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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사이언티픽 로망스 소설들과 1인칭 시점 본문

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사이언티픽 로망스 소설들과 1인칭 시점

OneTiger 2019. 3. 16. 19:07

소설이나 영화 및 게임 시나리오를 쓸 때, 작가들은 시점들을 고민합니다. 창작물에는 시점이 있어야 합니다. 시점은 사건을 전개하고, 등장인물들을 보여주고, 배경을 설명합니다. 시점이 달라질 때마다, 똑같은 사건이나 현상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화 <라쇼몽>에서 여러 사람들이 똑같은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처럼, 시점은 창작물 속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문입니다. 그래서 창작물들을 쓰기 전에, 작가들은 무슨 시점이 주제와 분위기,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지 고민합니다. 시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1인칭 시점은 가장 친숙한 시점일 겁니다.


1인칭 시점은 '나'를 이야기하고, '나'는 거리끼지 않고 속내를 드러냅니다. 소설 화자 '나'는 구태여 소설과 거리를 유지하지 않습니다. 3인칭 시점이나 전지적 시점은 등장인물을 지켜보거나 내려다봅니다. 하지만 1인칭 시점은 소설 화자와 밀착합니다. 사실 1인칭 시점과 소설 화자는 똑같습니다. 소설 화자가 뭔가를 느낄 때, 독자는 여과 없이 그걸 읽습니다. 그래서 수필이나 일기나 편지처럼, '가벼운' 문학은 1인칭 시점을 이야기합니다. 여과 없이, 솔직히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때문에. 일기를 쓸 때, 작가가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한다면, 그 일기는 꽤나 이상한 느낌을 풍길지 모릅니다.



1) 영희는 철수를 바라봤으나, 철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2) 영희는 철수를 바라봤다. '아아, 철수야, 왜 너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하지? 왜?'


3) 나는 철수를 바라봤다. 아이고, 이 둔감한 남자야,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이런 문장들은 모두 똑같은 내용을 표현합니다. 영희는 철수를 좋아합니다. 철수는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영희는 철수를 바라보고 철수가 야속하다고 느낍니다. 1번과 2번과 3번 모두 똑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서술은 다르고 서술이 풍기는 느낌 역시 다릅니다. 1번 문장은 3인칭 시점입니다. 1번 문장에서 작가는 영희의 속내를 직접 표현하지 않습니다. 3인칭 시점은 등장인물 영희에게서 거리를 두고 (영희의 마음이 아니라) 영희의 행동을 표현합니다. 독자는 영희가 철수를 좋아한다고 느낄 수 있으나,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1번 문장은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느낌을 풍기나, 독자는 등장인물 속으로 깊게 들어가지 못합니다.


작가가 다소 건조하고 냉철한 느낌을 풍기기 원한다면, 작가는 1번을 쓰고 싶을 겁니다. 반면, 2번 문장은 전지적 시점으로 영희의 마음을 직접 표현합니다. 전지적 시점이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마음들을 직접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2번 문장은 비단 영희의 마음만 아니라 철수의 마음 역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전지적 시점 소설에서 철수는 '왜 영희가 계속 나를 흘끔거리지? 내 얼굴에 뭔가가 묻었나?'라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2번 문장은 영희의 마음과 철수의 마음과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을 직접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적 시점은 다양한 마음들이 부딪힌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시점이 너무 쉽게 등장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2번 문장은 건조하거나 객관적이거나 냉철한 분위기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2번 문장처럼, 전지적 시점은 격동적입니다. 수많은 마음들은 자신들을 드러내고 외칩니다. 전지적 시점은 문자 그대로 신과 같습니다. 전지적 시점과 달리, 현실 속에서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전지적 시점과 달리, 우리는 수많은 마음들을 듣지 못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마음들을 추측할 뿐입니다. 심지어 뛰어난 심리학자들조차 다른 사람들의 마음들을 그저 추측할 뿐입니다. 우리는 직접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목소리들조차 우리를 속이거나 합리화할지 모릅니다. 이른바 현대(근대) 소설들은 등장인물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프로이트 이후, 사람들은 무의식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소설 역시 등장인물을 자세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무의식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소설 시점이 등장인물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나요. 작가가 이런 전지적인 능력보다 불완전하거나 가치 중립적인 느낌을 원한다면, 작가는 전지적 시점보다 다른 시점들을 선택할 겁니다. 1인칭 시점은 등장인물의 마음을 직접 표현하나, 1인칭 시점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들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2번 문장에서 영희가 생각할 때 작가는 따옴표('')를 썼습니다. 반면, 3번 문장에서 영희는 소설 화자 '나'가 되고,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구태여 따옴표를 쓰지 않습니다. 소설 화자 영희는 따옴표 없이 생각합니다. 소설 시점이 소설 화자에게 밀착했기 때문에, 소설 시점이 거의 소설 화자이기 때문에, '나'는 구태여 따옴표를 쓰지 않고 마음을 표현합니다. 소설 시점이 소설 화자에게 밀착했기 때문에, 소설 화자가 뭔가를 생각할 때, 소설은 곧바로 그걸 말합니다. 독자 역시 훨씬 가깝게 그걸 읽을 수 있습니다. 독자는 따옴표를 읽지 않습니다. 독자는 곧바로 영희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 덕분에 독자는 영희에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사실 3번 문장처럼, 1인칭 시점에서 독자는 영희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몰입하지 못합니다. 오직 소설 화자 영희만 세상을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1번 문장이나 2번 문장과 달리, 3번 문장에서 독자는 영희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들에 몰입하지 못합니다. 3번 문장에서 영희는 소설 속의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한 유일무이한 창문입니다. 독자는 다른 창문들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독자는 전적으로 영희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2번 문장처럼, 전지적 시점에서 독자는 구태여 영희에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인칭 시점 소설에서 독자가 영희를 의심하고 싶다고 해도, 소설을 읽기 위해 독자는 영희의 시점에 의존해야 합니다.



