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서브머지드>의 기이한 고래 상어 본문
[기이한 고래 상어는 자연을 대표하고, 거대 바다 괴수가 되고, 강렬한 경고로 변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서브머지드>는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서구 산업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들을 일으켰고, 환경 오염들 때문에 서구 문명은 멸망했습니다. <서브머지드>는 뚜렷한 줄거리를 보여주지 않으나, 환경 오염과 산업 자본주의, 서구 문명 종말이 드문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서브머지드>가 오직 모호한 그림들만 보여준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환경 오염과 산업 자본주의, 서구 문명 종말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서구 메트로폴리스는 바다에 잠기고, 자연은 도시를 뒤덮습니다. 건물들은 야자수 숲이 되었고, 바다에서 기이한 해양 동물들은 헤엄칩니다.
게임 주인공 소녀 미쿠는 침수된 도시에 닿습니다. 미쿠는 쪽배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니고, 물품들을 구하고, 여러 해양 동물들과 마주칩니다. 여러 해양 동물들 중에서 고래 상어와 혹등고래는 가장 인상적일 겁니다. 고래 상어와 혹등고래가 가장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고래 상어가 쪽배 곁을 지나갈 때, 혹등고래가 바다 위로 뛰어오를 때, 미쿠(를 조종하는 게임 플레이어)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거대 해양 동물을 바라봅니다. 미쿠에게 고래 상어는 거대 바다 괴수와 비슷합니다. 미쿠에게 아무 무기와 장비가 없기 때문에, 고래 상어가 미쿠를 해치기 원한다면, 미쿠는 고래 상어를 막지 못할 겁니다.
<서브머지드>에는 전투가 없습니다. 해양 동물들은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고래 상어가 쪽배를 밀친다고 해도, 미쿠는 위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 게임에는 상호 작용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다. 미쿠는 그저 도시를 돌아다니고 둘러볼 뿐입니다. 기이한 변이 고래 상어는 미쿠를 공격하지 않고, 미쿠는 고래 상어와 싸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미쿠에게 오직 쪽배만 있기 때문에, 근대 문명이 멸망했기 때문에, 변이 고래 상어는 거대 바다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쪽배 소녀 미쿠보다 변이 고래 상어는 훨씬 우월합니다. 그래서 미쿠(를 조종하는 게임 플레이어)는 기이한 변이 고래 상어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겁니다.
어쩌면 게임 플레이어는 <서브머지드>에서 변이 고래 상어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서브머지드>는 자연이 도시를 뒤덮는다고 묘사합니다. <서브머지드>에서 도시보다 자연은 우월하고 중요합니다. 그리고 고래 상어는 자연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이 웅장하고 살아있고 신비롭다고 생각합니다. <서브머지드>에서 고래 상어는 웅장함, 살아있음, 신비로움 3종 세트를 갖추었습니다. 야자 나무와 무성한 수풀과 다른 해양 동물들 역시 자연을 대표할 수 있으나, '침수된 도시'라는 제목처럼, <서브머지드>에는 드넓은 바다가 있습니다. 드넓은 바다에는 거대 바다 괴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이한 변이 고래 상어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해도, 고래 상어가 바다 괴수라고 해도, <서브머지드>는 거대 괴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본격적인 괴수물이 아닙니다. 거대 괴수 팬들은 <서브머지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변이 고래 상어가 쪽배를 밀치고 위용을 자랑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이게 인상적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변이 고래 상어는 본격적인 바다 괴수가 아닙니다. <서브머지드>는 자연과 도시를 보여주고, 고래 상어는 이런 환경을 구성하기 위한 요소들에 속합니다.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고래 상어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은 고래 상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은 고래 상어보다 침수된 도시, 건물 위의 열대 밀림, 묵시적이고 드넓은 분위기, 수상한 도시 거주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일지 모릅니다. 기이한 변이 고래 상어는 전면으로 나서지 않고 사건 전개를 적극적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래 상어가 위용을 자랑한다고 해도, 고래 상어는 게임 줄거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미쿠가 고래 상어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그저 수집 요소를 놓칠 뿐입니다. 게임 줄거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변이 고래 상어가 본격적인 괴수가 아니기 때문에, 괴수 팬들은 <서브머지드>를 주목하지 않을 겁니다.
<서브머지드>는 괴수물보다 줄리 버타그나가 쓴 <태양이 없는 땅>에 훨씬 가깝습니다. 소설 <태양이 없는 땅>은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기후 변화 때문에 바다는 대륙들을 뒤덮습니다. 바다 세계에서 사람들은 살아가야 합니다. 소설 주인공 소녀는 이상향을 꿈꾸고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소녀는 바다를 건너고 이상향을 추구합니다. <태양이 없는 땅>과 <서브머지드>에는 환경 아포칼립스, 드넓은 바다, 침수된 도시, 소외된 바다 사람들, 소녀 주인공이 있습니다. <태양이 없는 땅>과 <서브머지드>에서 거대 바다 괴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태양이 없는 땅>에는 거대 바다 괴수가 없습니다. 발단부터 초반 절정까지, 이 소설이 드넓은 바다를 계속 보여줌에도, 소설 속에는 거대 바다 괴수가 없습니다. 이건 좀 너무합니다. 환경 아포칼립스가 드넓은 바다를 보여준다면, 이런 바다에는 거대 바다 괴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인지상정이고 클리셰이고 장르 공식입니다. 드넓은 바다에 웅장한 해양 동물이 없다면, 이건 너무 밋밋하고 시시할 겁니다. <태양이 없는 땅>은 흥미로운 10대 성장 소설이나, 줄리 버타그나는 바다 괴수 로망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브머지드>에서 변이 고래 상어가 싸우지 않는다고 해도, 변이 고래 상어에게는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많은 괴수 팬들은 괴수가 싸움박질하고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싸움박질과 살육 없이, 거대 괴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거대 괴수가 거대하고 신비롭고 우아하다고 해도, 거대 괴수가 환경을 구성하기 위한 요소라면, 거대 괴수가 싸우지 않고 죽이지 않는다면, 괴수 팬들은 실망할 겁니다. 100m짜리 레비아탄이 장엄하게 바닷물을 가르고 헤엄친다고 해도, 레비아탄이 구축함을 침몰시키지 않는다면, 괴수 팬들은 실망할 겁니다. 반면,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주연한 악어 영화 <크롤>처럼, 3m짜리 악어가 침수된 도시를 돌아다닌다고 해도, 이 악어가 핏덩어리들과 살점들을 튀기며 시민들을 물어뜯는다면, 괴수 팬들은 좋아할 겁니다.
