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다 괴수들 중에서 레비아탄은 생체 철갑선이 됩니다. 레비아탄은 튼튼한 갑주어(甲胄魚)입니다. 레비아탄은 아군 유닛들을 옮길 수 있습니다. 요나 이야기에서 고래가 요나를 옮기는 것처럼, 레비아탄은 생체 철갑 수송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비아탄은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전략 게임들에서 생체 철갑 수송선은 드뭅니다. 레비아탄은 전투 유닛이 아니나, 레비아탄은 튼튼한 수송선입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 레비아탄이 독특한 생체 철갑 수송선이 되는 것처럼, 만약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에서 함대나 선단이 거대 바다 괴수를 이용한다면, 이건 독특한 설정이 될 겁니다. 항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거대 동물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 문명은 다양한 선박들을 건조했으나, 선박들은 거대 해양 동물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고래 상어부터 대왕 오징어까지, 바닷속에 거대 동물들이 있다고 해도, 항해하기 위해 인류 문명은 거대 해양 동물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에서도 이런 설정(거대 선박을 위한 생체 동력원)은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설 <상흔>은 독특합니다. 소설 <상흔>에서 선단 도시 아르마다는 거대 바다 괴수 아방을 길들입니다. 선단 도시 아르마다에게 아방은 생체 동력원입니다. 아방은 아르마다를 이끌고 바다를 빠르게 가로지릅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 레비아탄이 생체 철갑 수송선이 되는 것처럼, <상흔>에서 아르마다에게 아방은 강력하고 빠른 생체 동력원입니다. 당연히 <상흔>에서 아방 소환 과정은 상당히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방 소환은 가장 중요한 사건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당연히 <상흔>은 얼마나 아방이 웅장하고 굉장한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상흔>은 아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아방 소환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아방이 중요한 거대 괴수이고, 아방이 독특한 설정임에도, <상흔>은 아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잠수정이 아방을 둘러보는 동안, 소설 시점은 얼마나 아방이 거대한지 그저 간접적으로 묘사할 뿐입니다. 아방이 벼랑 바다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소설 시점은 오직 규모와 비극만 전달합니다. 몇몇 등장인물은 아방이 무슨 동물인지 묻습니다. 이런 물음은 흐지부지 사라집니다. 아르마다가 아방을 성공적으로 소환했을 때, 아르마다 사람들은 거대한 진동을 느낍니다. 거대한 진동 덕분에, 그들은 아방이 아르마다를 이끈다고 느끼나, 소설 시점은 시각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독자가 <상흔>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도, 독자는 아방을 시각적으로 확인하지 못합니다. 아방이 고래와 닮았나요? 아방이 바다뱀과 비슷한가요? 아방이 뻥튀기한 메갈로돈인가요? 아방이 1.6km짜리 크라켄인가요? 어쩌면 아방은 아주 거대한 아르켈론인지 모릅니다. 심지어 아방은 도롱뇽이나 개구리와 비슷한지 모릅니다. 독자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상흔>은 아방이 무엇과 비슷하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상흔>은 아방 형태를 감춥니다. 독자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은 아방이 됩니다. 이웃집 영희는 아방이 고래 상어와 비슷하다고 주장합니다. 옆동네 철수는 아방이 1.6km짜리 크라켄이라고 생각합니다.
뒷동네 말자 할머니는 아방이 뻥튀기한 메갈로돈이라고 이해합니다. 아랫집 수진은 아방이 아주 거대한 아르켈론이라고 추측합니다. 다른 독자들은 아방이 도롱뇽이나 개구리와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모두 옳습니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상흔>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해석은 옳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 차이나 미에빌 역시 정답을 확신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차이나 미에빌은 아방이 무슨 형태인지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독자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정답은 여러분의 해석입니다." 만약 독자가 묻는다면, 이렇게 차이나 미에빌은 대답할지 모릅니다.
왜 소설 시점이 아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나요? 만약 독자들이 대답을 듣고 싶다면, 그들은 차이나 미에빌에게 직접 묻거나 차이나 미에빌 인터뷰들을 찾아봐야 합니다. 만약 독자들이 직접 묻지 않고 인터뷰들을 찾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확신하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독자들이 자유분방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해도, 차이나 미에빌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집어넣었을 테고, 독자들은 작가 의도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독자는 아방이 거대한 아르켈론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독자는 왜 차이나 미에빌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는지 함부로 확신하지 못합니다. 독자는 작가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독자들은 몇몇 가설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아방은 독특한 설정입니다.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에서 거대 바다 괴수는 아주 상투적인 설정이나, 대부분 거대 바다 괴수들은 생체 동력원이 되지 않습니다. 아방은 독립적인 거대 괴수보다 선단 도시의 생체 동력원에 가깝습니다. 상투적인 바다 괴수들과 아방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아방은 상투적인 바다 괴수가 아닙니다. 아방이 상투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방은 상투적인 묘사를 피해야 합니다. 만약 <상흔>이 아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이건 상투적인 묘사가 될 겁니다. 거대 바다 괴수가 진부하기 때문에, <상흔>은 함정을 피해야 합니다.
