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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괴수왕> 속의 거대한 뱀과 에코 테러리스트들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고지라: 괴수왕> 속의 거대한 뱀과 에코 테러리스트들

OneTiger 2019. 9. 13. 20:08

[전반적으로 기도라는 드래곤입니다. 하지만 가끔 기도라는 꿈틀거리며 휘감는 뱀이 됩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서 주연 악당은 (킹) 기도라입니다. 그래서 기도라가 얼음들을 부수고 깨어날 때, 이 장면은 가장 중요하고 극적인 장면들 중에서 하나가 됩니다. 2014년 <고지라> 역시 수컷 무토가 구덩이 위로 기이하게 올라온다고 묘사했으나, 수컷 무토보다 기도라는 훨씬 거대하고 훨씬 강력합니다. 구덩이 위로 킹기도라는 장엄하게 올라옵니다. 구덩이 위로 길다란 세 목들과 길다란 두 꼬리가 올라올 때, 킹기도라는 거대한 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히드라가 뱀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같은 게임은 히드라가 (머리들이 많은) 브론토사우루스와 비슷하다고 묘사했으나, 일반적으로 히드라는 뱀입니다. 히드라처럼, 기도라가 구덩이 위로 길다란 목들과 두 꼬리를 내밀 때, 기도라는 뱀 같습니다. 뱀은 길다란 몸으로 뭔가를 휘감습니다. 뱀은 정말 살아있는 끈 같습니다. 길다랗고 휘감은 몸은 뱀이 보여주는 가장 커다란 특징일 겁니다.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스마우그 역시 이런 특징을 보여줍니다. 금화 더미 속에서 스마우그가 꿈틀거리고 헤엄칠 때, 스마우그는 육중한 아나콘다 같습니다. 사실 영화 제작자들은 정말 스마우그가 엄청난 보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마우그는 뱀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속에서 우드 엘프 군주 스란두일은 드래곤들을 '거대한 뱀 (sperpent)'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드래곤에게 짧은 목이 있다면, 드래곤은 별로 뱀 같지 않을 겁니다.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드래곤들은 별로 뱀 같지 않습니다. 이런 드래곤들은 뱀보다 도마뱀에 가깝습니다. 영화 <드래곤 하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에서 드레이코는 뱀보다 육중한 도마뱀에 가깝습니다. 소설 <후린의 아이들>에는 거대한 우룰루키 글라우룽이 있습니다. 우룰루키 글라우룽은 최종 보스에 가깝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글라우룽 그림들을 그립니다.

 

어떤 그림들은 글라우룽이 도마뱀이나 악어에 가깝다고 묘사합니다. 사실 드래곤을 그릴 때, 여러 화가들은 도마뱀과 악어를 참고합니다. 하지만 존 로널드 톨킨은 드래곤이 뱀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글라우룽이 성채를 습격한 이후, 성채 속에서 글라우룽은 '똬리'를 틀었습니다. 악어가 똬리를 틀 수 있나요? 도마뱀이 똬리를 틀 수 있나요? 똬리는 뱀의 행위입니다. 분명히 글라우룽은 육중한 도마뱀이나 악어보다 뱀에 가까울 겁니다. 어쩌면 이런 그림(링크)처럼, 드래곤들은 꿈틀이(worm)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영화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스마우그는 정말 길다란 뱀에 가깝습니다. 목과 꼬리가 너무 길기 때문에, 종종 스마우그는 드래곤보다 두 날개가 있는 뱀 같습니다.

 

 