1인칭 시점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한 창문은 비좁습니다. 영희는 모든 것을 해석합니다. 영희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해석하지 못합니다. 영희가 철수를 지상 최고의 훈남이라고 느낄 때, 철수는 지상 최고의 훈남이 됩니다. 소설은 그걸 냉철하게 표현하거나 전지적으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1인칭 시점에는 이런 단점이 있으나, 그 덕분에 1인칭 시점을 쓰기는 쉽습니다. 소설 시점과 소설 화자 사이에 거리가 없기 때문에, 소설 작가가 소설 화자에게 밀착한다면, 소설 작가는 쉽게 사건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3인칭 시점과 전지적 시점에서 소설 작가는 등장인물들에게서 거리를 두거나 등장인물들을 자세히 파악해야 합니다.


1인칭 시점은 그렇지 않습니다. 1인칭 시점에서 소설 화자 '나'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바라보고 표현합니다. 따옴표고 거리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옴표 따위 없이, 영희는 철수가 좋다고 (마음 속으로) 아주 크게 외칠 수 있습니다. 수필과 일기처럼, '나'는 모든 것을 곧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건 소설 화자 '나'가 모든 것을 줄줄이 털어놓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 1인칭 시점 추리 소설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종종 '나'는 어떤 정보를 감추고 독자들에게 골탕을 먹입니다. '나'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창문이고, 만약 '나'가 정보를 감춘다면, 독자는 절대 그걸 알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종종 추리 소설들은 1인칭 시점을 이용해 트릭을 짭니다.



그렇다고 해도 1인칭 시점을 쓰기는 쉽습니다. 독자 역시 1인칭 시점을 훨씬 쉽게 받아들일 겁니다. 소설-시점-화자-독자 사이에 거리가 없기 때문에, 소설 화자는 곧바로 독자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소 비일상적인 사건이 벌어진다고 해도, 소설 화자는 그걸 곧바로 독자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비일상적인 사건을 훨씬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3인칭 시점이 객관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3인칭 시점은 비일상적인 사건에게서 거리를 두기 원합니다. 3인칭 시점 때문에 독자는 비일상적인 사건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둡니다.


전지적 시점은 비일상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들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독자는 다양한 마음들을 읽을 수 있으나, 어떤 등장인물들은 비일상적인 사건을 의심할 테고, 독자 역시 의심을 품을지 모릅니다. 반면, 1인칭 시점 소설에서 소설 화자가 비일상적인 사건을 믿는다면, 독자 역시 믿을 수 있습니다. 외계인이 나타나거나 위험한 로봇이 돌아다니거나 바다 괴수가 상륙한다고 해도, 소설 화자는 그걸 곧바로 독자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그걸 곧바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이 신뢰감을 주기 원할 때, SF 작가는 1인칭 시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인칭 시점 SF 소설은 직접 독자에게 말합니다.



메리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은 최초의 SF 소설입니다. 동시에 이건 1인칭 시점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액자 구성이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은 전형적인 1인칭 시점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프랑켄슈타인>은 소설 화자 '나'를 보여줍니다. 탐사선 선장 '나'는 사건들을 전개합니다. 소설 화자 '나' 없이, 독자는 <프랑켄슈타인>을 읽지 못합니다. 비단 <프랑켄슈타인>만 아니라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나 허버트 웰즈가 쓴 <우주 전쟁>이나 <타임 머신> 역시 '나'를 보여주는 1인칭 시점 소설입니다. <프랑켄슈타인>과 <해저 2만리>와 <우주 전쟁>과 <타임 머신>은 모두 19세기를 대표하는 초기적인 SF 소설들입니다.


이른바 미국 최초의 SF 소설 <뒤돌아보며> 역시 1인칭 시점입니다. <타임 머신>처럼, <뒤돌아보며>에서 시간 여행자 '나'는 미래로 날아갑니다. 초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들 <프랑켄슈타인>과 <해저 2만리>와 <우주 전쟁>과 <타임 머신>과 <뒤돌아보며>에는 모두 소설 화자 '나'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우연에 불과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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