진부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상흔>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상흔>이 정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자유분방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웃집 영희는 고래 상어가 아주 인상적이라고 느끼고 고래 상어를 아방에게 대입합니다. 옆동네 철수는 크라켄이 바다 괴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크라켄을 아방에게 대입합니다. 메갈로돈이 유명하기 때문에, 뒷동네 말자 할머니는 메갈로돈을 아방에게 대입합니다. 아랫집 수진은 장수 거북이 우아하고 장엄한 해양 생명체라고 생각하고 아르켈론을 아방에게 대입합니다. 그래서 영희와 철수와 말자 할머니와 수진은 모두 만족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상흔>이 아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아방이 고래 상어이거나 크라켄이거나 메갈로돈이거나 아르켈론이라면, 영희와 철수와 말자 할머니와 수진은 실망할 겁니다. 만약 아방이 아르켈론이라면, 아랫집 수진은 좋아하겠으나, 이웃집 영희와 옆동네 철수와 뒷동네 말자 할머니는 실망할 겁니다. 옆동네 철수는 장수 거북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옆동네 철수는 장수 거북이 그저 헤엄치는 생체 솥뚜껑이라고 여깁니다. "어라, 뭐야? 아방이 1.6km짜리 아르켈론이야? 아방이 그저 거북에 불과해? 젠장, 이건 너무 실망스러워." 이렇게 옆동네 철수는 실망할지 모릅니다. 다른 많은 독자들 역시 실망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상흔>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자유분방하게 해석할 수 있고, 독자들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건 모든 독자가 만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뒷동네 말자 할머니는 차이나 미에빌이 꼼수를 부린다고 느낍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아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했어. 진부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차이나 미에빌은 꼼수를 부렸지. 이건 정면 승부가 아니야. 비록 독자들이 실망한다고 해도, 차이나 미에빌은 기발한 상상력을 이용해 아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했어. 차이나 미에빌처럼, 만약 모든 사변 소설 작가가 거대한 설정을 감추고 꼼수를 부린다면, 사변 소설들은 시시해질 거야."
말자 할머니는 옳습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꼼수를 부렸습니다. 이건 안전빵입니다. 종종 사변 소설 작가들은 안전빵을 선택합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안전빵보다 정면 승부를 선택하고 구체적인 묘사를 제시했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어떤 독자들이 실망한다고 해도, 차이나 미에빌은 당당하게 구체적인 아방 형태를 제시했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뒷동네 말자 할머니와 달리, 아랫집 수진은 이게 꼼수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아방은 신화적인 거대 바다 괴수입니다. 신화적인 거대 바다 괴수는 베일에 싸여야 합니다. 만약 신화적인 바다 괴수가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낸다면, 신비롭고 웅장한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질 겁니다.
뒷동네 말자 할머니와 아랫집 수진은 다르게 해석합니다. 말자 할머니는 차이나 미에빌이 꼼수를 부렸다고 생각하고, 아랫집 수진은 신화적인 바다 괴수가 베일을 벗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자 할머니와 아랫집 수진 중에서 누가 옳든, 말자 할머니와 아랫집 수진은 한 가지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상흔>은 소설입니다. 소설은 글자 매체입니다. 글자 매체는 시각적이지 않습니다. 글자 매체가 시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방이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어색한 연출이 아닙니다. 만약 <상흔>이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 게임이었다면, 이건 어색한 연출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 게임은 시각적인 매체입니다. 이것들은 시각적인 정보들을 계속 전달해야 합니다. 만약 온갖 시각적인 정보들 속에서 아방이 보이지 않았다면, 이건 어색한 연출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상흔>이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은 추상적입니다. 심지어 소설 속에서 평범한 갈매기조차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아방이 추상적이라고 해도, 아무리 아방이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어색하지 않습니다. 누가 아나요. 어쩌면 아방은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의 갑주어 레비아탄과 닮은꼴인지 모릅니다. 소설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런 해석 역시 틀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