SF/판타지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여러 드래곤들을 보여주나, 이런 드래곤들 중에서 스마우그는 상당히 독특합니다. 다른 드래곤들은 도마뱀이나 악어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어떤 드래곤들은 포유류와 비슷합니다. 반면, 스마우그는 뱀에 가깝습니다. 참나무방패 소린은 스마우그를 꿈틀이(슬러그)라고 모욕합니다. 거대한 지렁이처럼 스마우그가 꿈틀거리기 때문에, 정말 스마우그는 꿈틀이 같습니다. 스마우그가 네 다리들보다 두 날개 발가락들과 두 뒷다리로 걷기 때문에, 스마우그는 훨씬 꿈틀이 같습니다. 만약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투스리스를 비롯해 나이트 퓨리 드래곤이 이런 체형이었다면, 어린이 관객들은 꿈틀거리는 나이트 퓨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검고 길다란 나이트 퓨리가 꿈틀거리며 히컵을 휘감는다면, 이건 동화보다 다크 판타지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비단 SF/판타지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들 속의 드래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몬스터 헌터> 같은 비디오 게임들에서 리오레이아, 티가렉스, 쿠샬다오라 같은 드래곤들은 뱀보다 도마뱀이나 악어에 가깝습니다. 어떤 드래곤들은 뱀에 가까우나, 그렇다고 해도 리오레이아, 티가렉스, 쿠샬다오라 같은 드래곤들은 간판 괴수들입니다. 만약 간판 괴수 리오레이아가 길다란 꿈틀이었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간판 괴수로서 여왕님의 품격이 떨어진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리오레이아 여왕님은 게임 간판 괴수가 되어야 하고, 게임 간판 괴수는 길다란 꿈틀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서 가끔 주연 악당으로서 기도라는 뱀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원작 킹기도라는 뱀(과 비슷한 체형)과 다소 거리가 멉니다. 비록 킹기도라가 길다란 목으로 고지라를 휘감는다고 해도, 전반적으로 킹기도라의 체형과 뱀의 체형 사이에는 다소 머나먼 거리가 있습니다. <고지라: 괴수왕>에서도 기도라의 체형과 뱀의 체형 사이에는 다소 머나먼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덩이 위로 오직 세 목들과 두 꼬리만 올라올 때, 이런 장면은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두 날개와 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도라는 흐느적거리고 뭔가를 휘감는 것 같습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기도라의 세 목들이 꿈틀거리며 고지라를 휘감는 동안, 어떤 관객들은 아나콘다를 머릿속에 떠올릴지 모릅니다.

 

관객들이 이런 모습을 히드라와 비교한다고 해도, 이건 커다란 오류가 아닐 겁니다. 게다가 히드라를 비롯해 뱀은 긍정적인 동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뱀이 혐오스럽다고 여깁니다. 특히,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뱀은 별로 좋은 동물이 아닙니다. 뱀이 두 인간을 꼬셨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원죄가 있습니다. 뱀이 두 인간을 꼬셨기 때문에, 뱀은 땅을 기어다녀야 합니다. 만약 어떤 괴수가 꿈틀거리고 휘감고 기어다닌다면, 이런 괴수는 좋은 인상을 선사하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이 기독교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사람들은 뱀을 싫어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리들이 있는 동물에 익숙합니다. 뱀에게는 다리가 없고, 뱀과 4족 보행 동물들은 아주 다릅니다.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드래곤보다 거대하고 육중한 보아에 가깝습니다. 스마우그는 상당히 독특합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서 기도라가 고지라를 휘감기 때문에, 기도라는 뱀과 비슷한 부정적인 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고지라를 비롯해 다른 거대 괴수들보다 기도라는 '압도적인 뱀'입니다. 기도라는 정말 인류 문명을 끝장낼 수 있는 뱀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왜 기도라가 깨어났나요? 누가 기도라를 깨웠나요? 왜? 기도라가 아주 강력하고 부정적인 거대 괴수이기 때문에, 기도라를 둘러싼 논의 역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기도라는 스스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기도라를 깨웠습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을 관람한 이후, 관객들은 이른바 '에코 테러리스트'들이 문제라고 말할 겁니다. 관객들은 에코 테러리스트들을 비난할 겁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왜 에코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리스트'인가요? 테러리스트는 부정적인 용어입니다. 사람들은 시셰퍼드 같은 극단적인 환경 보호 운동가들이 에코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시셰퍼드가 에코 테러리스트인가요? 왜 시셰퍼드가 부정적인가요? 시셰퍼드가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누군가가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나요? 만약 폭력 때문에 누군가가 테러리스트가 된다면, 자본가 계급은 가장 끔찍한 테러리스트일 겁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가장 흉악하고 커다란 테러일 겁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라는 행성급 환경 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행성급 환경 오염은 가장 심각한 폭력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가장 커다란 작동 원리는 이윤 축적입니다. 이윤 축적 없이,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자본가 계급은 이윤을 축적하고 축적하고 축적하고 다시 축적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윤이 가장 커다랗고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이윤 축적 앞에서 다른 것들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만약 뭔가가 이윤 축적을 방해한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그걸 짓밟을 겁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행성 환경이 바뀐다고 해도,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본주의는 저항들을 짓밟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민중들이 봉기했을 때, 자본가 계급은 가난한 민중들을 끔찍하게 학살했습니다.

