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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나의 여친>과 미래적인 상상력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과 미래적인 상상력

OneTiger 2018. 2. 11. 22:41

[표지 그림은 정말…. 만약 21세기를 살았다면, 마르크스는 아주 전투적인 환경 보호론자가 되었겠죠.]



소설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은 꽤나 이색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이 무슨 상관일까요. 게다가 소설 표지에서 칼 마르크스는 티셔츠를 입고 노란 안경을 썼습니다. 표지 그림 배경은 마치 청바지의 질감 같고요. 사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모든 자동차를 파괴하라 Destroy All Cars>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한창 생각들이 많은 청소년이고, 게다가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자동차들이 자연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하고, 자동차를 비롯해 현대 소비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계속 소비 문화를 유지한다면, 잘못된 정치 구조 역시 바뀌지 않을 테고요.


이 소설에서 자동차는 현대 소비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이고,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입니다. 이 소설은 자연 환경을 걱정하는 생태주의 소설이고 주인공이 부조리한 세상에게 대항하는 성장 소설입니다. 그래서 소설 제목은 모든 자동차를 파괴하라고 주장하죠. 이런 내용은 카를 마르크스나 공산주의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은 카를 마르크스를 꽤나 존경하고, <공산당 선언>이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주인공이 <공산당 선언>을 좋아하는 이유는 빈민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빈민들이 단결하고 공장주들에게 대항할 때, 불평등한 사회가 바뀔 거라고 믿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연 환경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소설 주인공은 어느 정도 생태 사회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드러냅니다. 생산 수단의 사회적 공유를 완전히 이야기하지 않으나, 어느 정도 사회주의에 가까운 등장인물이죠. 소설 주인공은 대량 소비 사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하고 욕합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미래 지구가 무슨 모습으로 바뀔지 걱정합니다.


자연 환경이 대량으로 망가지고, 인류 문명이 무너지고, 마침내 인간들이 사라지고…. 이런 부분은 SF 환경 아포칼립스 같아요. 물론 <나의 여친>은 본격적인 사이언스 픽션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중심적인 주제는 대량 소비와 환경 오염입니다. 환경 아포칼립스는 중심적인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공상에 가까워요. 소설 주인공은 언젠가 지구에서 외계인들이 멸망한 인류 문명을 발견할지 모른다고 상상합니다. 그건 별로 심각한 상상이 아니고, 소설 분위기를 좌우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나의 여친> 같은 생태주의 소설들은 사이언스 픽션에게서 발상이나 상상력을 빌리곤 합니다. 환경 아포칼립스를 뺀다고 해도, <나의 여친>에는 아무 무리가 없을 겁니다. 소설 주인공이 멸망한 지구를 상상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소설은 얼마든지 대량 소비 문화와 환경 오염을 비판할 수 있을 겁니다. 소설 주인공이 환경 아포칼립스를 상상하는 이유는 미래적인 상상력이 현실을 더욱 강렬하게 경고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두 눈이 있으나, 두 눈만으로 세상 만사를 확인하지 못합니다. 거울을 볼 때, 망원경을 볼 때, 현미경을 볼 때, 우리는 세상 만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겠죠.


미래적인 상상력은 거울이나 망원경이나 현미경이 될 수 있어요. 요리를 먹을 때, 우리는 양념을 뿌리곤 합니다. 양념을 뿌리지 않아도 요리를 먹을 수 있겠으나, 양념을 뿌린다면 그 요리는 훨씬 강렬한 맛을 낼 겁니다. 미래적인 상상력은 양념이 될 수 있죠. 게다가 환경 오염은 거시적인 문제이고, 몇 십 년이나 몇 백 년 이상 파국을 미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핵 폐기물의 반감기 같은 문제를 고려한다면, 환경 오염과 미래적인 상상력은 떨어지지 못해요.



그래서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 같은 소설은 미래적인 상상력을 집어넣은 듯합니다. 이와 비슷한 다른 소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가렛 앳우드는 <인간 종말 리포트>에 미래적인 상상력을 집어넣었겠죠. 그래서 <곰과 함께> 같은 소설집은 SF 작가들을 선정했을 겁니다. (이 소설집에서 SF 소설들은 별로 비중이 크지 않으나, 꽤나 강렬합니다.) 저는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미래적인 상상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는 거시적인 문제들이 많습니다. 기술적 특이점이나 유전자 조작이나 우주 탐사 같은 문제 역시 거시적이죠.


그런 문제들과 함께 환경 오염은 미래적인 상상력을 상징합니다. 미래적인 상상력이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환경 오염을 비판할 수 있을 겁니다. 생물 다양성 위기를 고려한다면, 구태여 미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수많은 경제학자들이나 생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환경 오염은 미래 세대에게 훨씬 파국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미래에 기후 변화가 무슨 재앙을 일으킬지 아무도 알지 못해요. 그건 과학자들이 상상하는 재앙보다 작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건 훨씬 무서운 재앙이 될지 모르죠. 그래서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미래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겁니다.



※ <나의 여친>은 카를 마르크스를 언급했으나, 자본주의를 별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설 주인공이 소비 문화를 비판한다고 해도, 결국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입니다. <나의 여친>이 자본주의를 비판했다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나저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함께 썼음에도 <나의 여친>은 엥겔스를 언급하지 않는군요. 둘째 바이올린은 불쌍합니다.)



[아니, 그런데 왜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이 19금인지…. 그렇게 '여친'이라는 단어가 위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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