3m짜리 악어보다 100m짜리 레비아탄은 훨씬 웅장하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싸움박질과 살육입니다. <서브머지드>에는 싸움박질과 살육이 없습니다. 현실 속의 자연 생태계에서 고래 상어는 싸움박질과 살육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서브머지드>에서도 고래 상어는 싸움박질과 살육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 게임이 침수된 도시를 보여줌에도, 쪽배 소녀가 드넓은 바다를 돌아다님에도, 쪽배 소녀는 육식 상어를 만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싸움박질과 살육을 제외하기 위해 <서브머지드>는 의도적으로 육식 상어를 제외했는지 모릅니다. 바다에 육식 상어들이 돌아다닌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싸움박질과 살육과 <죠스>를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괴수 팬들에게 100m짜리 평온한 레비아탄보다 이런 사나운 악어는 훨씬 '괴수'에 가까울 겁니다.]
어쩌면 <서브머지드>는 바다를 너무 평화롭고 고요하게 묘사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바다가 정말 도시를 덮친다면, 소녀가 쪽배를 타고 침수된 도시를 돌아다닌다면, 소녀는 숱한 위험들에 부딪혀야 할 겁니다. 바다에서 육식 상어들은 쪽배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포식자들은 쪽배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누가 압니까? 어떤 악어는 바닷물에 적응할지 모릅니다. 이런 '바다' 악어는 침수된 도시를 돌아다니고 쪽배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제임스 발라드가 쓴 <물에 잠긴 세계>는 악어들이 침수된 도시로 들어온다고 이야기합니다.
소설 <물에 잠긴 세계>처럼, 침수된 도시에서 악어들은 물고기들을 노릴지 모릅니다. 쪽배 소녀에게 이런 바다는 절대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서브머지드>는 이런 위기들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사실 <서브머지드>에 자연 환경이 있다고 해도, 이런 자연 환경은 먹이 그물망과 포식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자연 환경을 너무 평화롭고 고요하게 묘사합니다. 창작물은 현실을 완전히 반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창작물은 현실에서 일부를 떼어내고 오직 일부만 강조할 수 있습니다. <서브머지드>는 자연이 아주 평화롭다고 표현합니다. <서브머지드> 속의 자연은 현실 속의 자연과 다릅니다. <서브머지드> 속의 자연 환경은 너무 이상적입니다.
이건 <서브머지드>가 반드시 자연 환경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설, 만화,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에게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창작물이 현실을 왜곡하고 편집하고 과장하고 축소한다고 해도, 이건 창작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무협 소설이 하악하악 방중술 삼매경에 빠진다고 해도, 중세 판타지 소설이 오직 백인 남자 왕족들과 백인 남자 마법사들과 백인 남자 기사들만 늘어놓는다고 해도, 이건 창작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해양 환경 아포칼립스가 바다를 평화롭게 포장한다고 해도, 이런 포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서브머지드> 같은 게임들은 많지 않습니다. 무슨 게임이 평화롭고 묵시적인 분위기와 드넓은 바다와 무너진 서구 문명과 제3세계 쪽배 소녀와 경이로운 변이 고래 상어를 함께 보여주나요? 수많은 비디오 게임들에서 거대 바다 괴수들은 싸움박질과 파괴와 살육을 맡습니다. <서브머지드>는 고요한 바다에서 거대 괴수를 경이롭게 바라보나, <서브머지드>와 달리, 수많은 게임들에서 거대 바다 괴수들은 죽이고 부수고 싸워야 합니다. 비단 비디오 게임들만 아니라 소설들, 만화들,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서브머지드>가 자연 환경을 너무 낭만적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이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서브머지드>에서 기이한 변이 고래 상어는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서브머지드>는 경고입니다. <서브머지드>는 기후 변화가 인류 문명에게 심각한 피해를 미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고 게임 플레이어는 해석)합니다. 경고는 강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브머지드>는 침수된 도시와 변이 고래 상어를 보여줄 겁니다. 대도시에서 거대한 고래 상어가 유유히 헤엄칠 때, 이런 비일상적이고 장엄하고 기이한 장면은 강렬한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도시와 고래 상어는 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고래 상어 같은 거대 해양 동물은 대도시와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브머지드>는 두 가지를 연결하고, 이런 비일상적인 연결은 강렬한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게 비일상적이기 때문에, 이게 장엄하고 기이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이런 장면을 쉽게 잊지 못할지 모릅니다.
※ 게임 <서브머지드> 스크린샷 출처: Valadr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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