 

자본가 계급은 최고의 테러리스트입니다. 근대 인류 문명에서 가장 심각한 오해들 중에서 하나는 자본주의가 평화롭다는 오해입니다. 자본주의는 절대 평화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평화롭다고 오해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반대 운동은 자동적으로 테러가 됩니다. 굶주리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가난한 제3세계 국가 정부들이 사회주의 정책들을 선택한다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런 가난한 국가들을 게거품을 물고 비난할 겁니다. 심지어 미국 정부는 이런 가난한 국가들을 공격합니다. 미국 정부는 반동적인 쿠데타를 지원하고, 사회주의 국가 정부는 몰락하고, 미국은 제3세계 괴뢰 정부를 세울 수 있습니다.

 

철학자 피터 오스본은 <자본론>을 인용하고 이런 것이 자본의 시초 축적이라고 가리킬지 모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문 단속'은 필수적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제대로 '문 단속'하지 않는다면, 언제 미국 중앙 정보부가 반동적인 쿠데타를 지원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언론들을 통제하고, 비밀 경찰들을 풀어놓고,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탄압합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가난한 국가들을 괴롭히고, 공격하고, 억압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들은 철저하게 '문 단속'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너무 철저하게 '문 단속'해야 합니다. 비단 제3세계 국가들만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반동적인 파쇼주의로 치닫고, 미국이 경제 공황을 두들겨맞고 찌질거리고, 일본이 동아시아 식민지들을 수탈하는 동안, 고립된 소비에트 연방은 혼자 파쇼주의를 막아야 했습니다. 친(親) 나치 인사들을 막기 위해 소비에트 연방은 너무 철저하게 '문 단속'했고, 이건 대숙청을 비롯해 각종 억압들로 이어졌습니다. 분명히 소비에트 연방은 친나치 세력들을 방지했고 심지어 세계 대전에서 유럽 문명을 구했으나, 어디에서든 고인 물은 썩습니다.

 

반드시 고인 물은 썩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왜 사회주의 국가 정부가 고인 물이 되나요? 사회주의 국가 정부가 스스로 고인 물이 되나요? 파리 코뮌이 고립되기 원했나요? 소비에트 연방이 스스로 고인 물이 되었나요? 여러 제3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나요? 그저께 9월 11일이 무슨 날인가요? 미국을 비롯해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운동들을 고립시킵니다. 사회주의 운동들은 고인 물이 되고, 고인 물은 썩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썩은 물을 만듭니다. 그래서 가장 비열하고 폭력적인 깡패는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는 가장 더러운 테러리스트입니다. 보수 우파 지식인들의 무식하고 멍청한 헛소리들과 달리, 자본주의는 이른바 전체주의를 만듭니다.

 

 

환경 운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보호 운동이 이윤 축적을 방해하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은 환경 운동을 끔찍하게 억압합니다. 1차원적이고 피상적인 환경 운동은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앞에서 근본적인 환경 보호 운동은 널리 퍼지지 못합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을 세뇌시킵니다. 학교 교육들은 자본주의 만만세를 부르고,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자본주의가 최선이라고 배웁니다. TV 광고들이 헛소리들을 떠든다고 해도, 사람들은 헛소리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경쟁이 가치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대학 교수라는 작자들조차 노동 가치 이론을 개무시하고 경쟁이 가치를 만든다고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경쟁이 아무 가치를 만들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헛소리를 숭배합니다. TV 광고들은 힘들고 지친 출근길들과 야근들을 보여줍니다. TV 광고들은 피로 회복제 상품들이 이런 힘들고 지친 출근길들과 야근들을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회사 직원이 야근에 지칠 때, 피로 회복제 광고는 회사 직원이 피로 회복제 상품으로 지친 야근을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광고들은 꽤나 흔합니다. TV와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이런 광고들을 쉽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광고들은 왜 회사 직원이 힘들게 야근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왜 회사 직원이 야근해야 합니까? 왜 빽빽한 전철 속에서 회사 직원이 힘들게 출근해야 합니까? 왜 사람들이 회사에 다녀야 합니까?

