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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 지구 온난화 본문

SF & 판타지/외계인과 이방인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 지구 온난화

OneTiger 2020. 8. 19. 20:09

※ 이 게시글은 빅터 라발의 소설 <블랙 톰의 발라드>와 윌리엄 유뱅크의 영화 <언더워터>의 내용 누설/결말 누설을 포함합니다.





"다바다! 아, 아니, 바바다! 으아, 바다다!"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이렇게 후치 네드발은 소리칩니다. 후치 네드발이 바다를 처음 봤기 때문에, 바다가 아주 압도적이고 경이롭기 때문에, 후치 네드발은 바다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비단 후치 네드발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바다가 압도적이고 경이롭다고 생각할 겁니다. 후치 네드발과 달리, 비록 사람들이 바다를 다바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 역시 바다가 이질적이고 광대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인간은 2차원 육상에 속합니다. 2차원 인간과 3차원 바다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3차원 바다는 이질적인 공간입니다.

 

게다가 바다는 광대합니다. 사실 지구는 지구(地球)가 아닙니다. 바다가 70% 표면을 차지하기 때문에, 지구는 해구(海球)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들은 지구를 테라(terra)라고 부르나, 바다가 70% 표면을 차지하기 때문에, 테라는 잘못된 명칭입니다. 만약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그들은 테라라는 명칭과 지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BBC 다큐멘터리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지구는 파란 행성, 블루 플래닛입니다. 유명한 보드 게임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지구는 블루 마블입니다. 지구가 블루 마블인 것처럼, 바다는 광대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압도적인 바다를 경외합니다.



바다가 이질적이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바다에게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바다는 신비롭습니다. 풍요로운 생물 다양성과 화려한 산호초들과 거대하고 평화로운 고래 상어와 낭만적인 지중해는 바다가 신비롭다고 포장합니다. 한편으로 바다는 위협적입니다. 깊고 깊은 바닷속과 기이한 해저 동물들과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백상아리와 모호한 유령선은 바다가 위협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다가 위협적이기 때문에, 공포 장르에게 바다는 기가 막힌 배경 무대입니다. 우주적인 공포 역시 바다가 끔찍하고 무서운 배경 무대라고 간주합니다. 단편 소설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전형적인 사례를 남긴 것처럼, 여러 우주적인 공포들은 바닷속의 기이한 외계인들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적인 공포들이 바다가 배경 무대라고 똑같이 간주한다고 해도, 바다를 바라보기 위한 시선들은 다양합니다. 1편과 달리, 비디오 게임 <엑스컴: 테러 프롬 더 딥>은 우주적인 공포를 인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관점에서 <인스머스의 그림자>와 <테러 프롬 더 딥>은 상당히 비슷하나, 양쪽에게는 여러 차이들이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다키스트 던전>에서 해안 동굴(cove) 지역은 <인스머스의 그림자>와 비슷하나, 양쪽에게는 여러 차이들이 있습니다.



<테러 프롬 더 딥>과 <다키스트 던전>처럼, 소설 <블랙 톰의 발라드>와 영화 <언더워터>는 우주적인 공포입니다. 우주적인 공포로서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는 중요한 분량을 할애하고 바다를 묘사합니다. <인스머스의 그림자>와 달리,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바다는 주된 배경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핵심 소재는 심해의 잠든 왕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미래에서 심해의 잠든 왕이 깨어나고 바다가 도시를 집어삼킬 거라고 예언합니다. 만약 바다가 도시를 집어삼킨다면, 도시는 물바다가 될 테고, 수몰된 건물들 사이에서 깨어난 왕과 외계 추종자들은 돌아다닐 겁니다.

