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블랙 아웃 2022>, 인류는 모두 똑같은 인간들인가 본문
<블레이드 러너: 블랙 아웃 2022>는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잇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 사이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블랙 아웃>은 왜 타이렐이 망했는지, 왜 새로운 회사가 인조인간을 만드는지, 새로운 인조인간이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내용은 짧고 복잡하지 않습니다. <블랙 아웃>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전개하는 밑바탕이고, 특별한 주제를 담지 않았어요.
전반적인 줄거리는 인조인간을 향하는 진짜 인간들의 분노와 인조인간들의 반란입니다. 인조인간은 인간들을 위한 노예이고, 수명이 짧습니다. 제조 회사는 인조인간의 수명을 더욱 늘렸고, 대중은 여기에 반발합니다. 사람들은 인조인간들을 공격하고, 인조인간들은 세상을 뒤집기 원합니다. <블랙 아웃>은 복제인간이나 로봇을 다루는 SF 창작물들이 이야기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아요. 이런 단편 애니메이션에게 뭔가 특별한 내용을 기대한다면, 사실 그건 욕심일 겁니다. 게다가 거대한 영화에 묶여있기 때문에 이런 애니메이션은 자유롭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요.
그렇다고 해도 <블랙 아웃>은 소소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가 자랑하는 화려하고 거대한 마천루들, 각종 형광색들이 번쩍이는 장식물들, 인조인간의 역동적인 전투, 기타 등등. 비록 <블랙 아웃>은 본편 영화를 띄워주는 바람잡이에 불과하나, 거대한 마천루들과 역동적인 인조인간들은 왜 <블레이드 러너>가 인기를 끄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늘에 닿을 듯한 웅장한 건물들과 찬란하고 퇴폐적인 광고판들과 이질적인 간판들과 하늘을 나는 자동차들은 첨단 미래 도시라는 환상을 시청자에게 안겨줍니다.
뭐, 우리가 정말 그런 퇴폐적인 미래 도시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도시가 환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 도시에서 우리가 일개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면, 아무도 그걸 반기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사이버펑크 창작물들이 형사나 탐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형사나 탐정은 뭔가를 추적하고 감시하는 존재들입니다. 형사와 탐정은 대도시의 모험가입니다. 그들은 아슬아슬한 위기를 회피할 줄 알고, 적들과 짜릿하게 맞서 싸울 수 있어요. 특히, 형사는 공권력을 상징하고, 대도시를 마음대로 헤집을 수 있죠.
일개 노동자에게 퇴폐적인 첨단 대도시는 힘겨운 일터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형사에게 첨단 대도시는 멋진 모험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겠죠. 탐정들 역시 전직 형사거나 형사와 친하기 때문에 멋진 모험을 펼칠 수 있고요. 하늘을 찌르는 웅장한 마천루들 속에서 탐정이 아슬아슬한 위기를 뒤쫓는다면, 그건 정말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겁니다. 그래서 <쿼런틴>이나 <얼터드 카본> 같은 소설은 형사나 탐정을 이야기하겠죠. <블레이드 러너> 역시 그럴 테고요. <블랙 아웃>은 블레이드 러너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라는 형사가 돌아다닐 수 있는 무대를 설정하고, 그래서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 되겠죠. 인조인간을 향하는 증오와 인조인간들의 반란은 블레이드 러너가 뛰어놀 수 있는 밑바탕을 제공하겠죠. 하지만 만약 넥서스 8 같은 인조인간들이 등장한다면, 정말 사람들이 인조인간을 증오할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러다이트 운동을 들먹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가 흐르는 동안, 문명은 수많은 노예들을 거느렸어요. 그런 노예들을 증오하고 학살하는 상황은 별로 흔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블랙 아웃>은 지배적인 관념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블랙 아웃>은 인류가 수많은 잘못들을 저질렀고 인간이 악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인조인간 운운합니다. 하지만 인류라는 단어는 무엇을 가리키나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인류인가요? 북미의 재벌 회장과 동남 아시아의 가난한 시골 농민이 똑같은 인류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해도, 북미의 재벌 회장과 동남 아시아의 가난한 시골 농민은 똑같은 생명체가 아닙니다.
인간과 너구리가 다른 만큼, 재벌 회장과 시골 농민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이 뭔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건 모든 인류의 잘못이 아닐 겁니다. 그건 힘이 있고 권력이 있고 생산 수단이 있는 기득권의 잘못이 되겠죠. 수많은 피지배 계급들은 그런 잘못을 막기 위해 저항했습니다. 그건 힘들고 어려운 투쟁이나, 피지배 계급들은 계급 투쟁을 멈추지 않아요. 하지만 <블랙 아웃>은 그런 계급 투쟁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이 나쁘다고 이야기할 뿐이죠. 그저 지배적인 관념에 복종할 뿐이죠.
뭐, <블랙 아웃> 이외에 지배적인 관념에 복종하는 SF 창작물들은 많습니다. 심지어 그랜드 마스터들조차 그런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요. 저는 우주와 외계를 바라보는 사이언스 픽션이 고작 자본주의에게 복종한다는 상황이 아쉽습니다. (아니, 정말 사이언스 픽션이 우주를 제대로 바라볼 능력이 있기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