 

 

왜 회사가 존재합니까? 45억 년 전에 지구가 나타났을 때부터 회사가 존재했나요? 위대한 외계인 오버로드들이 회사를 선물했나요? 그레이트 올드 원들이 인류 문명에게 회사를 부여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16~18세기에 유럽 문명이 식민지 지역들을 수탈하는 동안, 자본주의는 나타났습니다. 이런 자본주의 속에서 회사들은 나타났습니다. 식민지 수탈에서 자본주의가 비롯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입니다. 자본주의는 폭력적으로 이윤을 얻기 원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쥐어짭니다. 그래서 회사 직원은 힘들게 출근하고 야근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영리 기업들은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식민지 수탈에서 자본주의가 비롯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는 모순입니다. 하지만 피로 회복제 광고는 이걸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들이 자본주의 만만세라고 거짓말하고 세뇌시키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심각한 테러임에도, 사람들은 이걸 의식하지 못합니다. 폭력적인 지배 계급이 후천적인 폭력을 만듬에도,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폭력적인 지배 계급보다 후천적인 폭력을 힐난합니다.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강간 문화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강간 문화 속에서 여자들이 너무 극심한 공포들을 겪어야 하고, 강간 문화 속에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여자가 절대 살아가지 못하고, 이런 극심한 공포들이 극단적인 반발로 이어짐에도,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가부장 문화보다 메갈리아를 힐난합니다.

 

 

이런 보수 우파 지식인들의 눈깔 구멍에는 눈동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런 보수 우파 지식인들이 눈깔 구멍에 무엇을 처넣고 다니나요? 그들의 눈깔 구멍에 눈동자가 제대로 처박혔다면, 어떻게 그들이 남한 사회의 억압적이고 끔찍한 강간 문화를 외면하겠습니까? 지식인들이 남한 사회의 강간 문화를 외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가부장 문화보다 메갈리아를 힐난할 수 있습니까? 어쩌면 보수 우파 지식인들의 눈깔 구멍에는 제대로 된 눈깔보다 자본주의 만만세가 처박혔는지 모릅니다. 이런 비판이 너무 거칠고 상스럽다고 해도, 보수 우파 지식인들이 너무 거대한 비극에 들러붙기 때문에,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쌍욕들을 들어처먹어야 마땅할 겁니다.

 

물론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피해자입니다. 개인보다 사회 구조가 거대하기 때문에, 개인은 사회 구조와 지배적인 체계를 쉽게 극복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체계는 보수 우파 지식인들을 세뇌시킵니다. 하지만 우파 지식인들이 피해자라고 해도, 그들이 지배 계급을 찬양하고 후천적인 폭력을 곡해하기 때문에, 민중들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 <고지라: 괴수왕> 관객들은 에코 테러리스트들이 문제라고 말할 겁니다. 영화 <고지라: 괴수왕> 역시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지라: 괴수왕>이 자본주의를 지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저 헛소리 영화에 불과할니다. 뭐, <고지라: 괴수왕>이 헛소리를 떠든다고 해도, 이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거대 괴수 오페라는 웅장하나, 급진적인 시각 없이, 생태 철학은 그저 지배적인 체계에게 충성할 뿐입니다.]

 

 

문제는 현실입니다. 관객들은 헛소리 영화를 관람하고 지배적인 헛소리 관념들을 재생산할 겁니다. <고지라: 괴수왕>이 헛소리를 떠든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헛소리들을 재생산한다면, 이건 너무 심각한 문제일 겁니다. 이 영화가 웅장한 거대 괴수 오페라를 보여준다고 해도, 안타깝게도 헛소리들은 별로 웅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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