 

비록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주된 배경 무대가 도시라고 해도, 이 소설은 비릿한 바다 냄새와 깊고 깊은 바닷속을 놓치지 않습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영화 <언더워터>에서 심해는 주된 배경 무대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는 심해 기지와 심해 풍경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육상을 절대 보여주지 않습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가 수몰된 건물들 사이에서 깨어난 왕과 외계 추종자들이 돌아다닌다고 묘사하는 것처럼, <언더워터>는 거대 해저 외계인과 외계 추종자들이 심해 기지를 습격한다고 묘사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 마지막 장면과 <언더워터>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유사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에서 우주적인 공포와 거대 해저 외계인은 커다란 교집합입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는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정신적인 후계자입니다. <엑스컴: 테러 프롬 더 딥>과 <다키스트 던전>(의 해안 동굴)이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따르는 것처럼,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엑스컴: 테러 프롬 더 딥>과 <다키스트 던전>(의 해안 동굴)이 비슷한 것처럼,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는 비슷하고, SF 팬들은 네 가지들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랙 톰의 발라드>와 <언더워터>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우주적인 공포와 해저 외계인은 핵심이나, <블랙 톰의 발라드>는 오직 이것에게만 매달리지 않습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해저 외계인과 함께 인종 차별은 또 다른 핵심 소재입니다. 이 소설은 거대 해저 외계인에게 주목하고, 한편으로 이 소설은 인종 차별을 고발합니다. 두 가지는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인종 차별은 거대 해저 외계인으로 이어지고, 결국 차별은 파멸로 이어집니다. 이 소설에서 거대 해저 외계인은 그저 무시무시한 악마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거대 해저 외계인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인류 문명을 짓밟고 응징합니다. 우주적인 공포는 우주적인 응징입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우주적인 공포는 우주적인 응징으로 승화합니다. 소설 주인공 블랙 톰은 흑인입니다. 블랙 톰은 인종 차별 미국 사회 속의 흑인입니다. 흑인으로서 블랙 톰은 폭력적인 차별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블랙 톰은 세상을 증오합니다. 폭력적인 세상을 응징하기 위해 블랙 톰은 잠든 왕을 깨웁니다. 언젠가 깨어난 왕은 엄청난 대격변을 일으킬 겁니다. 지구는 뜨거워질 테고, 해수면은 도시를 덮칠 겁니다. 수몰된 도시에서 인류 문명은 무너질 테고, 깨어난 왕과 외계 추종자들은 지구를 장악할 겁니다. 블랙 톰은 인류 문명을 직접 무너뜨리지 않으나, 블랙 톰은 주요한 종말 원인입니다.

 

블랙 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블랙 톰을 못된 악당이라고 심판해야 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독자들은 블랙 톰을 동정할 겁니다. 블랙 톰이 흑인, 사회적인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약자로서 블랙 톰은 폭력적인 차별에 부딪혔습니다. 사회 구조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블랙 톰은 인류 문명을 응징하기 원했습니다. 블랙 톰이 폭력적인 차별에 부딪혔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은 블랙 톰보다 폭력적인 사회 구조를 비판할 겁니다. 그리고 인종 차별은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거대 해저 외계인은 지구 온난화로 이어집니다.



기후 정의가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것처럼, 지구 온난화 문제는 인종 차별 문제를 포함합니다. 비록 빅터 라발이 기후 정의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현실에서 기후 정의는 지구 온난화와 인종 차별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블랙 톰의 발라드>에는 비단 공포만 아니라 차별과 응징이 있습니다. 공포와 차별은 응징으로 승화하고, 단순한 공포에서 수몰된 도시는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블랙 톰의 발라드>는 커다란 함의를 드러냅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와 달리, <언더워터>는 오직 공포 그 자체에만 치중합니다. <언더워터>에서 공포는 다른 뭔가로 승화하지 않습니다.

 

<언더워터>가 오직 공포 그 자체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언더워터>는 전형적인 사건 전개를 따라갑니다. 분위기는 음침하고, 정체 불명의 뭔가는 사람들을 습격하고, 사람들은 비명들을 지르고, 다들 공황에 빠지고, 기타 등등…. <언더워터>는 이 전개 과정을 아주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이 영화가 아주 전형적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어떻게 다음 사건이 나타날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아주 전형적이기 때문에, 전형은 진부함으로 몰락할지 모릅니다. 이미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전형을 마련했고, <언더워터>가 이 전형을 곧바로 따라가기 때문에, 전형은 진부한 공식, 지루한 전개로 몰락할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언더워터>에서 우주적인 공포는 반쪽짜리 공포입니다. <언더워터>는 장르 공식들을 충실하게 따라가나, 이 영화는 중요한 것을 빠뜨립니다. 우주적인 공포에서 인간은 세상 배후를 바라보고 비밀을 깨닫습니다. 인간이 비밀을 깨닫는 순간, 비밀이 너무 압도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성을 잃고 충격에 빠집니다. 고작 인간 따위는 압도적인 비밀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압도적인 비밀은 이성을 짓밟고, 인간은 산산히 부서집니다. 우주적인 공포에서 이건 핵심 사항이나, <언더워터>는 이것을 간과합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압도적인 비밀이 인간 이성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지 묘사하지 않습니다.

 

<언더워터>에서 공포는 그저 반사 작용에 불과합니다. 정체 불명의 뭔가가 사람들을 습격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두려워하고 비명들을 지를 뿐입니다. 이 영화에서 공포는 세상을 넘고 압도적인 미지로 향하지 않습니다. 이건 모든 우주적인 공포에서 인간 이성이 필연적으로 무너져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편 소설 <더니치 호러>에서 대학교 도서관장은 외계인을 물리치고 승리합니다. <더니치 호러>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은 압도적인 미지와 싸우고 이길 수 있습니다. 우주적인 공포에서 무너진 이성은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도 블랙 톰의 이성은 부서지지 않았고 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니치 호러>에서 대학교 도서관장은 압도적인 미지를 탐구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도 블랙 톰은 압도적인 미지를 탐구합니다. 우주적인 공포에서 인간은 세상 배후를 탐구하고, 그러는 동안, 인간은 이 세상이 겉보기와 너무 크게 다르다고 깨닫습니다. 어떤 SF 팬들은 우주적인 공포가 오직 자극적인 살육만 반복한다고 생각하나, 이건 커다란 착각입니다. 오히려 우주적인 공포에서 살육보다 '탐구'는 훨씬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네크로노미콘> 같은 마도서는 주인공 위상에 가깝습니다. 보드 게임 <아컴 호러>는 주연 등장인물들을 탐구자(investigator)라고 부릅니다.

 

<아컴 호러>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이 미지의 외계 존재들을 탐구하기 때문에, 그들은 단순한 희생자보다 탐구자입니다. 탐구자들이 미지의 비밀을 밝히는 동안, 이 과정에서 흑마술들과 첨단 과학들은 끼어들고, 외계 존재들은 무서운 괴물 그 이상이 됩니다. 흔한 오해와 달리, 우주적인 공포는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더니치 호러>와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도서관장과 블랙 톰은 마법에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반면, <언더워터>에서 영화 주인공은 탐구자가 아닙니다. 우주적인 공포에서 탐구 과정은 핵심 비중을 차지하나, <언더워터>는 이 과정을 간과합니다. 영화 주인공은 탐구하지 않습니다.



우주적인 공포는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나, 아무리 <언더워터>가 우주적인 공포를 계승하기 원한다고 해도, <언더워터>는 미지의 존재를 탐구하지 않습니다. 영화 주인공은 탐구자가 아니고, 그래서 <언더워터>는 우주적인 공포를 완전하게 계승하지 못합니다. 이 영화는 오직 자극적인 살육만 추구합니다. 이 영화에서 (학구적인 분위기 없이) 우주적인 공포는 반쪽짜리가 되고, 장르 전형은 진부한 공식으로 몰락합니다. 만약 이 영화가 우주적인 공포를 제대로 계승하기 원했다면, 이 영화는 주인공이 탐구자라고 묘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주인공은 금서나 마도서를 뒤적이지 않습니다.

 

소설 <블랙 톰의 발라드>에서 블랙 톰은 사회적인 약자이고, 그래서 블랙 톰은 탐구자가 됩니다. 인종 차별 문명을 응징하기 위해 블랙 톰은 해저 외계인들을 연구하기 원하고, 블랙 톰은 마도서를 탐독합니다. 이 소설에서 사회적인 약자는 탐구자가 되기 위한 계기가 됩니다. 반면, <언더워터>에서 영화 주인공에게는 탐구자가 되기 위한 계기가 없습니다. 이 영화는 탐구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영화 주인공은 정체 불명의 괴물과 마주치고, 그래서 영화 주인공은 위협을 향해 그저 조건 반사적으로 맞설 뿐입니다. 영화 주인공에게는 심해 기지 기술자 이외에 다른 성향이 없습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사회적인 약자→탐구자→지구 온난화→응징'이라는 단계를 보여줍니다. 소설 주인공이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로서 소설 주인공은 탐구에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적극적인 탐구는 처절한 복수가 되고, 처절한 복수는 지구 전체로 확장하고, 지구 온난화는 인류 문명을 덮칩니다. 이 소설에서 공포는 단순한 자극보다 원대한 생태계 변화입니다. 반면, <언더워터>에서 영화 주인공은 그저 단순하게 반응할 뿐입니다. 영화 주인공은 탐구자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 주인공에게는 탐구자가 되기 위한 계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더워터>는 그저 무서운 장면들을 반복할 뿐입니다.

만약 영화 관객들이 이 영화에게 실망한다면, 이것 역시 이유가 될지 모릅니다. <언더워터>에게 탐구자가 없고, 탐구하기 위한 계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블랙 톰의 발라드>에게는 미지의 외계 존재와 마도서들을 탐구하기 위한 계기, 아주 확실한 계기가 있습니다. 이 계기 때문에, 잠든 왕은 깨어나고 세상을 전복합니다. 인류 문명은 수몰되고, 지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됩니다. 아니, 이 계기는 비단 소설 속의 세상만 아니라 장르 그 자체를 전복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우주적인 공포라는 장르 그 자체를 뒤집습니다. 오랜 동안, 우주적인 공포와 인종 차별, 성 차별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엑스컴: 테러 프롬 더 딥>과 <다키스트 던전>과 <언더워터>를 비롯해 많은 우주적인 공포들이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계승하는 것처럼,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이 장르를 대표합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우주적인 공포를 창시하지 않았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미스캐토닉 대학을 소설이나 보드 게임 설정에 집어넣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 장르에서 아무도 하워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력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많은 SF 팬들이 아는 것처럼,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인종 차별론자였고 소설에서 이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주적인 공포와 인종 차별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건 하워드 러브크래프트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단편 소설 모음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서 노라 제미신이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와 서구 백인 남자 신화를 비판하는 것처럼, SF/판타지 장르에서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은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직 SF/판타지 장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초월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SF/판타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 구조에서 SF/판타지는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사회 구조는 SF/판타지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지배적인 사회 구조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고,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는 인종 차별입니다.



왜 자본주의가 인종 차별인가요? 식민지 수탈에서 자본주의가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보수 우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부유한 자본주의가 번쩍 나타났거나 합리적인 백인 남자들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떠벌이나, 끔찍한 식민지 수탈 없이, 자본주의는 나타나지 못했을 겁니다. 자본주의를 위해 인디언들, 흑인들, 원주민들은 죽어나갔습니다. 20세기 동안, 지배적인 사회 구조는 자본주의였고, 인종 착취에서 자본주의가 비롯했기 때문에, 이 영향에서 SF/판타지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중세 유럽 판타지 <반지 전쟁>이 보여주는 것처럼, SF/판타지는 서구 백인 남자들을 떠받들었습니다.

여전히 보수 우파들은 식민지 수탈과 자본주의를 분리하기 원합니다. 심지어 진보 정당들과 정치적인 올바름조차 식민지 수탈과 자본주의를 분리하고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진보 정당들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보다 복지 국가를 이룩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올바름은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자연 환경을 오염시켰다고 욕하고, 졸지에 인디언들, 흑인들, 원주민들은 환경 오염 범죄자가 됩니다. 자본주의 문명 그 자체가 인종 차별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SF/판타지는 인종 차별을 피하지 못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이것을 지적하고 장르를 전복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자본주의를 직접 비판하지 않으나, 현실에서 SF 독자들은 인종 차별과 지구 온난화가 이어진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우주적인 공포는 비단 원대한 환경 재앙으로 승화할 뿐만 아니라 장르 그 자체를 비판합니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해저 외계인과 지구 온난화를 절묘하게 연결합니다. 이 소설에서 바다는 비단 공포를 위한 배경 무대일 뿐만 아니라 기후 정의를 시사하기 위한 배경 무대입니다. 하지만 <언더워터>는 그저 자극적인 공포에 매달릴 뿐입니다. 이 영화에서 바다는 그저 자극적인 공포를 위한 배경 무대에 불과합니다.

 

 

※ 사진 <Nature Water Ocean Sea Underwater Marine Life> 출처: StockSnap,

https://pixabay.com/photos/nature-water-ocean-sea-underwater-2616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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